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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모래, 2004-11-23 20: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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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 김수철
연재/한국 록 다시보기(3) 1980년대를 수놓은 두 명의 작은 거인  


1980년대 전반은 록의 암흑기였다. 전두환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각종 규제를 풀었지만 오히려 억압의 정도는 전시대를 능가했다. 반항적인 음악은 고사하고 자유로운 음악을 즐길 여유조차 없었다. 밴드들은 방송에서 홀대받기 시작했고 근거지였던 클럽에서도 DJ가 들어서면서 하나 둘 퇴출되었다.

밴드가 붐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 록의 흐름은 두 명의 슈퍼 스타, 조용필과 김수철에 의해 간신히 이어졌다. 두 사람 모두 ’70년대까지의 주류였던 미8군 무대와 클럽, 캠퍼스 밴드를 자양분으로 성장한 이들이었다. 비록 정규 록 밴드의 틀을 갖추지 않았고 정통 록을 내걸지 않았지만, 이들에게서 록의 근거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국 대중 음악을 넘어서는 문화 아이콘 조용필

1980년대는 한마디로 조용필의 시대였다. ’80년 드라마 주제곡 ''창밖의 여자'' 히트로 시작해 그 해만 1,2집에서 ''단발머리'', ''촛불''이 연속 히트했다. 이어 ''미워미워미워'', ''고추잠자리'', ''일편 단심 민들레야''(이상 3집 ’81년), ''못찾겠다 꾀꼬리'', ''비련''(4집 ’82년), ''친구여''(5집 ’83년), ''어제, 오늘, 그리고'', ''미지의 세계'', ''여행을 떠나요''(이상 7집 ’85년),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8집 ’85년),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9집 ’87년), ''서울서울서울'', ''모나리자''(이상 10집 ’88년), ''Q''(11집 ’89년)에 이르기까지 히트곡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굵은 글씨로 된 제목은 자작곡)
비슷한 노래는 많지 않았다. 가요는 물론 민요도 즐겨 불렀다. 때문에 조용필을 어떤 음악인이라고 규정하기란 힘들다. 조용필의 말을 빌면 그저 외국 것과 우리 것을 접목한 음악이다. 하지만 근간은 록이다. 트로트인 ''허공''이나 ''미워미워미워'' 같은 곡도 악기 편성은 록의 규범을 따르고 있으며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미지의 세계'', ''아시아의 불꽃'', ''여행을 떠나요'', ''모나리자''처럼 명백한 록 넘버도 적지 않다. 조용필이 위대한 탄생이 없는 조용필 음악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는 위대한 탄생 역시 록 밴드의 틀을 갖추고 있다.
조용필의 음악적 출발점과 여정을 알고 나면 조용필과 록의 관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조용필은 69년 3인조 록 밴드 애트킨스로 음악을 시작했고 얼마 뒤에는 파이브 핑거스의 기타리스트로 미 8군 무대를 전전했다. 이 때 부른 노래들은 거의 외국 록이었다. ’70년에는 후일 신중현과 엽전들, 사랑과 평화를 거치는 이남이, 드러머 김대환과 함께 김트리오를 결성했다. ’72년 25시에 이어 ’75년에는 조용필과 그림자의 이름으로 발표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빅 히트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당시의 전형적인 트로트와 비교하면 록적인 요소가 가미돼 있었다. 하지만 조용필은 ’76년 대마초로 활동이 묶였고 ’79년 12월 규제가 풀리자 위대한 탄생을 결성했다.  

“록 밴드에서 리드 기타로 음악을 시작한 내가 음악을 다시 할 수 있게 되면서 밴드부터 조직한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이 조용필(53)의 얘기다.
조용필의 노래는 어딘지 전 시대와는 느낌이 달랐다. 듣는 이의 마음으로 불쑥 파고들어 오래도록 잡고 놓지 않는 목소리도 그랬지만 곡 자체도 달랐다. 조용필은 “내 노래 중에서도 특히 자작곡들은 리듬과 코드가 ’70년대와 다른 ’80년대 외국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노랫말도 마찬가지였다. ''단발머리''나 ''고추잠자리'', ''못찾겠다 꾀꼬리'' 같은 곡은 몇 년 전의 산울림 못지 않은 파격이었다. 그 역시 신중현과 마찬가지로 비음과 격음, 경음이 많은 우리말은 록과 어울리기 힘들어 ''모나리자''나 ''여행을 떠나요'' 같은 곡은 노랫말을 만드는데 특히 애를 먹었다.

위대한 탄생도 처음에는 일반적인 록 밴드로 출발했다. 초기 멤버는 조용필이 미8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검은 나비 출신의 드러머로 현재까지 남아있는이건태와 곽경욱(기타), 김택환(베이스), 김청산(키보드). 하나같이 내로라 하는 실력파 연주자들이었다. 조용필은 보컬을 하며 틈틈이 기타도 쳤다. 하지만 보컬을 중시하는 가요계 풍토에서 조용필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자 어쩔 수 없이 프로젝트 밴드로 점차 그 형태가 바뀌었다. 멤버들은 조용필과 작업하면서 레코딩 세션 맨으로도 활동했다. 덕분에 유난히 멤버 교체가 잦아 최이철을 비롯해 이호준, 박강호, 송홍섭, 유재하, 배수연, 유영선, 김희현 등 여러 명이 들락거렸다. ’88년 조용필이 일본에 진출하며 해체했다 ’93년 재결성된 위대한 탄생은 현재 이건태와 최헌의 불나비 등을 두루 거친 최희선(기타), 부활의 창단 멤버였던 이태윤(베이스), 송골매의 후기 멤버였던 이종욱(키보드), 다섯 손가락 출신의 최태완(피아노)의 라인 업으로 최고들이 모인 팀이라는 명성을 잃지 않고 있다.

위대한 탄생 역시 ’70년대와는 다른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전까지의 밴드에서는 기타가 중심이었던데 반해 위대한 탄생은 키보드가 중심이었다. ''단발머리'', ''촛불'', ''못찾겠다 꾀꼬리''처럼 키보드의 역할이 극대화된 곡도 적지 않았다. 위대한 탄생이 고정적인 의미의 록 밴드에서 벗어나 있는 데에는 프로젝트 밴드라는 점 외에 이 같은 악기 편성도 한 몫 한다. 조용필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에서는 시카고 같은 밴드가 현을 강조한 데 이어 키보드의 중요성이 커졌다. 키보드에 일찌감치 주목한 위대한 탄생은 덕분에 전보다 무게가 실린, 색다른 사운드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기타의 단선적인 힘에 비하면 키보드는 부드럽고 폭이 넓었으며 풍부했다. 조용필의 다채로운 보컬을 저마다 다른 색깔로 뒷받침한 위대한 탄생의 연주는 한국 대중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밴드의 사운드에 대한 고집도 방송 관계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인 조용필 못지 않았다.

확실히 ''뿅뿅''대는 일렉트릭 드럼과 남성 보컬의 틀을 깬 ''단발머리'' 같은 곡은 악기 와 보컬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밴드 출신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음악은 형식적으로는 달랐지만 역할과 의미에 있어서는 전 시대의 기타 중심의 록과 다를 바 없었다. 조용필의 음악은 ’80년대의 다양한 젊음들 사이에 거의 유일한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특히 ''오빠부대''의 원조로서 이제 막 소비력을 가지게 된 10대들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교복이 없어지고 머리를 기를 수 있게 되고 칼라 TV와 프로 스포츠 등 인위적인 ''충격''에 의해 전시대에 없던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억눌려 있었다. 조용필이 음반보다는 콘서트를 염두에 두고 조직했다고 할 정도였던 위대한 탄생과의 공연은 그들에게 일종의 ''젊음의 축제''였다. 가수의 이름을 부르며 비명을 질러대는 수만 관중도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공연장을 찾은 이들이 경험하는 일체감과 충만감 역시 그 시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은 ’80년대라는 시대에 대한 기억과 함께 하기에 한국 록 혹은 한국 대중음악을 넘어서는 문화 아이콘으로 남아있다.

1 댓글

하얀모래

2004-11-23 20: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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