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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공짜는 끝났다] LP·CD 물러나도 음악 시장은 영원하다  

           SP→LP·카세트·카트리지→CD→MP3로 중심 이동
              다운받는 음원(音源) 숫자가 음악 시장 주도


대중음악 시장은 기본적으로 대량복제기술에 의한 음반과 매체를 대전제로 한다.

세월에 따라 SP에서 LP로, LP에서 CD로, CD에서 MP3로 음원을 담는 형태가 바뀌어왔으며

매체의 경우도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다시 음악전문 유선방송으로,

근래에는 인터넷으로 중심축이 이동했을 뿐이지 기본은 같다.


흔히 한국 음반 시장은 1960년대 12인치 LP(Long Play)가 팔리던 때에

오늘날 말하는 시장의 형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SP(Standard Play) 시절에도 가격이 책정된 음반이 팔렸기 때문에

분명 시장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그 규모는 턱없이 왜소했으며

남아있는 기록도 전혀 없다.

한국 대중가요의 시작이라는 1926년 윤심덕의 ‘사의 찬미’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이 레코드를 사고 축음기를 구매했다는 사실만 전해지고 있다.


이미자 ‘열아홉 순정’ 첫 10만장 기염



음반의 정확한 판매량에 대한 집계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땅에 정착되지 못했다.

하물며 밀리언 셀러가 득시글거리던 1990년대 중반까지도

도매상의 소매상 주문량을 추정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정확성과는 거리가 멀다.

판매량 집계는 그리하여 오랫동안 공정한 인기순위 매김을 막는,

우리 음반 시장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사운드스캔과 같은 객관적인 판매량 조사업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인치 LP 시절인 1959년,

갓 고교를 졸업한 여가수 이미자가 발표한 ‘열아홉 순정’은 가공할 열풍을 일으키면서

1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우리 음반 시장의 규모에서 10만장은 믿기 어려운 수치.

열풍을 감안한 추정치였을 테지만 정확성을 떠나,

그것은 음반구매가 대중적인 단계로 진입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미자의 열풍은 1964년의 ‘동백아가씨’로 더욱 확대되어

그만큼 음반판매량도 더 늘어난 게 분명하다.

때문에 이미자는 역사적으로 한국의 음반 시장 확립을 견인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60년대 말 뜨거웠던 남진과 나훈아 라이벌전은 소비자의 LP구입 패턴을 일상화시켰고,

특히 1972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남진의 ‘님과 함께’와

1973년을 강타한 패티김의 ‘이별’은 명백히 10만장 이상 팔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때부터 10만장 판매량은 그리 놀랄 만한 뉴스가 되지 못했다.




LP판매량 10만장 선을 훌쩍 뛰어넘은 주인공은 1980년대의 수퍼스타 조용필이다.

음반 시장의 팽창기로 분류되는 이 시절에 그의 앨범은

대략 장당 40만장 이상이 팔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이문세 등에 의해 발라드 시장이 폭발하면서

그 수치는 70만~80만장으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었으며,

소비자들은 이 시기에 와서 팝송보다는 가요LP를 더 많이 구입하기 시작했다.

폭발한 음반 시장은 심지어 언더그라운드 음악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TV에 출연하지 않던 록그룹 들국화의 앨범도 70만장 이상의 대박을 쳤다.

이 시기 음반 시장 규모 확대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라디오매체

특히 음악전문 FM방송이었으며,

1970년대 중반 이후 생산된 새로운 형태인 ‘카세트’가 카세트녹음기의 확산과 함께 득세하면서

음반 시장의 규모는 더 커졌다(1970년대 중반 잠깐 유행했던 ‘카트리지’는 곧 사라졌다).

1990년대 CD시장이 오기 전까지 LP의 판매량에 맞먹을 정도로 카세트는 매장에서 맹위를 떨쳤다.


통상적으로 국내 첫 밀리언 셀러 즉 100만장 판매량을 쾌척한 앨범은

1988년 변진섭의 1집 ‘홀로된다는 것’으로 기록된다.

6공 정부의 민주화조치에 의해 민중가요가 라디오전파를 타게 되면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2집마저 70만장의 판매고를 거둘 만큼

1980년대 말은 LP시장의 정점을 이뤘다.

웬만한 가수가 40만~50만장의 앨범을 팔았을 정도.

영구적인 콤팩트디스크,

즉 CD시장은 첫 밀리언 셀러라는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와 함께

1990년대 초반에 폭발,

음반 판매량을 한층 상향조정했다.

이 시점이 음반 시장의 폭발기.



가요계의 기린아인 서태지와 아이들이 2집을 낸 1993년 무렵

거의 매장의 주요 형태로 정착된 CD는 김건모 신승훈과 같은 수퍼스타의 경쟁으로

100만장이 아닌, 200만장 선마저 돌파했다.

김건모의 1994년 ‘잘못된 만남’은 256만장을 기록, 지금도 한국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 김건모 등

1990년대의 빅3는 이전의 조용필과 함께 누적된 음반판매고 1000만장을 넘어선 주역이다.

1990년대 매체의 특성은 라디오에서 무게중심이 TV로 옮겨왔다는 사실이다.

뉴밀레니엄에 와서는 유선방송이 각광을 받으면서 뮤직비디오가 부상,

다시 한번 매체의 변화를 겪었다.

휴대용 CD기기의 확대보급으로 카세트는 거의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김건모 ‘잘못된 만남’256만장



CD시장은 아직도 세계 음반시장 매출의 98%를 차지할 만큼 막강하다.

미국의 경우 아직도 CD의 퇴조기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음악 다운로드,

즉 MP3 시장이 경이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CD시장은 위협을 받게 됐다.

특히 국내에서 CD판매는 해마다 격감해 2000년 조성모와 서태지,

2001년 김건모를 마지막으로 100만장 신화와는 완전 작별했다.

1990년대 초반 CD와 카세트 합쳐 250만장 넘게 팔았던 김건모가

지난해 낸 CD는 30만장을 채 못 팔았다는 사실이 CD시장의 급격한 하향세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지난해 판매량 1위라는 서태지 앨범도 50만장을 넘기지 못했다.

근래에는 “10만장도 대박”이라는 자조가 들린다.

신인가수들은 “오로지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CD를 내는 것일 뿐 판매량에는 연연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음반 시장 폭발의 효자였던 CD가 홍보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 사이 CD 음반 시장은 1997년 4000억원 매출규모에서 지난해에는 1000억원 미만으로 추락했다.

대신 MP3의 빠른 보급으로 음반 다운로드 시장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

CD는 LP의 운명처럼 곧 없어질 것이란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음반 시장도 디지털시대에 맞춰 ‘음원(音源) 시장’이란 말로 대체되었다.

다만 국내의 경우 다운로드 매출 대부분이 음악계가 아닌 이동통신사로 넘어가

온라인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적절한 시장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다운로드, 벨소리, 컬러링 시장을 통해 음원이 과거

LP와 CD 때의 매출에 육박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신예 트로트가수 장윤정의 ‘어머나’ 선풍은 디지털 음악시대가 낳은 산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음반 ‘장’수에서 음원 ‘건’수로 옮겨가고 있을 따름이지,

CD의 퇴조가 음악 시장의 몰락이나 음악의 고사로 직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각에서는 디지털 음원시대에도 블록버스터의 신화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CD 시장도 죽지 않고 온라인 시장을 더욱 견고하게 해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MP3 시장의 특장은 기회의 평등이다.

그간 우수 작곡가와 작사가 확보가 유리한 대형기획사에 의해 쥐락펴락하던 음악계로부터

이제는 누구라도 주목받는 음악만 내놓는다면 성공을 꿈꿀 수 있는 공평한 경쟁의 장(場)이 됐다.

CD를 내서 가수로 신고식을 치르지 않더라도 디지털 음원시대의 특성상 인기 음악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대형기획사에 의한 음악 시장 지배도 막을 내릴지 모른다.

일반인도 도전해보라.

디지털 음악시대에는 보통사람도 대박을 노릴 수 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www.izm.co.kr)


http://weekly.chosun.com/wdata/html/news/200502/20050224000001.html
첨부

5 댓글

시용弼

2005-03-03 17:33:12

임진모씨는 나름대로 조용필님에 대한 분석과 애정이 있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 최초의 100만장 판매 기록이 조용필 1집이 아닌 변집섭이라니 좀 황당하네요.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분명히 임짐모씨가 그렇게 이야기도 한 것 같은데...

곽노선

2005-03-03 21:48:42

아마 임진모씨의 말씀대로 변진섭이 최초 음반판매 100만장이 맞을꺼에요
조용필님이 활동당시 정확한 음반판매 기록하는게 없썼는데 아마 변진섭의 앨범이 나올때부터 공식적으로 음반판매를 집게해서 나온걸꺼에요
예전에도 다른매체를 통해서 들었는데 그때도 국내 음반판매 최초 100만장은 변진섭의 음반이라고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곽노선

2005-03-03 21:50:14

다른매체는 임진모씨가 아닌 음반판매 집계하는곳에서 발표한거라 정확할 꺼에요~~

시용弼

2005-03-04 03:33:30

한국 기네스북 공식 100만장 돌파가 조용필로 알고 있습니다. 그기록을 김건모가 깼죠.

시용弼

2005-03-04 03:38:21

필게시판>프로필에 가보니...
1990
1월 '90 Vol-1 추억속의 재회' 발표 (현대 음반)
5월 90 추억속의 재회 콘서트 - 잠실 실내 체육관
동요집 '까치 소리의 기쁨' 발표 (문화부 주관)
8월 Pax Musica 90 - 일본 나가사키 야외 공연
▶앨범 100만장 판매 돌파 (창밖의 여자) 한국 기네스에 기록◀
9월 미국 하와이 공연
11월 90 콘서트 라이브 앨범 발표 (90.5.27 잠실 실내 체육관) (서울 음반)
12월 일본 NHK TV 가요 홍백전 출연

이렇게 되어 있는데...그렇다면 최초로 공식 100만장을 판 가수 아닌가요?
최초/최고가 아닌 사건을 기네스북에 올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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