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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바람과 문학

ypc스타, 2003-11-07 22: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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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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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송호근 서울대 교수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바람과 문학

  
바람은 노래와 문학의 중요한 모티프다.
가령 국민가수 조용필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그의 노래가 대중들에게 와닿는 공감대도 바람이다.
노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바람이 서로 만나 예측할 수 없는 작은 세계들을 만들어낸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이라고 부르면,
기억의 창고 속에 갈무리된 장면들이 먼지를 털고 일어나 제 각각 의미의 꽃을 피워댄다.
이것이 매혹이다.
매혹의 시간은 노래만큼이나 짧다.
그러나 바람은 잦아들지 않는다.
조용필은 끊임없이 바람 속을 헤매고 새로운 바람을 충동질한다.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는 ‘내 이름은 구름’이고,
‘바람이 잠드는 내 가슴에’ 외로움을 달래며 기대는 그는
‘바람 속의 여자’다. 그의 노래의 배경에는 언제나 바람이 분다.
‘친구의 아침’에도 ‘이별의 뒤안길’에도 바람이 분다.
그는 ‘바람의 가수’인 것이다.

노래가 이럴진대, 문학에서 바람은 삶의 터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같은 것이다.
그것은 삶의 뿌리를 부질없이 뽑아놓거나 잔가지를 마구 흔들어댄다.
바람 때문에, 바람을 재우려고 예술인들은 글을 쓰고 노래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바람은 언제나 다시 몸을 일으킨다.
겨우 재운 마음의 갈퀴를 흔들거나 새로운 욕망을 촐싹거린다.

바람이 부는 방향은 일정하지 않다.
때론 멀어진 기억으로부터, 때론 가까운 나뭇가지 근처를 살랑거린다.
바람이 불 적마다 삶은 묵은 먼지를 털어낸다.
그것은 모순으로 얼룩진 풍경이기도 하고,
까닭 없이 치솟는 의욕이기도 하다.
바람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러나 흔적들의 의미가 조각조각 마음에 들어와 박힐 때 문학,
문학의 덧없는 유혹이 소명(召命)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초로(初老)의 문학교수가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Valery)의 시구를 한마디 뱉고
침묵했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바람이 인다… 살아봐야겠다”(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자아분열의 언어가 난무하는 극한 혼돈의 정신세계가 시인을 자주 주저앉히고
의식의 갈라진 틈 사이로 어둠이 깃들게 하지만,
그런 시인을 부추겨 애써 살도록 타이르는 게 바람이다.

바람은 까닭 없이 ‘몸을 일으키기’ 때문이다(Le vent se le?ve!).
이때 바람의 생성(生成)은 삶의 의욕으로,
사랑에의 갈증으로,
때로는 부조리와 대면해보리라는 허세(虛勢)로 전환한다.
그러나 갈증과 허세의 끝을 알 길이 없다.

안개도시,
무진(霧津)을 찾아드는 주인공을 처음 반기는 것도 바람이다.
반긴다기보다 무책임의 공간에서 쉽사리 오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주인공을 마치
어머니의 손길처럼 어루만진다.
무진의 어귀에서 만난
“그 바람 속에는 신선한 햇살과 아직 사람들의 땀에 밴 살갗을 스쳐보지 않았다는
  천진스러운 저온(低溫),
  그리고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길을 에워싸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산줄기의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금기,
  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데 어울리면서 녹아 있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언제나 생쥐처럼 눈을 뜨고 있는 자아를 견디지 못하는 주인공은
바람 속으로 망명하고 바람과 함께 눕고 바람과 함께 돌아다닌다.
시인 김수영이 자유롭게 부상하는 ‘헬리콥터’에 상상력을 실어 보내는 욕망의 순간들인 것이다.
그 바람은 마치 여귀(女鬼)가 뿜어낸 입김 같은 무진의 안개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면서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한번 긍정하라고’ 주인공을 부추긴다.
자기분열의 언어가 쏟아지는 내면을 추슬러 안은 채 말이다.

그러기는 무진에서 가까운 K시를 찾아내려간 ‘바람과 도시’의 주인공에게도 마찬가지다.
K시의 겨울엔 항상 바람이 불었다.
“K시의 바람은 허술한 간판을 떨어뜨리게 할 만큼 거센 것은 아니다.
소리 없이 잔잔하면서도 살 속 깊이 파고드는”
바람은 언제나 무엇엔가 쫓기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이균영, ‘바람과 도시’).
“그 쫓는 것이 바람이더라 이런 얘긴가요?”라는
의사의 진단적 질문에 주인공은 예의 자아분열의 언어를 토해낸다.
“바람 때문에 오래 전에 죽은 아이가 생각났지요.”
죽은 아이는 죽임을 당한 사랑, 자신의 내면이다.
K시에서 한 마리 나방처럼 떠돌게 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분풀이하듯 형이 버린 여인을 품에 안도록 부추기는 바람은 매혹이자 광기이며,
자아분열이자 자기 긍정의 동력이다.

바람에는 파괴의 힘이 숨어 있고,
화해와 관용의 기호가 생성되고,
욕망과 허무가 교차한다.
‘문학한다는 것’이 자유로운 영혼을 향해 끝없이 걷는 여로(旅路)라면,  
그 길에 부는 바람은 모순의 꽃이자 부조리의 언어,
문학 그 자체일 터다.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311/2003110702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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