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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인방송 써니FM ‘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 ’ 2집 앨범 1 부 방송분 *****
★ DJ : 백영규 (가수)
★ 조용필 2집 노래 + 게스트 : 임석호(전 지구레코드사 문예부장), 성우진 (평론가)
★ 특집 방송 제작진 : PD - 임지성, 김경은, 작가 : 김희진, 김형민
★ 나레이션 : 김지수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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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규 : 청취자 여러분도 모두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그의 얘기와 그의 감동적인 노래에 흥분하시는 모습을 보니까요 책임감도 크게 느껴지고 기대에 기대를 더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그 마음이 전해지고 전해져서 더 많은 청취자분들이 이 방송을 함께 했으면하는 바람도 생기구요.
첫 시작의 흥분이 회를 거듭할수록 더 하면 더했지 가라앉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임하겠습니다. 차안에서나 집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몰래 듣고 있는 여러분, 그의 혼이 담긴 노래를 들으면서 목청을 높혀서 마음껏 소리질러 주십시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 그의열정의 산물들을 얘기할 때 두 손이 아플 정도로 큰 박수를 쳐 주십시오. 그 소리들이 가왕 조용필씨에게 들릴 정도로요. 자, 오늘도 어떤 얘기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잠시라도 화장실 가는 거 잊어주시구요. 모든 감각을 주파수 90.7에 고정해 주시구요.
자,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자, 가고싶은 마을 1부입니다. 조용필 40주년을 맞이해서 특집 이틀째입니다. 매일 음반 1장씩 1집, 2집, 3집.. 이렇게 다뤄가고 있는데 어제 1집에 대해서 다뤘구요. 오늘은 방금 들으신 <축복>이 실려있는 2집에 대해서 오늘 얘기를 나눌 까 합니다.
어저께는요 이상벽씨를 통해서 조용필의 약간 어두웠던 옛날, 그리고 참~ 큰 인물이 되겠다는 그 예감을 말씀해 주셨구요. 그리고 이현석씨가 1집에 대한 평론을 해 주셨고, 그리고 <창밖의 여자>의 작사가죠. 극작가이면서 작사를 해 주신 배명숙님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 1집을 소중하게 다뤘는데요.
조용필 팬클럽에서 응원의 메시지가 저한테 왔어요 “형식적으로 특집을 다룰 줄 알았더니 정말 낱낱이 파헤쳐서 너무 정성이 깃들어 있다”고 이렇게 팬클럽에서 저한테 응원의 메시지를 주셨는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방송을 들으신 이상구박사님이 제작비까지 지원을 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어제는 기분좋은 하루였습니다.
오늘 출연을 해 주시는 분은요. 그 당시에 <창밖의 여자>를 발표하고서 드디어 우뚝 서기 시작하는 그 시점이죠. 그 시점에서 우리나라에 지구레코드 회사란 그 당시 가요계의 한 파워를 한 그런 레코드 회사죠. 그곳에서 문예부장에 재직하시면서 조용필의 녹음과 음반기획, 제작 이런걸 담당했기 때문에 어느 분 못지않게 생생한 그의 음악의 앞뒤가 나올 것 같습니다.
▶김지수: 경인방송 써니 FM의 대기획 조용필 데뷔 40주년 특집방송 21일간의 라디오 조용필, 가왕의 무한 도전기, 제 2화 다시 짚어보는 가왕의 1집과 급조된 2집, 조용필. 어제는 우리는 조용필에 대한 대단한 얘기들을 나눠봤다. 오늘 그 앨범제작에 참여한 장본인이 나온 김에 그에게 물어보자. 과연 조용필, 신인부터 거물이었나?
▶백영규: 조용필! 신인부터 거물이었나? 바로 질문을 주셨어요 이렇게.. 질문을 제가 드려야 되는데.. 어서오세요 임석호씨, 그리고 성우진 씨.
오늘 제가 좀전에 설명했듯이 그 당시에 지구레코드 회사는 우리나라에 제일 큰 레코드 회사였구요. 그 때 당시 문예부장이면서 조용필의 음반과 기획, 그리고 제작, 녹음의 전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보신 임석호씨가 나오셨습니다. 어서오세요
▶임석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백영규: 그리고 오늘 2집을 평론해 주실 성우진씨 나와주셨구요
▶성우진: 네, 안녕하십니까?
▶백영규: 김지수 아나운서께서 “신인부터 거물이었나” 이런 질문이 나왔어요
▶성우진: 저도 참 질문하면서 당황했습니다
▶백영규: 저도 지금 당황했어요. 하나 하나 얘기를 풀어가고 싶은데요. 2집은 우리가 좀전에 대기실에서 ‘구성이 좀 부실하다’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당시 문예부장이셨던 임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저도 그런 얘기를 듣고 막상 CD를 보니까 약간 그런면이 좀 보이더라고요. 2집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평을 좀..
▶성우진: 네, 평론가들 입장이나 예를 들어 음악을 연구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논란이 많은 그런 앨범이죠.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이렇게 말씀 드리는게 조금 이해하시기가 빠를텐데, 얼마전부터 사실은 바쁜 시기나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기간에 인기를 유지하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외국에는 없는 제도이긴 한데 .5집이라는 게 많이 있었는데, 뒤늦게 평가로는 당시는 그런 제도가 없었지만 이게 사실 ‘조용필의 1.5집이다’ 이런 평가가 많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사실은 “나에게 제대로 녹음한 2집은 없다” 이렇게 얘기도 하시고 생각할 정도로 본인도 이 완성도에 대해서는 썩 달가워하지 않구요.
그리고 또 여러분들이 어제 들으셨던 1집, 워낙 앨범의 판매고도 좋았고, 대히트를 기록해서 이 당시로선 조용필씨가 완전 공인 가수로,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늦깍이 신인인데 대마초 파동도 겪고, 이미 그전에 활동도 했었고 여러밴드 활동을 했던 그런 상황에서 신인이라고 볼 순 없겠지만 사실은 신인이지 않은 대형가수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래서 3월에 1집이 나왔는데, 사실 9개월만에 그해가 가기전인 12월 초에 이 2집이 나왔습니다. 기간으로 보면 9개월만인데 굉장히 너무나 바쁜 시간이어서 방송출연도 너무도 많았고, 공연도 있었고, 해외도 갔다와야 됐고.
특히 2집을 오리지널 LP로 보게되면 앨범 쟈켓도 자세히 보면 그렇게 흔한 장소는 아니거든요? 세종문화회관인가? 아니면 예술의 전당인가? 당시에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의 패션같은 것도 보실 수 있어요. 어찌보면 촌스러운 패션일 수도 있는데 선글라스 하나 끼시고, 마이크 들고 공연하시는 모습인데 당시에는 굉장히 크게 보도가 됐었습니다. 미국 뉴욕에 있는 1891년 정도에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는데 강철왕 카네기의 재단에서 만들어 놓은 그 유명한 카네기홀에서 6월에 공연을 하게 되거든요. 당시 보도로는 ‘한국가수로는 최초로 카네기 무대를 밟았다’ 그래서 아주 대서특필이 되곤 했었는데, 그런 과정도 있고 해서 사실 앨범 뒷면에 보면 <카네기홀 공연기념 음반>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타이틀로 약간은 레코드 회사에서도 1집의 큰 인기를 입어서 빨리 앨범을 냈으면 했었고 그런 가운데 조용필씨가 너무 바빠서 본인이 또 많이 관리를 못했고 여기서는 김영광이라는 작곡가, 연주자가 굉장히 또 많은 프로테지를 차지하죠
▶백영규: 아까 들은 노래 <세월>도 그럼 김영광씨 작품이네요?
▶성우진: 네
▶백영규: 참, 나중에 음악이랑 상당히 대조적인 피트의 음악을 들었는데요 오늘 2부, 3부, 4부 방송이 굉장히 잘 될 것 같습니다. 왜냐면 2집 총치을 지금 약 4분 동안 해 주셨어요. 임선생님은 제대로 인사도 못하셨는데, 임 선생님 목소리는 아무래도 2부에서 들어야 될 것 같구요. 우리 끝곡으로 어떤 곡을 준비할까요?
▶성우진: 네, 임선생님이 아주 생각을 많이 해 주셔야 될 곡인데요. <간양록>이란 노랠 들어보겠습니다.
▶백영규: <간양록> 이 노래를 들으시고 2부에서는 임선생님의 그 당시 녹음과정이라던지.. 굉장히 저도 기대가 되고 있어요. 왜냐면 그 때 당시 조용필씨의 마음을 제가 읽는다고 그러면, 1집이 워낙 히트가 됐기 때문에 만들어야죠. 그리고 어떤 음악에 대한 주관이 확실히 서 있다고는 생각은 안 들거든요? 그래서 어차피 리더 세력이 있어야 된다는 건 분명한데 그때 리더 세력이 바로 앞에 계신 임석호씨였습니다. 2부, 3부에 기대감을 가지시라고 약 30초동안 임석호 선생님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당시에 레코드 회사 문예부장 정도면 가수들한테는 또 다른 스타급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예부장 한번 만나려면 가수들이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었는데 그때 아주 화려했던 문예부장, 그리고 화려했던 그 시절에서 조용필씨가 음반을 만들었습니다. 그 얘기는 <간양록>을 듣고서 2부에서 다시 나누겠습니다.
***** 경인방송 써니FM ‘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 ’ 2집 앨범 2 부 방송분 *****
▶백영규: 2부 첫곡은 <외로워 마세요> 들으셨구요. 지금 문자들이 올라오는데 형식적인 문자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특집에 관한, 조용필을 진심으로 알고 싶어하는 진실있는 문자들이 굉장히 올라오고 있는데요. 성우진씨 <외로워 마세요>를 들으니깐 마지막 후렴주에 가성이 나오죠?
▶성우진: 전부부분도 그렇죠? 마치 어찌 들으면 약간 신디사이저음 같기도 하고 여성 목소리 같기도 한데 사실 가성창법을 팔세토(falsetto) 창법이라 하는데 70년대 중후반에 비지스라는 그룹이 등장을 하면서 굉장히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됐죠. 그래서 야간업소 활동을 하게 되면 밴드활동을 했던 분이었기 때문에 당시 비지스의 레퍼토리를 많이 연습했다고 해요. 그 당시에 그 연습이 됐고 가성이 어느정도 완성이 되니까 앨범에서 직접 실험을 해 본 그런 경우가 되기도 했죠. 어느정도의 경험치가 반영된 곡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백영규: 이렇게 시작이 돼서 3집때인가요? <못찾겠다 꾀꼬리> 거기에서도 가성이 많이 나오죠?
▶성우진: <못찾겠다 꾀꼬리>, 4집때죠.
▶백영규: 거의 트레이드마크쪽으로 가는 쪽인데요. 임선생님, 아까 대기실에서 들으니까 조용필 특집 때문에 이 방송, 저 방송 많이 불려다니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뭐 어느 방송 출연하니까 말씀하신게 거의 편집을 당해서 짤리고, 지금 군사정권도 아닌데 왜 그런 상활들이 벌어지는 지 모르겠어요?
▶임석호: 글쎄요. 조용필 특집한다고 해서 인터뷰도 하고 그랬는데 원래 당시 <창밖의 여자>판 내고 그럴때는 조용필이 유명한 가수가 아니니까 그래서 그때 동아방송국의 안평선씨가 <창밖의 여자>란 가사를 가지고 아마 다른 작곡가가 작곡을 하다가 펑크를 내서 일주일 있다가 방송을 해야 되니까 빨리 녹음을, 주제가를 했으면 좋겠다 이게 조용필씨를 시킬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시키려고 했는데, 그때 마침 조용필씨 1집 녹음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작곡은 전속되어있는 작곡가를 시키고 가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를 의논하는 과정에서 내가 “조용필씨를 한번 시켜보자”그랬지요. 그러니까 안평선씨께서 “그전에 <정>이라는 연속극을 했는데 그때도 주제가를 조용필씨한테 시켜본적이 있다고 해서 내가 가사를 받아 적어서 조용필씨한테 이 기회에 작곡도 한번 시켜보자고 했죠.
어제 아마 <창밖의 여자> 방송을 했다는데 첫 작곡을 해서, 그 때 조용필씨가 여의도의 맨하탄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1층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는데 내가 그러니까 쑥스러워하던 그런 모습도 떠오르고, 그날 자기가 8층에 있으니까 8층에 한번 올라가보자고 하니까 그때 조용필씨가 “로데스”라는 전기피아노를 자기 악단에서 샀는데 한국에서 “내가 제일 먼저다”라고 자랑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자랑도 듣고.. 그리고 내려와서 그날 명동에 갈 일이 있어서 내 차를 타고 만리동 고개를 넘어오는데 그때가 겨울이라 눈이 미끄러워 교통사고가 났어요. 추돌사고가 났던 그런 기억도 있고 한데..
조용필씨는, 지금 조금전에 들은 2집은 사실 성우진씨나 인터넷을 보면 알려지지 않은, 성의가 없는 앨범으로 생각할진 모르지만 사실 한 가수가 2집이 제일 중요합니다. <창밖의 여자> 히트곡을 냈으니까 2집이 중요한데 사실 2집이라는게 조금 1집에 비해서 히트곡이 적다고 하지만 여기서도 이렇게 보면 <촛불>이라든지, <간양록>이라든지, <외로워마세요> 이 세곡은 상당히 알려졌어요.
▶백영규: <잊기로 했네>도 많이 알려졌어요
▶임석호: <뜻밖의 이별> 뭐 그런 곡들이 알려졌는데, 3집이 나올때 그 기간이 짧으니까 그 이후에 3집이 빨리 나왔기 때문에 방송을 그렇게 많이 탈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고 그 다음에 조용필씨 자신도 그때는 3집 정도에서 음악스타일을 한번 바꾸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이 곡이 그렇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렇게 부실하다던지 그런 판은 아니고 조용필씽의 인가가도란것은 2집이 어느정도 성공했기 때문에 3집이 자연스럽게 연결됐고, 내 개인적으로는 2집도 상당히 무게가 있는 음반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영규: 근데 지금 이제 보니까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이 노래랑 <슬픈미소>가 따로 편집이 돼서 들어왔잖아요? 요 자체만해도 그 당시 조용필씨는 우리나라 최고 가수였었는데 이렇게 편집이 됐다는게 좀 지우기엔 언짢네요.
▶임석호: 당시에는 우리 한국에서 CD 마스터링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니까 미국에서도 해오고 일본서도 해 오고 그랬어요. 근데 일본 같은데 보내놓으면 그 마스터링이 어떤때는 늦으면 20일 걸리고 하기 때문에 우선은 LP와 CD의 순서가 차이가 나고 또 빨리해야 되니까 그런 문제도 있고 그래서 당시는 여러 가지 열악한 사정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되었고. 그 다음에 지금처럼 또 흔하지 않고 외국에서 보내야 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비용도 많이 들고.
▶백영규: 그때 당시가 80년도인데도 우리나라가..
▶임석호: 예, 그랬어요. 다음에 또 소개되겠지만 한국이 최초로 디지털 녹음한 것이 조용필 6집이예요. 그 전에는 아날로그로 녹음된 것을 디지털화 시켜서 했지만 녹음자체를 디지털로 녹음한 경우는 조용필씨 6집이 처음이예요. 한국 가요사에 있어서 조용필 6집은 상당히 비중이 있는 음반입니다.
▶백영규: 임선생님은 6집때 또 나오셔야겠네요? 그때 디지털 녹음이 우리나라 최초라는 것도 굉장히 의미거든요.
▶임석호: 그럼요 이게 일본서 녹음했어요 전곡을.
▶백영규: 예~ 6집때 다시 한번 출연을 부탁드리고, 오늘 2집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쯤에서 노래 하나 들어볼까요?
▶성우진: 네, 지금 임선생님께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사실 요즘 세대들은 CD로만 구입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예전에 A, B면이 나눠져있는 LP 순서는 조금 있다가 다시 잠깐 설명해 드릴텐데 여기 2집 앨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면 라디오와 TV의 드라마 주제가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다는거죠. 일단은 여러분들이 프로그램 시작하면서 <촛불>이란 부제가 달려있는 <축복>이라는 곡, 동양방송(TBC)의 드라마 주제가였구요. 신봉승 대작가의 <간양록>이라는 곡이 MBC 드라마 주제가였는데 또 하나의 곡이 있습니다. 다음 들을 게 <인물현대사>란 곡인데, 이곡은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였거든요. 드라마 주제가들이 담겨있는 곡으로는 또 하나가 더 들어있으니까요. 이곡 여러분들에게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백영규: 심의번호를 보니까 8011이니까 80년도 11월이네요. <인물현대사> 노래 듣구요. 임선생님을 통해서 조용필씨가 녹음과정에서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 이런 얘기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백영규: 성우진! 이 노래 작사, 작곡 설명 좀 부탁드릴께요.
▶성우진: 요즘에는 너무 다 아실테지만 여기에서는 사실 조용필씨가 굉장히 바쁘셔서 두곡만 직접 만드셨는데요. 그 곡이 바로 <축복>, <간양록>의 주제곡을 만드셨고, 가장 이 앨범에서 많이 작업을 하신 분이 김영광씨예요. 김영광 작곡가가 4곡을 해서 이 앨범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당대 굉장히 대작곡가들로 인정을 받으시는 분들이라 이 앨범의 전체적인 성향자체가 LP하고..
잠깐 소개를 해 드려야겠는데, 원래 처음 나왔던 앨범에는 지금 여러분들이 CD로 사실때는 <오빠생각>이란 곡이 추가가 되어 있는데 원 앨범에는 없구요. A면의 마지막곡으로, 1집에서 여러분들에게 너무나 인기를 얻었던 <단발머리>가 당시에는 경음악이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경음악, 연주곡으로 1집 1면 마지막 곡으로 들어가 있고, 당시에는 꼭 건전가요가 하나씩 들어가야 되는 시기라 <신마을>이라는 곡이 모 방송국 합장단의 노래로 들어가 있는데 CD가 만들어지면서 많이 순서가 바뀌어서 <단발머리>경음악이 빠지고, 그 자리에 <오빠생각>이 들어간 좀 변형된 LP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좀 당황하실수도 있어요.
▶백영규: CD 개념의 구성이네요.
▶성우진: 네
▶백영규: 많은 분들이 지금 ‘조용필은 녹음할 때 습관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 이런것들이 많이 궁금하실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은 바로 옆에서 지켜보셨을텐데 어땠어요? 조용필시의 특별한 습관같은 것들이요.
▶임석호: 조용필씨는 본인이 입이 작다고 생각하나봐요. 자꾸 녹음할 때 입을 이렇게 먼저 풀죠. 그때 당시는 담배도 많이 피웠구요. 지금은 담배를 끊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조용필씨가 오늘날까지 우뚝 할 수 있었던 건 <촛불> 같은 곡을 녹음할 때도, 상당히 바빴는데 녹음기사보다 더 빨리 나와서 스튜디오서 악기 점검하고, 그날 녹음할 것에 대해 연구도 하고, 남보다 성실하죠, 노력하고.
우리가 그때 그랬어요. 녹음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조용필”이라고. 그런 성실한 면이 있고, 입을 미리 풀어야 되고, 녹음할 때 “나는 입이 작다”고 그런 소릴 많이 했어요.
조금전에 나온 <외로워 마세요>는 원래 제목이 <단념>이었는데 그게 ‘어렵다, 너무 일상적인 그런 제목이다’해서 바꾼 기억이 있는데, 사실 이 곡도 상당히 차트에도 오르고 괜찮은 곡이었는데, 2집에 대해서는 3집이 나올때까지 홍보기간이 짧고 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알지 못해서 그렇지 당시에는 상당히 히트곡이예요. 사실 지금와서 볼 때는 성공적이지 못한 앨범이 아니냐 하지만 당시의 인기도로 봤을 때는 음악의 성취도를 떠나서 인기로 볼 때는 이것도 상당히 성공한 앨범이예요.
▶백영규: 청취자 질문이 있어요. <간양록>이 조용필씨의 작곡인지, 원래 기존곡인지?
▶임석호: 조용필씨 곡이예요. 83년에 일본에서 조용필씨 앨범이 나왔는데 거기서 순서를 체크해 보면 <간양록>이 인기가 최고 좋았어요.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이런 곡을 듣기가 힘들잖아요? 상당히 한국적인 멜로디로 보고 그 다음에 조용필씨가 결정적으로 일본의 팬들을 많이 얻게 된 것은 <한오백년>같은 노래는 일본의 어떤 가수도 부를 수가 없어요. 물론 우리 민요니까 그렇지만 지금 조용필씨가 부른 소위 트로트곡은 일본에 그때 당시 우리가 녹음할 때 가보면 모리시니찌 등 유명한 가수들이 부를 순 있지만 <한오백년> 만큼은 전혀 흉내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일본팬들은 그 <한오백년>에 반해서 조용필씨가 오는 걸 더 원했다고 볼 수도 있고, 인기가 일본에서는 <한오백년>을 흉내도 낼 수 없으니까.
▶백영규: <한오백년>은 우리나라에서도 흉내 못내죠 그 노래만큼은요. 정말 피를 토하는 식의 그런 감정이니까요.
▶성우진: 1집에서 워낙 <한오백년>이 히트를 하고, 탁음을 연구한 게 히트를 하다보니까 사실 <간양록>을 만들 당시에 그 곡에 대해서 약간 염두를 뒀다고도 합니다.
▶임석호: 그런 것도 있고, 1집에는 사실 내가 방송을 통해서 얘기하고 싶은게 처음에는 <돌아와요 부산항에>판이 <창밖의 여자>판에 들어가 있질 않았어요. 초판에 2, 3천장정도 시중에 나가고 나서 다음에 조용필씨가 녹음을 해서 <창밖의 여자> 밑에다 넣었는데, 아마 앨범을 수집한다, 콜렉션하는 사람은 조용필씨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없는 1집 앨범이 상당히 가치가 있는 앨범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백영규: 다시 한번 정리를 하면 맨 처음에 초판 2, 3천장 냈을 때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없었는데 후에 조금 더 음반을 팔기 위해서 영업적인 면에서 삽입이 된거죠?
▶임석호: 영업적일 수도 있지만, 앨범의 기획자로서 생각을 해 보면, 1집 앨범은 “10대부터 60대까지 좋아하는 노래를 넣자”고 의논을 했어요. 그래서 올드팬들을 위해서 <한오백년>이라든지 <대전블루스>라든지 이런 노래도 넣고, 그 다음에 젊은 친구들을 위해서 팝송도 넣고, 다양하게. 10대부터 60대까지 다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씩 수록하자는게 이 앨범의 기획의도였어요. 그래서 1집은 해방이후에 판매량에 있어서 최대 히트곡이라 했잖아요
▶백영규: 저도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요. <님이여>라든지 이런 곡은 번안가요잖아요? 그러면 <창밖의 여자>를 임선생님이 악보를 보면서 “잘 써왔다”하셨는데 그럼 최초로 조용필씨가 작곡한 노래가 <창밖의 여자>인가요?
▶임석호: 그래요. 그때 처음에 악보를 가져왔을 때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아름답다 하는 그 진행이 아! 상당히 어필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조용필씨가 부르는 박력있는 창법이 상당히 어필할 것이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죠. 원래 내가 안평선씨하고 통화를 하면서 “이 기회에 조용필씨 작곡을 한번 시켜봅시다” 그러니까. 왜냐하면 다른 작곡가한테 부탁해서 일주일내에 그 주제가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조용필씨를 시키는 방법을 얘기했죠.
▶백영규: 그러면 물론 3집이나 4집때는 거의 조용필씨 작품으로 꾸려가고 있는데 사실 이게 전초전이었네요?
▶임석호: 내가 볼 때는 제일 처음 작곡한 게 아닌가 생각이 돼요. 조용필씨 입장에서 보면 처음 작곡한 게 밀리언셀러가 된거니까 가수로서 전도가 탄탄하고 그렇게 됐죠.
▶백영규: 2부가 이제 끝나가는데요. <잊기로 했네>는 앞에 앉아계신 임선생님께서 제목을 지으셨다고 살짝 귀띔을 주셨는데, 어떤 숨은 얘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임석호: <잊기로 했네> 그 제목이 <단념>이라고 그랬잖아요.
▶백영규: <외로워 마세요>가 <단념>이라고 하셨는데?
▶임석호: 아! <외로워 마세요>가 아니고 <잊기로 했네>가 <단념>입니다.
▶백영규: 아, 예~
▶임석호: 이건 얼마전에 돌아가신 박건호씨가 작사한 겁니다.
▶백영규: <잊기로 했네>를 준비 좀 해 주시구요. 우리 3부에서는 이런 얘기도 한번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3집, 4집 때는 드디어 조용필씨가 작사, 작곡을 스스로 하면서 <위대한 탄생>과 함께 편곡을 해 나가죠. 그렇지만은 1집, 2집때는 어떤 리더세력에 이끌려서 음악을 하게 되는데 과연 그때 기획자로서 볼 때 조용필이 말을 잘 들었는지? 아니면 그때부터 황소고집이 좀 있었는지? 이런 얘기를 3부에서 좀 듣기로 하구요. 2부 끝곡은 지금 얘기 나온 <잊기로 했네> 듣구요. 그후로 또 숨은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 DJ : 백영규 (가수)
★ 조용필 2집 노래 + 게스트 : 임석호(전 지구레코드사 문예부장), 성우진 (평론가)
★ 특집 방송 제작진 : PD - 임지성, 김경은, 작가 : 김희진, 김형민
★ 나레이션 : 김지수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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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규 : 청취자 여러분도 모두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그의 얘기와 그의 감동적인 노래에 흥분하시는 모습을 보니까요 책임감도 크게 느껴지고 기대에 기대를 더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그 마음이 전해지고 전해져서 더 많은 청취자분들이 이 방송을 함께 했으면하는 바람도 생기구요.
첫 시작의 흥분이 회를 거듭할수록 더 하면 더했지 가라앉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임하겠습니다. 차안에서나 집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몰래 듣고 있는 여러분, 그의 혼이 담긴 노래를 들으면서 목청을 높혀서 마음껏 소리질러 주십시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 그의열정의 산물들을 얘기할 때 두 손이 아플 정도로 큰 박수를 쳐 주십시오. 그 소리들이 가왕 조용필씨에게 들릴 정도로요. 자, 오늘도 어떤 얘기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잠시라도 화장실 가는 거 잊어주시구요. 모든 감각을 주파수 90.7에 고정해 주시구요.
자,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자, 가고싶은 마을 1부입니다. 조용필 40주년을 맞이해서 특집 이틀째입니다. 매일 음반 1장씩 1집, 2집, 3집.. 이렇게 다뤄가고 있는데 어제 1집에 대해서 다뤘구요. 오늘은 방금 들으신 <축복>이 실려있는 2집에 대해서 오늘 얘기를 나눌 까 합니다.
어저께는요 이상벽씨를 통해서 조용필의 약간 어두웠던 옛날, 그리고 참~ 큰 인물이 되겠다는 그 예감을 말씀해 주셨구요. 그리고 이현석씨가 1집에 대한 평론을 해 주셨고, 그리고 <창밖의 여자>의 작사가죠. 극작가이면서 작사를 해 주신 배명숙님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 1집을 소중하게 다뤘는데요.
조용필 팬클럽에서 응원의 메시지가 저한테 왔어요 “형식적으로 특집을 다룰 줄 알았더니 정말 낱낱이 파헤쳐서 너무 정성이 깃들어 있다”고 이렇게 팬클럽에서 저한테 응원의 메시지를 주셨는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방송을 들으신 이상구박사님이 제작비까지 지원을 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어제는 기분좋은 하루였습니다.
오늘 출연을 해 주시는 분은요. 그 당시에 <창밖의 여자>를 발표하고서 드디어 우뚝 서기 시작하는 그 시점이죠. 그 시점에서 우리나라에 지구레코드 회사란 그 당시 가요계의 한 파워를 한 그런 레코드 회사죠. 그곳에서 문예부장에 재직하시면서 조용필의 녹음과 음반기획, 제작 이런걸 담당했기 때문에 어느 분 못지않게 생생한 그의 음악의 앞뒤가 나올 것 같습니다.
▶김지수: 경인방송 써니 FM의 대기획 조용필 데뷔 40주년 특집방송 21일간의 라디오 조용필, 가왕의 무한 도전기, 제 2화 다시 짚어보는 가왕의 1집과 급조된 2집, 조용필. 어제는 우리는 조용필에 대한 대단한 얘기들을 나눠봤다. 오늘 그 앨범제작에 참여한 장본인이 나온 김에 그에게 물어보자. 과연 조용필, 신인부터 거물이었나?
▶백영규: 조용필! 신인부터 거물이었나? 바로 질문을 주셨어요 이렇게.. 질문을 제가 드려야 되는데.. 어서오세요 임석호씨, 그리고 성우진 씨.
오늘 제가 좀전에 설명했듯이 그 당시에 지구레코드 회사는 우리나라에 제일 큰 레코드 회사였구요. 그 때 당시 문예부장이면서 조용필의 음반과 기획, 그리고 제작, 녹음의 전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보신 임석호씨가 나오셨습니다. 어서오세요
▶임석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백영규: 그리고 오늘 2집을 평론해 주실 성우진씨 나와주셨구요
▶성우진: 네, 안녕하십니까?
▶백영규: 김지수 아나운서께서 “신인부터 거물이었나” 이런 질문이 나왔어요
▶성우진: 저도 참 질문하면서 당황했습니다
▶백영규: 저도 지금 당황했어요. 하나 하나 얘기를 풀어가고 싶은데요. 2집은 우리가 좀전에 대기실에서 ‘구성이 좀 부실하다’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당시 문예부장이셨던 임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저도 그런 얘기를 듣고 막상 CD를 보니까 약간 그런면이 좀 보이더라고요. 2집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평을 좀..
▶성우진: 네, 평론가들 입장이나 예를 들어 음악을 연구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논란이 많은 그런 앨범이죠.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이렇게 말씀 드리는게 조금 이해하시기가 빠를텐데, 얼마전부터 사실은 바쁜 시기나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기간에 인기를 유지하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외국에는 없는 제도이긴 한데 .5집이라는 게 많이 있었는데, 뒤늦게 평가로는 당시는 그런 제도가 없었지만 이게 사실 ‘조용필의 1.5집이다’ 이런 평가가 많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사실은 “나에게 제대로 녹음한 2집은 없다” 이렇게 얘기도 하시고 생각할 정도로 본인도 이 완성도에 대해서는 썩 달가워하지 않구요.
그리고 또 여러분들이 어제 들으셨던 1집, 워낙 앨범의 판매고도 좋았고, 대히트를 기록해서 이 당시로선 조용필씨가 완전 공인 가수로,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늦깍이 신인인데 대마초 파동도 겪고, 이미 그전에 활동도 했었고 여러밴드 활동을 했던 그런 상황에서 신인이라고 볼 순 없겠지만 사실은 신인이지 않은 대형가수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래서 3월에 1집이 나왔는데, 사실 9개월만에 그해가 가기전인 12월 초에 이 2집이 나왔습니다. 기간으로 보면 9개월만인데 굉장히 너무나 바쁜 시간이어서 방송출연도 너무도 많았고, 공연도 있었고, 해외도 갔다와야 됐고.
특히 2집을 오리지널 LP로 보게되면 앨범 쟈켓도 자세히 보면 그렇게 흔한 장소는 아니거든요? 세종문화회관인가? 아니면 예술의 전당인가? 당시에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의 패션같은 것도 보실 수 있어요. 어찌보면 촌스러운 패션일 수도 있는데 선글라스 하나 끼시고, 마이크 들고 공연하시는 모습인데 당시에는 굉장히 크게 보도가 됐었습니다. 미국 뉴욕에 있는 1891년 정도에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는데 강철왕 카네기의 재단에서 만들어 놓은 그 유명한 카네기홀에서 6월에 공연을 하게 되거든요. 당시 보도로는 ‘한국가수로는 최초로 카네기 무대를 밟았다’ 그래서 아주 대서특필이 되곤 했었는데, 그런 과정도 있고 해서 사실 앨범 뒷면에 보면 <카네기홀 공연기념 음반>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타이틀로 약간은 레코드 회사에서도 1집의 큰 인기를 입어서 빨리 앨범을 냈으면 했었고 그런 가운데 조용필씨가 너무 바빠서 본인이 또 많이 관리를 못했고 여기서는 김영광이라는 작곡가, 연주자가 굉장히 또 많은 프로테지를 차지하죠
▶백영규: 아까 들은 노래 <세월>도 그럼 김영광씨 작품이네요?
▶성우진: 네
▶백영규: 참, 나중에 음악이랑 상당히 대조적인 피트의 음악을 들었는데요 오늘 2부, 3부, 4부 방송이 굉장히 잘 될 것 같습니다. 왜냐면 2집 총치을 지금 약 4분 동안 해 주셨어요. 임선생님은 제대로 인사도 못하셨는데, 임 선생님 목소리는 아무래도 2부에서 들어야 될 것 같구요. 우리 끝곡으로 어떤 곡을 준비할까요?
▶성우진: 네, 임선생님이 아주 생각을 많이 해 주셔야 될 곡인데요. <간양록>이란 노랠 들어보겠습니다.
▶백영규: <간양록> 이 노래를 들으시고 2부에서는 임선생님의 그 당시 녹음과정이라던지.. 굉장히 저도 기대가 되고 있어요. 왜냐면 그 때 당시 조용필씨의 마음을 제가 읽는다고 그러면, 1집이 워낙 히트가 됐기 때문에 만들어야죠. 그리고 어떤 음악에 대한 주관이 확실히 서 있다고는 생각은 안 들거든요? 그래서 어차피 리더 세력이 있어야 된다는 건 분명한데 그때 리더 세력이 바로 앞에 계신 임석호씨였습니다. 2부, 3부에 기대감을 가지시라고 약 30초동안 임석호 선생님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당시에 레코드 회사 문예부장 정도면 가수들한테는 또 다른 스타급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예부장 한번 만나려면 가수들이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었는데 그때 아주 화려했던 문예부장, 그리고 화려했던 그 시절에서 조용필씨가 음반을 만들었습니다. 그 얘기는 <간양록>을 듣고서 2부에서 다시 나누겠습니다.
***** 경인방송 써니FM ‘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 ’ 2집 앨범 2 부 방송분 *****
▶백영규: 2부 첫곡은 <외로워 마세요> 들으셨구요. 지금 문자들이 올라오는데 형식적인 문자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특집에 관한, 조용필을 진심으로 알고 싶어하는 진실있는 문자들이 굉장히 올라오고 있는데요. 성우진씨 <외로워 마세요>를 들으니깐 마지막 후렴주에 가성이 나오죠?
▶성우진: 전부부분도 그렇죠? 마치 어찌 들으면 약간 신디사이저음 같기도 하고 여성 목소리 같기도 한데 사실 가성창법을 팔세토(falsetto) 창법이라 하는데 70년대 중후반에 비지스라는 그룹이 등장을 하면서 굉장히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됐죠. 그래서 야간업소 활동을 하게 되면 밴드활동을 했던 분이었기 때문에 당시 비지스의 레퍼토리를 많이 연습했다고 해요. 그 당시에 그 연습이 됐고 가성이 어느정도 완성이 되니까 앨범에서 직접 실험을 해 본 그런 경우가 되기도 했죠. 어느정도의 경험치가 반영된 곡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백영규: 이렇게 시작이 돼서 3집때인가요? <못찾겠다 꾀꼬리> 거기에서도 가성이 많이 나오죠?
▶성우진: <못찾겠다 꾀꼬리>, 4집때죠.
▶백영규: 거의 트레이드마크쪽으로 가는 쪽인데요. 임선생님, 아까 대기실에서 들으니까 조용필 특집 때문에 이 방송, 저 방송 많이 불려다니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뭐 어느 방송 출연하니까 말씀하신게 거의 편집을 당해서 짤리고, 지금 군사정권도 아닌데 왜 그런 상활들이 벌어지는 지 모르겠어요?
▶임석호: 글쎄요. 조용필 특집한다고 해서 인터뷰도 하고 그랬는데 원래 당시 <창밖의 여자>판 내고 그럴때는 조용필이 유명한 가수가 아니니까 그래서 그때 동아방송국의 안평선씨가 <창밖의 여자>란 가사를 가지고 아마 다른 작곡가가 작곡을 하다가 펑크를 내서 일주일 있다가 방송을 해야 되니까 빨리 녹음을, 주제가를 했으면 좋겠다 이게 조용필씨를 시킬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시키려고 했는데, 그때 마침 조용필씨 1집 녹음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작곡은 전속되어있는 작곡가를 시키고 가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를 의논하는 과정에서 내가 “조용필씨를 한번 시켜보자”그랬지요. 그러니까 안평선씨께서 “그전에 <정>이라는 연속극을 했는데 그때도 주제가를 조용필씨한테 시켜본적이 있다고 해서 내가 가사를 받아 적어서 조용필씨한테 이 기회에 작곡도 한번 시켜보자고 했죠.
어제 아마 <창밖의 여자> 방송을 했다는데 첫 작곡을 해서, 그 때 조용필씨가 여의도의 맨하탄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1층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는데 내가 그러니까 쑥스러워하던 그런 모습도 떠오르고, 그날 자기가 8층에 있으니까 8층에 한번 올라가보자고 하니까 그때 조용필씨가 “로데스”라는 전기피아노를 자기 악단에서 샀는데 한국에서 “내가 제일 먼저다”라고 자랑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자랑도 듣고.. 그리고 내려와서 그날 명동에 갈 일이 있어서 내 차를 타고 만리동 고개를 넘어오는데 그때가 겨울이라 눈이 미끄러워 교통사고가 났어요. 추돌사고가 났던 그런 기억도 있고 한데..
조용필씨는, 지금 조금전에 들은 2집은 사실 성우진씨나 인터넷을 보면 알려지지 않은, 성의가 없는 앨범으로 생각할진 모르지만 사실 한 가수가 2집이 제일 중요합니다. <창밖의 여자> 히트곡을 냈으니까 2집이 중요한데 사실 2집이라는게 조금 1집에 비해서 히트곡이 적다고 하지만 여기서도 이렇게 보면 <촛불>이라든지, <간양록>이라든지, <외로워마세요> 이 세곡은 상당히 알려졌어요.
▶백영규: <잊기로 했네>도 많이 알려졌어요
▶임석호: <뜻밖의 이별> 뭐 그런 곡들이 알려졌는데, 3집이 나올때 그 기간이 짧으니까 그 이후에 3집이 빨리 나왔기 때문에 방송을 그렇게 많이 탈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고 그 다음에 조용필씨 자신도 그때는 3집 정도에서 음악스타일을 한번 바꾸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이 곡이 그렇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렇게 부실하다던지 그런 판은 아니고 조용필씽의 인가가도란것은 2집이 어느정도 성공했기 때문에 3집이 자연스럽게 연결됐고, 내 개인적으로는 2집도 상당히 무게가 있는 음반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영규: 근데 지금 이제 보니까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이 노래랑 <슬픈미소>가 따로 편집이 돼서 들어왔잖아요? 요 자체만해도 그 당시 조용필씨는 우리나라 최고 가수였었는데 이렇게 편집이 됐다는게 좀 지우기엔 언짢네요.
▶임석호: 당시에는 우리 한국에서 CD 마스터링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니까 미국에서도 해오고 일본서도 해 오고 그랬어요. 근데 일본 같은데 보내놓으면 그 마스터링이 어떤때는 늦으면 20일 걸리고 하기 때문에 우선은 LP와 CD의 순서가 차이가 나고 또 빨리해야 되니까 그런 문제도 있고 그래서 당시는 여러 가지 열악한 사정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되었고. 그 다음에 지금처럼 또 흔하지 않고 외국에서 보내야 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비용도 많이 들고.
▶백영규: 그때 당시가 80년도인데도 우리나라가..
▶임석호: 예, 그랬어요. 다음에 또 소개되겠지만 한국이 최초로 디지털 녹음한 것이 조용필 6집이예요. 그 전에는 아날로그로 녹음된 것을 디지털화 시켜서 했지만 녹음자체를 디지털로 녹음한 경우는 조용필씨 6집이 처음이예요. 한국 가요사에 있어서 조용필 6집은 상당히 비중이 있는 음반입니다.
▶백영규: 임선생님은 6집때 또 나오셔야겠네요? 그때 디지털 녹음이 우리나라 최초라는 것도 굉장히 의미거든요.
▶임석호: 그럼요 이게 일본서 녹음했어요 전곡을.
▶백영규: 예~ 6집때 다시 한번 출연을 부탁드리고, 오늘 2집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쯤에서 노래 하나 들어볼까요?
▶성우진: 네, 지금 임선생님께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사실 요즘 세대들은 CD로만 구입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예전에 A, B면이 나눠져있는 LP 순서는 조금 있다가 다시 잠깐 설명해 드릴텐데 여기 2집 앨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면 라디오와 TV의 드라마 주제가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다는거죠. 일단은 여러분들이 프로그램 시작하면서 <촛불>이란 부제가 달려있는 <축복>이라는 곡, 동양방송(TBC)의 드라마 주제가였구요. 신봉승 대작가의 <간양록>이라는 곡이 MBC 드라마 주제가였는데 또 하나의 곡이 있습니다. 다음 들을 게 <인물현대사>란 곡인데, 이곡은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였거든요. 드라마 주제가들이 담겨있는 곡으로는 또 하나가 더 들어있으니까요. 이곡 여러분들에게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백영규: 심의번호를 보니까 8011이니까 80년도 11월이네요. <인물현대사> 노래 듣구요. 임선생님을 통해서 조용필씨가 녹음과정에서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 이런 얘기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백영규: 성우진! 이 노래 작사, 작곡 설명 좀 부탁드릴께요.
▶성우진: 요즘에는 너무 다 아실테지만 여기에서는 사실 조용필씨가 굉장히 바쁘셔서 두곡만 직접 만드셨는데요. 그 곡이 바로 <축복>, <간양록>의 주제곡을 만드셨고, 가장 이 앨범에서 많이 작업을 하신 분이 김영광씨예요. 김영광 작곡가가 4곡을 해서 이 앨범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당대 굉장히 대작곡가들로 인정을 받으시는 분들이라 이 앨범의 전체적인 성향자체가 LP하고..
잠깐 소개를 해 드려야겠는데, 원래 처음 나왔던 앨범에는 지금 여러분들이 CD로 사실때는 <오빠생각>이란 곡이 추가가 되어 있는데 원 앨범에는 없구요. A면의 마지막곡으로, 1집에서 여러분들에게 너무나 인기를 얻었던 <단발머리>가 당시에는 경음악이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경음악, 연주곡으로 1집 1면 마지막 곡으로 들어가 있고, 당시에는 꼭 건전가요가 하나씩 들어가야 되는 시기라 <신마을>이라는 곡이 모 방송국 합장단의 노래로 들어가 있는데 CD가 만들어지면서 많이 순서가 바뀌어서 <단발머리>경음악이 빠지고, 그 자리에 <오빠생각>이 들어간 좀 변형된 LP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좀 당황하실수도 있어요.
▶백영규: CD 개념의 구성이네요.
▶성우진: 네
▶백영규: 많은 분들이 지금 ‘조용필은 녹음할 때 습관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 이런것들이 많이 궁금하실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은 바로 옆에서 지켜보셨을텐데 어땠어요? 조용필시의 특별한 습관같은 것들이요.
▶임석호: 조용필씨는 본인이 입이 작다고 생각하나봐요. 자꾸 녹음할 때 입을 이렇게 먼저 풀죠. 그때 당시는 담배도 많이 피웠구요. 지금은 담배를 끊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조용필씨가 오늘날까지 우뚝 할 수 있었던 건 <촛불> 같은 곡을 녹음할 때도, 상당히 바빴는데 녹음기사보다 더 빨리 나와서 스튜디오서 악기 점검하고, 그날 녹음할 것에 대해 연구도 하고, 남보다 성실하죠, 노력하고.
우리가 그때 그랬어요. 녹음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조용필”이라고. 그런 성실한 면이 있고, 입을 미리 풀어야 되고, 녹음할 때 “나는 입이 작다”고 그런 소릴 많이 했어요.
조금전에 나온 <외로워 마세요>는 원래 제목이 <단념>이었는데 그게 ‘어렵다, 너무 일상적인 그런 제목이다’해서 바꾼 기억이 있는데, 사실 이 곡도 상당히 차트에도 오르고 괜찮은 곡이었는데, 2집에 대해서는 3집이 나올때까지 홍보기간이 짧고 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알지 못해서 그렇지 당시에는 상당히 히트곡이예요. 사실 지금와서 볼 때는 성공적이지 못한 앨범이 아니냐 하지만 당시의 인기도로 봤을 때는 음악의 성취도를 떠나서 인기로 볼 때는 이것도 상당히 성공한 앨범이예요.
▶백영규: 청취자 질문이 있어요. <간양록>이 조용필씨의 작곡인지, 원래 기존곡인지?
▶임석호: 조용필씨 곡이예요. 83년에 일본에서 조용필씨 앨범이 나왔는데 거기서 순서를 체크해 보면 <간양록>이 인기가 최고 좋았어요.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이런 곡을 듣기가 힘들잖아요? 상당히 한국적인 멜로디로 보고 그 다음에 조용필씨가 결정적으로 일본의 팬들을 많이 얻게 된 것은 <한오백년>같은 노래는 일본의 어떤 가수도 부를 수가 없어요. 물론 우리 민요니까 그렇지만 지금 조용필씨가 부른 소위 트로트곡은 일본에 그때 당시 우리가 녹음할 때 가보면 모리시니찌 등 유명한 가수들이 부를 순 있지만 <한오백년> 만큼은 전혀 흉내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일본팬들은 그 <한오백년>에 반해서 조용필씨가 오는 걸 더 원했다고 볼 수도 있고, 인기가 일본에서는 <한오백년>을 흉내도 낼 수 없으니까.
▶백영규: <한오백년>은 우리나라에서도 흉내 못내죠 그 노래만큼은요. 정말 피를 토하는 식의 그런 감정이니까요.
▶성우진: 1집에서 워낙 <한오백년>이 히트를 하고, 탁음을 연구한 게 히트를 하다보니까 사실 <간양록>을 만들 당시에 그 곡에 대해서 약간 염두를 뒀다고도 합니다.
▶임석호: 그런 것도 있고, 1집에는 사실 내가 방송을 통해서 얘기하고 싶은게 처음에는 <돌아와요 부산항에>판이 <창밖의 여자>판에 들어가 있질 않았어요. 초판에 2, 3천장정도 시중에 나가고 나서 다음에 조용필씨가 녹음을 해서 <창밖의 여자> 밑에다 넣었는데, 아마 앨범을 수집한다, 콜렉션하는 사람은 조용필씨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없는 1집 앨범이 상당히 가치가 있는 앨범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백영규: 다시 한번 정리를 하면 맨 처음에 초판 2, 3천장 냈을 때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없었는데 후에 조금 더 음반을 팔기 위해서 영업적인 면에서 삽입이 된거죠?
▶임석호: 영업적일 수도 있지만, 앨범의 기획자로서 생각을 해 보면, 1집 앨범은 “10대부터 60대까지 좋아하는 노래를 넣자”고 의논을 했어요. 그래서 올드팬들을 위해서 <한오백년>이라든지 <대전블루스>라든지 이런 노래도 넣고, 그 다음에 젊은 친구들을 위해서 팝송도 넣고, 다양하게. 10대부터 60대까지 다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씩 수록하자는게 이 앨범의 기획의도였어요. 그래서 1집은 해방이후에 판매량에 있어서 최대 히트곡이라 했잖아요
▶백영규: 저도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요. <님이여>라든지 이런 곡은 번안가요잖아요? 그러면 <창밖의 여자>를 임선생님이 악보를 보면서 “잘 써왔다”하셨는데 그럼 최초로 조용필씨가 작곡한 노래가 <창밖의 여자>인가요?
▶임석호: 그래요. 그때 처음에 악보를 가져왔을 때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아름답다 하는 그 진행이 아! 상당히 어필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조용필씨가 부르는 박력있는 창법이 상당히 어필할 것이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죠. 원래 내가 안평선씨하고 통화를 하면서 “이 기회에 조용필씨 작곡을 한번 시켜봅시다” 그러니까. 왜냐하면 다른 작곡가한테 부탁해서 일주일내에 그 주제가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조용필씨를 시키는 방법을 얘기했죠.
▶백영규: 그러면 물론 3집이나 4집때는 거의 조용필씨 작품으로 꾸려가고 있는데 사실 이게 전초전이었네요?
▶임석호: 내가 볼 때는 제일 처음 작곡한 게 아닌가 생각이 돼요. 조용필씨 입장에서 보면 처음 작곡한 게 밀리언셀러가 된거니까 가수로서 전도가 탄탄하고 그렇게 됐죠.
▶백영규: 2부가 이제 끝나가는데요. <잊기로 했네>는 앞에 앉아계신 임선생님께서 제목을 지으셨다고 살짝 귀띔을 주셨는데, 어떤 숨은 얘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임석호: <잊기로 했네> 그 제목이 <단념>이라고 그랬잖아요.
▶백영규: <외로워 마세요>가 <단념>이라고 하셨는데?
▶임석호: 아! <외로워 마세요>가 아니고 <잊기로 했네>가 <단념>입니다.
▶백영규: 아, 예~
▶임석호: 이건 얼마전에 돌아가신 박건호씨가 작사한 겁니다.
▶백영규: <잊기로 했네>를 준비 좀 해 주시구요. 우리 3부에서는 이런 얘기도 한번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3집, 4집 때는 드디어 조용필씨가 작사, 작곡을 스스로 하면서 <위대한 탄생>과 함께 편곡을 해 나가죠. 그렇지만은 1집, 2집때는 어떤 리더세력에 이끌려서 음악을 하게 되는데 과연 그때 기획자로서 볼 때 조용필이 말을 잘 들었는지? 아니면 그때부터 황소고집이 좀 있었는지? 이런 얘기를 3부에서 좀 듣기로 하구요. 2부 끝곡은 지금 얘기 나온 <잊기로 했네> 듣구요. 그후로 또 숨은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8 댓글
우주꿀꿀푸름누리
2008-04-17 10:04:57
즐건아톰
2008-04-17 10:08:34
정 비비안나
2008-04-17 18:15:26
방송들으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필사랑♡김영미
2008-04-17 18:26:09
허리도 안 좋으셔서 치료 받으러 다니신다면서..이렇게까지...
전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아침에 회의 전이라 자세한건 읽어보지 못했지만
2시간 방송을 워드로 작성하는 게 보통일이 아닌데...정말 모두들 대단하세요~!!
애쓰신 분들의 맘을 기쁘게 하는 건 이 글들을 자세히 읽어보고 또 보는 것...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고 맘으로 읽으면 더 가슴에 오래 남아요.^^
꿈의요정
2008-04-17 19:57:00
아프세요? 아프지마세요~
초파일되기전에 수진사에 꼭한번가봐야 되는데...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요즘은 한달에 한번씩 지방으로 기도갔다오는데...
수진사에도 기도해보고 싶어요~^^
언제한번 짠~하고 나타날꺼요...어느날문득~^^
지오스님..
너무도 감사히 잘읽고갑니다.
팬클럽운영자
2008-04-17 20:06:58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수진사 앞 마당에 진돗개는 잘 있는지요?
필사랑♡김영미
2008-04-17 23:09:35
송파장원장
2008-04-18 20:3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