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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과 보리에서 작천, 미세, 위탄까지

권효명, 2001-08-05 08:45:09

조회 수
633
추천 수
8
컴퓨터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메일이란 것을 주고받아야 하는 요즘 세상에, 컴을 멀리 하고 산다는 것은 컴을 잘 다루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인터넷을 조금씩 생활 속에서 이용하게 될 즈음 제일 먼저 알게된 '다음'의 '필과 보리' 그곳에서 다른 홈페이지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필과 보리'보다는, 나중에 알게된 작천, 미세 그리고 위탄에 더 자주 들르게 되고, 글도 남기에 되었다.

처음엔 한 동안 소위 말하는 '눈팅'이란 것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을 읽고 감탄을 연발하면서, 때론 주눅도 들면서...  

나도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러니까 오빠의 1집부터 지금까지 혼자서 꾸준히, 나름대로 열심히 좋아해 오고 있었는데 여기 저기 글을 보니 오히려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게다가 여러 홈페이지들을 운영하는 분들을 보니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어느 한 곳에 가입을 하여 소속감도 갖고 싶었고 오프모임에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각 팬클럽과 홈페이지의 특성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한 곳으로 정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다 개성이 강했고, 운영 방식과 주력하는 부분이 각각 특색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바탕에는 '오직 조용필' 이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고...



제일 먼저 인사글을 올린 곳은 '작은 천국'이었다.

거긴 게스트 방명록이 있었기 때문에 게시판에 쓰는 것보다는 부담이 덜해서 택한 것이다.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몇 자 적으면서 괜히 땀이 났다.

그만큼 처음 올리는 글은 부담스럽고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회원이 아니라도 글을 남길 수 있는 게스트방명록이 좋았다.
(그땐 회원가입 안 하면 게시판에 글을 못 올리는 줄 알았음^^)

'작천'의 게시판과 메모장을 보면 회원간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모든 회원이 너무도 친밀한 것 같아서 내가 끼어들 틈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회원 가입을 미루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에 글을 남긴 곳은 '미지의 세계'였다.

미세에서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회원가입'이란 곳은 없었다.

아! 이곳은 회원제가 아니구나 싶으니까 일단 마음 자유로웠다.

이렇게 저렇게 많은 글을 남기는 저 사람들도 다 나처럼 회원은 아니었군 하는 생각이 드니까 나도 게시판에 글을 올려도 되겠다는 용기가 불끈 솟았다^^

그래서 공연 감상,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 다른 글에 대한 댓글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방에 있는 나로서는 오프 모임에 대한 갈증은 해소할 길이 없었다.

서울서는 정모다, 번개다 하면서 모임이 있는데 부산엔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였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내가 왜 그렇게 오프모임에 가고 싶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모를 일이다.

그러던 차에 '위대한 탄생'이 부산 번개 모임을 갖는다는 공지를 접하게 되었다.

무조건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운명이 바뀔지도 모를 만큼 중요한 약속이 있었지만 그것을 뒤로 미루고, 처음으로 오프모임에 참석했다.

난 얌전히 얘기만 듣다가 돌아왔지만 참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프 모임 3주 후에 경주에서 위탄의 mt가 있어 또 참가했다.

지난번 오프때 미루었던 약속과 또다시 겹쳤지만 난 mt를 선택했다.
(그래서 내 운명이 바뀐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이젠 혼자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지금 나는 '위탄'의 회원이 되었다.

오프 모임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위탄에 가입했다기 보다는 위탄이 나를 선택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미세에 와서 글을 읽고 또 올리고, 작천에 가서 즐거운 얘기를 접하고, cd를 신청하고, 메일을 확인하면서 필과 보리, 이터널리에도 가끔씩 들른다.

천리안과 하이텔은 가입하지 않는 상태라 방문해 보지 않았지만 오프에서 만난 분들의 얘기로, 또 활동 상황을 보고 간접적으로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



각 팬클럽과 홈페이지들은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작천의 아기자기한 분위기, 미세의 자유로운 게시판,  오프가 활발한 팬클럽 위탄...

각각의 특성을 더 잘 살렸으면 한다.

어느 쪽이 옳다, 혹은 어디가 더 낫다는 식의 표현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까페' '필과 보리' 없었으면 다른 싸이트들을 아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작천의 게스트 방명록이 없었다면 글을 남기는데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미세의 열린 게시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한 줄의  글도 못 적고 눈팅만 하고 있었을 것이고, 위탄의 지방 오프가 없었다면 오프에 목말라서 기진했을 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인터넷 공간, 다양한 의견들...

  고요하기만 했던 내 생활에 생동감을 안겨준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고맙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많이들 혼돈해서 쓰곤 한다.

  "당신은 제 의견과 틀린 견해를 가지고 계시군요." 이것은 바른 표현이 아니다.

  '의견'에는 다른 것이 있을 뿐이지, 틀린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조용히 음반을 사서 듣거나, 매니아로서 활발히 참여하거나,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팬클럽을 조직하여 활동하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조용필이란 위대한 뮤지션을 사랑하는 서로 '다른' 방법일 뿐 어느 하나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나와 다른 시각을 신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한 팬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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