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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5-11-02] [여적] 킬리만자로
2005.11.0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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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의 정상 부근에는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하나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1936년)의 서두에 나오는 구절이다. 헤밍웨이가 케냐에 머물며 쓴 이 소설은 돈과 여자로 헛된 인생을 살던 작가지망생이 아프리카 여행 중 죽어가면서 비로소 인생에 눈을 뜬다는 내용. 그러고 보면 표범은 ‘바다와 노인’의 주인공 또는 헤밍웨이 자신의 또 다른 변신이거나, 이상향을 좇다 좌절하는 인간들을 그렸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우리나라에선 소설보다 조용필의 히트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더 유명하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방황과 고독, 꿈과 희망, 존재의 의미를 대변하는 듯한 긴 독백이 이어진다. 작가 양인자씨가 신춘문예 낙방 때 다음해를 기약하며 다방에서 무작정 쓴 자신의 ‘당선소감’에 남편인 작곡가 김희갑씨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라고 한다.
적도 부근에 위치하면서도 만년설(萬年雪)이 덮인 휴화산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에 있는 아프리카 최고봉(5,895m)이다. ‘빛나는 산’ ‘위대한 산’을 뜻하는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정상은 ‘키푸’라 불린다. 그 아래 산기슭은 야생동물들의 낙원이다.
사실 킬리만자로 만년설에는 표범은커녕 원숭이조차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헤밍웨이의 상상 속 표범이 감동적인 것은 병든 도시문명에 지친 심신을 이끌고 만년설 같은 순수와 꿈을 찾아 헤매는 인간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서다. 만년설이 녹아내린 킬리만자로 정상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최근 외신에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만년설이 10년 내에 사라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지구 온난화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한 가닥 남은 킬리만자로의 신화마저 앗아가려 한다.
〈송충식 논설위원〉

“킬리만자로의 정상 부근에는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하나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1936년)의 서두에 나오는 구절이다. 헤밍웨이가 케냐에 머물며 쓴 이 소설은 돈과 여자로 헛된 인생을 살던 작가지망생이 아프리카 여행 중 죽어가면서 비로소 인생에 눈을 뜬다는 내용. 그러고 보면 표범은 ‘바다와 노인’의 주인공 또는 헤밍웨이 자신의 또 다른 변신이거나, 이상향을 좇다 좌절하는 인간들을 그렸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우리나라에선 소설보다 조용필의 히트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더 유명하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방황과 고독, 꿈과 희망, 존재의 의미를 대변하는 듯한 긴 독백이 이어진다. 작가 양인자씨가 신춘문예 낙방 때 다음해를 기약하며 다방에서 무작정 쓴 자신의 ‘당선소감’에 남편인 작곡가 김희갑씨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라고 한다.
적도 부근에 위치하면서도 만년설(萬年雪)이 덮인 휴화산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에 있는 아프리카 최고봉(5,895m)이다. ‘빛나는 산’ ‘위대한 산’을 뜻하는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정상은 ‘키푸’라 불린다. 그 아래 산기슭은 야생동물들의 낙원이다.
사실 킬리만자로 만년설에는 표범은커녕 원숭이조차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헤밍웨이의 상상 속 표범이 감동적인 것은 병든 도시문명에 지친 심신을 이끌고 만년설 같은 순수와 꿈을 찾아 헤매는 인간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서다. 만년설이 녹아내린 킬리만자로 정상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최근 외신에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만년설이 10년 내에 사라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지구 온난화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한 가닥 남은 킬리만자로의 신화마저 앗아가려 한다.
〈송충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