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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어느날이었다. 고모가 (조)용필이 오빠의 최신 소식을 전해왔다. ‘일본 도쿄에서 라이 브 공연을 펼친다’는 가슴벅찬 내용이었다.
난 그 당시 이미 어머니로 부터 “넌 무조건 용필이 한테 시집가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와서인지 나의 일본 방문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많아 큰 고 모만 집안 대표로 방문하기로 했다.
고모는 일본 공연장에서 사진만 수백장을 찍어왔을 정도로 가족을 위해 노력했다. 아쉽게도 그 사진은 집안이 서울로 이사할 때 모두 사라졌다.
난 이미 필통 연필 가방 등 모든 학용품이 ‘조용필 표’나 다름이 없었다. 오빠의 사진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한번은 오빠 얼굴이 들어간 책받침을 찢은 친구와 반나절을 싸 운 적이 있을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고모가 전화를 통해 용필이 오빠의 귀국 날짜와 시간을 알려줘 김포공항으로 직접 나선 기억이 난다. 공항은 북새통이었다. 수많은 팬들이 용필이 오빠의 모습을 보고 싶어 진 을 치고 있었다.
오빠가 공항 출구에서 빠져 나올때 수많은 인파가 그를 둘러쌌다. 나는 그 와중에서도 머리 칼 세가닥을 쟁취했다. 내 생각엔 한움큼 뜯었다고 느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다 뺐기고 결 국 세가닥만 남았다. 하지만 나는 그 머리카락을 마치 전리품인냥 가지고 돌아왔다.
그 전리품은 아직까지 집에 있다. 연습장 맨 뒷장에 스카치 테이프로 곱게 붙혀져 ‘용필이 오빠 머리카락’이라는 제목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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