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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오디오 모어뮤직] 창밖의여자/단발머리-1집
2006.03.2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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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여자/단발머리-1집
1 ) 창밖의 여자
2 ) 돌아와요 부산항에
3 ) 단발머리
4 ) 잊혀진 사랑
5 ) 한오백년
6 ) 돌아오지 않는 강
7 )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8 ) 정
9 ) 대전 블루스
10 ) 너무 짧아요
11 ) 슬픈미소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우뚝 섰지만 곧 이은 대마초파동으로
무대에서 사라져야 했던 조용필은
1970년대를 보내고 막 새로운 10년을 맞이한 1980년,
이전과는 내용물이 사뭇 다른 본격적인 독집 앨범을 가지고 화려하게 컴백한다.
달라진 그 내용물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처럼 시대의 불가피했던 산물로서
록(고고) 리듬에 트로트 선율을 결합한,
이른바 트로트고고가 아니었다.
거의 4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창(絶唱)으로 꼽히는
'창밖의 여자' 그리고 당시로는 신기했던 드럼 머신 사운드에 가성을 얹은
'단발머리'는 확실히 새로운 콘텐츠였다.
앨범에는 '대전불루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그리고 다시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정' 등
이전 트로트고고 계열의 노래가 많이 포진되어 있었지만,
이 두 노래 덕분에 조용필은 뉴 이미지로 새 시대를 공략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단발머리'는 당시 서구 록 밴드의 경향인 뉴 웨이브를 수용해
그가 트렌드의 기민한 해석자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그만큼 한발 앞서가는 유행의 선두 뮤지션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90년대의 인기그룹 015B가 이 곡을 리메이크하고자 했던 것은 추억의 재생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그 진보적 접근에 대한 경의였을 것이다.
곡의 스타일이 달라지면 조금 주춤거리는 것이 대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매력적인 음색을 잊지 않았던 팬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폭발적인 갈채로 그의 재림을 환영했다.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90년대의 기린아 서태지와 아이들의 선풍에 결코 못지않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조용필은 단숨에 최고가수 자리에 등극했으며
이후 10년 이상 아무런 경쟁상대가 없는 완벽한 1인 독주와 지배 체제를 구축했다.
그 무렵 연예계 소식은 온통 그에 대한 얘기로 뒤덮였을 정도로 조용필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특기할 사항은 공식 1집으로 기록된 이 앨범이 발표된 때가 1980년 3월,
바로 민주화열기로 뜨거웠던 '80년 서울의 봄'이었다는 사실이다.
5.17 계엄,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신군부의 출현이라는
정치적 격동기와 앨범이 선풍을 일으킨 시점이 묘하게도 정확히 맞물렸던 것이다.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 뿐 아니라
'대전블루스' '한오백년'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잊혀진 사람' '슬픈 미소' 등
앨범 대부분의 노래들이 동시다발로 히트선상에 올랐으며
전에 이미 알려졌던 곡 '돌아와요 부산항에' '정' '너무 짧아요'마저 줄줄이 다시 사랑을 받았다.
정치적 상황에 혼란스러웠던 대중들은 가슴을 헤집는 듯한
'창밖의 여자'와 대전블루스' 등 그의 노래에 위로를 받은 셈이었다.
조용필 스스로도
“당시 사람들은 '한오백년'과 같은 노래를 통해 숨 막히고 두려운 시대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한풀이'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 시대가 조용필의 노래를 불러냈다는 말이다.
방송작가 구자형씨의 해석을 들어본다.
“조용필의 생명은 외침이라고 본다.
팝 가수 로드 스튜어트로부터 그리고 이후 판소리에서 그는 비명이란 영양제를 얻었다.
그 만의 섭생을 통해 생성된 트레이드마크인 절규는 결코 음악적인 것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점에서 억눌린 시대라서 더욱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용필 아니면 불가능한 한(恨)의 울림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당시 사람들의 숨 막힘과 두려움을 씻어주는 안정제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전두환 시대가 조용필의 비명을 더 리얼하게 만든 것이다.”
앨범의 성공은 대마초사건에 따른 공백기에 토속적 판소리 창법을 사사받으며
보컬을 절차탁마 가다듬은 노력의 결과였다.
'창밖의 여자' '대전블루스' 그리고 '한오백년' 등은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이의 가창을 자랑하고 있다.
떨림 휨 그리고 울림 등 전통적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소리의 패턴이 거기에 전부 존재했다.
가객(歌客)의 진검승부가 빛나는,
실로 가왕(歌王)의 기념비적 앨범이다.
조용필 최고의 앨범은 아니더라도 이 음반이 없었으면
'고추잠자리'의 3집, '자존심'의 4집, '친구여'의 5집도 없다.
게다가 이 앨범은 잊을 수 없는 아픈 시대성이 동행한다.
만약 명반 책에는 빠질지 몰라도 음악역사서에는 반드시 기록될 앨범이다.
1 ) 창밖의 여자
2 ) 돌아와요 부산항에
3 ) 단발머리
4 ) 잊혀진 사랑
5 ) 한오백년
6 ) 돌아오지 않는 강
7 )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8 ) 정
9 ) 대전 블루스
10 ) 너무 짧아요
11 ) 슬픈미소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우뚝 섰지만 곧 이은 대마초파동으로
무대에서 사라져야 했던 조용필은
1970년대를 보내고 막 새로운 10년을 맞이한 1980년,
이전과는 내용물이 사뭇 다른 본격적인 독집 앨범을 가지고 화려하게 컴백한다.
달라진 그 내용물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처럼 시대의 불가피했던 산물로서
록(고고) 리듬에 트로트 선율을 결합한,
이른바 트로트고고가 아니었다.
거의 4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창(絶唱)으로 꼽히는
'창밖의 여자' 그리고 당시로는 신기했던 드럼 머신 사운드에 가성을 얹은
'단발머리'는 확실히 새로운 콘텐츠였다.
앨범에는 '대전불루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그리고 다시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정' 등
이전 트로트고고 계열의 노래가 많이 포진되어 있었지만,
이 두 노래 덕분에 조용필은 뉴 이미지로 새 시대를 공략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단발머리'는 당시 서구 록 밴드의 경향인 뉴 웨이브를 수용해
그가 트렌드의 기민한 해석자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그만큼 한발 앞서가는 유행의 선두 뮤지션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90년대의 인기그룹 015B가 이 곡을 리메이크하고자 했던 것은 추억의 재생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그 진보적 접근에 대한 경의였을 것이다.
곡의 스타일이 달라지면 조금 주춤거리는 것이 대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매력적인 음색을 잊지 않았던 팬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폭발적인 갈채로 그의 재림을 환영했다.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90년대의 기린아 서태지와 아이들의 선풍에 결코 못지않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조용필은 단숨에 최고가수 자리에 등극했으며
이후 10년 이상 아무런 경쟁상대가 없는 완벽한 1인 독주와 지배 체제를 구축했다.
그 무렵 연예계 소식은 온통 그에 대한 얘기로 뒤덮였을 정도로 조용필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특기할 사항은 공식 1집으로 기록된 이 앨범이 발표된 때가 1980년 3월,
바로 민주화열기로 뜨거웠던 '80년 서울의 봄'이었다는 사실이다.
5.17 계엄,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신군부의 출현이라는
정치적 격동기와 앨범이 선풍을 일으킨 시점이 묘하게도 정확히 맞물렸던 것이다.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 뿐 아니라
'대전블루스' '한오백년'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잊혀진 사람' '슬픈 미소' 등
앨범 대부분의 노래들이 동시다발로 히트선상에 올랐으며
전에 이미 알려졌던 곡 '돌아와요 부산항에' '정' '너무 짧아요'마저 줄줄이 다시 사랑을 받았다.
정치적 상황에 혼란스러웠던 대중들은 가슴을 헤집는 듯한
'창밖의 여자'와 대전블루스' 등 그의 노래에 위로를 받은 셈이었다.
조용필 스스로도
“당시 사람들은 '한오백년'과 같은 노래를 통해 숨 막히고 두려운 시대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한풀이'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 시대가 조용필의 노래를 불러냈다는 말이다.
방송작가 구자형씨의 해석을 들어본다.
“조용필의 생명은 외침이라고 본다.
팝 가수 로드 스튜어트로부터 그리고 이후 판소리에서 그는 비명이란 영양제를 얻었다.
그 만의 섭생을 통해 생성된 트레이드마크인 절규는 결코 음악적인 것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점에서 억눌린 시대라서 더욱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용필 아니면 불가능한 한(恨)의 울림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당시 사람들의 숨 막힘과 두려움을 씻어주는 안정제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전두환 시대가 조용필의 비명을 더 리얼하게 만든 것이다.”
앨범의 성공은 대마초사건에 따른 공백기에 토속적 판소리 창법을 사사받으며
보컬을 절차탁마 가다듬은 노력의 결과였다.
'창밖의 여자' '대전블루스' 그리고 '한오백년' 등은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이의 가창을 자랑하고 있다.
떨림 휨 그리고 울림 등 전통적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소리의 패턴이 거기에 전부 존재했다.
가객(歌客)의 진검승부가 빛나는,
실로 가왕(歌王)의 기념비적 앨범이다.
조용필 최고의 앨범은 아니더라도 이 음반이 없었으면
'고추잠자리'의 3집, '자존심'의 4집, '친구여'의 5집도 없다.
게다가 이 앨범은 잊을 수 없는 아픈 시대성이 동행한다.
만약 명반 책에는 빠질지 몰라도 음악역사서에는 반드시 기록될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