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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1969-01-00 그룹 '파이브 핑거스' 기타리스트 멤버
1969-02-00 미8군 무대에서 활동/그룹 '애트킨즈' 조직,
1971-05-01 김트리오 결성
1971-05-26 선데이서울컵 쟁탈 전국 "보컬 그룹 경연대회'-김트리오 (김대환,조용필,최이철) 출전
1971-05-30 대회에서 조영필(나중의 조용필)은 가창상이라 할 수 있는 가수왕상을 받으며
1971-05-30 선데이컵 팝 그룹 경연대회 최우수가수왕상/일반대중에게 알려집니다
1975-00-00 조용필과 그림자 결성
1978-00-00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결성
1970-12-00 가수김해일(경남 통영 출신)는 황선우씨로부터 곡을 받아 음반을 발표하다
1970-12-00 가수김해일(본명:김성술)/유니버설 레코드사에서 음반으로 발매됐다 "돌아와요 충무항에"
1970-12-00 크게 인기를 얻지를 못하다.
1971-00-00 가수 김해일(본명:김성술)/군 복무중 휴가를 나와 1971년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로 사망했다.
1971-00-00 음반은 김씨가 음반발매 6개월 만인 1971년 서울 대연각 화재로 숨진 뒤 대부분 회수돼 불살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
1972-00-00 작곡가 황선우씨/돌아와요 충무항에라는 노래를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1972-00-00 작곡가 황선우/제목을 바꿔 조용필에게 주다.
1975-00-00 조용필/첫 독집에 통기타버전으로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분개사하고 앨범으로 발표하다.
1975-00-00 조용필/크게 인기를 얻지를 못하다.
1976-00-00 재일동포의 모국방문과 맞물려 부산지역의 다방가에서
1976-00-00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하기시작하여 서울로 북상하여 크게 인기를 얻다.
1977-02-06 가수 하남석 이동원 채은옥 조용필 등 35명 대마초 흡연혐의로 구속하다
1977-00-00 조용필-목소리 전환시기..미성에서 탁성으로(~1979년)
1979-12-05 대마초관련 연예인들 123명 4년만에 해금돼 활동재개하다.
1980-03-00 조용필(1집)-창밖의여자.단발머리
1980-00-00 거의 4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창(絶唱)으로 꼽히는
1980-00-00 ' 창밖의 여자' 그리고 당시로는 신기했던 드럼 머신 사운드에 가성을 얹은 '단발머리'는
1980-00-00 확실히 새로운 콘텐츠였다. 앨범에는 '대전불루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1980-00-00 그리고 다시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정' 등 이전 트로트고고 계열의 노래가 많이
1980-00-00 포진되어 있었지만, 이 두 노래 덕분에 조용필은 뉴 이미지로 새 시대를
1980-00-00 공략할 수 있게 되었다.
1980-00-00 특히 '단발머리'는 당시 서구 록 밴드의 경향인 뉴 웨이브를
1980-00-00 수용해 그가 트렌드의 기민한 해석자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1980-00-00 그만큼 한발 앞서가는 유행의 선두 뮤지션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980-00-00 90년대의 인기그룹 015B가 이 곡을 리메이크하고자 했던 것은
1980-00-00 추억의 재생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그 진보적 접근에 대한 경의였을 것이다.
1980-00-00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90년대의 기린아 서태지와 아이들의 선풍에
1980-00-00 결코 못지않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1980-00-00 조용필은 단숨에 최고가수 자리에 등극했으며 이후 10년 이상
1980-00-00 아무런 경쟁상대가 없는 완벽한 1인 독주와 지배 체제를 구축했다.
1980-00-00 그 무렵 연예계 소식은 온통 그에 대한 얘기로 뒤덮였을 정도로 조용필 외에는
1980-00-00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1980-12-00 조용필2집-촛불
1980-12-00 TBC 최우수 가요상.최고인기가수상.최고인기가요상, 주제가작곡
1980-12-00 서울국제 가요제 금상
1980-12-00 MBC 10대 가수 가요제 가수왕상, 최고인기 가요상, 작곡상
1981-03-00 돌연TV출연을 거부했다다음앨범을 낼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981-07-00 조용필3집-'고추잠자리', '여와남', '물망초' 록으로 선회하다
1981-07-00 그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음악은 록이다
1981-07-00 1집에서의 핑크 플로이드의 특징적 요소를 가져다 쓰는 어설픈 모방에서
1981-07-00 나아가 자신이 목표로 하는 핑크 플로이드 풍의 웅장하고
1981-07-00 화려한사운드에한발더 접근한 것이다.
1981-07-00 또 사운드 뿐 아니라 메시지도 보다 충실히 담기 위해서 노력한다.
1981-00-00 한국연극영화대상 영화주제가 작곡상(그사랑 한이 되어)
1981-00-00 KBS 방송가요대상 최우수 남자가수상,
1981-00-00 골든 디스크상, 전국 PD 선정 최우수 가수상, 주제가 작곡상 (촛불)
1981-00-00 MBC 10대 가수가요제 가수왕상, 최고인기가요상, 작곡상 (고추잠자리)
1982-05-00 조용필 4집-못찾겠다 꾀꼬리
1982-00-00 4집에서는 'one of these days' 에 영양받은 자신의 가출시절을 노래한
1982-00-00 '못찾겠다 꾀꼬리'와 '생명', '자존심', '비련' 등이 담겨있다.
1982-00-00 4집은 3집에 비해 앨범이 보다 록적인 색체를 띄게 된다.
1982-00-00 조용필은 3집에서 '고추잠자리'를 통해 하고싶은 음악이 먹히는가 슬쩍 실험해 보았다.
1982-00-00 물론 경쾌한 댄스비트를 섞는 형식으로 록에 대한 의지를 감춘상태로.
1982-00-00 '고추잠자리'는 기성세대까지 휘몰아치치는 못했지만 그에게 록에 대한
1982-00-00 가능성에 희망을 갖게 했다. 그는 록색체를 가미해가면서 그는 자유를
1982-00-00 느꼈다고 한다. 그것의 연장선상에 '못찾겠다 꾀꼬리'를 놓고 한걸음 더 몰아쳐갔다.
1982-00-00 미국 AMPEX사 골든릴상 수상 (미워미워미워)
1982-00-00 외신 기자 클럽 선정 최고 남자가수상
1982-00-00 KBS 방송가요대상 최우수 남자가수상
1982-00-00 전국 PD 선정 최우수 가수상
1982-00-00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1983-06-00 조용필5집-산유화
1983-00-00 5집에서는 이호준과 송홍섭을 중심으로 위대한 탄생의 멤버가 모두 갈렸다.
1983-00-00 이제는 실력있는 새멤버를 갖추었으며 조용필도 제대로된 록 사운드를
1983-00-00 펼칠수있는 기량을 갖추게 된다. 그는 5집 '산유화', '한강', '황진이'를
1983-00-00 통해 그가 데뷔초부터 꿈꿔왔던 록사운드를 현실로서 구현할수있게 되었다.
1983-00-00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를 현실의 음악으로 바꿀수있는 방법을
1983-00-00 찾아내었으며 핑크 플로이드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음악을 펼칠 수 있게 된것이다.
1983-00-00 그는 5집을 만들고나서 이후 음악이 그의 최고의 음반이 될 것이라는 것을
1983-00-00 직감할 수 있었다.
1983-00-00 5집의 조용필 음악을 들어보면 그것들이 멋진 사운드에 록음악임에도 불구하고
1983-00-00 듣는사람은 그것을 서구적인 음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3-00-00 오히려 판소리를 듣는것 같은 전통한국음악의 느낌을 받는다.
1983-00-00 그의 음악은 그만큼 친근하다. 그것은 조용필이 서구지향적인 록음악을
1983-00-00 한국적인 정서로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1983-00-00 즉, 그는 서양음악 어법에 한국인만의 정서를 담기위해 오랫동안 애쓴 결과이다.
1983-00-00 KBS 방송가요대상 최우수 남자가수상, 최우수 가요상, 작곡상
1983-00-00 MBC 10대 가수가요제 가수왕상, 최고 인기 가요상, 작곡상 (나는 너 좋아)
1984-06-00 조용필 6집-눈물의 파티
1984-02-00 6집은 앨범 스케줄 상 기성 작곡가의 곡으로 채워졌다. 즉, 트로트 앨범이다.
1984-02-00 그런데 그때 결혼시기와 맞물려 앨범을 낼 만한 상황이 못되었다.
1984-02-00 또 우리 가요계의 여건상 앨범에 1년에 하나씩 내야하는 상황에서
1984-02-00 조용필은 6집을 다른사람에게 곡을 맏기는 징겁다리 전법을 선택했다.
1984-02-00 그리고 자신은 시간을 벌며 7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1984-02-00 6집 역시 스케줄과 1년에 앨범 하나이상을 내어야 하는 음반사의 관행에
1984-02-00 시간이 버텨내지 못했다. 그것은 85년 상반기 7집의 폭발이후 연이어 하반기에
1984-02-00 나온 8집도 마찬가지이다. 이러다간 자멸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없진 않았다.
1984-02-00 그러나 나는 이 압박감 아래서 다른 사람의 곡으로 6집을 만들때
1984-02-00 이미 7집의 곡을 쓰고 있었고,
1984-02-00 하나에 집중하고 하나를 건너뛰는 징검다리 배팅이랄까,
1984-02-00 비지니스의 룰 속에서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킬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했다
1985-04-00 조용필7집-들꽃
1985-04-00 7집은 위대한 탄생 사상 가장 화려한 멤버로 녹음되었다.
1985-04-00 7집은 핑크 플로이드 스타일의 사운드에서 벗어나서
1985-04-00 80년대 주류 팝 음악의 감성을 담은 록 사운드로 구성되었다.
1985-04-00 지구 레코드에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첫곡은 '눈물로 보이는 그대'가
1985-04-00 트로트 사운드로 앨범의 흠집을 내고 있지만 나머지 곡들은 조용필의
1985-04-00 야심적인 새로운 록 사운드로 가득차 있다.
1985-04-00 7집에서는 최고의 멤버들과 함께 세련되고 현대적인 사운드로 미래를
1985-04-00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1985-04-00 위대한 탄생 멤버/정원영, 김광민, 유재하,송홍섭
1985-04-00 나는 운이 좋았다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다고 말한다
1985-12-00 조용필 8집-허공/킬리만자로의 표범
1985-12-00 8집은 성인을 위한 서비스 앨범이며 동시에 음반회사에 기대를
1985-12-00 충족시켜주는 징검다리 앨범이다.
1985-12-00 그런데 원래 이 앨범에는 '한국의 애가'라는 제목이 붙을 예정이었다.
1985-12-00 조용필은 사랑의 노래, 슬픈노래, 인간의 노래란 의미를 함축한 '애가'를
1985-12-00 한국 가요의 대명사로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1985-12-00 그러나 그의 '애가'론은 완강한 반대의 벽에 부딪쳤다.
1985-12-00 우리가요가 왜 슬프기만하고 사랑타령만 하느냐는 이유였다.
1985-12-00 그것 때문이었을까. 그의 8집에는 '한국의 애가'라는 명칭이 붙지 않았다.
1985-12-00 그러나 트로트 계열의 곡이 압도적으로 많이 실린 점으로 보아 8집은
1985-12-00 분명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듯하다.
1985년 말은 들국화가 앨범을 발표하고 신촌에서부터 들국화 붐을 만들어가고 있던 시기였다.
1986년 3월에는 시나위가 1집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발표해 록팬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1986년 조용필이 '허공'을 히트시킬때 그의 커다란 세력인 젊은이들은
1986년 모두 들국화나 시나위에 열광해 있었다.
1986년 86년, 87년은 그에게 있어 가장 힘든 시기였다.
1986년 3월 부인은 음독자살기도 했다
1986년 조용필을 향해 세상사람들은 온갖 추측과 비난을 퍼부어댔다.
1986년 그는 세상사람들이 싫어졌다. 자기가 죽도록 투쟁하여 훌륭한 음반을 내봐야
1986년 그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인기를 유지하는 것은 조용필이란 이름
1986년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조용필은 수입마저도 그의 것이 아니라
1986년 지구레코드사의 몫이었고 주제넘게 조용필 음악에 간섭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이 싫어졌다.
1987-04-00 조용필-9집 마도요
1987-00-00 그리고 86년을 건너뛰고 87년에 4월이 되서야 9집을 발표한다
1987-00-00 게다가 86년을 쉬고 87년에 나온 9집은 매우 실망스러운 앨범이었다.
1987-00-00 87년, 9집을 발표할때 나는 개인적인 불행과 맞물려 정신적으로 방황을 거듭했다.
1987-00-00 그것은 조용필의 음악속에서 과거와 같은 치열함을 발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1987-00-00 조용필은 이혼 등 개인적 불행과 87년에 3김의 대권을 향한 분열과 그 지역감정으로
1987-00-00 세상에 대한 혐오가 가득했고 음악적으로도
1987-00-00 들국화와 시나위의 등장으로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1987-00-00 조용필은 7집의 성과를 잇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1987-00-00 쉬어야 되는거 아닌가? 나란 인간은 뭐냐? 회의가 회의를 물고 맴돌았다.
1986-00-00 그런 가운데 '청춘시대'의 기타 솔로가 잉베이 맘스틴의 표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1987-00-00 기타를 맏았던 당시의 멤버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1987-00-00 그리고 바로 그 노래의 홍보를 그만두었다. 가장 힘든 시기였다
1988-05-00 조용필10집-서울 서울 서울
1988-05-00 정통 재즈는 아니지만 록 보다는 휴전 재즈쪽에 가까운 사운드를 선보이고 있어
1988-05-00 이제는 그가 대중성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1988-00-00 10집 앨범을 구태여 휴전재즈 뮤지션과 비교한 다면 키보드 주자
1988-00-00 데이브 그루신의 사운드와 흡사하다. .
1988-00-00 또한, 일반 국내 가수들이 멜로디와 가사에 치중하는데 비해 이 앨범은
1988-00-00 첨단 전자악기를 동원하여 사운드와 편곡에 중점을두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1988-00-00 키보드와 베이스를 전면에 내세워 업비트를 강조한 휴전 재즈적 스케일을
1988-00-00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1989-04-00 조용필11집-Q.꽃이 되고 싶어라/지구레코드와의 마직막 앨범이다
1989-00-00 조용필은 11집을 다른 작곡가에게 맡기고 시간을 벌면서 지구와의 계약기간
1989-00-00 완료후 발표할 음악에 대한 구상을 했다.
1989-00-00 80년대 후반 가요계는 록을 기저로 한 팝발라드의 시대였다.
1989-00-00 이문세를 선두로 변진섭, 신승훈이 팝발라드의 독주를 선도했고
1989-00-00 그 뒤를 윤상이 이어가고 있었다.
1990-01-00 조용필12집-추억속의 재회
1990-00-00 조용필은 음반 회사를 옮겨 90년 1월 12집을 내면서 이런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였다.
1990-00-00 그는 자신의 팝록 스타일에 윤상 등의 신진음악 스타일을 구현해냈다.
1990-00-00 그리고 '추억속의 재회', '해바라기' 등 히트곡을 내며 그의 정상을 확인시켜주었다.
1990-00-00 90년을 맞이하는 즈음 조용필은 더이상 젊음의 대변자가 아니었다.
1990-00-00 그가 86년 12월 '허공' 이후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대발길 머무는 곳에',
1990-00-00 '서울 서울 서울', 'Q'등의 히트곡들은 대부분 기성가요로 취급되는 곡들이었다.
1990-00-00 그가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젊음의 대변자가 되어야만 했다.
1990-00-00 90년대... 무엇보다도 80년대의 옷을 벗어야 했다
1990-00-00 12집 '추억속의 재회'부터 사운드가 강렬하고 무거워졌으며 무엇보다 진지해졌다
1991-04-00 조용필 13집-꿈
1992-04-11 특종TV연예(토 17:10-18:05)-MBC연예오락(방송-01회) MC임백천
1992-04-11 출연:서태지와 아이들
1992-04-12 서태지와 아이들-폭발적 인기시작
1992-00-00 서태지가 등장하면서 가요계는 샘플러와 시퀀서를 주축으로 한
1992-00-00 디지털 댄스리듬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정신없이 쏱아지는 래핑과 랩댄스,
1992-00-00 테크노, 힙합, 하우스 등 최신 댄스리듬은 태풍처럼 휩쓸면서 지나갔다.
1992-00-00 어찌 조용필이 주목 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이제 구시대 인물이 된 것이다
1992-00-00 조용필이 90년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테크노, 하우스, 힙합 같은 주류
1992-00-00 댄스비트나 강렬한 기타리프 둘중의 하나라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만 했다.
1992-00-00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조용필이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1992-00-00 조용필은 사실 14집을 준비할 때 고민을 많이했다.. 이미 서태지가 등장해 있었기 때문...
1992-10-00 가을 이미 그때는 랩댄스 음악이 모든 것을 휩쓸며 세대교체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1992-10-00 조용필 14집-슬픈 베아트리체
1992-10-00 조용필에게 위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것은 14집부터 이다
1994-07-00 조용필 15집-남겨진 자의 고독
1994-07-00 조용필은 다음 15집을 자신이 아닌 위대한 탄생 멤버들에게 일임한다
1994-00-00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상업적 실패를 안겨준 최악의 앨범이 되버렸다
1997-05-00 조용필16집-바람의 노래
1998-10-00 조용필17집-친구의 아침
1998-00-00 건국이후 최고가수로 선정 (조선일보, 한국 갤럽 조사)
1998-00-00 방송3사(KBS.MBC.SBS) 데뷔30주년 기념공로패
1998-00-00 탄자니아정부 감사패 (킬리만자로산을 한국에 알린 공로)
1998-00-00 한국방송대상 남자가수상
1998-00-00 문화방송선정 정부수립 50년 최고의 스타상
1999-00-00 20세기 최고 가수, 최고 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 선정
2001-00-00 탄지니아정부 문화훈장 (킬리만자로산을 한국에 알린 공로)
2003-09-03 조용필18집-오늘도 / 꽃이여
2003-00-00 제2회 스타선행대상 특별상
2003-00-00 보관문화훈장
2005-08-23 평양단독콘서트
2005-00-00 제3회 통일문화대상 대상
2005-00-00 SBS 가요대전 특별공로상
2005-00-00 제20회 골든디스크상 공로상
2006-00-00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2007-04-13 조용필 내년 美·濠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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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0 | 38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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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공명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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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9 | 12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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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요즘 뭐하나? 미국서 19집 준비중 6월 국내 공연1 |
2007-04-19 | 159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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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사태를 보면서 ... |
2007-04-19 | 126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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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잘하는 조용필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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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투표 보셨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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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운동장3 |
2007-04-15 | 15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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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3일(금)오후1시 티켓오픈 춘천콘서트 구역공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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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창 배워 봅시다- 조용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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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FM4U /굿모닝FM] 4월 14일 18번째 주인공 <조용필>1 |
2007-04-13 | 15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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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선곡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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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7 | 10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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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요..♥님의 생일을 축하드립니다!!!14 |
2007-04-13 | 1071 |
2 댓글
필사랑♡김영미
2007-04-21 21:16:18
ypc스타
2007-04-21 21:21:24
사진은 저의 블로그로 올렸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