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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 파파라치] 이주일씨의 마지막 선물
코미디.시트콤 방송작가인 신상훈씨가 연예가의 숨겨진 뒷얘기와 속사정을 파헤쳐 들려주는 칼럼을 매주 한번씩 연재합니다.
1986년부터 여의도 방송가를 누벼온 작가는 KBS '시사터치 코미디파일''코미디 일번지'와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 등의 작가로 활동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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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누가 돌아가시면 그분과의 마지막 만남이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게 된다. 작년 5월 KBS 2TV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의 작가로 일하면서 이주일씨를 만난 것이 고인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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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 MC로 출연해 달라는 부탁을 하자 그는 흔쾌히 수락하면서 사전 미팅을 위해 삼성동으로 오라고 했다. 그는 그 곳에서 다른 원로 코미디언들과 함께 1960년대 극장무대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웃음 실은 관광열차'를 연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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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이거 연습 다 끝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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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수백번도 더 해봤을 꽁트였지만 그날도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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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울음은 사실 따지고 보면 같은 거야.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고 그 순간에는 가식이 없잖아. 꾸밈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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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꾸밈없이 살아온 한평생. 특히 얼굴은 꾸밀 줄 몰라서 모진 고통을 당했던 그다. 시원하게 넓은 윗 이마 덕분에 한 장군님(전두환 전 대통령)과 더불어 80년초 갑자기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한 사람은 영원한 코미디의 황제로 우리곁을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도 명예스럽지 못한 타이틀을 안고 살아 남아있다는 차이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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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자의 추억은 언제나 아련하다. 그는 많은 서글픈 추억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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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이 한창일 때 위문공연들 갔었잖아. 그 때 출연료 대신에 텔레비젼 하나씩 받아들고 왔었지. 그걸 가져다가 되팔면 돈이 꽤 됐거든. 그런데 나는 그걸 팔아서 집에 안 주고 다른 데 갖다 준거야…. 지금 생각하면 참, 마누라한테 무지 미안하지. 먹고살기도 힘들 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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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 자장면을 일부러 불려 먹었다고 했다. 본인의 어려웠던 시절도 가슴에 꽂히는데, 그 뒤에서 고생한 부인과 자식들의 고통은 그 얼마나 컸을까. 삶이 여유로워졌을 때야 비로소 가족을 되돌아본 그였다. 정치는 외도였지만 그는 항상 유머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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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정주영 회장(당시 국민당 창당)을 찾아가 실탄(선거운동비)을 달라고 했더니 당선되면 준다는 거야. 그래서 당선되고 찾아갔지. 그랬더니 '당선됐으면 됐지 돈은 무슨 돈'이라는 거야. 그 때 돈버는 방법을 배웠지. 무조건 안쓰는 거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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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많은 선물을 주고 떠났다. 특히 투병중엔 금연 운동으로 수많은 애연가들이 담배를 끊었다고 하니, 그들에겐 생명연장을 선물한 셈이다. 나는 그에게서 '마지막 방송'이란 잊지못할 선물을 받았다. 소중히 간직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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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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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1 17:55 수정
코미디.시트콤 방송작가인 신상훈씨가 연예가의 숨겨진 뒷얘기와 속사정을 파헤쳐 들려주는 칼럼을 매주 한번씩 연재합니다.
1986년부터 여의도 방송가를 누벼온 작가는 KBS '시사터치 코미디파일''코미디 일번지'와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 등의 작가로 활동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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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누가 돌아가시면 그분과의 마지막 만남이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게 된다. 작년 5월 KBS 2TV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의 작가로 일하면서 이주일씨를 만난 것이 고인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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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 MC로 출연해 달라는 부탁을 하자 그는 흔쾌히 수락하면서 사전 미팅을 위해 삼성동으로 오라고 했다. 그는 그 곳에서 다른 원로 코미디언들과 함께 1960년대 극장무대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웃음 실은 관광열차'를 연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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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이거 연습 다 끝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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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수백번도 더 해봤을 꽁트였지만 그날도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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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울음은 사실 따지고 보면 같은 거야.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고 그 순간에는 가식이 없잖아. 꾸밈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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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꾸밈없이 살아온 한평생. 특히 얼굴은 꾸밀 줄 몰라서 모진 고통을 당했던 그다. 시원하게 넓은 윗 이마 덕분에 한 장군님(전두환 전 대통령)과 더불어 80년초 갑자기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한 사람은 영원한 코미디의 황제로 우리곁을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도 명예스럽지 못한 타이틀을 안고 살아 남아있다는 차이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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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자의 추억은 언제나 아련하다. 그는 많은 서글픈 추억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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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이 한창일 때 위문공연들 갔었잖아. 그 때 출연료 대신에 텔레비젼 하나씩 받아들고 왔었지. 그걸 가져다가 되팔면 돈이 꽤 됐거든. 그런데 나는 그걸 팔아서 집에 안 주고 다른 데 갖다 준거야…. 지금 생각하면 참, 마누라한테 무지 미안하지. 먹고살기도 힘들 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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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 자장면을 일부러 불려 먹었다고 했다. 본인의 어려웠던 시절도 가슴에 꽂히는데, 그 뒤에서 고생한 부인과 자식들의 고통은 그 얼마나 컸을까. 삶이 여유로워졌을 때야 비로소 가족을 되돌아본 그였다. 정치는 외도였지만 그는 항상 유머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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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정주영 회장(당시 국민당 창당)을 찾아가 실탄(선거운동비)을 달라고 했더니 당선되면 준다는 거야. 그래서 당선되고 찾아갔지. 그랬더니 '당선됐으면 됐지 돈은 무슨 돈'이라는 거야. 그 때 돈버는 방법을 배웠지. 무조건 안쓰는 거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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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많은 선물을 주고 떠났다. 특히 투병중엔 금연 운동으로 수많은 애연가들이 담배를 끊었다고 하니, 그들에겐 생명연장을 선물한 셈이다. 나는 그에게서 '마지막 방송'이란 잊지못할 선물을 받았다. 소중히 간직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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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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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1 17: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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