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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에 관하여 - 조용필의 신작 16집이 우리에게 주는 몇가지 상념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야/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비껴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바람의 노래> 중)
삼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등장한 조용필의 신작 앨범 <<eternally>>를 듣고 또 듣고 있노라면 반갑고 고마운 마음과 쓸쓸하고 안타까운 회한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지나간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복마전과 같은 지금의 음반 시장에서 이 16집 앨범이 주는 첫번째 위안은 조용필이 단지 지난 날의 수퍼 스타가 아니라 지천명의 고개를 바라보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단 한명의 가왕(歌王)임을 바로 음악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저주받은 걸작인 1991년의 13집 <<The Dreams>>의 파트너였던 톰 킨에다 새로이 가세한 공동 프로듀서 제러미 러복과 더불어 그만이 풀어낼 수 있는 현대 한국의 시정을 올올히 풀어낸다. 초반 트랙의 하이라이트인 <그대를 사랑해>와 <물결 속에서>를 휘감고 나가는 그의 보컬 카리스마는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후반부의 백미인 <바람의 노래>와 <판도라의 상자>는 또 어떤가? 그는 여유롭게 설정한 템포 속에서 삶 그 자체에 대해 성숙하게 발효된 통찰력을 풀어 놓는가 하면 어떤 젊은 록 뮤지션에 뒤지지 않는 강인한 긴장감을 표명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 앨범은 음악만이 유일한 구원인 진정한 음악인이 토해내는 빛나는 결정(結晶)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 앨범의 내면으로 한발짝 더 들어가 보아야 한다. 이 앨범과 그것의 주인공으로부터 제공받는 더욱 본질적인 기쁨은 이 앨범의 피상적인 완성도나 전작 앨범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족스러운 판매고가 아니라, 부귀와 명성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하루 아침에 '안면을 바꾸는' 이 양은 냄비와 같은 대중음악계에서 처참한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적 신념을 끝까지 관철시킨 한 음악인의 자존심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80년대를 일인제국으로 만들었던 조용필은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어쩔 수 없는 퇴조의 숙명과 맞닺드려야 했다. 1990년의 <추억 속의 재회> 이후로 이어진 그의 13,14,15집은 왕년의 그의 성가에는 크게 뒤떨어지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의 시대는 그렇게 저무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 대중음악은 새로운 십대 수용자들의 열광을 바탕으로 댄스뮤직의 격렬한 리듬과 랩의 산문적인 상상력으로 재편되었고 조용필은 어제의 인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12집 이후의 그의 90년대 앨범이 결코 태작인 것은 아니다. 그는 불혹의 고개를 넘어서면서 스스로 새로운 과제를 자신에게 부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인 취향의 대중음악' (Adult Contemporary). 조용필은 트로트가 아닌 보다 성숙한 대중음악을 이십대 후반 이상의 세대의 음악 언어로 만들고자 했지만 십대들의 등쌀에 떠밀린 이 당의 성인 수용자들은 아예 시장에서 설물처럼 빠져 나감으로써 그를 고립무원의 지경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이 90년대는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그로서는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오빠부대'의 원조인 그는 어쩌면 그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주었던 <창밖의 여자>나 <비련>같은 드라마틱한 발라드 스타일이나 <미워미워미워>혹은 <허공> 같은 스탠더드 트로트의 유혹을 받았을는지도 모른다. 특히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처참한 실패를 기록했던 1994년의 15집 이후 치묵이 오래 이어졌을 때 조용필의 다음 앨범은 분명 트로트로 복귀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예측이 떠돌기도 했다.

그러나 '킬리만지로의 표범'은 섞은 고기를 먹지 않음을 이번 앨범을 통해 훌륭히 증명하며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신에게 연속적인 실패를 안겨준 성인대중음악의 스타일을 고집스럽게 밀어 붙여 마침내 침묵하던 수용자들을 움직인 것이다. 발라드건 트로트건 이 AC의 벽을 넘지 않고서는 마치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듯이.

하지만 조용필의 신작이 아무리 컴백에 성공했다한들 입만 뻥끗하면 백만장 운운하는 이 거품의 모래성에서 이 앨범의 상업적 영향력은 90년대의 어린 수용자들에게 아무 관심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앞 세대의 문화와도 단절된 우리의 대중문화 현실은 조용필이나 산울림, 그리고 조동진과 송창식, 정태춘 같은 위대한 음악사의 봉우리들을 그저 '흘러간 가수' 정도로 치부하는 풍토를 만들고 있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역사와 계보학을 존중하지 못하는 문화는 언제이고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단지 '옛날에 잘 나갔던 카수'가 아니라 각기 독자적인 방식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뼈대를 세우고 살을 입힌 거장들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음악의 혼을 불사르고 있는 영원한 청년들인 것이다.

그중에서 조용필이 우리 대중음악사에 끼친 공적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조용필이 차지하는 의미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성공시키면서 시작한 인기 행진에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곡을 자기가 장악한 최초의 수퍼 뮤지션이며 '위대한 탄생'이라는 수퍼 밴드의 리더였고, 트로트에서 스탠더드 팝, 로큰롤, 댄스뮤직, 민요와 동요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시대 이래의 한국 대중음악의 문법을 총결산한 유일무이한 아티스트이다. 그가 있음으로써 1980년대에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가 구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그의 공헌은 그의 전성세대인 1980년대에 이르러 서구 대중음악이 장악하고 있었던 국내의 음반 시장과 방송 매체의 주도권을 한국 대중음악이 역전시킨 것이다. 그는 국내 대중음악의 30만장 시대를 열어 젖혔으며 2:8 내지 3:7 정도로 열세 였던 한국 대중음악의 점유율을 정반대로 뒤집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포스트 서태지 세대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서구 음악에 대한 한국 대중음악의 우위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조용필은 남인수와 이난영, 그리고 남진과 나훈아, 이미자로 이어 내려져 오던 주류 대중음악의 협소한 틀을 활짝 엶과 동시에 그 틀을 굳건하게 잡음으로써 김현식과 들국화로 대표되는 80년대 중반의 언더그라운드의 혁명과 더불어 한국 대중음악의 지평을 순식간에 확대시켰다. 빛이 강해야 그림자가 짙듯이 주류가 올바로 설 때에만이 비주류도 풍부하게 존립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조용필의 신작 16집을 듣고 있노라니 식민지 시대에 탄생하여 어렵고 힘든 시대를 헤쳐 나와 변방의 목소리를 정립한 우리의 대중음악사가 주마등처럼 흑백 슬라이드 필름의 환영처럼 스쳐 지나간다. 드라마로 순식간에 인기를 얻은 탤런트가 그 기세를 업고 취입하여 차트의 정상을 차지한 <forever>(영원히!)가 어디선가 흘러 나온다.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가 TV의 너절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차트 1위를 차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앨범은 제목처럼 '불멸'(eternally!)인 것이다.

1 댓글

추억속의그대

2003-04-11 00:36:14

님의 글을 읽고있는데,스피커에서 킬리만자로의표범이 흘러나왔어요. 전 순간...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꼈어요.잘읽고 갑니다.오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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