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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
시를 ‘노래한다’고 말하고 명시를 ‘절창’이라고 즐겨 부르는 우리 시인들은 대중가요 중 ‘봄날은 간다’를 가장 애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전문 문예계간지 ‘시인세계’(발행인 김종해)가 지난 두 달 동안 국내 유명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원로 백설희에서 최근엔 한영애까지 남녀노소 가수들이 앞다투어 리메이크한 애창곡 ‘봄날은 간다’가 1위를 차지한 것으로 23일 밝혀졌다. 이번 설문조사의 질문은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우리나라 대중가요 노랫말 3곡은 무엇입니까?’였고, 답변 순서에 따라 3점, 2점, 1점으로 가중치를 두었다.
가중치를 합산한 점수로는 1위 ‘봄날은 간다’(백설희·33점), 2위 ‘킬리만자로의 표범’(조용필)
, 3위 ‘북한강에서’(정태춘), 4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양희은), 5위 ‘한계령’(〃), 6위 ‘아침이슬’(양희은), 7위 ‘가시나무’(시인과 촌장)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임희숙·8점), 9위 ‘그 겨울의 찻집’(조용필) ‘황성옛터’(황금심) 순이었다.
단순 득표수 집계 역시 5위까지 순서가 같았으나, 6위가 ‘그 겨울의 찻집’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서른 즈음에’(김광석) ‘가시나무’ 등 4곡이었고, 공동으로 3표를 얻어 7위를 차지한 노래는 무려 10곡이나 됐다. ‘아침이슬’ ‘떠나가는 배’(정태춘) ‘목포의 눈물’(이난영) ‘겨울애상’(이선희) ‘푸르른 날’(송창식) ‘황성옛터’ ‘직녀에게’(김원중) ‘우리가 어느 별에서’(안치환) ‘사의 찬미’(윤심덕) ‘그때 그 사람’(심수봉) 등이다.
조사결과를 분석한 시인 전윤호씨는 “시인들이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노래를 배제하고 서정적인 것들을 집중적으로 골라낸 것 같다”고 말하고, “요즘 노래들 중 습관적으로 영어가 들어간 가사는 하나도 선정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일부 노래 가사의 거친 감정들도 시인들이 너그럽게 용납해준 측면이 있다”면서 “이번에 선정된 노래 대부분이 직접 부를 수 있는 발라드 중심이고 록이나 댄스곡은 거의 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를 진행했던 ‘시인세계’의 김요일 이사는 “다른 설문조사 때는 귀찮아하기도 했던 시인들이 이번 조사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1등을 했으면 좋겠다’며 열띤 관심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1위곡 ‘봄날은 간다’에 대해 “거의 모든 연령층의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래로 조사됐다”면서 “물론 노랫말이 출중한 이유도 있지만 최근까지 조용필 한영애 같은 실력 있는 가수가 리메이크를 했고, 같은 이름의 영화가 크게 히트한 것도 원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상위 10위권에 들어간 대중가요 중에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의 노랫말을 만든 작사가 양인자씨의 작품이 특히 눈에 띄었다. 양씨는 “제 대학시절 꿈이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면서 “이번 결과가 그저 영광이요 황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대중가요 가사나 시나 감동이라는 목적지는 같지만 문예지에 발표되는 시들이 눈에서 머리로 간다면 대중가요 가사는 귀에서 가슴으로 가는, 그 통로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시인들은 김춘수 강은교 김광림 신달자 이근배 같은 원로급 시인에서 안도현 함민복 이산하 같은 젊은 시인들까지 망라돼 있다.
한 가지 특이사항은 유명 시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든 경우는 막상 현직 시인들의 애창 가요의 상위에 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지용의 ‘향수’, 서정주의 ‘푸르른 날’, 정호승의 ‘떠나는 그대’, 문병란의 ‘직녀에게’ 같은 노래들이다.
이번 조사의 결과는 시인세계 2004년 봄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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