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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뿔테 안경에 털모자를 눌러 쓴 편안한 차림. 서태지는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도 서른 나이가 믿기지 않게 앳됐다. 언제나처럼 사진 촬영은 거부했다. “얼굴도 상품이잖아요. 제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가길 원합니다.” 서태지는 귀국 이후 공연을 빼곤 일체 외부 노출을 끊고 지냈다.
얼마전 기타를 사러 외출할 때도 미리 사람을 보내 가게를 비운 뒤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싸매고 다녀왔다. ‘스타’로서 상품성을 지키려는 프로 근성이다. 신문 단독 인터뷰도 컴백 이후 처음. 직접은 연락이 안돼 선을 댄지 며칠 만에 이뤄졌다.
―작년 8월 귀국한지 반년 만에 활동을 접는 셈이다. 성과에 만족하나.
“나를 아끼는 매니아 팬들의 단결력과 애정을 확인한 게 무엇보다 기쁘다. 한국에서 생소한 ‘하드코어’ 장르에, 공백도 길었는데 앨범이 130만장 팔렸다. 한국에서도 매니아 음악이 된다는 자신감을 얻은 데 만족한다. 잃은 건 대중들과 멀어진 것이다. 예전 TV 출연 많이 할 땐 아줌마 아저씨도 많이 나를 좋아했다. 이제 그 분들은 떨어져 나갔지만, 할 수 없다.”
―컴백 때 온 나라가 떠들썩 했는데, 최근엔 스포트라이트에서 비켜난 느낌이다.
“‘어차피 친해질 수 없는 놈’이라고 내놨나보다.(웃음) 가수 한 사람이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는 게 더 웃기지 않는가. 인터뷰나 방송 섭외는 많지만, 응하지 않는다.”
―데뷔 때부터 시시콜콜한 것까지 비밀에 붙이고 신비화 함으로써 홍보효과를 극대화 하려는 행태는 변함이 없다. 그 때문에 음악적 평가와 별개로 지나치게 전략적이고 상업주의적이라는 논란을 일으켰다.
“컴백한 뒤로 앨범 팔고, 콘서트 하고, CF 한 편 찍은 게 다다. 돈벌이 하려들면 별별 제의중 몇가지라도 했겠지만, 안했다. 뭐가 상업주의냐. 오히려 일부 방송과 신문이 나를 ‘현금’으로 본다. 나에 관한 기사의 80~90%는 거짓말이다. 그리고 세계 어느 가수가 공연 전에 무대를 공개하고, 노래 나오기 전에 인터뷰부터 하나? 내가 ‘신비주의’면 외국 가수들은 다 ‘귀신주의’겠다.”
―미디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면서도 ‘비음악적 미디어’인 공중파 TV를 통해 컴백하고, 끊임없이 기사거리를 만들어 흘리는 등 누구보다 언론을 잘 이용한다.
“내 음악을 알리기 위해 집집마다 있는 ‘TV통’을 이용한 것 뿐이다. TV든 인터넷이든 사람들이 많이 보는 거면 상관없다. 신문에 대해선 좀 찔린다. 목표를 위해, 다른 길이 없으니까, 이용할 땐 이용하는 거다. 싫어도 현실이다.”
―‘비타협적 뮤지션’이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엔터테이너’에 대한 유혹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가.
“데뷔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인기도 얻고, 부와 명예도 얻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이 음악에 영향을 끼쳤다고 믿지 않는다. 언제나 가장 하고 싶은 음악을 할 뿐이다. 다른 것들은 따라왔다. 비상업적 음악도 내가 하면 대중적 요소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건 내 음악적 능력이다.”
―열광적인 팬이 있는 반면 분명한 ‘안티 서태지’ 그룹도 있다.
“상상을 초월할만큼 극단적인 인신공격과 비방을 겪은 적도 있다. 수긍이 가고 찔리는 비판은 받아들인다. 나도 바보가 아니니까 안다. 그러나 팬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서태지 죽이기’를 시도한 실체도 있다.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는 영웅이 나오기 힘든 사회다. 잘 되는 사람을 밟아야 자기가 큰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태지와 아이들 때 랩댄스로 데뷔해 힙합을 거쳐 이번엔 하드코어까지 왔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음악은 뭔가.
“우선은 미국같은 선진국 음악과 발맞춰 갈 거다. 그들의 음악은 너무 앞서 있다. 한국 음악의 다양성과 발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새로운 음악을 하는 게 좋다고 믿는다. 나도 그게 재미있다. 내게 너무 여러가지를 바라니까 힘들다. 그냥 좋아하고 만족하는 걸 하고 싶을 뿐이다.”
―2월 중순 미국으로 가면 언제 돌아오나.
“모른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맘에 들 때까지 편하게 작업하겠다. 나도 빨리 팬들과 만나고 싶다. 은퇴한 건 아니니까, 중간에 놀러라도 올 수 있지 않겠나. 조용히 잠수해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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