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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걷고 싶다”를 듣고
조용필이 최근 낸 『헬로』 앨범 세 번째 곡으로 실린 “걷고 싶다”는 조용필의 가수 인생을 정점에 찍은 획기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의 관점에서 지난 그의 곡들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전 곡들은 이 작품을 낳기 위한 실험들에 불과하며 이 곡을 통해서 조용필은 그가 그동안 음악인생을 통해 시도하고자 했던 것들을 한 곳에 모아 가장 꼭대기의 지점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말년에 『더 템피스트』라는 작품에서 그가 이전에 추구했던 로맨스, 희극, 비극 등의 장르들을 섞어서 프라스페로의 마법의 장치 속에 휘저어서 우리를 기적의 조화와 환희를 체험하게 해주는 것처럼 말기의 조용필은 자신의 가수로서의 혹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체험해온 모든 것들을 휘젓고 섞어서 삶이란 것의 총체를 우아한 절제와 관조로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적, 예술적 승리이다.
아이돌이 판치는 세상에서 조용필은 위기를 느꼈을까. 노래가 아닌 춤과 집단적 기계음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한류음악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제패를 향해 나아가는 20대 가수들의 맹활약 앞에서 그가 이런 음악적 실험을 하게 된 계기는 뭘까. 그 정확한 실상은 알 수 없겠지만 결과론적으로 그의 『헬로』 음악 앨범집은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하나의 선을 긋는 새로운 단계를 향해 비약하는 신호탄이다. 일본의 무라까미 하루끼가 『상실의 시대』 한편을 통해 아시아 문단을 충격에 빠뜨렸던 것처럼 조용필의 이 곡은 한을 기반으로 하던 전통적인 한국대중가요가 서양 팝송의 기교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해서 새로운 폭과 깊이로 한국적 한을 승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루끼가 존 레논의 “노르웨이의 숲”이란 곡을 권두언에 넣는 것을 필두로 스캇 피츠제럴드의 소설과 조셉 콘래드 등의 영미소설을 작품 속에 끼어넣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목소리로 전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곡은 서양음악적 요소들을 끌어들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필 그 자신만의 음악적 요소를 더 풍성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곡은 그 자신의 과거의 곡 “한오백년”과 같은 종류의 곡에 속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전설적인 재즈 흑인 가수인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1967)에 오히려 더 가깝다. 아니 그 곡을 부른 가수의 기법과 창법이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조용필은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어색한 흉내내기를 한 나머지 자신만의 색깔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대신 오히려 이곡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된다. 암스트롱은 정치적, 인종적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였던 1960년대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긴 이 곡을 불러 당시 66세 나이로 영국 Singles Chart 1위를 장악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조용필 역시 서양음악의 기교들을 빌려서 만든 이 곡을 통해서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되고 자기 자신을 말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나이 60대에 이르러서야 그는 자신이 도달한 삶의 철학을 여유로운 속도와 저 아랫배로부터 끌어올려지는 리듬으로 청자들의 가슴팍을 후려치며 또한 그것을 어루만진다. 여기서 비로소 그는 삶을 긍정한다.
“돌아와요 부산항”(1976), “창밖의 여자”(1980), “단발머리”(1980), “한오백년”(1983) 등은 우울한 시대적 산물이었다. 어둠 속에서 조용필은 사자처럼 분노의 포효를 질러댔다. 그곳에는 어두운 넓은 세상 가운데 조용필 자신만이 있었다. 형제들도 떠나고, 과거의 연인은 기억 속에 편린으로 남고, 그리하여 그에게는 모든 게 한인 채로 남는 그런 아픔의 세월의 산물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시대의 한과 개인적인 분노를 표출시켰다. 그가 대마초 사건을 겪으면서 터득한 판소리 기법은 필연이었다. 그는 현란한 기교로 남이 결코 추종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음악적 경지를 보여주려는데 치중했다. 그런데 이제 조용필은 이 곡에서 노래를 잘 부르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바로 그 내려놓음으로부터 자기가 아닌 다른 요소들을 끌어들일 겸손이 있게 되고, 청자들을 향한 배려가 있으며, 그 여백 속으로 빨려 들어가 청자는 그와 하나가 된다. 이 곡이 지닌 몰개성성은 이처럼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데서 출발해서 타인을 포용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곡을 통해 조용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한오백년“ 등 어느 한 곡으로는 담길 수 없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비로소 이 곡에서 자신의 모든 면모를 담아내게 되고, 그는 온전한 자아가 된다. 이전의 그의 목소리는 높은 산에 올라 목청껏 뽐내던 기법을 보여주었다면, 그리하여 그의 한을 처절하게 세상을 향해 토해냈다면 이제는 그는 너와 걷고 싶다며 외친다. 걷기 위해서는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너와 같이 걷기 위해서는 속도도 낮춰야 한다. 그런데 가왕은 이제 그러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 가슴으로부터, 편안한 목소리로.
상대방에서 빛을 발견하는 삶의 자세, 그가 얼마나 먼 길을 걸어 자신에게로 왔는지를 아는 타인에 대한 배려, 자신은 남을 필요로 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인식, 그리고 둘이서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인간적인 성숙, 나의 고단함과 불안이 나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물리쳐지지 않는다는 것, 너를 받아들임으로써만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연륜 있는 자의 깨우침, 그러니 이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고 그는 외친다. 아니 속삭인다. 그리하여 한국의 대중가요는 단순한 한을 넘어선 보다 복잡한 갈래의 요소들을 담아내어 결국 삶의 찬미가 되는 그러한 보편적인 공감을 향해 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니 이것은 기적이다.
F.R. 리비스는 후기의 예이츠에 대해 초기의 낭만적, 비현실적 시들을 뛰어넘는 발전이 있으며, 거기에는 삶의 일상적 디테일과 현실성을 담지하는 인간적 성숙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T.S. 엘리어트에는 근대적 경험을 구현하는 모더니스트로서의 온갖 다양한 실험들이 나타나며, 그를 통해 비로소 새로운 근대적 감수성이 시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조용필의 “걷고 싶다”는 예이츠의 초기시에서 바로 엘리어트의 후기시 “사중주곡”으로 건너뛰는 듯한 그런 종류의 비약이 있다. 그만큼 모던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곡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양 음악과 한국적 음악의 퓨전을 통해 달성된 것으로 이제 한국 뮤지션들이 나아갈 새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은 비로소 오늘밤 모두 내려놓고 너와 걷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와 관조와 절제가 있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조용필은 그게 가능하다고 이 곡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 노래는 기교와 메시지, 가수와 관객, 한국음악과 서양음악이 서로 하나가 되는 어울림을 보여주는 곡이다. 2013년이라는 시대적 상황 역시 남과 북, 우와 좌, 있는 자와 덜 있는 자 사이의 화합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다고 할 때 우리가 먼저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중요하고도 또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이 노래는 2013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의 산물로도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2013년 5월 5일 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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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꿈이좋아
2013-05-09 08:09:20
이런글 유진* 씨가 봐야 하는데....
마음같아선 저글을 유진*씨한테 메일을 보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