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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음악에서 사라지는 것들

송상희, 2005-07-16 03: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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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사라지는 것들 20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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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라는 단어는 현재 서른 살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낯설 것이다.
한자로 쓰면 '音樂舍'다. 음악을 듣는 집이라는 뜻이다.
짧게 이야기하면 '판 가게'이고, 길게 이야기하면 동네 인근에서 음반을 판매하는 소매상을 말한다.
'판 가게'라는 말이 번듯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동네 장사'를 지칭하는 비하적인 뜻이 있다는 불만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런 불만조차도 멀리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판 가게'는 이제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정겨움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소매상의 위기에 대해서 언젠가 한번 이 지면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위기'라고 말할 것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재 전국에 존재하는 음반소매상의 업체 수는 300개 정도다.
한때 10,000개에 육박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격세지감일 수밖에 없다.
300개라는 숫자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숫자다.
그러니까 이제 판 가계는 지나다니다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한때 음악사는 한 동네의 음악문화의 센터이자 음악에 관한 정보의 교류처 같은 곳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이제 나이든 세대의 후일담 이상이 아닐 것이다.
한때는 좋아하는 곡을 종이에 적어 가면 그것을 공 테이프에 녹음해 주던 곳도 있었다.
법대로 따진다면 '국제 저작권 협정을 무시한 행위'라고 단죄할 수 있겠지만
그런 행위가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고 결과적으로 음반에 대한 수요의 확대를 가져 왔다는 점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제는 저런 정겨운 일들이 모두 사라져 가고 있다.
그 대신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비즈니스의 세계가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오프 라인'의 경우 대형 매장이, '온 라인'의 경우 인터넷 쇼핑 몰이 그것이다.
한 예로 판 가게에서 음반을 구매할 때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대형 매장이나 인터넷 쇼핑 몰에서 우리는 주인과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는다.
아니 '주인'이 누구인지를 식별할 수가 없다.
온라인 매장은 속성 상 그렇고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에도 '직원'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극히 드물고 어쩌다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정'이 담긴 이야기는 아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값을 깎아 달라'라든가 '내일 드릴 테니 외상으로 할 수 없느냐' 같은 말은 아예 엄두도 낼 수 없다.

지금 몇 개 남지 않았다는 소매상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대형매장에 인터넷 쇼핑 몰에 손님들을 다 빼앗긴 상태에서 매상이 오르지 않으니 이 분들의 인상이 펴질 리가 없다.
갑부가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생계만 유지하려고 운영하는 동네 장사인데도 불구하고 세상 인심은 각박하기만 하다.
오래 전에 이곳에 들러서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남다른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지
판 가게에는 이효리나 쥬얼리의 신보를 찾는 애들만 들르니 판을 팔아서 나름의 보람을 느꼈던 경험도 사라져 간다.

게다가 인터넷 다운로딩이라는 복병까지 소매상 주인들을 괴롭힌다.
인터넷 다운로딩이 음반산업을 질식시킨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제작과 배급을 담당하는 사람들이지만
실제로 가장 괴로운 것은 그나마 이렇게 한 자리하고 있는 분들이 아니라 동네 판 가게의 아저씨들이다.
한 소매상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가을이 와서 분위기 잡으려고 멋진 음악을 틀어놓으면 옛날에는 음악 듣고 판을 사 갔어요.
그런데 요즘은 무슨 곡인지 물어보고 그냥 돌아가요.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다운로드 받는 것이죠.
그러니 요즘은 손님들한테 친절할 수도 없어요"

언제가 가장 좋았던 시절이냐고 물으니까 "딥 퍼(Deep Purple)플과 그랜드 훵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와 스모키(Smokie)를 팔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말한다.
맞다. 나만 해도 그때 생각으로 장래 희망이 판 가게 주인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음악을 하루 종일 들을 수 있고 그것으로 생계도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취직해서 피 튀기게 일할 필요도 없고 한량처럼 낭만적으로 세월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낭만적'인 생각이다.

2
사라지고 있는 것이 음반 소매상만은 아니다. 기타 학원(혹은 기타 강습소)이라는 곳도 마찬가지다.
한 쇼핑 상가에 기타를 판매하는 곳이 있어서 들여다보았더니 강습도 한다고 한다.
얼마인가 쳐다보았더니 '한 달에 2만원'이라고 한다. '20만원'이 아니라 '2만원'이다.
이 정도면 이 업종은 20년 동안 물가가 불변 상태로 유지되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한때 '기타 못 치면 간첩'이라는 말이 유행했건만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기타 잘 치면 간첩일 것이다.
집에 기타가 남아 있는 가정이 있겠지만 이제 기타는 '애들이 치는 것'이 아니라 '아빠가 가끔 튕겨 보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보관되어 있는 집도 드물다.
대부분은 먼지가 뽀얗게 쌓이고 줄은 한 두 개가 끊어져 있고 조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어쩌다가 기타를 들어 봐도 제대로 소리가 날 리 없다.

한 가지 더 있다. 악보를 모아 놓은 책, 이른바 악보집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지금 30대 중반 이상의 사람이라면 굳이 기타나 피아노를 치지 못하더라도 가사를 보기 위해서라도 악보집을 구매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악보라고 해 보아야 악기의 각 파트가 총망라된 이른바 '풀 스코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곡의 멜로디와 그에 수반된 코드(화음)를 적어놓은 것을 말한다.
그때는 잡지에도 주요곡의 악보가 수록되어 있었다. 음악 전문잡지가 아니라 일반 청소년 잡지도 그랬다.

그런데 요즘의 신곡들은 '팝'이든 '가요'든 악보를 볼 수가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머니 만한 크기('포켓 사이즈')의 악보책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예전에는 문방구에만 가도 이런 책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형 서적 매장에나 가 보아야 한다.
그나마 음악 코너에 꽂혀 있는 악보책들 대부분은 '애창 팝송'이나 '흘러간 팝송' 등의 제목을 달고 있다(대부분은 '세광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다).
악보책들이 이전처럼 청년층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년층을 겨냥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나마 이런 책들 대부분은 종이가 누렇게 변색된 채로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만나지 못한 채 외롭게 꽂혀 있다.
'프로'가 되기 위한 사람이나 보는 악기 교본들도 사정이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생각해 보면 사라져 간 것들은 매우 많다. 비닐 LP, 카세트 테이프, 턴테이블, 워크맨, 카셋트 녹음기, 트랜지스터 라디오 등등...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사라져간 것들이 참 많다.
하긴 음악과 관계된 업종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잡화점이나 구멍가게, 이른바 동네 슈퍼도 날이 갈수록 쇠퇴해 간다.
이마트니 월마트니 카르푸니 하는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서면서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집중과 합리화가 '단순상품생산'을 구축한다는 현실에 긴 말이 필요하지는 않다.

3
음반 소매점의 '사장님'들이나 기타 학원의 '원장님'은 어떤 분들일까.
아직도 자신의 가게를 붙잡고 남아 있는 분들의 연배는 나보다는 많아 보인다.
1970~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니 나의 추산이 대충 맞을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절한 전직을 하기에는 이미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린 나이다.
이 나이대의 연배는 대학 진학률도 높지 않았던 때다.
그 대신 요즘처럼 취업난에 시달리던 시대도 아니다.
그러니 젊은 시절 머리를 기르고 명동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그토록 행복했던 세대일 것이다.
그때 음악은 삶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였다.

달리 말해서 음반 소매상이나 기타 학원 같은 전통적 제도가 사라져 가고 있는 현상은
새로운 음악 문화가 탄생하는 현상의 전조(前兆)라기보다는
음악이 삶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시대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징후로 읽힌다.
한 예로 정성스럽게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에 멋진 노래 가사를 적어서 좋아하는 여자(혹은 남자)에게 건네는 일의 기억도 사라져 간다.
CD로 구워서 주는 시대가 되었지만 CD를 굽는 수고나 정성은 테이프를 녹음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차갑고 삭막하다.
하긴 요즘 젊은이들에게 노래 한 곡의 가치가 문자 메시지 한 건보다 중요할까.

음반 소매상과 기타 학원의 쇠퇴를 종합한다면 '기타가 중심이 된 음악'이 쇠퇴한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음반이 가장 잘 팔렸을 때의 음악은 '기타 중심'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단지 하나의 악기가 쇠퇴한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기타는 악기라는 물질적 실체이기 이전에 일련의 문화적 실천을 표상하는 개념이었다.
음반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은 뒤 서점에서 악보책을 사서(혹은 빌려서) 기타를 쳐보면서 노래를 불러 보고,
그러다가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노래를 불러 보고, '잘 한다'는 소문이 나면 친구들을 불러모아 함께 노래 불러 보고,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프로'로 나설 수도 있고...
이렇게 프로가 된 사람의 음악이 다시 수많은 아마추어들에게 자극을 주고...
통기타를 들고 한두 명(혹은 그 이상)이 노래부르는 '포크' 음악이든, 전기 기타를 들고 여러 명이서 합주하는 '록' 음악이든 이런 과정에 큰 차이는 없다.
작은 차이야 있겠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현실 앞에서는 무시할 만하다.

이런 일련의 순환 과정은 단지 동일성의 재생산이 아니라 우발적 돌연변이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 이유 는 이 과정에서 기성의 제도와는 모순되는 아마추어적 음악적 실천이 곳곳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TV에 나오는 가수들의 노래를 보고들은 뒤 mp3를 다운로드 받아서 듣다가
노래방에 가서 자막으로 나오는 가사를 듣고 '모창'을 하는 것이 지금의 음악의 생산과 소비의 순환이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폐쇄회로에 갇혀 있는 듯하다.

결국 음악은 대다수 소비자에게는 단순한 연예의 대상이 되었고,
소수의 생산자에게는 직업적 실천이 되어 버린 것만 같다.
이렇게 음악의 중요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다음에는 어떤 시대가 올까.
그 시대가 그리 행복한 시대일 것 같지는 않다. 가을이라서 우울해져서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 계간 [황해문화]에 게재됨.


송상희

조용필 만세!!!

3 댓글

갈갈이

2005-07-16 04:57:43

맞습니다.
그전엔 용산이나 타워, 신나라 등
심심하면 자주 들렸었는데 가본지 오래됐네요.

화니

2005-07-17 10:53:02

아~~~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아니... 살아났습니다....감사합니다...

짹짹이

2005-07-18 19:26:38

조용필팬클럽의 팬들로 구성된 최초의 헌정밴드
자랑스런 미지밴드의 마스코드 베이스 상희님...
음악에 관한 글들 올려주셔서 항상 잘 읽고 있어요
이렇게 서로 서로 음악에 관한 추억이나 지식을
공유하는것이 참 좋은것 같아요. 음악적 지식이나
견해가 많이 부족한 저 같은 사람들은 하나 하나
알고 배워 나가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베이스 언제나 항상 열심히 연습하시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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