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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은 지난 68년 미8군 무대에서 밴드를 하는 것으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동고를 갓 졸업한 18세 청년은 이후 71년 김트리오라는 그룹을 결성,‘사랑의 자장가’로 가요계에 데뷔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조용필이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린 건 불멸의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를 부른 76년부터였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대마초 파동을 겪으며 한동안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79년 그룹 ‘위대한 탄생’을 조직한 조용필은 80년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인 ‘창밖의 여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이후 1집 수록곡 ‘단발머리’ ‘한오백년’,2집 ‘촛불’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3집 ‘미워미워미워’ ‘고추잠자리’로 연이은 히트를 기록하며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특히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씨가 ‘한국 대중음악 베스트 100앨범’ 중 1위에 뽑은 조용필의 4집앨범에는 ‘못찾겠다 꾀꼬리’ ‘생명’ ‘산장의 여인’ ‘비련’ 등 주옥같은 명곡이 실려 팬들을 환호하게 했다.
조용필은 80년부터 86년까지 7년연속 ‘가수왕’의 자리를 차지했으나 86년 말 “더 이상 가수왕에 오르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76년 처음 발표한 앨범부터 2003년 발표한 18집 ‘Over The Rainbow’까지 정규앨범과 베스트,라이브앨범을 포함해 1,500만장이라는 천문학적인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전형화 aoi@sportstoday.co.kr
경동고를 갓 졸업한 18세 청년은 이후 71년 김트리오라는 그룹을 결성,‘사랑의 자장가’로 가요계에 데뷔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조용필이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린 건 불멸의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를 부른 76년부터였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대마초 파동을 겪으며 한동안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79년 그룹 ‘위대한 탄생’을 조직한 조용필은 80년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인 ‘창밖의 여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이후 1집 수록곡 ‘단발머리’ ‘한오백년’,2집 ‘촛불’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3집 ‘미워미워미워’ ‘고추잠자리’로 연이은 히트를 기록하며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특히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씨가 ‘한국 대중음악 베스트 100앨범’ 중 1위에 뽑은 조용필의 4집앨범에는 ‘못찾겠다 꾀꼬리’ ‘생명’ ‘산장의 여인’ ‘비련’ 등 주옥같은 명곡이 실려 팬들을 환호하게 했다.
조용필은 80년부터 86년까지 7년연속 ‘가수왕’의 자리를 차지했으나 86년 말 “더 이상 가수왕에 오르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76년 처음 발표한 앨범부터 2003년 발표한 18집 ‘Over The Rainbow’까지 정규앨범과 베스트,라이브앨범을 포함해 1,500만장이라는 천문학적인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전형화 aoi@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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