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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 운동장에서 그 오빠네 반이랑 함께 체육 했어."
"엄마, 오늘 그 오빠네 교실이 있는 4층에 미래랑 같이 갔어."
작은 딸의 'OOO 오빠'에 대한 보고는 날마다 새로운 내용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중학교 1학년인 작은 딸의 학교에서 얼마 전,
가을 축제가 있었다.
전시회와 갖가지 공연들로 이루어진 축제는 제법 풍성했던 것 같다.
작은 딸은 현악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큰 딸은 특수 조명인 블랙라이트를 이용한 '블랙시어터' 공연을 직접 기획하여 무대에 올렸다.
이번 축제를 위해서 일찍 등교하고 또 늦게까지 남아 열심히 연습했던 만큼
두 딸들의 보람은 큰 것 같았다.
다만 큰 딸은 공연 시작 몇 분 전에,
어떤 남학생이 블랙라이트 형광등 하나를 깨는 바람에 조명이 부실해져서 공연을 망쳤다고 속상해했다.
하지만 중학생들이 준비한 공연치고는 꽤 재밌고 볼거리가 많았던 모양이다.
특히 중학교 1학년인 작은 딸에게는 이번 축제가 소득(?)이 있었던 것 같다.
바로 무용 공연에 나온 'OOO 오빠'를 보고 짝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걔가 무용을 그렇게 잘했어?"
"으응, 그건 잘 모르겠고 그 오빠 엄청 잘 생겼어."
"얼짱이야? 무용을 한다니까 몸짱이겠네."
작은 딸의 말을 들으며 곁에서 내가 거들자 큰 딸은 다소 빈정거리듯 톡 쏘아붙인다.
"걔, 공부 못해. 좀 산만하고."
"공부 못하면 어때? 잘 생겼는데….
그 오빠 인기 엄청 많아.
우리 반 여자애들은 거의 다 좋아해."
"걔가 뭐 잘생겼다고…. 그만한 애는 학교에도 많아."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어서 'OOO'을 잘 아는 큰 딸이 작은 딸의 '흥분'에 어이없어 하며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OOO 오빠'에 대한 작은 딸의 짝사랑은 불변이다.
제 언니의 가혹한 평가에 대해서도 전혀 미동을 보이지 않는다.
아침 식탁에서도 작은 딸은 전날 학교에서 보고 들은 'OOO 오빠'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열을 올렸다.
"'OOO 오빠'가 너희 학교 '비'라도 되는 모양이구나."
"쳇, 걔가 무슨 얼어죽을 '비'라고."
여전히 큰 딸은 냉소적이다. 하지만 큰 딸이 저자세로 'OOO'을 팔아먹을(?) 때가 있다.
바로 제 동생 옷을 빌려 입을 때 옷값으로 지불하는 삯(?)이 'OOO'에 대한 정보이다.
"내가 'OOO' 얘기 해 줄게. 걔가 학교 다닐 때 …, 걔 여자 친구는 …."
'OOO'에 대한 시시콜콜한 정보와 그에 얽힌 기억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작은 딸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운다.
작은 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온다.
"'걔, 이번에 예고 시험 볼 걸?"
"엄마, 'OOO 오빠'에게 찹쌀떡이라도 사줄까? 시험 잘 보라고."
"그래, 네가 그렇게 좋아하니 찹쌀떡 위에 'OOO 오빠를 사모하는 소녀, 찬미로부터'라고 적어서 주렴."
작은 딸의 순수한 열정이 예뻐서 나는 자꾸 꼬드기는데 이내 큰 딸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만다.
"야, 너 미쳤어? 그럴 돈 있으면 나 줘."
제 언니의 호통에도 작은 딸의 표정은 행복하기만 하다.
어제 밤, 쓰레기를 버리고 온 나에게 작은 딸이 물었다.
"엄마, 지금도 비 와?"
"응, 내일까지 비 온다고 하잖아."
"아우, 짜증나. 내일 토요일에 체육 있는데."
"너, 운동장에서 체육하는 거 싫다며. 잘 됐지. 교실에서 하게 되었으니…."
"토요일만 'OOO 오빠'랑 같이 운동장에서 체육 한단 말이야."
"…."
'그래, 참 좋을 때다.'
작은 딸의 짝사랑을 보니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쓴 <내 생애 단 한 번>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학생들의 영어 일기에서 자주 대하는 것은 짝사랑에 대한 고뇌와 슬픔 또는 좌절감이다.
남보다 잘생기거나 예쁘지 못해서, 키가 작아서, 집안이 가난해서,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라서 등등
여러 이유로 혼자 누군가를 짝사랑하면서 괴로워하거나 지독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준들 위로가 되겠는가만은,
내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슬픔에 취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짝사랑이야말로 젊음의 특권,
아니 의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도 그 나이에는 짝사랑하면서 슬퍼하고 깨어진 꿈에 좌절하면서,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번민은 모조리 내 가슴속에 쌓아 놓은 듯
눈물까지 떨구어 가며 일기장에 괴로운 속마음을 토로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하루 하루를 그저 버릇처럼 살아가는 지금
그 '괴로운' 짝사랑들은 가슴 저리는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넘긴 나.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롭게 삶에 대한 포용력을 가지고 조금은 호기를 부릴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불혹(不惑)'- 보고 듣는 것에 유혹받지 아니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 이란 말은 따지고 보면 슬픈 말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격하지 않고,
슬픈 것을 보고 눈물 흘리지 않고,
불의를 보고도 노하지 않으며,
귀중한 것을 보고도 탐내지 않는 삶은 허망한 것이리라.
최근에 나는 무딘 내 감성에 실망하고 나를 책망한 적이 있다.
예전에 좋아했던 '오빠' 가수 조용필이 이곳에서 콘서트를 했다.
그의 사진이 박힌 포스터와 플래카드가 여기 저기에 내걸렸고,
빨간 신호등 앞에서 그의 홍보 트럭을 만난 적도 있었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트럭 꽁무니에 붙은 대형 화면을 통해
나는 그의 화려한 콘서트를 보기도 했지만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애들 말대로 이제는 '맛이 간(?)' 아줌마가 된 것 같다.
눈만 뜨면 'OOO 오빠'를 생각하고 학교에 다녀와서
다시 'OOO 오빠'에 대한 보고를 열심히 하는 작은 딸.
파릇파릇한 젊음이 가진 투명한 감성과 팔딱거리는 그 열정이 나는 정말 부럽다.
짝사랑은 역시 젊음만이 누리는 특권인 것 같다.
/한나영 기자
"엄마, 오늘 그 오빠네 교실이 있는 4층에 미래랑 같이 갔어."
작은 딸의 'OOO 오빠'에 대한 보고는 날마다 새로운 내용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중학교 1학년인 작은 딸의 학교에서 얼마 전,
가을 축제가 있었다.
전시회와 갖가지 공연들로 이루어진 축제는 제법 풍성했던 것 같다.
작은 딸은 현악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큰 딸은 특수 조명인 블랙라이트를 이용한 '블랙시어터' 공연을 직접 기획하여 무대에 올렸다.
이번 축제를 위해서 일찍 등교하고 또 늦게까지 남아 열심히 연습했던 만큼
두 딸들의 보람은 큰 것 같았다.
다만 큰 딸은 공연 시작 몇 분 전에,
어떤 남학생이 블랙라이트 형광등 하나를 깨는 바람에 조명이 부실해져서 공연을 망쳤다고 속상해했다.
하지만 중학생들이 준비한 공연치고는 꽤 재밌고 볼거리가 많았던 모양이다.
특히 중학교 1학년인 작은 딸에게는 이번 축제가 소득(?)이 있었던 것 같다.
바로 무용 공연에 나온 'OOO 오빠'를 보고 짝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걔가 무용을 그렇게 잘했어?"
"으응, 그건 잘 모르겠고 그 오빠 엄청 잘 생겼어."
"얼짱이야? 무용을 한다니까 몸짱이겠네."
작은 딸의 말을 들으며 곁에서 내가 거들자 큰 딸은 다소 빈정거리듯 톡 쏘아붙인다.
"걔, 공부 못해. 좀 산만하고."
"공부 못하면 어때? 잘 생겼는데….
그 오빠 인기 엄청 많아.
우리 반 여자애들은 거의 다 좋아해."
"걔가 뭐 잘생겼다고…. 그만한 애는 학교에도 많아."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어서 'OOO'을 잘 아는 큰 딸이 작은 딸의 '흥분'에 어이없어 하며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OOO 오빠'에 대한 작은 딸의 짝사랑은 불변이다.
제 언니의 가혹한 평가에 대해서도 전혀 미동을 보이지 않는다.
아침 식탁에서도 작은 딸은 전날 학교에서 보고 들은 'OOO 오빠'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열을 올렸다.
"'OOO 오빠'가 너희 학교 '비'라도 되는 모양이구나."
"쳇, 걔가 무슨 얼어죽을 '비'라고."
여전히 큰 딸은 냉소적이다. 하지만 큰 딸이 저자세로 'OOO'을 팔아먹을(?) 때가 있다.
바로 제 동생 옷을 빌려 입을 때 옷값으로 지불하는 삯(?)이 'OOO'에 대한 정보이다.
"내가 'OOO' 얘기 해 줄게. 걔가 학교 다닐 때 …, 걔 여자 친구는 …."
'OOO'에 대한 시시콜콜한 정보와 그에 얽힌 기억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작은 딸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운다.
작은 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온다.
"'걔, 이번에 예고 시험 볼 걸?"
"엄마, 'OOO 오빠'에게 찹쌀떡이라도 사줄까? 시험 잘 보라고."
"그래, 네가 그렇게 좋아하니 찹쌀떡 위에 'OOO 오빠를 사모하는 소녀, 찬미로부터'라고 적어서 주렴."
작은 딸의 순수한 열정이 예뻐서 나는 자꾸 꼬드기는데 이내 큰 딸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만다.
"야, 너 미쳤어? 그럴 돈 있으면 나 줘."
제 언니의 호통에도 작은 딸의 표정은 행복하기만 하다.
어제 밤, 쓰레기를 버리고 온 나에게 작은 딸이 물었다.
"엄마, 지금도 비 와?"
"응, 내일까지 비 온다고 하잖아."
"아우, 짜증나. 내일 토요일에 체육 있는데."
"너, 운동장에서 체육하는 거 싫다며. 잘 됐지. 교실에서 하게 되었으니…."
"토요일만 'OOO 오빠'랑 같이 운동장에서 체육 한단 말이야."
"…."
'그래, 참 좋을 때다.'
작은 딸의 짝사랑을 보니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쓴 <내 생애 단 한 번>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학생들의 영어 일기에서 자주 대하는 것은 짝사랑에 대한 고뇌와 슬픔 또는 좌절감이다.
남보다 잘생기거나 예쁘지 못해서, 키가 작아서, 집안이 가난해서,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라서 등등
여러 이유로 혼자 누군가를 짝사랑하면서 괴로워하거나 지독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준들 위로가 되겠는가만은,
내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슬픔에 취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짝사랑이야말로 젊음의 특권,
아니 의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도 그 나이에는 짝사랑하면서 슬퍼하고 깨어진 꿈에 좌절하면서,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번민은 모조리 내 가슴속에 쌓아 놓은 듯
눈물까지 떨구어 가며 일기장에 괴로운 속마음을 토로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하루 하루를 그저 버릇처럼 살아가는 지금
그 '괴로운' 짝사랑들은 가슴 저리는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넘긴 나.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롭게 삶에 대한 포용력을 가지고 조금은 호기를 부릴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불혹(不惑)'- 보고 듣는 것에 유혹받지 아니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 이란 말은 따지고 보면 슬픈 말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격하지 않고,
슬픈 것을 보고 눈물 흘리지 않고,
불의를 보고도 노하지 않으며,
귀중한 것을 보고도 탐내지 않는 삶은 허망한 것이리라.
최근에 나는 무딘 내 감성에 실망하고 나를 책망한 적이 있다.
예전에 좋아했던 '오빠' 가수 조용필이 이곳에서 콘서트를 했다.
그의 사진이 박힌 포스터와 플래카드가 여기 저기에 내걸렸고,
빨간 신호등 앞에서 그의 홍보 트럭을 만난 적도 있었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트럭 꽁무니에 붙은 대형 화면을 통해
나는 그의 화려한 콘서트를 보기도 했지만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애들 말대로 이제는 '맛이 간(?)' 아줌마가 된 것 같다.
눈만 뜨면 'OOO 오빠'를 생각하고 학교에 다녀와서
다시 'OOO 오빠'에 대한 보고를 열심히 하는 작은 딸.
파릇파릇한 젊음이 가진 투명한 감성과 팔딱거리는 그 열정이 나는 정말 부럽다.
짝사랑은 역시 젊음만이 누리는 특권인 것 같다.
/한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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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희
2004-11-07 21:5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