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당시 ‘조용필’씨 하면 지금의 ‘비’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말 가창력과 인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남성복 디자이너로서 그 분 옷을 해준다면 정말 원이 없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그 분이 오셨어요. 와서 대화하면서 옷을 하게 되었죠.
그 당시 조용필 씨가 한류의 원조였죠. 일본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한국에서 도 활동을 했는데, 일본에서 방송을 하면 방송국의 조명이 무슨 색상이니까 어떤 색상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서로 상의해서 옷을 한꺼번에 한 10벌 정도를 하게 되죠. 그렇게 십 몇 년을 쭉 하다보니까 그 사이에 정말 우리나라 연예인들은 거의 90% 이상 제가 옷을 하게 되었고요.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메달 수익 음악 영재 발굴에 기부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수익금 '음악역 1939' 전달식 (왼쪽부터 조폐공사 류진열 사업 이사, 김성기 가평군수, 음악역 1939 송홍섭 대표) [음악역 1939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한국조폐공사가 제작한 '가왕'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판...
조폐공사, 조용필 메달 수익금 일부 음악영재 '후원' 한국조폐공사(사장 조용만)가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메달'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음악영재 지원 사업에 후원한다. 공사는 11일 경기도 가평 뮤질빌리지 '음악역 1939'에서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메달 판매 수익금 가운데 2500만원을 가평군과 함께 가평뮤직빌리...
1 댓글
우주꿀꿀푸름누리
2008-01-19 04:56:41
그 당시 조용필 씨가 한류의 원조였죠. 일본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한국에서 도 활동을 했는데, 일본에서 방송을 하면 방송국의 조명이 무슨 색상이니까 어떤 색상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서로 상의해서 옷을 한꺼번에 한 10벌 정도를 하게 되죠. 그렇게 십 몇 년을 쭉 하다보니까 그 사이에 정말 우리나라 연예인들은 거의 90% 이상 제가 옷을 하게 되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