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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펌 [ 가수왕열전 5 - 조용필 (下) / 박제되는 趙 容弼 ]

ypc스타, 2003-02-10 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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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왕열전 5 - 조용필(下)/ 박제되는 조용필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이 해,
조용필은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 등을 히트시킵니다.
이 두 곡은 요즘도 노래방에서 많이 불려지곤 하지만 80년대 초중반의 폭발성은
이미 한 풀 꺾인 듯하긴 했습니다.
<서울 서울 서울>은 다분히 올림픽을 의식한 곡이었고, <모나리자>는
84년 <눈물의 파티> 계열이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 앨범에서는 히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인상적인 곡들이 함께 수록됐는데 <우주여행 X>와 <서울 1987년>입니다.
<우주여행 X>는 예전 <난 아니야>처럼 동요풍의 노래였는데,
실제로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조용필이 서로 화답하는 형태로 지어진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로켓트 타고서 우주를 돌래요 수많은 별들이 우리를 불러요’(아이들),
     `그렇게 먼곳엔 가지를 말아라 지구도 하나의 어여쁜 별이야’(조용필),
     `그래도 갈래요 우주로 갈래요’(아이들),
     `그곳에 갈려면 내게도 알리렴’(조용필)

등으로 노래를 주고받습니다.
마지막 가사는 `아이는 먼곳에 혹성을 꿈꾸네 나는 언제 그 꿈을 잃었나’라고
끝맺습니다.
이전의 <난 아니야>처럼 단순한 동요가 아니라,
나름대로 철학이 담긴 `어른들의 동요’라 하겠습니다.
조용필의 코드가 `사랑', `우정'에서 `꿈'으로 바뀐 게 이때부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이전에 <못 찾겠다 꾀꼬리>도 이런 뉘앙스를 미리 띄고 있긴 했습니다.

또하나, <서울 1987년>은 또다른 조용필을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조용필은 80년대 극심한 혼란기에도 시국과는 무관한 인물이었습니다.
조용필은 정태춘이나 90년대의 안치환과는 역할이 달랐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1987년 민주화운동의 기억은 강렬했던 것 같습니다.

아래는 <서울 1987년>의 가사 뒷부분입니다.

             바람이여 분다 혼들의 합창이 들린다 사람들아
             산고의 고통 씻겨 나가네
             비바람 불어오는구나 희망을 싣고
             영원의 바다 눈앞에 있네
             잎들은 푸르러 그꽃은 색깔을 품었네
             수줍은 그녀의 가슴이 설레인다
             달님도 웃고 별님도 웃고 우리 웃네
             비야 비야 멈추어다오
             바람이여 멈추어다오
             비가 내려 대지는 숨쉬고
             바람이 불어 꽃씨는 뿌려졌네

<1989년~1990년>

89년 조용필은 서정적이면서도 복고적인 가사와 신파조 가락의 <Q>를 발표해
사그러들지 않는 인기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89년말~90년초 무렵 조용필은 심한 스캔들에 휩싸입니다.
톱스타들이 으레 그러하듯 조용필도 크고작은 스캔들에서 자유롭기 힘들었지만,
이때의 스캔들은 좀 지독했습니다.
유부녀와 연관돼 있었고,
조용필이 결백을 거듭 주장했지만 상황은 점점 꼬이고.
게다가 활동이 한창 왕성할 때는 스캔들도 묻혀버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당시 조용필은 전성기에 비해 활동이 뜸했던 탓에 스캔들만 오롯이 남은 아주
고약한 꼴이 되고 말았던 겁니다.
나중에 조용필의 결백이 밝혀지고,
90년 봄께 그해초 발표한 <추억속의 재회>가 또한번 히트곡 대열에 오릅니다.
이 노래는 기본정서는 노래제목이 말해주듯 <미워 미워 미워>나 <창밖의 여자>류였으나,
리듬은 `쿵쿵 땅땅'(드럼으로 앞부분 `쿵'은 각각 4분음표로, 뒷부분 `땅땅'은
각각 8분음표로) 식의 록비트를 차용해 트롯의 애수조는 살리면서도 느끼한 맛은 뺀
그런 곡이라고 하겠습니다.
가요톱텐 류의 인기순위 프로그램에서 조용필이 1위를 차지한 마지막 곡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긴 스캔들로 지쳐있던 조용필이 이 노래로 1위 자리에 올라 노래를 부를 때 마치 그는
잃어버린 챔피언벨트를 되찾고 건재를 과시하는 챔피언의 모습처럼 우뚝 솟아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록키처럼.
그러나 이 노래를 끝으로 조용필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약화됩니다.

<1991년~ >

조용필 첫 회에서 80년과 81년 두 해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것도 벅차했는데,
무려 12년간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뭉뜽거려야 할만큼 90년대의 조용필은 현역의
왕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시대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80년대와 비교하자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서서히 `전설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거죠.
이 시기 조용필은 1년에 2개의 음반을 발표했던 80년대 초반과는 달리 2~3년에
1개의 음반을 발표합니다.
그러나. 조용필이 은둔자로 세상을 떠나버린 건 아닙니다.
그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아 예전과는 다른 창작활동을 계속 했지만,
대중들은 이런 조용필과 함께 호흡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조용필은 80년대오빠부대들의 성장과 또 자신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일종의
`성인가요'를 시도합니다.
`성인가요'라고 하면 트롯만 연상되는 것과 달리, 성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좀더 깊이있는 가사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리듬 등.
그러나 아쉽게도 90년대의 조용필을 소비해야 할 `성인'들은 문화에는 절대 돈을 쓰지
않습니다.
심지어 80년대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조용필 오빠'에 열광했던 이들조차.
그리고 조용필의 진가를 모르는 새로운 10대~20대는 더 이상 조용필 `아저씨'에게까지
나눠줄 관심이 없습니다.
조용필은 지난 99년부터 매년 연말이면 예술의전당 오페라무대에 섭니다.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 최초의 대중가수입니다.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 최초의 대중가수이기도) 그리고 그때마다 언론은 공연소개를
하고, 때론 지면 하나를 털어 인터뷰하는 등 `거장에 대한 예우'를 나름대로 해줍니다.
그리고 공연은 늘 30대 이상 올드팬들이 찾아와 `오빠'를 연호하고,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꽤 비싼 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조용필은 흰머리에 양복을 빼입은 노신사들도 자리에 앉아 `딴따라'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것들이 우리가 20세기의 최대가수인,
그리고 아직도 우리 곁에 있는 조용필을 `박제화'하는 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비틀즈와 비슷한 시기에 마치 `선의의 사도' 비틀즈의 대척점처럼,
그래서 마치 비틀즈를 방해하는 훼방꾼 이미지마저 띄는 롤링스톤즈가
아직도 전성기와 다름없는 활동을 하고, 그리고 그의 무대에는 60년대 올드팬 뿐
아니라 지금의 10대들도 무대를 찾는, 진정으로 `살아숨쉬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반해 롤링스톤즈보다 못할게 없는 조용필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91년 조용필은 13집 <꿈>을 발표합니다.
조용필로서는 30대 이상 성인들에게 악수를 청하는 곡이었습니다.
이 음반에는 타이틀곡인 <꿈> 외에도 <꿈꾸던 사랑>, <꿈의 요정>, <지울 수 없는 꿈>,  
<꿈을 꾸며>, <어제밤 꿈속에서> 등 `
꿈'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조용필의 그런 악수를 거절하거나슬그머니 손을 빼고 맙니다.
조용필은 이 음반 말미에 <장미꽃 불을 켜요>처럼,
자신의 젊은날을 기억하는 성인들(70년대에 이미 조용필을 알던 세대)에 대한
한편의 서비스곡까지 배려했음에도.
슬로고고풍의 이 곡은 마치 70년대말 조용필의 노래 <하루해는 너무 짧아요>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물론 그때보다 사운드는 더욱 명료해졌지만.

이후 조용필은 92년 <슬픈 베아트리체>, 94년 <남겨진 자의 고독>, 97년 <바람의 노래>,
98년 <Ambition> 등을 간헐적으로 발표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역시 미적지근했습니다.

조용필의 노래가 으레 그러하듯 이 시기의 노래들에도 조용필은 전력을 다합니다.
그리고 또하나 `사랑의 끝', `죽음', `고독' 등 어두운 분위기가 더 짙어지는 것도 눈에
띕니다.
지금 아내를 잃고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 조용필을 보노라면,
마치 혹 그런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인지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표현한 듯한
노래가 적지 않습니다.

               슬픈 그대 베아트리체 떠나버린 나의 사랑아
               꽃상여에 그대 보내며 살아야 할 이유마저 없으니
                (...)
               사랑이여 불멸의 빛 거짓없는 순종으로 그대를
               사랑이여 사랑이여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슬픈 베아트리체> 중)

                성난 파도처럼 거친 추억속에 너는 가고
                지워지지 않는 눈물이 흐르지만
                다시 태어나도 나는 너의 향기를 찾아가리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남겨진 자의 고독> 중)

                아침이 오면 나는 눈을 뜨겠지
                밤이 오면 잠 들어야 해
                예전 그대로 사랑을 잃은 고독한 모습으로

                서둘러 술잔을 비워 슬픔을 달래 보지만
                보내는 괴로움일까 홀로된 외로움일까
                (<예전 그대로> 중)

조용필은 앞으로도 계속 음반을 내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베아트리체> 이후 대중의 관심은 급격히 떨어진 상태입니다.
대중들은 `과거의 조용필'만을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것이 아마 조용필이 대중들에게 느끼는 괴리감일 것입니다.
조용필이 자신의 아내를 떠나보낸 것처럼,
우리가 조용필을 떠나보낼 때는 아직은 아니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만,
세월의 흐름은 천하의 조용필도 어찌할 수 없나봅니다.

이와 함께 조용필에 대한 개인적인 작은 아쉬움이라면,
조용필 `아저씨'의 너무나 진지한 엄숙함입니다.
조용필은 전성기 시절에도 코미디나 오락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거의 없습니다.
잘난척 하느라 그런 게 아니라,
그의 말처럼 `음악 외에는 잘하는 게 없다'는 것 때문인데,
조용필이 시대에 맞춰 자신을 바꿀 이유는 없다고 보나,
너무도 진지한 그 엄숙함이 때론 이 가벼움의 시대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비현실성)을 자아내게 하기도 합니다.

박종철, 조용필, 오혜성 등 80년대의 아이콘 대부분이 이토록 진지함, 치열함이었습니다. 여유를 찾기 힘든. 그저 생의 모든 것을 다바쳐 최고를 추구하는.
이런 진지함과 엄숙함은 지금의 40대 이상들에게서도 그대로 느껴집니다.

존경합니다만,
한편으론 연민이 느껴지고,
또 한편으론 숨막힐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저를 포함한 30대들도 이 `엄숙함의 덫'에서 벗어나진 못합니다.

지난 30여년동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인간 조용필에 경의를 표하며,
또 수많은 대중들에게 많은 위로와 행복을 안겨준 예술가 조용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가수왕 열전-조용필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왕 열전' 6편에서는 천하를 통일한 조용필을 향해,
제후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한때 중원을 양분하는 자리에까지 올랐던
김수철, 전영록 등 조용필 시대의 80년대의 또다른 `가수왕'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권태호 올림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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