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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인방송 써니FM ‘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 ’
3집 앨범 3.4 부 방송분 *****
★ DJ : 백영규 (가수)
★ 조용필 3집 노래 + 게스트 : 김순곤 (작사가) 김경일 (평론가)
★ 특집 방송 제작진 : PD - 임지성, 김경은, 작가 : 김희진, 김형민
★ 나레이션 : 김지수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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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규 : 백영규의 가고싶은마을 3부입니다 오늘 조용필40주년을 맞이해서 그 세번째 특집을 꾸미고 있는데요 앞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사가 김순곤씨 그리고 음악을 통해서 지금까지 한길로 걸어오셨다고 그래서 DJ. 작가, 문예부장, 두루두루 가요 요직을 해오셨는데 두분이 앞에 앉아 계시고요 21일간의 대장정 특집입니다
대장정의 특집은 주안의 위치한 옹진냉면 그리고 남동에 있는 SK텔레콤 벤처기업이죠 감사하게도 제작비 지원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감사드립니다
▶김경일 : '강원도 아리랑' 감회가 깊었던 것이 조용필씨 3집을 통해서 우리나라 민요를 춤과 연결하게 된게 이것이 최초였습니다
▶백영규 : 리듬적으로요
▶김경일 : 예, 민요보면 거의 둥실두둥실 그런 춤이였잖아요.
그런데 고고같이 약간 락적이면서도 고고리듬을 넣어서 이렇게 민요를 편곡을 해서 바꿨을때 이때부터 모든 민요나 트로트가수들이 조용필씨의 이런 음악형태를 다 따라오게 됐죠
▶백영규 : 아 그대로 닮아갔네요
▶김경일 : 그리고 메들리도 디스코나 전부 고고리듬으로 갔고 그런데 처음 이 노래 나왔을때 저는 깜짝놀랬어요 민요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지 그래서 너무 기분도 좋았고 다운타운가에서 DJ들도 이 민요를 자연스럽게, 옛날같으면 맨 밑에 음반 LP보면 군가, 새마을노래, 건전가요, 민요같은 것 넣었어도 형식적이였거든요 그런데 이 '강원도 아리랑'을 들어봤을때 그래서 저는 다운타운가에서 다방DJ할때도 틀었지만 디스코택에서도 이 노래를 틀었어요
▶백영규 : 쉽게 춤을출수 있으니까
▶김경일 : 예 아 정말 잘 추더라구요 사람들이 이 노래에 춤이 되냐 다 되죠 이때부터 민요를 현대화했던 작업이 바로 조용필씨가 가장 선구의 역활을 하지 않았나
▶백영규 : 김경일씨 얘기 들으니까 정말 새롭네요
▶김순곤 : 그런데 사실 이때가 30여년전에 작업이였는데 지금도 성인가요 가수들이 요즘 방송에서는 많이 들을 수 없겠지만 무슨 행사라든가 일터의 업소에서는 민요메들리라는 레퍼토리가 가수마다 다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작업해서 음악을 노래할때 민요메들리가 지금도 이때만큼 흥겹지가 잘들만드시지만 거의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죠 전가수들에게
▶백영규 : 저도 그 말씀을 듣고서 기억을 더듬어보니까 시장에 가면 각설이타령 틀어주는데 많잖아요 그러니까 아 이렇게 계속 전수가 되어왔구나 이런걸 느끼게 되네요
▶김경일 : 저는 민요를 조용필씨가 민요를 좋아하게 된게 판소리창법을 하면서 조용필씨가 파주라든가 문산 이런 군인들 미군클럽하우스에서 밴드로 활동할때 흑인,백인,라틴, 이런쪽으로 하다보니까 음악의 장르가 레퍼토리가 다양하게 들은거죠
처음에 조용필씨가 했던 음악들을 들어보니까 얘기했을때 레이찰스의 노래도 했지마는 가죽장수의 블루스라고 미울스키너스 블루스라고 컨츠리에서 나온 음악들도 하고 브라스밴드에서 시카고 음악도 했고 핑크플로이드나 이런 음악도 했고 흑인 소울음악도 했고 그래서 그때당시에 불렀던 처음에 2집앨범에 들어있죠 원래는 공식적인 앨범이 아니고 비정규앨범에서 들었을때 보면은
'리드미온' 같은 곡은 그때 클럽에서 일할때 흑인병사에 신청곡을 통해 들었는데 바비브랜드 노래듣고 다양한 장르를 거쳐온 것이거든요 그런데 야
창법도 좋지마는 그 음악을 현대적으로 했던 작업이 쉬운게 아니었는데 그것을 앞서갔다라는 걸 다시 또 깨달아지더라구요
▶백영규 : 그러네요 이 특집을 준비하면서 저도 많이 연구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김경일씨 조금전에 브라스밴드라든지 아까 영어발음을 해서 제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웃음) 그런 작업들 제가 오늘 처음들었어요 김경일씨 한번 더 모셔야겠네요 (웃음)
3집이 81년도에 출반이 되었는데요 물론 1집때부터 조용필씨는 우리나라 최고정상으로 달리는 길이죠 3집때는 뭔가 좀 정상에 정상 정상 뭐 마땅한 낱말을 못찾고 있는데 그때 어떤 국내라든지 외국이라든지 어떤 분위기 좀 설명을
▶김경일 : 81년도는 가요계에서도 조용필씨가 새로운 어떤 음악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사회적으로도 되게 혼란스러웠을 때예요 그때 레이건대통령이 저격을 당해서 부상당해서 난리가 났었고 또 교황바오로2세가 바틴칸광장에서 접견하다가 저격당해서 부상을 당해서 난리가 났었죠 그 게릴라들이라든가 그때 영국의 찰스황태자와 다이에나스펜서가 결혼을 했을때에요 그때가 81년 7월 29일로 제가 기억이되는데요 그 자료를 보니까 그랬구
우리나라 81년도에 통행금지가 해제됐을때요 그전에는 12시만 되면 집에도 못가고 쓰레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었고 아니면 나이트클럽에서 새벽4시까지 졸면서 있다가 (웃음) 이때 통금이 해제가 되면서 사람들한테 새로운 어떤 선진국으로 가는 어떤 역사적인게 있었죠 그리고 우리나라의 프로야구도 창립이 됐었고 그리고 영화쪽이나 음악쪽을 봤을때는 그당시 자유부인이라든가 또 60년대 작품이였던 미워도 다시한번이 리메이크되면서 날리가 났었죠 그리고 우리나라의 81년도 유행했던 붐을 보면은 캐쥬얼붐이 많았고 영화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어둠에자식들' 그리고 종교영화를 다뤘던 '만다라' '피망' '앵무새몸으로울었다' 이런 영화가 힛트가 됐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 사이에는 꼬맹이들은 스카이콩콩이 유행했던 시절이였죠 (웃음)
▶백영규 : 참 김경일씨 고맙습니다 조용필씨 특집을 이렇게 준비하시면서 국내배경까지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우리 김경일씨 뭐 노래를 하나 더 듣고 얘기를 나누죠
▶김경일 : 이 님이여는 원래 외국곡이구요 조금전에 말씀드렸던 조용필씨가 외국병사를 통해서 알게된 바비브랜드의 리드미온이라는 곡을 다시 한국적인 그때 원곡을 모르니까 그때 번안을 했을때 DJ도 하셨고 작사도 하셨던 지명길선생님이 가사를 붙었는데요
▶백영규 : 현재는 저작권협회 회장님이시죠
▶김경일 : 예 그렇죠 그때 이노래가 한국판 '님이여'로 발표가 됐었는데 오래간만에 들어보면 좋겠네요
▶백영규 : 제가 진행을 하면서 보너스로 배우는게 있어요 우리 구자형씨가 목요일날 다시듣는 명곡시간에 일전에 님이여 발표하기전에 연주를 하셨데요
기타밴드음악을 하시는데 흑인병사가 신청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날은 그것을 못받아주고 집에가서 연습을 했데요 그래서 그다음날 그노래를 했데요 그랬더니
흑인병사가 감동에 눈물을 흘리면서 박수가 엄청쏟아졌데요 그래서 그때 조용필씨가 느낀것이 아 연주를 하는것보다 기타를 치는 것보다 노래를 하니까 이렇게 박수가 많이 오는구나 그래서 내가 가수가 되야 되겠구나 결정적인 계기가 됐데요
그것도 흑인병사와의 운명적인 만남요 그래서 제가 들은 기억이 있어서 부연을 해드렸습니다 우리 님이여 듣고 얘기나누죠
▶백영규 : 김순곤씨 가사를 쓰시면서 조용필씨랑 점점 근접이 돼가잖아요 그리고 보통 음악작업을 할때 좋은 쪽으로만 갈수가 없어요 얘기하다보면 나는 이쪽으로 가고싶은데 나는 이쪽으로 하다보면 좋은 것만 있지 않고 얼굴 붉히는
▶김순곤 : 얼굴 붉히는 일이 따로 있는건 아니구요 일단은 그 얘기가 술자리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그러다 보니까 다른때보다도 특별히 각자의 자기고집들이 있잖아요
▶백영규 : 김순곤씨도 미술했으니까 한고집할 수 있죠 (웃음)
▶김순곤 : 그런데 사석에서는 형 동생 이렇게 하니까 한번은 제가 우연히 이런 얘길 한적이 있었어요 왜 트로트 성인가요를 안하시냐 국민들이 조용필이라는 가수의 대표곡이라고 하면 대다수의 나이드신분들은 미워미워나 일편단심을 꼽는데 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하는것도 의미가 있지 않느냐 이렇게 말씀드린적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밤새 토론을 시작한거죠 그래서
조용필씨 개인적인 생각은 나는 내가 더 나이가 먹고 해서 언젠가 가수생활을 접거나 해서 내가 이세상을 떠날때 트로트가수로 팬들의 기억속에 남고 싶지 않다
물론 개인적인 가수들마다 그런거지만 저는 작품자로서 그런 장르의 구분보다는 팬들에게 기여하는 차원에서 조용필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인취향의 노래도 원하고 있는데 그걸 왜안하시냐 그래서 싸움아닌 논쟁이 돼서 밤을 꼴닥 새우면서 그러고나면 때로는 한 6개월 1년 삐지는거죠 (웃음)
그러면 서로가 연락을 끊고 그러다가 다음 작업할때 전화와서 제가 꼭 작품에 참여하지 않아도 내가 이런걸 하려고 그러는데 너 생각은 어떠냐 물어오시고 그래요 그때뿐이기는 하지만 오래가긴해요 그게 한번씩 (웃음)
▶백영규 : 음악적인 거인 앞에는 그렇게 삐지는게 오래가네요
▶김순곤 : 그게 삐지는게 그것도 자존심이죠 상대방의 말을 이해를 못해서가 아니라 내 생각과 내 음악적인것을 누구한테도 굽히고 싶지 않은 그런게 너무 뚜렷하신 분이셔요
▶백영규 : 두분의 대화는 늘 평행선이네요
▶김순곤 : 네 초반의 분위기 좋다가 결과가 안좋은 적이 아주 많았어요 (웃음)
▶백영규 : 아 참 재밌네요 그 당시에 조용필씨, 아 벌써 끝곡을 들어야 되겠네요 끝곡은 '너의빈자리' 가 준비되어 있는데요 어제 출연을 해주셨던 당시의 문예부장 임석호씨 작사네요 임석호씨도 작사가 몇개가 있어요 '너의빈자리' 듣고 4부에서 다시 얘기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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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규 : 가고싶은마을 4부로 넘어왔습니다. 제 앞에는 가요평론가 김경일씨 그리고 우리나라의 거의 최고의 작사가 김순곤씨 자리 함께 하고 있는데요 광고듣고 다시 얘기 나누겠습니다.
이희우작사 조용필작곡 '물망초' 편곡은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이라고 봐도 상관없죠
▶김순곤 : 예 그렇습니다
▶백영규 : 개인적으로 조용필의 입지는 어느정도였는지
▶김경일 : 하늘을 찔렀다고 해야죠 80년도에 '창밖의여자'가 나오면서 계속 연달아서 히트곡이 나왔으니까요 그러니까 81년도만 따진다면 3집 앨범 내놓고, 조용필씨는 방송출연을 거부를 했어요
왜냐하면 방송도 좋지만 음반을 만들고 시간을 갖어야하는데 계속 방송에 불려다니고 여기저기 행사를 하다가 보니까 반응은 좋지만 음반을 만들 시간이 없다해서 방송을 처음으로 거부를 했고
이때 81년도에 우리 구정 지난지가 엊그제 였읍니다마는 81년 2월 5일날 구정특선프로로 조용필씨가 영화배우로 처음 데뷔했던 유지인씨하고 나와 가지고 영화가 나왔어요 '그사랑 한이되어' 였었는데 결론적으로 실패했죠 하지만 거액의 게런티를 받고 여러가지를 했었는데 참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때당시 조용필씨를 보면은 이 영화는 깨졌지만은 '그사랑 한이되어'가 한국연극영화대상 영화주제가 작곡상을 받았구요
그다음에 7월달의 미국 카네기홀 초청으로 처음으로 한국인 최초로 카네기홀공연을 했죠
그리고 그때당시 KBS방송대상 최우수남자가수상, 골든디스크상 받고 또 전국에 있는 PD 들이 선정한 최우수가수상 그다음에 주제가 작곡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때 작곡상을 받은건 촛불이라는 곡인데 80년의 발표해서 1년동안 인기를 얻으니까 그후에 81년도의 받은것이고 그리고 MBC 10대가수왕상에서 가수왕상을 받았고 그리고 김순곤씨가 작사한 '고추잠자리'가 최고인기가요상, 작곡상을 수상했죠 그리고 TBC 가요대상 남자최우수상,최우수가요상, 작곡상을 받았고 그때당시 히트곡 메들리 실황앨범도 나왔었구요 그리고 크리스마스캐롤집 '크리스마스를 조용필과 함께' 이렇게 해서 81년에도 조용필씨는 가수왕서부터 거의 싹쓸이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백영규 : 어느분인가 그렇게 말씀하더라구요 1주일의 하나씩 트로피가 뚝딱 나오잖아요 그래서 짐을 쌀때 그런 트로피는 그냥 상자에다, 보통 다른가수들 같으면 모두 진열을 해놓잖아요 진열을 할수없으니까 박스에다 (웃음) 그런 얘기도 들었는데 뭐 상 얘기하면 오늘 밤을 샐것겉습니다
어저께 지구레코드사 임석호씨가 나오셔서 저작권의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어요 물론 저작권이란 말은 김순곤씨는 회원이시니까
저작권의 우리가 알고 있는 커다랗게 4가지가 있죠 복제권,방송권,공연권, 전송권 이렇게 4가지가 있는데 복제권을 지구레코드회사에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김순곤 : 예 복제권이란게 부연설명을 해드리면 처음 발표됐던 음반을 다시 저작자의 허락없이 다시 찍어서 판매를 하는 그런 권리죠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백영규 : 조용필씨가 나중에는 개인적으로 다리 리메이크를 제작을 서울음반에서 하게 되죠 그래서 제가 어제 개인적으로 그런 결론을 진행자가 내리는 것은 웃읍지만 조용필 40주년을 맞이해서 경인방송에서는 특집을 꾸미고 있지마는 물론 다른방송에서도 요즘 중앙일보에서도 조용필특집기사를 하고있고요 그래서 세월도 많이 지났으니까
지구레코드사에서 40주년을 맞이해서 권리를 다시 돌려주는 선물, 40주년을 맞이해서 그런 선물을 했으면 어떨까하는 그런 생각을
▶김경일 : 아 진짜 좋죠 그렇게 가야죠 옛날의 우리나라 음반이 제일 중요했던게 뭐냐면 외국처럼 판을 찍으면 복제를 하면 넘버링이 있어서 세금과 연관이 있어서 투명하게 되야 되는데 그냥 찍어가지고 팔면 이게
100만장이 팔렸는지 200백만장이 팔렸는지 사실 이게 200백만장 나갔는데 신고할때 100만장 나갔다고 해도 모르고 또 가수한테도 그렇게 해도 모르고 그래서
조용필씨도 처음에 지구와 계약을 했을때 거액을 받고 여러 지인들의 이쪽에서 단단한 큰회사에서 해보자 했는데 결국은
조용필씨는 지구레코드사에 들어가면서 되게 후회를 했던게 아 여기는 가수를 키우는게 아니라 매상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장사를 하는데니까 내음악을 마음대로 펼수가 없다
해서 조용필씨가 계속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3집 4집 이렇게 하면서 지구레코드사를 떠나야겠다 그리고 나의 음악성을 찾아야 되고, 회사에서 원하는 매출이나 회사에서 장사를 하기위한 고정된 음악을 만들게 아니라
내가 하고싶은 음악을 해야되겠다 그렇게 해서 조용필씨가 그때부터 그 작업을 아주 외롭게 혼자서 투쟁해왔던 그런것도 있습니다 음악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와의 관계도 중요하거든요
외국의 바카스경우는 그 회사에 데뷔하고부터 30년 50년 그 회사와 파트너식으로 가는데도 참 많은데 우리나라는 자꾸 떠날수밖에 없는게 그 가수를 위해서 정말 모든것을 헌신하고 같이 이렇게 마인드가 맞아야 되는데 그게 참 아쉬웠던 것 같아요
▶백영규 : 그 당시 우리나라 가요계 레코드회사들이, 다 색깔들이 틀리죠 예를들어서 김경일씨가 근무했던 동아기획은 상당히 음악적인 친구들을 많이 발굴해 내는 캐릭터가 있고 지금 말씀하신것처럼 지구레코드사나 다른 기타 레코드회사들은 판매량을 많이 올리기 위해서, 제가 지금 3집을 보면서도 A면에는 조용필씨가 하고 싶은 락음악, B면에는 회사에서 원하는 누군가가 은근히 약간 강요를 하는 트로트음악을 실었는데 이게 조용필만에 합의점인것 같아서 웃었읍니다
3집이 4월 미국 암펙스사에서
▶김경일 : 암펙스사라고 있는데요 거기서 골든릴상을 받았죠 '미워미워미워' 로 한국사람으로서는 외국에서 골든릴상 뿐만아니라 인정을 해주고 그래서 조용필씨는 이때부터 한국의 이런 음악을 좀더 알려줘야겠다
그때 일본의 진출하기 위한 작전이 그때부터 포섭이 깔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일 아쉬웠던건 초창기의 일본에서 조용필씨 음악을 엔가가수로 취급했을때 기분나빴는데 그것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사람이 엔가가수가 아니라 자기음악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음악을 만든다는 것을 일본사람들이 그때부터 깨달았던 같애요 80년대 중반서부터는 완전히
▶백영규 : 김순곤씨는 '못찾겠다 꾀꼬리'가 4집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잖요 그리고 '바람의노래' 라든지 최근의 마지막까지 작업한 것이 몇집에 수록되어있습니까
▶김순곤 : 음반의 실려있는 것은 말씀하신 16집'바람의노래' 그리고 조용필씨가 미국 필라델피아쪽에 녹음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작업을 하면서 계속 전화로 모니터하고 서로 그래서 그걸로 제가 큰 상도받고 그랬었죠
▶백영규 : 예 오늘 두분이랑 얘기 나누고 있는데요 우리 노래 하나 듣고서
▶김경일 : 노래듣기 전에 조금전에 물망초 들었잖아요 그 물망초를 작사하신 분이 이희우씨인데 극작가이시고 방송작가 이사장도 역임하신 이희우씨인데 조용필씨 앨범을 제가 보면 김순곤씨 같이 작사를 전문으로 하시는 분도 있지만 '너의빈자리'를 작사하셨던 임석호씨라든지 물망초를 썼던 이희우씨라든가 내이름은구름이여를 썼던 전종현씨라든가
이런 분들이 각계 음악계나 DJ와 관련된 사람들하고도 폭넓은 유대관계가 있었던 것 같애요 그래서 조용필씨가 작사나 음악을 선택할때도 고정관념의 틀의 박혀있는 흔히 레코드사와 소속되어있는 이런 사람들을 찾아다닌게 아니라 DJ던 극작가던 이런 전문
▶백영규 : 예를들어서 김순곤씨 같은 경우요
▶김경일 : 예 이런분들을 찾아서 자기음악을 하는데 열정이 되게 깊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백영규 : 그게 조용필만의 발굴작업이죠
▶김경일 : 예 그렇죠 이번의 소개할 음악도 보면은 유호작사거든요 이분도 우리나라 가요계 수십곡을 쓰셨고 '길잃은철새'이것도 유명하지않습니까
조용필씨가 음악적인것뿐만 아니라 작사에도 신경을 참 많이 썼구나 그리고 그 가사와 가성 그리고 편곡을 했을때 사람들한테 어떤 반응을 줄까 라는 것을 이미 염두해 두고 기성세대와 젊은세대를 나누어서 그것을 양면으로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것을 해나갔을때 3집에서도 뭔가 자기노력이 엿보였던 것 같습니다
▶백영규 : 오늘 김경일씨 잘나오셨네요 저는 그냥 무심코 작사자 이름을 보고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들으니까 일목요연하게 해석이 되네요 자 노래들을까요
▶나레이션 : 김지수 아나운서
다음 앨범을 더 기대하게 하는 가왕 조용필 특집을 하면 할수록 진정한 우리가요계 리더임을 새삼 떠오르게 하는 그 그에게 기립박수로 앞으로 그의 음악 행보의 힘찬 응원을 보내봅니다
▶백영규 : 김지수씨 초장에 나오셔서 해석까지 해주셨는데 가시면서 한마디 하고 가셔야죠
▶김지수 : 네 제가 지금 보이는라디오로 보이고 있을텐데 나타났다 사라졌다 헷갈리실 수도 있는데 정말 저같이 어린세대들도 참 어리진 않죠 젊은 세대들도 이렇게 조용필님의 대해서 많이 배울수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백영규 : 가고싶은마을 대변인 답습니다 김지수씨 감사드리고요 정리되는 시간이니까 문자 조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문자 감사드리구요
저작권 문제만 나오만 가슴이 여론이 형성되어서 진심으로 오빠에게 돌아가기를 6658님이 조용필씨 저작권을 걱정하는 문자를 주셨습니다
영규오라버니 여기 계셨네요 방가워요 좋아했었는데 조용필 특집이네요 8480님이 주셨구요
방송에서 오빠를 뵐수없지만 오빠 무대에서 여전히 멋지게 노래하고 계십니다 6658님이 주셨구요
▶백영규 : 문자는 개인적으로 사과드리구요 오늘 굉장히 감사드립니다 김순곤씨 같이 작업을 한 측근으로서 이제는 과거 얘기 였었구요 조용필씨한테 거는 기대치가 있을 것 같애요
▶김순곤 : 여기 가왕조용필이라고 멋진 표현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수로서보다 같은 창작인으로서 조용필이라는 작곡가 음악디렉터로서의 조용필 이런 면에서 끝없는 충격 끝없는 새로움 이런것을 후배로써 너무 기대하고 있구요 물론 너무 잘하고 계십니다만 그래도 우리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우리음악의 종사하는 작가들이 나이가 먹어갈수록 더 깊이가 있고 대단한 음악들을 그리고 결코 음악이 따라서 늙는게 아니라 언제나
젊은 세대들과 함께 할수있는 것을 보여줄수있는 그런 창작인으로써의 조용필 선배님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백영규 : 정말 한마디한마디가 전부 동감입니다 보통 우리나라 가요계 작품쓰시는 분도 그렇고 가수도 그렇고 왜 50대가 넘어가면은 뭔가 꺽이는 느낌을 받고 있는데 조용필씨는 충분히 해낼수있다는 말씀이시죠 마지막에는 조용필씨 공연도 좋습니다 공연도 좋지만은 창작곡이 실린 콘서트가 있었으면 얼마나 보람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가고싶은마을에서 기를 많이 불어넣토록 노력하겠습니다 김경일씨 가시면서 3집의 대해서
▶김경일 : 3집은 조용필씨의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적 뿌리를 되찾는 기로에 섰던 앨범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들어있는 곡들이 조용필씨 곡으로 이루어젔고 음악적인 것도 기성세대와 새로운 젊은 세대를 나누어서 남들이 다 말류하는 것을 최초로 시도를 해서 성공을 했고 또 한가지는 국악과 가요를 접목시켜서 새로운 리듬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현대화적으로 쉽게 다가갈수 있는 일을 만들어주었던게 아니였나 3집의 가장 큰거였구요 아까 잠깐 말씀드렸읍니다만
골든디스크라는게 있잖습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골든디스크 1회 수상자가 바로 조용필씨입니다
그리고 암펙스같은 경우는 프로용 레코딩 장비를 만들고, 릴테잎도 만들거든요 기계도 만들지만 DJ할때 에코 안나올때 가수들이 정식으로 다방에서 노래하고 콘서트할때 그 릴을 틀어놓고 그걸로 약간의 딜레이를 해서 만들었었는데
미국에서 100만장 이상 팔린 사람한테만 인정하고 미국에서도 마이클잭슨 밖의 안받았어요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핑클레이디라는 듀엣이 받았는데 그리고 그다음에
조용필씨가 골든디스크릴상을 받은 것이거든요 그 자체만 봐도 이미 조용필씨가 한국에 있었고 대중가요와 국악과 접목했고 자기 나름대로 음악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는데
외국에서 먼저 알아줬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인제는 40주년이 됐으니까 공연도 준비하겠지마는 후배들을 위해서 정말 음악 박물관도 만들고 다양한 계획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잘 열매를 맺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백영규 : 오늘 두분 나와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오늘 두분 덕분의 특집이 더욱 빛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경일 : 감사합니다
▶김순곤 : 감사합니다
▶백영규 : 오늘 수고하신분들 연출의 임지성,문경은 그리고 작가 김희진, 김형민 이였구요 저는 내일 네번째 특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황성옛터'를 끝곡으로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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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3집 3.4부 방송분입니다
21일간의 조용필특집을 방송으로 청취할때는
2시간이 짧게 느껴졌는데.. 기록을 하니까
길게 느껴지네요.. 수고하신분들 고맙습니다~!
비비안나님의 기록을 보면서 참고했습니다^^
3집 앨범 3.4 부 방송분 *****
★ DJ : 백영규 (가수)
★ 조용필 3집 노래 + 게스트 : 김순곤 (작사가) 김경일 (평론가)
★ 특집 방송 제작진 : PD - 임지성, 김경은, 작가 : 김희진, 김형민
★ 나레이션 : 김지수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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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규 : 백영규의 가고싶은마을 3부입니다 오늘 조용필40주년을 맞이해서 그 세번째 특집을 꾸미고 있는데요 앞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사가 김순곤씨 그리고 음악을 통해서 지금까지 한길로 걸어오셨다고 그래서 DJ. 작가, 문예부장, 두루두루 가요 요직을 해오셨는데 두분이 앞에 앉아 계시고요 21일간의 대장정 특집입니다
대장정의 특집은 주안의 위치한 옹진냉면 그리고 남동에 있는 SK텔레콤 벤처기업이죠 감사하게도 제작비 지원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감사드립니다
▶김경일 : '강원도 아리랑' 감회가 깊었던 것이 조용필씨 3집을 통해서 우리나라 민요를 춤과 연결하게 된게 이것이 최초였습니다
▶백영규 : 리듬적으로요
▶김경일 : 예, 민요보면 거의 둥실두둥실 그런 춤이였잖아요.
그런데 고고같이 약간 락적이면서도 고고리듬을 넣어서 이렇게 민요를 편곡을 해서 바꿨을때 이때부터 모든 민요나 트로트가수들이 조용필씨의 이런 음악형태를 다 따라오게 됐죠
▶백영규 : 아 그대로 닮아갔네요
▶김경일 : 그리고 메들리도 디스코나 전부 고고리듬으로 갔고 그런데 처음 이 노래 나왔을때 저는 깜짝놀랬어요 민요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지 그래서 너무 기분도 좋았고 다운타운가에서 DJ들도 이 민요를 자연스럽게, 옛날같으면 맨 밑에 음반 LP보면 군가, 새마을노래, 건전가요, 민요같은 것 넣었어도 형식적이였거든요 그런데 이 '강원도 아리랑'을 들어봤을때 그래서 저는 다운타운가에서 다방DJ할때도 틀었지만 디스코택에서도 이 노래를 틀었어요
▶백영규 : 쉽게 춤을출수 있으니까
▶김경일 : 예 아 정말 잘 추더라구요 사람들이 이 노래에 춤이 되냐 다 되죠 이때부터 민요를 현대화했던 작업이 바로 조용필씨가 가장 선구의 역활을 하지 않았나
▶백영규 : 김경일씨 얘기 들으니까 정말 새롭네요
▶김순곤 : 그런데 사실 이때가 30여년전에 작업이였는데 지금도 성인가요 가수들이 요즘 방송에서는 많이 들을 수 없겠지만 무슨 행사라든가 일터의 업소에서는 민요메들리라는 레퍼토리가 가수마다 다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작업해서 음악을 노래할때 민요메들리가 지금도 이때만큼 흥겹지가 잘들만드시지만 거의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죠 전가수들에게
▶백영규 : 저도 그 말씀을 듣고서 기억을 더듬어보니까 시장에 가면 각설이타령 틀어주는데 많잖아요 그러니까 아 이렇게 계속 전수가 되어왔구나 이런걸 느끼게 되네요
▶김경일 : 저는 민요를 조용필씨가 민요를 좋아하게 된게 판소리창법을 하면서 조용필씨가 파주라든가 문산 이런 군인들 미군클럽하우스에서 밴드로 활동할때 흑인,백인,라틴, 이런쪽으로 하다보니까 음악의 장르가 레퍼토리가 다양하게 들은거죠
처음에 조용필씨가 했던 음악들을 들어보니까 얘기했을때 레이찰스의 노래도 했지마는 가죽장수의 블루스라고 미울스키너스 블루스라고 컨츠리에서 나온 음악들도 하고 브라스밴드에서 시카고 음악도 했고 핑크플로이드나 이런 음악도 했고 흑인 소울음악도 했고 그래서 그때당시에 불렀던 처음에 2집앨범에 들어있죠 원래는 공식적인 앨범이 아니고 비정규앨범에서 들었을때 보면은
'리드미온' 같은 곡은 그때 클럽에서 일할때 흑인병사에 신청곡을 통해 들었는데 바비브랜드 노래듣고 다양한 장르를 거쳐온 것이거든요 그런데 야
창법도 좋지마는 그 음악을 현대적으로 했던 작업이 쉬운게 아니었는데 그것을 앞서갔다라는 걸 다시 또 깨달아지더라구요
▶백영규 : 그러네요 이 특집을 준비하면서 저도 많이 연구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김경일씨 조금전에 브라스밴드라든지 아까 영어발음을 해서 제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웃음) 그런 작업들 제가 오늘 처음들었어요 김경일씨 한번 더 모셔야겠네요 (웃음)
3집이 81년도에 출반이 되었는데요 물론 1집때부터 조용필씨는 우리나라 최고정상으로 달리는 길이죠 3집때는 뭔가 좀 정상에 정상 정상 뭐 마땅한 낱말을 못찾고 있는데 그때 어떤 국내라든지 외국이라든지 어떤 분위기 좀 설명을
▶김경일 : 81년도는 가요계에서도 조용필씨가 새로운 어떤 음악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사회적으로도 되게 혼란스러웠을 때예요 그때 레이건대통령이 저격을 당해서 부상당해서 난리가 났었고 또 교황바오로2세가 바틴칸광장에서 접견하다가 저격당해서 부상을 당해서 난리가 났었죠 그 게릴라들이라든가 그때 영국의 찰스황태자와 다이에나스펜서가 결혼을 했을때에요 그때가 81년 7월 29일로 제가 기억이되는데요 그 자료를 보니까 그랬구
우리나라 81년도에 통행금지가 해제됐을때요 그전에는 12시만 되면 집에도 못가고 쓰레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었고 아니면 나이트클럽에서 새벽4시까지 졸면서 있다가 (웃음) 이때 통금이 해제가 되면서 사람들한테 새로운 어떤 선진국으로 가는 어떤 역사적인게 있었죠 그리고 우리나라의 프로야구도 창립이 됐었고 그리고 영화쪽이나 음악쪽을 봤을때는 그당시 자유부인이라든가 또 60년대 작품이였던 미워도 다시한번이 리메이크되면서 날리가 났었죠 그리고 우리나라의 81년도 유행했던 붐을 보면은 캐쥬얼붐이 많았고 영화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어둠에자식들' 그리고 종교영화를 다뤘던 '만다라' '피망' '앵무새몸으로울었다' 이런 영화가 힛트가 됐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 사이에는 꼬맹이들은 스카이콩콩이 유행했던 시절이였죠 (웃음)
▶백영규 : 참 김경일씨 고맙습니다 조용필씨 특집을 이렇게 준비하시면서 국내배경까지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우리 김경일씨 뭐 노래를 하나 더 듣고 얘기를 나누죠
▶김경일 : 이 님이여는 원래 외국곡이구요 조금전에 말씀드렸던 조용필씨가 외국병사를 통해서 알게된 바비브랜드의 리드미온이라는 곡을 다시 한국적인 그때 원곡을 모르니까 그때 번안을 했을때 DJ도 하셨고 작사도 하셨던 지명길선생님이 가사를 붙었는데요
▶백영규 : 현재는 저작권협회 회장님이시죠
▶김경일 : 예 그렇죠 그때 이노래가 한국판 '님이여'로 발표가 됐었는데 오래간만에 들어보면 좋겠네요
▶백영규 : 제가 진행을 하면서 보너스로 배우는게 있어요 우리 구자형씨가 목요일날 다시듣는 명곡시간에 일전에 님이여 발표하기전에 연주를 하셨데요
기타밴드음악을 하시는데 흑인병사가 신청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날은 그것을 못받아주고 집에가서 연습을 했데요 그래서 그다음날 그노래를 했데요 그랬더니
흑인병사가 감동에 눈물을 흘리면서 박수가 엄청쏟아졌데요 그래서 그때 조용필씨가 느낀것이 아 연주를 하는것보다 기타를 치는 것보다 노래를 하니까 이렇게 박수가 많이 오는구나 그래서 내가 가수가 되야 되겠구나 결정적인 계기가 됐데요
그것도 흑인병사와의 운명적인 만남요 그래서 제가 들은 기억이 있어서 부연을 해드렸습니다 우리 님이여 듣고 얘기나누죠
▶백영규 : 김순곤씨 가사를 쓰시면서 조용필씨랑 점점 근접이 돼가잖아요 그리고 보통 음악작업을 할때 좋은 쪽으로만 갈수가 없어요 얘기하다보면 나는 이쪽으로 가고싶은데 나는 이쪽으로 하다보면 좋은 것만 있지 않고 얼굴 붉히는
▶김순곤 : 얼굴 붉히는 일이 따로 있는건 아니구요 일단은 그 얘기가 술자리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그러다 보니까 다른때보다도 특별히 각자의 자기고집들이 있잖아요
▶백영규 : 김순곤씨도 미술했으니까 한고집할 수 있죠 (웃음)
▶김순곤 : 그런데 사석에서는 형 동생 이렇게 하니까 한번은 제가 우연히 이런 얘길 한적이 있었어요 왜 트로트 성인가요를 안하시냐 국민들이 조용필이라는 가수의 대표곡이라고 하면 대다수의 나이드신분들은 미워미워나 일편단심을 꼽는데 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하는것도 의미가 있지 않느냐 이렇게 말씀드린적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밤새 토론을 시작한거죠 그래서
조용필씨 개인적인 생각은 나는 내가 더 나이가 먹고 해서 언젠가 가수생활을 접거나 해서 내가 이세상을 떠날때 트로트가수로 팬들의 기억속에 남고 싶지 않다
물론 개인적인 가수들마다 그런거지만 저는 작품자로서 그런 장르의 구분보다는 팬들에게 기여하는 차원에서 조용필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인취향의 노래도 원하고 있는데 그걸 왜안하시냐 그래서 싸움아닌 논쟁이 돼서 밤을 꼴닥 새우면서 그러고나면 때로는 한 6개월 1년 삐지는거죠 (웃음)
그러면 서로가 연락을 끊고 그러다가 다음 작업할때 전화와서 제가 꼭 작품에 참여하지 않아도 내가 이런걸 하려고 그러는데 너 생각은 어떠냐 물어오시고 그래요 그때뿐이기는 하지만 오래가긴해요 그게 한번씩 (웃음)
▶백영규 : 음악적인 거인 앞에는 그렇게 삐지는게 오래가네요
▶김순곤 : 그게 삐지는게 그것도 자존심이죠 상대방의 말을 이해를 못해서가 아니라 내 생각과 내 음악적인것을 누구한테도 굽히고 싶지 않은 그런게 너무 뚜렷하신 분이셔요
▶백영규 : 두분의 대화는 늘 평행선이네요
▶김순곤 : 네 초반의 분위기 좋다가 결과가 안좋은 적이 아주 많았어요 (웃음)
▶백영규 : 아 참 재밌네요 그 당시에 조용필씨, 아 벌써 끝곡을 들어야 되겠네요 끝곡은 '너의빈자리' 가 준비되어 있는데요 어제 출연을 해주셨던 당시의 문예부장 임석호씨 작사네요 임석호씨도 작사가 몇개가 있어요 '너의빈자리' 듣고 4부에서 다시 얘기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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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규 : 가고싶은마을 4부로 넘어왔습니다. 제 앞에는 가요평론가 김경일씨 그리고 우리나라의 거의 최고의 작사가 김순곤씨 자리 함께 하고 있는데요 광고듣고 다시 얘기 나누겠습니다.
이희우작사 조용필작곡 '물망초' 편곡은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이라고 봐도 상관없죠
▶김순곤 : 예 그렇습니다
▶백영규 : 개인적으로 조용필의 입지는 어느정도였는지
▶김경일 : 하늘을 찔렀다고 해야죠 80년도에 '창밖의여자'가 나오면서 계속 연달아서 히트곡이 나왔으니까요 그러니까 81년도만 따진다면 3집 앨범 내놓고, 조용필씨는 방송출연을 거부를 했어요
왜냐하면 방송도 좋지만 음반을 만들고 시간을 갖어야하는데 계속 방송에 불려다니고 여기저기 행사를 하다가 보니까 반응은 좋지만 음반을 만들 시간이 없다해서 방송을 처음으로 거부를 했고
이때 81년도에 우리 구정 지난지가 엊그제 였읍니다마는 81년 2월 5일날 구정특선프로로 조용필씨가 영화배우로 처음 데뷔했던 유지인씨하고 나와 가지고 영화가 나왔어요 '그사랑 한이되어' 였었는데 결론적으로 실패했죠 하지만 거액의 게런티를 받고 여러가지를 했었는데 참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때당시 조용필씨를 보면은 이 영화는 깨졌지만은 '그사랑 한이되어'가 한국연극영화대상 영화주제가 작곡상을 받았구요
그다음에 7월달의 미국 카네기홀 초청으로 처음으로 한국인 최초로 카네기홀공연을 했죠
그리고 그때당시 KBS방송대상 최우수남자가수상, 골든디스크상 받고 또 전국에 있는 PD 들이 선정한 최우수가수상 그다음에 주제가 작곡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때 작곡상을 받은건 촛불이라는 곡인데 80년의 발표해서 1년동안 인기를 얻으니까 그후에 81년도의 받은것이고 그리고 MBC 10대가수왕상에서 가수왕상을 받았고 그리고 김순곤씨가 작사한 '고추잠자리'가 최고인기가요상, 작곡상을 수상했죠 그리고 TBC 가요대상 남자최우수상,최우수가요상, 작곡상을 받았고 그때당시 히트곡 메들리 실황앨범도 나왔었구요 그리고 크리스마스캐롤집 '크리스마스를 조용필과 함께' 이렇게 해서 81년에도 조용필씨는 가수왕서부터 거의 싹쓸이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백영규 : 어느분인가 그렇게 말씀하더라구요 1주일의 하나씩 트로피가 뚝딱 나오잖아요 그래서 짐을 쌀때 그런 트로피는 그냥 상자에다, 보통 다른가수들 같으면 모두 진열을 해놓잖아요 진열을 할수없으니까 박스에다 (웃음) 그런 얘기도 들었는데 뭐 상 얘기하면 오늘 밤을 샐것겉습니다
어저께 지구레코드사 임석호씨가 나오셔서 저작권의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어요 물론 저작권이란 말은 김순곤씨는 회원이시니까
저작권의 우리가 알고 있는 커다랗게 4가지가 있죠 복제권,방송권,공연권, 전송권 이렇게 4가지가 있는데 복제권을 지구레코드회사에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김순곤 : 예 복제권이란게 부연설명을 해드리면 처음 발표됐던 음반을 다시 저작자의 허락없이 다시 찍어서 판매를 하는 그런 권리죠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백영규 : 조용필씨가 나중에는 개인적으로 다리 리메이크를 제작을 서울음반에서 하게 되죠 그래서 제가 어제 개인적으로 그런 결론을 진행자가 내리는 것은 웃읍지만 조용필 40주년을 맞이해서 경인방송에서는 특집을 꾸미고 있지마는 물론 다른방송에서도 요즘 중앙일보에서도 조용필특집기사를 하고있고요 그래서 세월도 많이 지났으니까
지구레코드사에서 40주년을 맞이해서 권리를 다시 돌려주는 선물, 40주년을 맞이해서 그런 선물을 했으면 어떨까하는 그런 생각을
▶김경일 : 아 진짜 좋죠 그렇게 가야죠 옛날의 우리나라 음반이 제일 중요했던게 뭐냐면 외국처럼 판을 찍으면 복제를 하면 넘버링이 있어서 세금과 연관이 있어서 투명하게 되야 되는데 그냥 찍어가지고 팔면 이게
100만장이 팔렸는지 200백만장이 팔렸는지 사실 이게 200백만장 나갔는데 신고할때 100만장 나갔다고 해도 모르고 또 가수한테도 그렇게 해도 모르고 그래서
조용필씨도 처음에 지구와 계약을 했을때 거액을 받고 여러 지인들의 이쪽에서 단단한 큰회사에서 해보자 했는데 결국은
조용필씨는 지구레코드사에 들어가면서 되게 후회를 했던게 아 여기는 가수를 키우는게 아니라 매상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장사를 하는데니까 내음악을 마음대로 펼수가 없다
해서 조용필씨가 계속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3집 4집 이렇게 하면서 지구레코드사를 떠나야겠다 그리고 나의 음악성을 찾아야 되고, 회사에서 원하는 매출이나 회사에서 장사를 하기위한 고정된 음악을 만들게 아니라
내가 하고싶은 음악을 해야되겠다 그렇게 해서 조용필씨가 그때부터 그 작업을 아주 외롭게 혼자서 투쟁해왔던 그런것도 있습니다 음악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와의 관계도 중요하거든요
외국의 바카스경우는 그 회사에 데뷔하고부터 30년 50년 그 회사와 파트너식으로 가는데도 참 많은데 우리나라는 자꾸 떠날수밖에 없는게 그 가수를 위해서 정말 모든것을 헌신하고 같이 이렇게 마인드가 맞아야 되는데 그게 참 아쉬웠던 것 같아요
▶백영규 : 그 당시 우리나라 가요계 레코드회사들이, 다 색깔들이 틀리죠 예를들어서 김경일씨가 근무했던 동아기획은 상당히 음악적인 친구들을 많이 발굴해 내는 캐릭터가 있고 지금 말씀하신것처럼 지구레코드사나 다른 기타 레코드회사들은 판매량을 많이 올리기 위해서, 제가 지금 3집을 보면서도 A면에는 조용필씨가 하고 싶은 락음악, B면에는 회사에서 원하는 누군가가 은근히 약간 강요를 하는 트로트음악을 실었는데 이게 조용필만에 합의점인것 같아서 웃었읍니다
3집이 4월 미국 암펙스사에서
▶김경일 : 암펙스사라고 있는데요 거기서 골든릴상을 받았죠 '미워미워미워' 로 한국사람으로서는 외국에서 골든릴상 뿐만아니라 인정을 해주고 그래서 조용필씨는 이때부터 한국의 이런 음악을 좀더 알려줘야겠다
그때 일본의 진출하기 위한 작전이 그때부터 포섭이 깔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일 아쉬웠던건 초창기의 일본에서 조용필씨 음악을 엔가가수로 취급했을때 기분나빴는데 그것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사람이 엔가가수가 아니라 자기음악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음악을 만든다는 것을 일본사람들이 그때부터 깨달았던 같애요 80년대 중반서부터는 완전히
▶백영규 : 김순곤씨는 '못찾겠다 꾀꼬리'가 4집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잖요 그리고 '바람의노래' 라든지 최근의 마지막까지 작업한 것이 몇집에 수록되어있습니까
▶김순곤 : 음반의 실려있는 것은 말씀하신 16집'바람의노래' 그리고 조용필씨가 미국 필라델피아쪽에 녹음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작업을 하면서 계속 전화로 모니터하고 서로 그래서 그걸로 제가 큰 상도받고 그랬었죠
▶백영규 : 예 오늘 두분이랑 얘기 나누고 있는데요 우리 노래 하나 듣고서
▶김경일 : 노래듣기 전에 조금전에 물망초 들었잖아요 그 물망초를 작사하신 분이 이희우씨인데 극작가이시고 방송작가 이사장도 역임하신 이희우씨인데 조용필씨 앨범을 제가 보면 김순곤씨 같이 작사를 전문으로 하시는 분도 있지만 '너의빈자리'를 작사하셨던 임석호씨라든지 물망초를 썼던 이희우씨라든가 내이름은구름이여를 썼던 전종현씨라든가
이런 분들이 각계 음악계나 DJ와 관련된 사람들하고도 폭넓은 유대관계가 있었던 것 같애요 그래서 조용필씨가 작사나 음악을 선택할때도 고정관념의 틀의 박혀있는 흔히 레코드사와 소속되어있는 이런 사람들을 찾아다닌게 아니라 DJ던 극작가던 이런 전문
▶백영규 : 예를들어서 김순곤씨 같은 경우요
▶김경일 : 예 이런분들을 찾아서 자기음악을 하는데 열정이 되게 깊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백영규 : 그게 조용필만의 발굴작업이죠
▶김경일 : 예 그렇죠 이번의 소개할 음악도 보면은 유호작사거든요 이분도 우리나라 가요계 수십곡을 쓰셨고 '길잃은철새'이것도 유명하지않습니까
조용필씨가 음악적인것뿐만 아니라 작사에도 신경을 참 많이 썼구나 그리고 그 가사와 가성 그리고 편곡을 했을때 사람들한테 어떤 반응을 줄까 라는 것을 이미 염두해 두고 기성세대와 젊은세대를 나누어서 그것을 양면으로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것을 해나갔을때 3집에서도 뭔가 자기노력이 엿보였던 것 같습니다
▶백영규 : 오늘 김경일씨 잘나오셨네요 저는 그냥 무심코 작사자 이름을 보고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들으니까 일목요연하게 해석이 되네요 자 노래들을까요
▶나레이션 : 김지수 아나운서
다음 앨범을 더 기대하게 하는 가왕 조용필 특집을 하면 할수록 진정한 우리가요계 리더임을 새삼 떠오르게 하는 그 그에게 기립박수로 앞으로 그의 음악 행보의 힘찬 응원을 보내봅니다
▶백영규 : 김지수씨 초장에 나오셔서 해석까지 해주셨는데 가시면서 한마디 하고 가셔야죠
▶김지수 : 네 제가 지금 보이는라디오로 보이고 있을텐데 나타났다 사라졌다 헷갈리실 수도 있는데 정말 저같이 어린세대들도 참 어리진 않죠 젊은 세대들도 이렇게 조용필님의 대해서 많이 배울수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백영규 : 가고싶은마을 대변인 답습니다 김지수씨 감사드리고요 정리되는 시간이니까 문자 조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문자 감사드리구요
저작권 문제만 나오만 가슴이 여론이 형성되어서 진심으로 오빠에게 돌아가기를 6658님이 조용필씨 저작권을 걱정하는 문자를 주셨습니다
영규오라버니 여기 계셨네요 방가워요 좋아했었는데 조용필 특집이네요 8480님이 주셨구요
방송에서 오빠를 뵐수없지만 오빠 무대에서 여전히 멋지게 노래하고 계십니다 6658님이 주셨구요
▶백영규 : 문자는 개인적으로 사과드리구요 오늘 굉장히 감사드립니다 김순곤씨 같이 작업을 한 측근으로서 이제는 과거 얘기 였었구요 조용필씨한테 거는 기대치가 있을 것 같애요
▶김순곤 : 여기 가왕조용필이라고 멋진 표현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수로서보다 같은 창작인으로서 조용필이라는 작곡가 음악디렉터로서의 조용필 이런 면에서 끝없는 충격 끝없는 새로움 이런것을 후배로써 너무 기대하고 있구요 물론 너무 잘하고 계십니다만 그래도 우리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우리음악의 종사하는 작가들이 나이가 먹어갈수록 더 깊이가 있고 대단한 음악들을 그리고 결코 음악이 따라서 늙는게 아니라 언제나
젊은 세대들과 함께 할수있는 것을 보여줄수있는 그런 창작인으로써의 조용필 선배님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백영규 : 정말 한마디한마디가 전부 동감입니다 보통 우리나라 가요계 작품쓰시는 분도 그렇고 가수도 그렇고 왜 50대가 넘어가면은 뭔가 꺽이는 느낌을 받고 있는데 조용필씨는 충분히 해낼수있다는 말씀이시죠 마지막에는 조용필씨 공연도 좋습니다 공연도 좋지만은 창작곡이 실린 콘서트가 있었으면 얼마나 보람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가고싶은마을에서 기를 많이 불어넣토록 노력하겠습니다 김경일씨 가시면서 3집의 대해서
▶김경일 : 3집은 조용필씨의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적 뿌리를 되찾는 기로에 섰던 앨범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들어있는 곡들이 조용필씨 곡으로 이루어젔고 음악적인 것도 기성세대와 새로운 젊은 세대를 나누어서 남들이 다 말류하는 것을 최초로 시도를 해서 성공을 했고 또 한가지는 국악과 가요를 접목시켜서 새로운 리듬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현대화적으로 쉽게 다가갈수 있는 일을 만들어주었던게 아니였나 3집의 가장 큰거였구요 아까 잠깐 말씀드렸읍니다만
골든디스크라는게 있잖습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골든디스크 1회 수상자가 바로 조용필씨입니다
그리고 암펙스같은 경우는 프로용 레코딩 장비를 만들고, 릴테잎도 만들거든요 기계도 만들지만 DJ할때 에코 안나올때 가수들이 정식으로 다방에서 노래하고 콘서트할때 그 릴을 틀어놓고 그걸로 약간의 딜레이를 해서 만들었었는데
미국에서 100만장 이상 팔린 사람한테만 인정하고 미국에서도 마이클잭슨 밖의 안받았어요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핑클레이디라는 듀엣이 받았는데 그리고 그다음에
조용필씨가 골든디스크릴상을 받은 것이거든요 그 자체만 봐도 이미 조용필씨가 한국에 있었고 대중가요와 국악과 접목했고 자기 나름대로 음악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는데
외국에서 먼저 알아줬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인제는 40주년이 됐으니까 공연도 준비하겠지마는 후배들을 위해서 정말 음악 박물관도 만들고 다양한 계획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잘 열매를 맺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백영규 : 오늘 두분 나와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오늘 두분 덕분의 특집이 더욱 빛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경일 : 감사합니다
▶김순곤 : 감사합니다
▶백영규 : 오늘 수고하신분들 연출의 임지성,문경은 그리고 작가 김희진, 김형민 이였구요 저는 내일 네번째 특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황성옛터'를 끝곡으로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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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3집 3.4부 방송분입니다
21일간의 조용필특집을 방송으로 청취할때는
2시간이 짧게 느껴졌는데.. 기록을 하니까
길게 느껴지네요.. 수고하신분들 고맙습니다~!
비비안나님의 기록을 보면서 참고했습니다^^
3 댓글
즐건아톰
2008-03-30 09:55:50
꿈의요정
2008-03-30 09:58:26
3~4부는 듣질 못했었는데 그리운모습님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 비비안나
2008-03-30 21:48:49
정성스럽게 올려 주셔서 감사히 잘 읽었어요!
‘지구레코드사에서 40주년을 맞이해서 권리를 다시 돌려주는 선물’
‘40주년을 맞이해서 그런 선물을 했으면 어떨까하는 그런 생각을’
3집 앨범 방송 들을 때 백 영규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 하네요!
그리운 모습님! 오빠 사랑하는 마음도 예쁘게 새기겼죠?
수고 많~~~~~~이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