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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나, 다음의 그 컬럼방이나 주인장은 모두 같소이다.
블루시나스라는 분이외다. 천리안에서는 다른 대명을 씁니다. 글이
참 좋지요?..
전 천랸의 같은 회원임에도 불구허고, 어제서야 그 사실을 알았소이다.
하도, 놀랍고 즐거운(?) 소식인지라 님께도 특별히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군요. 제가 알자마자 오늘 이곳에 그 수필(-.-;;)방의
주소가 올라오다니..
혹여, 님도 내가 아는 사람 중 하나시오? 거, 참..
>
>[조용필에 대한 2가지 편견]
>
>한국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불멸의 국보급 아티스트인 조용필의 단면만을 알고
>심지어는 여러가지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
>그 2가지 예를 들어보자.
>
>
>편견1- 조용필은 뽕짝가수다.
>
>그러나,이것은 참으로 무지몽매한 편견이라 할 수 있다.단연코 조용필은 한국 최고의 락커다.
>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글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그러나,락에 대한 이해가 되어있는 사람이면 조용필이 추구한 쟝르인 '소프트락'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
>괴성과 금속성으로 상징되는 하드락이나 헤비메탈과 반대적인 의미에서 쌍벽을 이루는 락의 쟝르다.
>쉽고 편안하게 와닿는 멜로디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사운드가 바로 소프트락이다.
>조용필은 이 방면의 대가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소프락만을 했던 것은 아니다.
>기타 변형된 형태의 여러가지 락을 시험했다.
>
>국악장단 굿거리를 도입한 '자존심'이라든지 국악창법과 분위기를 도입한 '황진이' 락의 근본인 실험정신을 극적으로 보여준 '고추잠자리' 등은 한국 락의 최고 명곡으로 꼽을만하다.
>
>단지,쟝르구분이 없던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대중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트로트를 몇곡 불렀을
>뿐이다.그 트로트들조차 정통 뽕짝리듬이 아닌 변형된 형태의 세미클래식을 추구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조용필의 트로트곡들은 락밴드 위대한 탄생에 의해 훌륭하게 연주되고 있다.
>
>
>
>편견2 - 조용필의 노래엔 음악만이 있고 사회참여가 없다.
>
>"아~ 이것은 맞는 말 같다."라고 고개를 끄떡이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이 또한 편견이다.
>그 암울하던 80년대에 조용필은 절대스타였다. 팝송에 뺏긴 음반시장의 50% 이상을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이례적으로 국내가요가 차지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조용필였다.
>그러한 시기 그러한 스타가 직설적인 표현의 운동가요를 부른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고,
>조용필은 은유적인 화법을 통해 좌절한 시대를 표현했다.
>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아파한 노래 '생명' 민주화의 좌절을 노래한 '허공' 1987년의 암울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서울1987' 등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
>70년대에 사회참여에 한몫했던 통기타 가수들도 조용필식 은유법과 별반 다를바 없었다.
>직설적인 표현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후 자유로워진 사회분위기로 인해 가능해졌다.
>서태지의 교실이데아 등의 시대상황적인 반항은 그 가치가 80년대와는 분명 다르다.
>
>또한 조용필이 반독재의 상징적 인물인 김지하시인과 교류하다 남산에 끌려간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통기타의 대부 김민기와의 우정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
>
>무거운 락의 본산지 영국에서 소프트락을 추구한 비틀즈가 (보는 견해에 따라 쟝르는 다를 수 있다)
>역사상 최고의 아티스트로 추앙받는 것은 영국인들의 자국 문화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그가 1980년에서야 비로소 팝송과 가요의 시장점유율을 역전시킨 뒤 20여년이나 지금도---
>
>서구문화에 대한 사대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에는 불멸의 아티스트 조용필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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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시나스라는 분이외다. 천리안에서는 다른 대명을 씁니다. 글이
참 좋지요?..
전 천랸의 같은 회원임에도 불구허고, 어제서야 그 사실을 알았소이다.
하도, 놀랍고 즐거운(?) 소식인지라 님께도 특별히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군요. 제가 알자마자 오늘 이곳에 그 수필(-.-;;)방의
주소가 올라오다니..
혹여, 님도 내가 아는 사람 중 하나시오? 거, 참..
>
>[조용필에 대한 2가지 편견]
>
>한국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불멸의 국보급 아티스트인 조용필의 단면만을 알고
>심지어는 여러가지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
>그 2가지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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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1- 조용필은 뽕짝가수다.
>
>그러나,이것은 참으로 무지몽매한 편견이라 할 수 있다.단연코 조용필은 한국 최고의 락커다.
>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글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그러나,락에 대한 이해가 되어있는 사람이면 조용필이 추구한 쟝르인 '소프트락'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
>괴성과 금속성으로 상징되는 하드락이나 헤비메탈과 반대적인 의미에서 쌍벽을 이루는 락의 쟝르다.
>쉽고 편안하게 와닿는 멜로디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사운드가 바로 소프트락이다.
>조용필은 이 방면의 대가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소프락만을 했던 것은 아니다.
>기타 변형된 형태의 여러가지 락을 시험했다.
>
>국악장단 굿거리를 도입한 '자존심'이라든지 국악창법과 분위기를 도입한 '황진이' 락의 근본인 실험정신을 극적으로 보여준 '고추잠자리' 등은 한국 락의 최고 명곡으로 꼽을만하다.
>
>단지,쟝르구분이 없던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대중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트로트를 몇곡 불렀을
>뿐이다.그 트로트들조차 정통 뽕짝리듬이 아닌 변형된 형태의 세미클래식을 추구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조용필의 트로트곡들은 락밴드 위대한 탄생에 의해 훌륭하게 연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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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2 - 조용필의 노래엔 음악만이 있고 사회참여가 없다.
>
>"아~ 이것은 맞는 말 같다."라고 고개를 끄떡이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이 또한 편견이다.
>그 암울하던 80년대에 조용필은 절대스타였다. 팝송에 뺏긴 음반시장의 50% 이상을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이례적으로 국내가요가 차지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조용필였다.
>그러한 시기 그러한 스타가 직설적인 표현의 운동가요를 부른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고,
>조용필은 은유적인 화법을 통해 좌절한 시대를 표현했다.
>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아파한 노래 '생명' 민주화의 좌절을 노래한 '허공' 1987년의 암울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서울1987' 등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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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 사회참여에 한몫했던 통기타 가수들도 조용필식 은유법과 별반 다를바 없었다.
>직설적인 표현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후 자유로워진 사회분위기로 인해 가능해졌다.
>서태지의 교실이데아 등의 시대상황적인 반항은 그 가치가 80년대와는 분명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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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용필이 반독재의 상징적 인물인 김지하시인과 교류하다 남산에 끌려간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통기타의 대부 김민기와의 우정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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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락의 본산지 영국에서 소프트락을 추구한 비틀즈가 (보는 견해에 따라 쟝르는 다를 수 있다)
>역사상 최고의 아티스트로 추앙받는 것은 영국인들의 자국 문화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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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1980년에서야 비로소 팝송과 가요의 시장점유율을 역전시킨 뒤 20여년이나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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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화에 대한 사대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에는 불멸의 아티스트 조용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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