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팬클럽 미지의 세계 Cho Yongpil Fanclub Mi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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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이 글을 쓴 사람 도대체 누군가요?

무정(當_當), 2013-05-03 21: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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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신 분은 도대체 누군가요? 대단한 분입니다.

내용들은 부분 부분 조용필님을 사랑하는 우리 골수 팬이자 매니아들이라면 익히 아는 내용들이지만

다음 메인에서 '조용필'을 검색하면, 주르륵 뜨는 메뉴중에 '많이 본 글'이라고 있고, 그 중 맨 윗자리에 자리잡고 앉아서

우매한 대중들을 열심히 계도하고 있습니다. 존경합니다.

 

 

조용필

http://imgnews.naver.com/image/144/2009/11/23/20080520000499_r.jpg

서양 음악을 비틀즈의 등장으로 전후를 나누듯 한국의 대중음악은 조용필의 등장으로 전후를 나눌 수 있다. - 평론가 임진모-

빡빡머리와 단발머리 소년과 소녀는 이제 대머리와 파마머리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조용필의 노래' 속에서 추억하고 공감한다. 그래서 조용필은 이제 하나의 역사이자 보물이 아닐까. - 김제동 -

가왕[歌王]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가수이자 2013년 현재 모든 가수들이 바라는 이 시대의 표상, 진정한 가요계의 끝판왕, 신화이자 전설 온갖 수식어가 붙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단순히 인기만이 아닌,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역사를 쓴 가수다.







1950년 3월 21일 경기도 화성시 태생. 1969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창밖의 여자"로 정식 데뷔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가수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인 동시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가요계의 황제. 별칭은 가왕(歌王). 다만 2011년 4월의 인터뷰에 의하면 본인은 이러한 명칭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조용필이라는 이름 석 자 그대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수 많은 히트곡과 한국 내 최대 콘서트 인원 동원 기록, 예술의 전당 7년 연속 공연 중인 가수다. 한국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최초로 오빠부대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가왕(歌王)이란 칭호가 붙는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본인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전성기(1980년대) 때 인기를 알고 싶다면 부모님께 여쭤보자. 대표적인 예로, 4집 앨범에 수록된 비련의 경우 조용필이 "기도하는~" 라고 첫부분을 부르면 여지없이 오빠부대들의 "꺄아아아아아"하는 비명소리에 비련의 '기도하는'의 다음 가사는 '꺄아아아아아' 혹은 '오빠아아아아!!'라는 우스개소리가 돌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거 노래방에도 재연되어 있다!! 물론 그 곡은 지금 들어도 무척 좋은 곡. 개그콘서트 "대화가 필요해"에서 신봉선이 재연하기도 했다. 김대희가 "기도하는~"만 외치면 신봉선이 다른걸 하다가도 "꺄아아아아!!"









1969년에 미8군 기타리스트 겸 가수로 출발했다. 컨트리 웨스턴 그룹 '애트킨즈'에서 활동하다가 곧 '화이브 핑거스'를 결성해서 활동했고, 주로 미8군 무대에 올랐다. 그러다 1971년 5월 3인조 록 그룹 '김트리오'를 결성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때 발표한 곡 "Lead Me On"이 선데이 서울컵 팝그룹 콘테스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트리오의 이름으로 이때 "사랑의 자장가, 님이여" 앨범도 발표했다. 이게 사실상 조용필의 노래가 들어간 첫 앨범. 이때 KBS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 "돌아오지 않는 강"도 녹음했다.

http://www.choyongpil.net/Ver5/upload/picture/1212826495.jpg?width=400


이후 1972년에는 "그룹 25시"를 결성해서 활동했고, 1974년에는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그룹을 결성,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했다. 이 곡과 함께 전설이 시작되었다. 당시 재일교포 고국방문과 맞물려 발표된 이 노래는 부산에서부터 인기가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퍼졌고, 이 일은 조용필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된다.[5] 그러나 1977년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1979년까지 활동이 금지된다.[6] 1979년 지금의 그룹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고 1집 앨범 "창밖의 여자"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 앨범은 100만장을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했고, 이후 내놓는 앨범마다 히트, 1980년대 최고의 히트 가수가 된다.

사실상 마지막 미8군 출신 히트가수이다. 장르 분화가 강해지고 언더그라운드/인디 개념이 나타나기 전에 바닥부터 올라온 마지막 가수. 전국구 방송이 아닌 지역 기반으로 전국구 스타가 된 마지막 가수[7]. 세션의 연장개념이었던 개인밴드를 영미권의 밴드의 개념으로 바꾸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현재 가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명이며, 대부분의 후배 가수들의 꿈 같은 존재다. 신해철이 개기지 못하는 몇 안되는 인물. 한 예로 모방송에서 조용필의 전화를 받자마자 신해철이 갑자기 자세를 고치고 양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김혜수의 플러스 유라는 방송에 출연 하셨을때 일각에서 마왕으로 불리우는 후배 신해철을 어떻게 생각 하시냐는 질문에 귀여운 후배로 평가 하셔서 김혜수를 비롯한 관객들이 경악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심지어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신해철이 조용필의 히트곡들을 직접 리마스터해서 특집으로 튼 적이 있었는데 혹시라도 혼날까봐 조용필이 곯아 떨어질 것이 확실한 공연날 밤을 골라서 방송을 했다. 거기다가 실제로도 한 성깔하기로 유명한 이승철이나 독설로 유명한 이은미까지 조용필 앞에서는 고개도 못 든다고 한다.









대한민국 그 어떤 가수도 현재 조용필의 업적을 따라오지 못한다. 조용필 이전 세대인 이미자패티김나훈아남진등은 물론이고 80년대 전영록김수철이용이선희뿐만아니라 조용필 이후 등장한 서태지신승훈김건모이승철과 같은 한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이 최고의 가수의 칭호를 들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조용필 때문. 흠좀무. 서태지나유재하, 이승철이 그나마 제2의 조용필이 될뻔했으나 서태지는 조용필처럼 전 장르에 걸쳐 전 세대에게 영향을 끼치진 못했고 천재의 대명사이자 한국 발라드의 창조자인 그 유명한 유재하는 뭔가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죽고 말았고 이승철은 말다했다. 조선일보의 대한민국의 최고 가수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르기도했다. 2위는 이미자. 3위는 나훈아 4위는 서태지. 조용필이 2위하는 경우는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간간히 서태지의 팬들이 비교되는 가수를 언급할 때 조용필을 언급한다. 물론 애초에 팬의 연륜이 다른고로 보통 조용필 팬에 의해서 발린다. 이런 상황인지라 싸이는 월드스타 칭호를 달고 와도 여기에 끼기 애매한 상황이다.

더불어 거대 방송국을 이길 수 있는 몇 안되는 가수라고 한다. 보통 PD들이 가수를 지칭할때 ~씨라는 호칭으로 큐시트를 주는데 조용필은 방송국에 떴다하면 국장 같은 최고위급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하니 이쯤되면 그야말로 한국 가요계에 군림하는 황제.

조용필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가수이지만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가수이기도 하다. 80년대는 음악 평론이란거 자체가 거의 전무한 시기였기 때문에 조용필의 크로스 오버적인 실험들이 90년대 중반 들어서야 겨우 조금씩 이야기 되기 시작했다.'












독보적이라고 할 만한 가수인 동시에, 작곡, 편집, 무대연출까지 못하는 게 없는 초인. 그냥 할줄 아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모든 방면에서 국내 최정상급. 앨범 사운드, 공연 퀄리티 모두 그냥 압도적이다. 워낙 능력자다보니 데뷔곡 '창밖의 여자'는 드라마 주제곡 하나 써 달라는 라디오 PD 주문에 즉석에서 5분만에 쓱싹 써낸 노래라는 말도 있는데...어디까지나 루머다. 실제로는 무려 15~20분 정도 걸렸다고. 나는 가수다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 부분. 또한 기타 실력이 국내 락 기타리스트 중 최고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기타리스트이지만(출발도 보컬이 아니라 기타리스트였다) 전성기에 그룹사운드보다는 솔로 활동이 주가 되어 묻힌 감이 많다.

뭘 모르고 가창력으로 까는 사람도 가끔 존재한다. 하지만 조용필의 가창력을 따라갈 만한 가수는 한국에 별로 없다. 4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2시간 내내 20여곡을 질러대는 노익장을 발휘하기도. 평론가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유일하게 득음했다고 인정하는 가수이다. 원래 데뷔 초기에는 미성으로 노래를 했으나, 이후 판소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고 지금의 창법이 되었다. 판소리 창법 계승으로 3옥타브 5음계까지 올릴 수 있다 한다.

다만 가창력에 대해 지적을 받은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이것은 미8군 시절 대세가 패티김, 조영남 등의 스탠더드 팝류의 창법이 노래 잘하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가늘고 흐느끼는 듯한 느낌의 조용필은 마치 트로트를 연상시켜서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고, 메이저로의 진출 전까지는 감정 표현이 부족한 가수라는 평가도 받았었다. 단지 시대가 만든 편견의 희생양이었을뿐... 오히려 그 시대의 전설적인 세시봉 출신이자 가창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송창식이 거의 그 시대 유일하게 그를 꿰뚫어 보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스로 인터뷰를 통해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를 단 한명만 꼽아보라는 말에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조용필을 지목했던 일화도 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분명 재능과 감각이 타고났으나 그것만 믿고 노력을 안 한건 아니다. 득음을 하기위해 노래 연습하다가 각혈이 나오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래 연습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재능+노력의 보상인 지금의 명성을 받을 만하다. 

게다가 시도한 장르도 매우 다양했다. 발라드블루스민요트로트동요오페라. 더 무서운건 저렇게 시도를 하고 대부분 다 성공을 했다는 데 있다. 18집에서 안토닌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 (신세계 교향곡)에 가사를 붙인 '내일을 위해'라는 곡에서 오페라가 아닌 클래식, 19집의 타이틀곡인 Hello의 경우엔 일렉트로니카버벌진트의 피처링으로 까지 섭렵했다.

현재 한국의 대중가수는 모두 조용필의 틀 안에 있다고 할 만하다. 넘볼 사람이 없는 가수 황제. 그의 콘서트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리면, 지하철 배차간격이 바뀌며, 막차시간이 2시간 연장된다. 전무후무한 기록. 심지어 김정일도 조용필의 '허공'을 애청한다고 한다. 물론 남북정상회담 당시였으니 조금 과장했을 수도 있지만, 탈북자들이 쓰는 대북 관련 책자들에서도 북한 고위층 자제들이 조용필 노래를 몰래 듣고 다닌다고 하는 얘기 정도는 훨씬 이전부터 나왔었다.










http://dimg.donga.com/wps/NEWS/IMAGE/2003/01/06/6882637.1.jpg

부인인 안진현 씨와 금슬이 좋은 것으로도 유명했으나 안타깝게도 2003년에 심장병으로 운명을 달리하였고 굉장히 슬퍼하였다. 이 슬픔을 표현한 곡이 18집에 실려있는 진(珍). 가사와 멜로디 모두 슬픈 곡이다. 공연에서 부를 때마다 울면서 부른다고 한다.

활동경력 중 오점이라면, 불륜소동과 대마초 흡연 사건.이 사건들 이후 일시적으로 은퇴하기까지 했다. 1975년 12월 대마초 파동이 연예가를 휩쓸었을 때 조용필 역시 구속되었다. 과거에 뭔지도 모르고 피우다 알레르기 반응이 생겨 곧 중단하긴 했어도 대마초를 몇 차례 피웠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죄가 경미해 활동금지는 면했었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인기가수 대열에 서자 과거 경력이 다시 문제가 되었고, 결국 다른 가수들처럼 1979년 완전 해금까지 활동금지가수가 된다.

2011년 문화일보가 실시한 창간 20주년 '대중음악사 20년 최고의 가수와 노래'조사에서 
당당하게 가수와 노래 부문 모두 1위를 차지 했다. 2위는 이승철, 3위가 서태지, 4위가 김건모, 5위가 소녀시대.
조용필 콘서트에 갔었던 아티 콘펠드의 말로는, 조용필의 우드스탁의 참가는 그의 의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가수 가운데 이 분한테 뭐라고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은 한정되어 있는데 대표적으로 신중현씨나 조용필 스스로도 존경하는 가수라고 밝힌 패티 김 정도. 재미있는 사실은 패티 김도 스스로에게 국민가수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진정한 국민가수는 조용필과 이미자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는 것. 역시 또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연말 시상식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적도 있다. 이유는 알다시피 조용필의 독주체제에 제동을 걸만한 가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 조용필은 1980년부터 1986년까지 KBS, MBC의 가수왕자리를 계속 차지했는데, 예외적으로 1982년 MBC에서 이용, 1984년에 KBS에서 김수철이 가수왕을 차지했다. 또한 이것은 스스로의 의지였다는 점.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대표주자였던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우승자에게 골든컵을 주고 순위에서 빼버리는 시스템은 조용필의 곡만 1위를 해서 그걸 막기 위해서란 이야기도 있었다.

조용필이 한국 음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어떤 아티스트나 밴드, 방송사 사장들, 기획사 사장들이나 심지어는 문화부 장관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4월 15일엔 작년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소록도를 방문해 공연을 했다. 2009년 전남 고흥과 소록도를 잇는 다리가 완공된 이후 많은 가수들이 위문 차 방문하였고, 그 때마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개드립을 했는데, 진짜 다시 방문한 사람은 조용필이 유일하다고. 음악뿐만 아니라 인간성으로도 오오 대인배 오오.

2011년 5월 7일 서울 올림픽공원 콘서트를 시작으로 2개월간 전국투어를 열었다. 이번에는 관객 앞으로 움직이는 무대를 선보였다. 그리고 2011년올해의 콘서트 티켓 최다 판매 가수의 기록을 세웠다. 2위는 이승철인데 이승철이 29회 공연한 반면 조용필은 이에 절반인 14회 공연만으로 티켓 파워에서 앞섰다.







아래는 조용필이 세운 기록들




1. Pop Song 우위의 한국 음반시장을 가요 우위로 변화시킴[15].
2. 음악성과 대중성의 양립에 성공한 대표적이고 독보적인 Artist
(최초라는 의견도 있으나, 신중현, 나훈아 등 전 세대에도 이런 아티스트는 많았다. 싱어송라이터의 시대를 연 사람인 것은 맞다.)
3. 본격 self-made 아티스트시대를 연 주인공(작사, 작곡, 편곡, 연주, 프로듀싱)
4. 앨범 개념의 정착- 양질의 히트곡이 한 음반 안에 다수 수록
5. 대중가수 최초 학문연구회 발족 - 조용필學 (Choyongpilogy) -(99년)

6. 국내 대중가요 최초로 교과서에 수록 -친구여 (5집)
7. 밴드 음악의 지속적인 투자 - 사운드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데 공헌
(유재하 같은 아티스트가 조용필 밴드 출신이다)
8. 조용필식 한국적 Rock으로 Rock의 기반을 Underground에서 제도권으로 끌어올림(이에 대해선 오히려 신중현의 공로를 더 논해야 맞다. 물론 그렇다고 조용필의 공로를 무시해야 할 건 아니다.)
9. 대중음악계에 '콘서트' 문화 정착(히트곡을 연속해서 부를 뿐인 리사이틀의 시대에서, 쇼 퍼포먼스가 결합된 '콘서트'로의 변화를 주도)
10. 대형공연의 시작과 활성화 - 체육관 콘서트, 스타디움 공연 등

11. 국내 최대 인파 동원한 야외 Concert - 해운대 10만명 이상 (1993년)
12. 공연 사상 최초 5만명 동원 - 35주년 The History’ (유료관객 4만5천명)
13. 가수 최초 월드컵경기장 투어 - 2005년 pil&peace (30여만명 동원)
14. 해외 음악시장에 처음 진출 및 성공 
15. 세계최초 7.2서라운드 콘서트 - 2007.12월

16. 20세기 최고가수로 선정 및 수상 - (설문조사1위 1999년)
17. 광복60년 영향력 있었던 인물 1위(연예인부문) -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
18. 국내 최초 단일앨범 100만장 돌파 (기네스'''인정,1991년)
19. 국내 최초 음반총판매량 1천만장 돌파(1994년, 99년 현재 국내외 2천만장 판매)
20. 국내 최초 신디사이져 도입 - 1집 단발머리 (1980년)
(이에 대해선 이견이 있는 것이, 이미 그 전부터 전자오르간이 사용되었으며 공연이나 실제 연주에서 신디사이저를 쓴 것이 확인되었다)

21. 한국 최초 M7(Major Seven) 코드 사용 - 3집 고추잠자리 (1981년)
22. 한국 최초 Digital 녹음 - 6집 (1984년)
23. 가요사상 가장 긴 대곡 (1989년) "말하라 그대들이 본것이 무엇인가를" (19분30초)[16]
24. 국내 최장수 Rock Band -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since 1980년~ 현재) 
25. 국내 대중가수 최초 미국 카네기홀 공연 (1980년)

26. 국내 대중가수 최초 공산국가 중국 북경 공연 -(냉전시대, 국교 전 1988년)
27. 국내 대중가수 최초 예술의 전당 'Opera hall Concert' (1999년)
28.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곡당 1위 횟수 제한의 계기 제공 (1983년)
29. 한국 대중음악사 최초의 fanclub '오빠부대' 탄생 (자생적인 팬클럽)
30. 한국 최초의 Concept 음반 - 13집 "The Dreams" (1991년)

31. 최초로 국악장단을 Rock에 도입하여 대중적 성공 - 4집 "자존심"(1982년)
32. Remake 일본 최고기록 -'돌아와요 부산항에' 일본가수 30여명이 리메이크 (1999년기준)
33. 일본 NHK '가요홍백전' 한국가수 최초 및 연속참가 (87,88,89,90년)
34. 일본 NHK hall 외국가수 최초 Concert (1983년)
35. 한국 대중가수 일본 음반판매량 최다 - 공식집계 6백만장,비공식 8백만장 -(1994년기준)

36. 외국가수 최초 단일앨범 100만장 돌파 -"추억의 미아" (1986년)
37. MBC 선정 정부수립 50년 최고의 스타상 '가수부문' 수상 (1998년)
38. 건국 이후 '최고의 가수'로 선정 - 조선일보& 한국갤럽 조사, (1998년)
39. 한국가수최초 평양(북한) 류경체육관 단독공연 -2005.8.23
40. Netizen 설문 통일 후 북한에서도 통할 가수 1위 (2000년)

41. 다양한 장르(락,발라드,리듬&블루스,록오페라,트롯,동요,민요 등)의 시도와 완성도 높은 음악실현
42. 민요의 대중화 ( 한오백년,강원도 아리랑, 새타령, 성주풀이 등)
43. 동요의 대중화 ('난 아니야'외 다수,동요집 '까치소리의 기쁨' 발표)
44. KBS 라디오 24주 1위 - 고추 잠자리 : 6개월여 동안 1위 기록
45. 인기순위 동시 최다곡 진입 (20위안 TV-4곡, 연예지-6곡)

46. 라디오 트롯부문/비트롯 부문 1위 동시 차지 : '타인', '마도요

47. TV가이드 '85년 12월 가요 순위에 1,2,3위 - 최다'최고 인기가수상' 수상
48. MBC'10대가수 가요제' 가수왕 수상 6회 (80,81,83,84,85,86년)
49. KBS '가요대상' 최고인기가수상 수상 4회 (81,82,83,85년)
50. TBC '방송대상' 최고 가수상 (80) 총 11회

51. 87년이후로 후배들을 위해 더 이상 상 안받겠다 선언 -콘서트 위주의 음악활동 계기
52. 현재 18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여 100곡에 가까운 히트곡을 남김 (1999년현재)
53. 가수최초 명예의 전당에 등재 - MBC (2000년)
54. 국내가수 공연 최초 첨단영상 프로젝트 PIGI영상 사용
55. 국내최초 모노, 스테레오 , 서라운드 형식공연 - 예술의 전당(1999년)

56. 올림픽관련한 음악 (서울서울서울) 및 월드컵 관련 음악 (꿈의아리랑) 작곡
57. 예술의전당 개관(93년)이후 최고치 기록갱신 - 유료판매율 1위(87%) 
58. 예술의전당 개관(93년)이후 20년간 가장 높은 예매율(104%)기록 (2008년)
59. 외국인 최초 훈장수여 - 탄자니아로부터 문화훈장 수훈 (2001년)[17]
60.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 수훈 (2003년)

61. 한국인 최초 범 아시아 콘서트 - 팩스뮤직카- (84년~2004년간 11회)
62. 한류의 원조 , 국민가수 칭호 1호 가수[18][19]
63. 한국인 최초 일본에서 골든디스크상 수상 (2회 -84년,88년)
64. 제 1회 골든디스크상 대상(대상과 본상, 인기상을 모두 석권) - (86년)
65. 국회 영문싸이트 코리안팝에 처음으로 소개 - (2005년)

66. 자유콘서트 제1회 참가 -(1997년)
67. 대한민국 음악축제 제 1회 참가 및 단독공연 - 속초 1만5천여명 -(2004년)
68. 대한민국 역사 움직인 100인에 선정(문화)-(2007년)
69. 1인 1기업 최초의 가수 - 필기획, YPC 설립
70. 한국 브랜드가치 설문조사 가수부문 1위 -(2003년)

71 한국 최고의 가수 각종 여론조사 최다 1위 - (80년대 ~ 현재까지)
72. 국내가수 최초 (조용필) 콘서트신탁 탄생 (2008년)
73.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 기록 - 스태프5천200여명 스피커300대 초대형스크린 등
74. 각종 홍보대사 위촉 및 명예시민으로 위촉 수십회
75. 국내 방송 CF - 최초 개런티 1억원 돌파 (1987년)

76. 각종서적 출간 - <바람이 전하는 말>, <조용필 그대의 영혼을 빼앗고 싶다> 등
77. 조용필에 목소리, 관상, 맹자사상에 관한 연구논문 발표됨
78. 팬덤활동: 무료영상회 및 자선행사, 인터넷방송국, 박물관 설립, 헌정밴드 조직
79. 실존가수의 노래비 건립(해운대 돌아와요 부산항에) 및 화성시 기념관 건립중
80. 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음악적 영향을 줌 (신해철, 서태지, 신승훈, 김종서, 박완규, 이승철 등...)

81. 과소 평가된 아티스트 - 여론조사 1위 조용필 - (2003년)
82. 대한민국 100대 명반 두 장 선정 - 조용필 1집(29위) / 조용필 7집(76위)
83. 조용필 7집 국내 최초의 대중적 로큰롤앨범 
- 어제오늘그리고 , 그대여 , 아시아의 불꽃 , 미지의 세계 , 여행을 떠나요
<이전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이 있었지만 앨범 전체가 인기를 얻진 못했다.>
84. 19집 <Hello>의 선공개곡 <Bounce>는 국내 음원 차트 개설 이래 만 63세, 데뷔 45년차 최고령 1위 기록(2013년)







출처 - http://mirror.enha.kr/wiki/조용필      (엔하위키 미러) 

2차수정 - 너무 길어서 본인이 중간중간 글 잘라냄. 잘린글들이 보고싶으면 윗 주소로 가서 보세요  



[무복 허용 / 본문스크랩 환영/ 걍 꼴리는대로 마음껏 퍼가셈]

12 댓글

무정(當_當)

2013-05-03 22:01:59

http://mirror.enha.kr/wiki/조용필  <---- 여기로 가니 알겠군요.  네티즌들이 함께 만드는 백과사전 같은 곳이네요. 음..

19집 관련한 내용들도 추가가 많이 되었네요. 멋진데요? 저도 여기 가입해서 해봐야겠군요. 왜 이런데가 있는줄 몰랐지?

꿈의요정

2013-05-03 22:07:16

이거...이거...누리님 한테 물어보시요~ ㅋㅋㅋㅋ 누리님글 짜집기인줄 난 아는데.....^^

푸름누리가 아닌 다른 유령(?)으로....

무정(當_當)

2013-05-03 22:08:46

그래요? 누리가? 대단한데, 누리님! 진짜 누리님이 쓴 거 맞아? 역시 일당백하네. 흠..

꿈의요정

2013-05-03 22:12:11

나.. 불어 버려도 되나 몰라. 누리님이 한방 먹일껏 같은데...두리번 두리번...쉿쉿~

있잖아...네이버지식인여기 조용필오라버니 관련답글 90프로는 아마....그 유령이...나도 돌아댕기다 오잉? 하다가

어느곳에서 딱~ 걸렸음돠~^^

그글들이 여기저기 많이 퍼져있고 몇줄 수정해서 어느분들은 본인글처럼 쓰기도 하고 그러던데....^^*

꿈의요정

2013-05-03 22:14:44

그리고 지난번엔 그글들중의 일부가 또 옆집팬클에도 올려졌었다는 사실~ ㅋ

누리님글을 펌질해서 약간수정해서 어느싸이트에 올렸더라구~^^

무정(當_當)

2013-05-03 22:16:50

역시 팬클럽 미지의 운영자답네. 누리야! 멋지닷!! 네가 짱이닷!!

이 글 조횟수가 만명에 육박하던데, 참 많은 대중들이 이 글을 접하고는 조용필님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되겠더라.

서울 가거든 내가 밥 한번 살께. 존경의 의미루다가. 궁디! 팡팡- 해주마.

하얀모래

2013-05-03 22:19:51

내가 조용필 빌보드 검색했을 때 읽은 글인데

아무리 오빠에 관한 글이지만 평소 때도 제대로 못 읽었던 것.

근데 이번엔 맘 단디 먹고 읽었지.

이 글 읽고 한밤 본방 놓쳤자나.

이 글 중간 중간 끊은거라며? 넘 길어서?

자른게 이 정도야?

암튼 잘 적은 글이더라. 사실적으로.

하얀모래

2013-05-03 22:21:38

이 글 누리님이 작성한거야?

누리님 글 작성한거 보느라 누리님 방송에 나온거 놓친겨? ㅎㅎㅎㅎㅎ

대단합니다. 진짜..

꿈의요정

2013-05-03 22:24:29

아니요. 저 글을 작성했다는건 아니구요. 누리님이 여기저기 퍼트리고 다녔던글들이 모아졌고 약간의(거의 일부분임) 수정은 되었다는....ㅡ.ㅡ

필사랑♡김영미

2013-05-03 22:32:18

네이버에서 조용필님 관련 글의 답중에서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의 90% 정도는 누리님이 했다고 보면 됩니다. 다 이름을 바꿔서 햇지만...

누리야! 멋지닷!! 네가 짱이닷!! <----이미 짱입니다...ㅎㅎ 궁디 팡팡이 아니라...업고 열 바퀴 돌아주셈...^^ 특히, 머리도 쓰담쓰담 하고...^^

 

우리 팬들은 정말 대단해요...보이든 보이지 않든...곳곳에서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것 보면은...

그래서 오늘의 기쁨도 대박도 함께 더 즐길 수 있는 거고...^^

 

필사랑♡김영미

2013-05-03 22:36:20

홈관리자 상준님께 건의,

저 위 본문 밑에 오빠의 기록들...이거 미지에 들어모면 트위트처럼 바로 화면에 쭈욱뜨서...쉽게 볼 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65일 늘 보이도록...아니면 바로가기 아이콘을 만들어서 쉽게 들어가지도록....어떤가요?...

요즘 조용필광풍으로 젊은 애들도 미지에 많이 찾아오는데....뭐든 기록으로 눈으로 보도록 해줘야.. 게임이 끝납니다.^^ 문으로 봐야 믿든 세상이라서...

예전부터 오빠의 위대한 기록을을 바로 보면 참 좋겠다...누구나 쉽게 와서 그거라도 쉽게 클릭해서 보면 좋겟다 생각했는데....능력이 안되는지라..

꿈이좋아

2013-05-04 00:46:01

회사에서 몰래몰래 보고 있는데..~~.. 넘 고마워요..그리고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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