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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필오빠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 라고 했죠.
그런데 고호의 삶은 오빠말처럼
정말 불행했을까요?
한마디로 고흐의 삶은 불행했습니다.
보통 남들이 보기엔 돈 없고 빽없어 불행해 보여도
그 사람 개인적으론 행복한 사람도 있고
얼핏 가진 게 많아 행복해 보여도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사람도 있죠.
그런데 고흐는 남들이 보기에도
고흐 자신이 보기에도 불행한 인생이었습니다.
1852년 3월 30일 Vincent Van gogh는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태어나자 마자 바로 죽습니다.
목사인 아버지는 고흐를
마을 교회의 공동묘지에 묻어주었고
그 이듬해인 1853년 vincent van gogh는
지난해 자신이 태어났던
3월 30일에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커가면서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묘지를 매일 지나다녀야했던 기분이 어땠을까요?
17살 쯤에 사촌형의 소개로
런던의 화랑에 취직을 합니다
이때 1년 넘게 짝사랑하던 하숙집 주인딸에게 반해
사랑 고백을 했다가 퇴짜를 맞은후
집안의 내력인지 가끔 정신적
발작증세를 보이기도 했다네요.
결국 해고를 당하고 부모님댁으로 다시 돌아와
목사 수업을 받기도 했지만 적응을 못하고
탄광노동자들과 함께 지내며 그림을 그립니다.
이무렵 자기앞가림도 못하던 고흐는 불쌍하다며
애 딸린 직업여성과 동거 시작......
가족과 세상사람들은
" 쟤 왜 저러나 " 했겠죠.
이쯤부터 3남3녀의 맏이인 고흐는 바로아랫동생
theo와 마음이 담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합니다.
어떤일도 쉽게 적응을 못하고 부모님댁에 얹혀살며.
이미 딸이 있는 사촌 누나에게 반해
청혼을 하자 깜짝 놀라 도망간 사촌 누나를
멀리까지 쫓아기는등의 상식 밖의 행동과
더불어 고호의 애를 임신했다는 뜬소문에
옆집 처녀가 자살을 시도하는등
한마디로 바람잘날이 없었죠.
이 와중에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사망합니다.
직업도 없이 빌빌대는데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 등 가족과의 관계는 최악..
고흐자신도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했다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하고요.
이 무렵 화랑에서 일하던 동생 태오가 있는
파리로 가게됐고 많은 화가들과의 교류가 있었지만
물감을 떡칠한듯한 고흐의 이상한 화법은
철저히 외면을 당합니다.
동생에게 용돈을 받으면서 얹혀살고 있던 고호는
미안한 마음에 프랑스 남부로 거처를 옮겨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자 했지만 계속되는 주변의 외면과 가난,
그림이 안 팔리니 동생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돈도 없는데 미술 재료 사야지. 집 월세내이지
괴로운 마음 달레려 술마시고 담배 피고
툭하면 재발하는 정신병발작등과 더불어
파리에서 내려온 고갱과의 예술적 이견으로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르는등 비이성적 자해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고흐를 정신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탄원까지 하는상황에 이르고,
급기야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됩니다.
. 이런 상황에서도 동생 테오와는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고
이당시 결혼해 스스로도 살기바쁜데 제밥벌이도
못하는 형 고호를 끝까지 격려하며 뒷바라지 해왔던
동생 태오와도 결국 갈등이 깊어지고 ...
화가로서 끝까지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던 자신과
37살이 되도록 용돈을 받으며 짐이 될수밖에없었던
동생 태오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등으로 고흐는
끝내 권총 자살시도를 하게되고 파리에서
달려온 동생 theo에게
" 고통은 영원히 지속 된다. "
는 말을 남기고 끝내 세상을 떠나게됩니다
형 고호에대한 미안함, 연민, 안타까움등으로
괴로워하던 태오도 고호가 죽은지 6개월후
결국 그토록 사랑하던 형 고흐의 곁으로 가게됩니다.
33살이란 젊은 나이에.
테오의 미망인 요안나(johanna)는
남편과 고흐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600통이 넘는 둘사이의 편지를 발견하고
고흐가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고흐를 세상에 알려야한다는 생각을 하게되죠.
그녀는 고흐의 천재성과 그의 영혼이 담긴 편지를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 출간,
드디어 비운의 천재화가 고흐는 비로소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게됩니다
또한 고흐가 남긴 많은 작품들을 들고
유럽 여러 나라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홍보.,
결국 많은 평론가들과 화가들로부터
고호의 독특한 화법은
뒤늦게나마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가난과 정신병,세상의 냉대,
가족과의 불화,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며 불행하게 살다간 천재화가 고호는
살아서는 지독히 불행했지만
죽어서나마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게됩니다.
최근 고흐의 그림은 보통 1000억원이 넘게
거래가 된다는데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위로도 해주고
그림 몇 장 사가지고 오고 싶네요..
오는길에 비트코인도 좀 몇개 사오고.
많이 줄인건데도 상당히 길어집니다.
그리고 여긴 글 쓰기가 쉽지않네요
중간에 로그인도 저절로 풀리고,
만약, 고호에게 theo라는 동생이 없었고
고호의 천재성을 놓치지않은
Johanna라는 여인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위대한 천재 예술가
고호도 없었겠죠
세상은 신기하기도하고 재밌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용필오빠는 우리가 있으니
외롭지 않으시겠죠
심심하실때 한번 읽어보시라고
고호 얘기 한번 해봤습니다
"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 라고 했죠.
그런데 고호의 삶은 오빠말처럼
정말 불행했을까요?
한마디로 고흐의 삶은 불행했습니다.
보통 남들이 보기엔 돈 없고 빽없어 불행해 보여도
그 사람 개인적으론 행복한 사람도 있고
얼핏 가진 게 많아 행복해 보여도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사람도 있죠.
그런데 고흐는 남들이 보기에도
고흐 자신이 보기에도 불행한 인생이었습니다.
1852년 3월 30일 Vincent Van gogh는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태어나자 마자 바로 죽습니다.
목사인 아버지는 고흐를
마을 교회의 공동묘지에 묻어주었고
그 이듬해인 1853년 vincent van gogh는
지난해 자신이 태어났던
3월 30일에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커가면서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묘지를 매일 지나다녀야했던 기분이 어땠을까요?
17살 쯤에 사촌형의 소개로
런던의 화랑에 취직을 합니다
이때 1년 넘게 짝사랑하던 하숙집 주인딸에게 반해
사랑 고백을 했다가 퇴짜를 맞은후
집안의 내력인지 가끔 정신적
발작증세를 보이기도 했다네요.
결국 해고를 당하고 부모님댁으로 다시 돌아와
목사 수업을 받기도 했지만 적응을 못하고
탄광노동자들과 함께 지내며 그림을 그립니다.
이무렵 자기앞가림도 못하던 고흐는 불쌍하다며
애 딸린 직업여성과 동거 시작......
가족과 세상사람들은
" 쟤 왜 저러나 " 했겠죠.
이쯤부터 3남3녀의 맏이인 고흐는 바로아랫동생
theo와 마음이 담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합니다.
어떤일도 쉽게 적응을 못하고 부모님댁에 얹혀살며.
이미 딸이 있는 사촌 누나에게 반해
청혼을 하자 깜짝 놀라 도망간 사촌 누나를
멀리까지 쫓아기는등의 상식 밖의 행동과
더불어 고호의 애를 임신했다는 뜬소문에
옆집 처녀가 자살을 시도하는등
한마디로 바람잘날이 없었죠.
이 와중에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사망합니다.
직업도 없이 빌빌대는데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 등 가족과의 관계는 최악..
고흐자신도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했다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하고요.
이 무렵 화랑에서 일하던 동생 태오가 있는
파리로 가게됐고 많은 화가들과의 교류가 있었지만
물감을 떡칠한듯한 고흐의 이상한 화법은
철저히 외면을 당합니다.
동생에게 용돈을 받으면서 얹혀살고 있던 고호는
미안한 마음에 프랑스 남부로 거처를 옮겨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자 했지만 계속되는 주변의 외면과 가난,
그림이 안 팔리니 동생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돈도 없는데 미술 재료 사야지. 집 월세내이지
괴로운 마음 달레려 술마시고 담배 피고
툭하면 재발하는 정신병발작등과 더불어
파리에서 내려온 고갱과의 예술적 이견으로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르는등 비이성적 자해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고흐를 정신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탄원까지 하는상황에 이르고,
급기야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됩니다.
. 이런 상황에서도 동생 테오와는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고
이당시 결혼해 스스로도 살기바쁜데 제밥벌이도
못하는 형 고호를 끝까지 격려하며 뒷바라지 해왔던
동생 태오와도 결국 갈등이 깊어지고 ...
화가로서 끝까지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던 자신과
37살이 되도록 용돈을 받으며 짐이 될수밖에없었던
동생 태오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등으로 고흐는
끝내 권총 자살시도를 하게되고 파리에서
달려온 동생 theo에게
" 고통은 영원히 지속 된다. "
는 말을 남기고 끝내 세상을 떠나게됩니다
형 고호에대한 미안함, 연민, 안타까움등으로
괴로워하던 태오도 고호가 죽은지 6개월후
결국 그토록 사랑하던 형 고흐의 곁으로 가게됩니다.
33살이란 젊은 나이에.
테오의 미망인 요안나(johanna)는
남편과 고흐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600통이 넘는 둘사이의 편지를 발견하고
고흐가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고흐를 세상에 알려야한다는 생각을 하게되죠.
그녀는 고흐의 천재성과 그의 영혼이 담긴 편지를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 출간,
드디어 비운의 천재화가 고흐는 비로소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게됩니다
또한 고흐가 남긴 많은 작품들을 들고
유럽 여러 나라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홍보.,
결국 많은 평론가들과 화가들로부터
고호의 독특한 화법은
뒤늦게나마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가난과 정신병,세상의 냉대,
가족과의 불화,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며 불행하게 살다간 천재화가 고호는
살아서는 지독히 불행했지만
죽어서나마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게됩니다.
최근 고흐의 그림은 보통 1000억원이 넘게
거래가 된다는데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위로도 해주고
그림 몇 장 사가지고 오고 싶네요..
오는길에 비트코인도 좀 몇개 사오고.
많이 줄인건데도 상당히 길어집니다.
그리고 여긴 글 쓰기가 쉽지않네요
중간에 로그인도 저절로 풀리고,
만약, 고호에게 theo라는 동생이 없었고
고호의 천재성을 놓치지않은
Johanna라는 여인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위대한 천재 예술가
고호도 없었겠죠
세상은 신기하기도하고 재밌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용필오빠는 우리가 있으니
외롭지 않으시겠죠
심심하실때 한번 읽어보시라고
고호 얘기 한번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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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꿈의요정
2026-03-13 11:29:35
저는 고호가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다고 봐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기중심적이란 생각도 했었고~
어쩌면 태오가 더 불행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었어요~
오래 전 한가람 미술관에서 고호전을 두 번 보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 봅니다~^^
진이
2026-03-13 13:40:45
평소에 고호이야기가 궁금했었는데 오빠의 노래에도 고호가 나오고
저번애 미술관에서 고호의 해바라기를 무척 생동감있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두팬클럽에서 생신모임을 쥬관해주시고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힘드실텐데 항상 발벗고 나서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려요,,,♡♡
texas
2026-03-13 21:32:42
자신이 좋아하는일에 푹 빠질수 있었다는건 개인적으론
큰 행복일수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