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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웹진 FOR YOU 1월호] 가황 조용필

찍사, 2004-01-17 01: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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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수
9


에디터·이승형 문화일보 기자┃사진·조용필 팬클럽 ‘위대한 탄생’ 제공
           
           
        
        
           
        
        
          

조용필은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와의 인터뷰때면 곤혹스럽다. 가령 “이번 공연 어떤 식으로 진행하실겁니까?” 라고 물으면 “그냥 잘 하는 거지요” 대답하는 식이다. 그러나 음악과 인생을 초연한 듯한 그의 짧은 대답에는 헤아리기 힘든 깊이가 있다. 그래서 그는 무겁다. 조용필이 인터뷰와 사석에서 했던 말들은 하나의 어록이 되었다.

              

              음악을 얻고, 잃은 건 자유와 모든 것이다 - 1997. 5. 월간지 SEE.          
            

도화지에 건반을 그렸어요. 소리가 납니까. 그냥 생각으로 이렇게 …. - 2002. 9. KBS 다큐 스타평전. 제대로 연습할 만한 공간도, 필요한 악기도 충분치 않았던 무명 시절. 도화지에 건반을 그려 손가락으로 눌러가며 머리속으로 그 음들을 따라간 배고픔 속에서의 이런 훈련들이 절대음정을 추구하는 기초가 됐다.
            
            

그냥 가수 조용필이 제일 좋습니다 - 호칭에 대한 수많은 질문에 대한 늘상의 대답. 국민가수, 수퍼 스타, 작은거인, 가황, 국보 등 그를 부르는 온갖 명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록음악이 지금까지는 산발적으로 들어와 치렁치렁한 머리에 소리나 내지르는 노래쯤으로 알고 있지만 진정한 록은 영국의 비틀즈부터 시작된 단조로우면서도 깨끗하며 세련되고 강한 리듬의 음악이에요. 우리나라에도 머잖아 그런 록의 호황이 올거에요 - 1997.10 문화일보. 조용필 음악의 기반은 록이지만 그는 한국 록의 계보에 온전히 포함되고 있지 못하다. 이는 평론가들이 상정하는 록의 카테고리 자체가 지극히 한정적이고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내리는 록의 정의는 이미 그의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
            
            

              나는 대중을 쫓아가 본 적이 없다. 항상 대중이 내 음악을 따라오게 했다 - 1988. 12. 시사저널

              그걸 올리고 내리면 인간 냄새가 안나.(조금 틀린다 해도) 그것이 나의 매력일 수도 있는데… - 2003. 8. MBC 즐거운 문화읽기. 녹음시 한음이 약간 틀리자 오토튜닝(녹음시 기계로 음정을 조정하는 것. 많은 가수들이 사용하고 있다)을 하자는 엔지니어의 제안을 일축하며.

            

괜찮아, 내가 있잖아 - 2003. 1. 부인 안진현 여사의 빈소에서. 부인 안진현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많은 팬들이 빈소에 몰려들어 울음을 참지 못하자 팬들을 오히려 위로하며.

              제가 (음악을)떠날 수도 없고, 음악도 절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요 - 2003. 8. KBS 황정민의 인터뷰

              - ‘위대한탄생’ 정리


            
              
                
                


                  

 

 

무거운 존재는 머리 속에 각인되고 가슴속에 봉인되는 법이다. 도스토예프스키나 커트 코베인,그리고 피카소처럼. 이들의 이름은 몸 여기저기에 지문을 박아 새긴 것마냥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조용필(53)은 그런 사람이다.


                  

이름 석자만으로도 심장이 고동치고 눈자위가 붉어지게 만드는 사람. 승리의 기쁨을 알리기 위해 죽을 만큼 뛰었던 아테네의 고독한 마라토너처럼 지난 35년동안 온 세상에 음악을 전하며 숨가쁘게 달려온 사람. 몇세기가 흘러도 완전한 음악인으로 남아 주위를 배회할 것 같은 사람. 그는 그 자체로 ‘역사(歷史)’다. 조용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 대중음악 최고의 거장인 조용필에게 후배 뮤지션들은 당연히 경배해야 할 것이고, 평론가들은 존경의 글을 바쳐야 할 것이며, 대중들은 환호와 기립박수로 대답해야 할 것이다.”(대중음악 평론가 조원희)


                
            

            
                              
              
              
                
                
                
              
              
                
                
                
              
            

“그는 사랑에 실연당한 영혼을 위로해주고 가슴에 낀 검은 때를 씻어주는 내과의사이기도 하고, 불효자의 마음을 감동시켜 효도하게 하는 효심을 주기도 하고, 예술가들에게 창조할 수 있는 파워와 신비를 주는 통찰력을 지닌 도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오늘 밥먹다 갑자기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가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잃은 미아같은 두려움과 망망대해의 돛이 찢어진 작은 배처럼 노를 젓고 있다.”(탤런트 김수미)

                  


                  

그렇다면 당신은 조용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잠시 여기서 그에 관한 몇가지 질문을 해보자.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조용필 마니아'로 불려질 자격이 있다.


                  

(1)조용필은 신체적인 비밀이 한가지 있다. 무엇일까?


                  

(2)조용필이 고등학교 입학 뒤 이 외국 밴드로부터 영향을 받아 기타에 입문했다.이 밴드의 이름은?


                  

(3)1976년에 대히트를 기록한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몇년도에 만들어진 노래인가?


                  

(4)조용필의 10집 앨범 수록곡 ‘I Love 수지'에서 수지는 실제 인물이다. 누구일까?


                  

답:(1)조용필의 왼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는 7살때 앓은 홍역 후유증 때문이다.


                

(2)밴드의 이름은 ‘벤처스'다. 그는 경동고 재학시절 ‘파이프 라인'‘불독'등 ‘벤처스'의 대표곡들을 즐겨 연주했다.


                

(3)1972년도. 황선우에 만들어진 이 노래는 당시 몇몇 가수들에 의해 불려졌으나 빛을 보지 못하다가 조용필에 의해 부활했다.


                

(4)조용필의 조카. 사이가 각별했던 둘째형 영일의 딸이다. 형이 미국 이민을 떠나 자리를 잡는 7년동안 조용필은 수지를 친딸처럼 보살폈다.

   

조용필의 역사를 다 보듬기는 어렵다. 다만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는 ‘음악’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다.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6살때 하모니카를 접하면서 처음으로 음악과 만나게 된다. 중학 시절 레이 찰스와 바흐를 좋아했던 그는 집에 있던 둘째 형의 기타로 연주를 시작했다. 고교에 입학한 뒤 기타에 더욱 빠져들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좌절과 반항의 시간을 갖는다.


                  

결국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고교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는 가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경기도 파주의 장파리, 용주골 등지의 미 8군 기지촌에서 무명 밴드를 전전하며 서서히 실력을 닦기 시작한다. 1970년 가출 생활을 접고 집에 들어온 그는 이듬해 한 주간지가 주최한 보컬그룹경연대회에서 ‘님이여’란 노래로 최우수 가수왕상을 수상하며 비로소 제도권에 진입했다.


                  

평론가 조원희에 따르면 조용필의 음악 인생은 크게 3개의 시기로 나뉜다. 1970년대 초반 데뷔 시절로부터 1977년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며 활동 중단에 이르는 시기가 그 첫번째. 두번째 시기는 1980년의 ‘재기’로부터 1988년 10집 파트 1과 파트 2까지. 음반사에 소속돼 있던 시기이자 소위 ‘연말 가수왕’을 석권하던 바로 그 전성기를 말한다.


                

 


                
 


                

            

세번째 시기는 1990년대. 소속사로부터 독립해 자주(自主) 프로듀서 시스템을 완벽하게 성립한 그 시절로부터 지금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과연 조용필은 우리 대중음악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최근 조용필 팬클럽 ‘위대한 탄생'이 발간한 조용필에 관한 책자 ‘The History'에는 이를 몇가지로 정리한 글이 있다.


            

‘조용필 35년, 그가 던진 의미'라는 제목의 글에는 첫째 ‘대중음악의 대중화'를 조용필이 처음으로 이끌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평가에 의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해외 팝음악이 한국의 대중을 사로잡았던 1980년대 초반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대중의 눈과 귀를 급속도로 가요에 쏠리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이 노래들은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고급하고 세련된 가요의 전형을 보여줬다.


            

더욱이 그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이른바 ‘오빠부대'는 현재의 팬클럽 문화의 시초가 됐다.


            

1982년도 히트곡 ‘비련'의 도입부 ‘기도하는~'이 시작되면 으레 따라붙는 것이 오빠부대의 ‘꺄악~'하는 비명소리였다. 조용필이 대중음악계에 미친 영향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바로 ‘음악산업의 폭발적 확대'였다. 그가 화려하게 활동하던 1980년대는 바로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였고 음반시장의 규모 또한 세계 5위까지 확대됐다.


            

이같은 조용필의 행보는 곧 ‘대중음악에 대한 시각변화'를 주도하기에 이른다. 그의 활동 이전까지 ‘딴따라'로 불리웠던 가수들은 ‘뮤지션'으로 신분 상승되는 기회를 갖게 됐다. 결국 1999년 조용필은 대중음악인들에게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예술의 전당'에서 처음으로 공연하는 인물로 기록됐다.

              그는 또 해외 진출의 초석을 다진 가수로 평가되고 있다. 1982년 일본 문화방송의 ‘아시아 뮤직포럼'에 한국측 대표로 초청된 조용필은 일본에서만 골든디스크 3장을 받았으며 공식적으로 600여 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또 1987년에는 외국 가수로는 최초로 일본 NHK 홍백전에 출연, 이후 4회에 걸쳐 참가하게 된다. 또 1981년 미국 카네기홀 공연이나 1988년 중국 베이징에서의 공연 등은 우리의 대중음악도 해외에서 얼마든지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사례들이었다. 그는 현재 후배 뮤지션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만일 우리 대중음악사에 그가 없었다면 어떠했을지 상상만으로도 오싹하다. 대중성과 음악성을 두루 갖추고 시대를 넘어 전진하는 인물을 갖는다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조용필의 대표곡 중 하나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만 놓고 봐도 그의 무게를 넉넉하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노래 하나가 후대에 준 영향은 지대하다. 20세기 최고 가요 선정(한국 갤럽조사, 1999), 현역 작사가, 작곡가 100명 선정 최고의 노래(월간조선, 1999),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 1위 선정(KBS 2002),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한국 노래, 북한 주민 애창 남한 가요, 폴모리아 악단 / 조지 윈스턴에 의해 연주된 노래 / 7차 교과과정 개편에 따라 음악 교과서에 실린 조용필의 노래 중 두번째(2002), 생존 가수 최초로 노래비 건립(1994) ….

              우리의 가황(歌皇)이 지난해 8월 서울 잠실벌에서 개최한 35주년 기념 콘서트는 그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무대였다.


            

지금 한국의, 아니 외국의 그 어떤 유명 뮤지션이 4만 5,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해 열광시킬 수 있을 것인가. 오직 조용필만이 가능한 일인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그의 공연을 가리켜 “쓰잘데 없는 말로 청중을 현혹함이 없이 노래로만 말한다. 지천명(知天命)나이의 가수라면 트로트, 뽕짝에 한심한 개그를 섞어 공연 시간을 때울텐데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무대를 치밀하게 연출해내고 있다. 디지털 아티스트로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움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은 참으로 가상한 것이다.


            

설레이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할 슬픈 옛 이야기이건만,스쳐버린 그 약속을 계속 끊임없이 새롭게 상기시키고 있었다”고 칭송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큰 공연을 치뤘으며 5년만에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던 2003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 조용필. 그가 앞으로 만들어갈 역사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쓰잘데 없는 말로 청중을 현혹함이 없이 노래로만 말한다. 지천명(知天命) 나이의 가수라면 트로트, 뽕짝에 한심한 개그를 섞어 공연 시간을 떼울텐데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무대를 치밀하게 연출해내고 있다. 디지털 아티스트로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움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은 참으로 가상한 것이다. 설레이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할 슬픈 옛 이야기 이건만, 스쳐버린 그 약속을 계속 끊임없이 새롭게 상기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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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일편단심

2004-01-17 05:43:13

찍사님! 잘보고 위탄으로 퍼 갔시유~ 땡큐!!

짹짹이

2004-01-17 08:03:37

"꺼지지 않는 영원한 신화 조용필"
弼님이 계시기에 우리들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오빠의 팬이라는것이 늘 가슴벅찹니다.
오빠! 존경합니다. 사랑해요!

♡인천송도에서 弼오빠의 사랑스런동생 스물세살 짹짹이◑.◐♪올림.

백장미

2004-01-17 15:20:02

역시 미세 정보통 찍사님이네여...^^*
그웹진?이 책자(울동네는 국민은행 vip룸에 비치)도 잇답니다
책으로 소장하고 싶은분은 은행직원에게 부탁해보세여...
만약 안줄경우 바쁜시간에 vip룸에 vip인척 들어가서 한권 집어들고 쨉싸게 나오심됩니당...ㅋㅋ 후다닥~~

찍사

2004-01-17 19:45:57

Iris

2004-01-18 10:02:39

역시 우리의 찍사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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