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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하 님께서 남기신 글
"조용필과 나"...신년인사를 대신하며(야마구치 작성)
내가 고려대 한국어 어학연수 기관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한국인 선생님과 일본인, 중국인 학생들 5∼6명으로 구성된 클래스였었던가? 필시 다른 학생들이 '부모님' 또는 '학교 선생님'이라고 대답하는 가운데 나만이 '조용필'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농담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고, 나 또한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자라온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분명히 '조용필'이라고 지금도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이유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이란 나라가 내 안에 인식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을까?
88년 올림픽 유치당시 서울과 최후까지 경쟁했던 곳이 일본 나고야였습니다. 당연히 나고야로 결정될 줄 알았으나 서울로 결정되어 어린아이임에도 분한 마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잘된 일이었을까?)
그 후 중학생이 되었을 때 친구 아버지가 한국으로 전근하시게 된 것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시 기차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그 친구로부터 한국의 '기차시간표'를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기하학 모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한글이 가득 쓰여져 있었고 매우 신선한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습니다. 그 시간표에는 한글과 한자가 병기되어 있어서 나중에는 일본어 지도를 참조하면서 지명을 그저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수원, 평택, 천안, 대전, 김천, 대구, 부산, 전주, 광주, 목포.... 그랬더니 저절로 한글의 짜임새를 발견했던 것입니다.(한글을 많이 써보면 저절로 공통된 발음에는 공통된 문자가 있다는 것은 발견할 수 있겠죠.)
그때부터 의미는 잘 모르지만 중학생 무렵에는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중학생 무렵의 내가 더욱 한국에 빠져들게 된 것은 곁에 있었던 단파라디오 때문이었습니다. 우연히 맞춘 채널에서 들려온 것은 KBS 국제방송 「라디오 코리아」의 일본어방송이었던 것입니다.
중학생, 고교생 무렵, 즉 84년부터 88년 경에 걸쳐서는 매일같이 KBS 일본어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무렵입니다. 조용필 전성기입니다. 일본어 방송도 예외없이 한국이라고 하면 화제의 중심은 조용필과 올림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라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KBS 일본어 방송을 통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음악장르를 초월한 「혼의 외침」을 표현하는 불세출의 위대한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조용필 음악을 만나지 않았다면 한국에 대해서도 단순한 관심으로 끝나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조용필이 노래하는 한국어 가사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어, 고교입학 축하선물로 숙부에게 받은 용돈으로 사전을 사고, 더 나아가 매달 용돈을 모아서 통신판매로 한국에서 발매된 앨범을 전부 구입했던 것입니다.
처음으로 구입한 7집 가사를 사전을 한손에는 들고 해석했던 것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각됩니다.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그 날의 충격..........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조그만 소포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안을 열어보자 1집에서 4집까지 카세트테잎이였습니다. 순서대로 1집부터 라디오카세트에 테잎을 넣고 스위치를 누르고 교복을 갈아입으려고 한 순간, 내 몸을 흐르는 피가 역류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창밖의 여자」오리지널 버전을 처음으로 들었던 순간입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내 인생이 결정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완전한 조용필 팬이 되었고, 그 감동이 한국어를 계속 공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조용필 전성기에 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주위에는 특별이 조용필 음악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고, 대학생, 사회인이 되어서도 나는 홀로 그의 음악을 계속 들어왔습니다.
고려대 한국어 어학연수 기관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당시도 그랬습니다. 그 상태는 인터넷에서 「작은천국」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인터넷에 연결하고 한국어 소프트를 설치해서 최초로 검색한 것이 역시 「조용필」사이트였습니다. 「작은천국」을 발견했을 때는 펄쩍뛰며 기뻐했었습니다. 즉시 사이트 운영자(최종근님)에게 멜을 보냈더니, 그 멜이 사이트 운영자를 통해서 소개된 것을 계기로 처음으로 「조용필」팬인 친구가 생겼습니다. 그것이 99년 6월 초순, 내가 조용필 음악을 만난 후로부터 실로 16년의 세월이 흘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3월에는 드디어 「작은천국」을 통해서 서로 알게된 친구와 직접 만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후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작은천국」을 중심으로 나도 인터넷상에서 친숙해진 얼굴이 된 것입니다.
지난달 예술의전당에서의 공연은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매우 감동적인 공연이었겠지요.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도 매우 감동적인 공연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는 공연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넘쳐흘러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부근에 앉아 있었던 분들은 공연에 못박혀 나의 눈물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만, 눈물이 넘쳐흘러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난 아니야」를 아이들이 노래하는 장면에서 최초의 눈물 한 방울이 흘렀습니다만, 「못찾겠다 꾀꼬리」를 부를 때 나도 어린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매우 일본 풍경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고, 다른 부분이라고 하면 달이 뜨는 것은 한국에서는 교회지붕인 것에 비해 일본에서는 절 지붕 위라는 것 정도일까요?
어린시절을 회상하니 얼마 안 있어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이 되어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고, 조용필 노래를 만났던 당시를 회상하고, 지금 이곳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 자신이 있다..........
그 감동으로부터 더욱 더 복받쳐 올라 그만 淚腺이 느슨해져 버렸습니다.
확실히 「조용필」은 사춘기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내 추억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여」에서는 태어난 국가가 다름에도 그를 통해서 서로 알게된 많은 친구들과 감동을 함께 맛보고 있다는 사실에 더한 감동이 가슴에 밀려와서.......넘쳐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었습니다.
때문에 공연 후 여러분과 함께 식사를 한 「팬클럽 연합모임」에서는 술을 마시기 전부터 이미 취해버렸던 것입니다.
(다시금 당일 음력생일을 축하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조용필.......
내 인생에서 그와, 그의 음악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을 감사드리고, 그리고 그를 통해서 알게된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02년 연두사를 대신해서
야마구치 다카요시
ps. 이글은 요즘 바쁜 야마구치상이 일본어로 써주신 것을 제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넘 감동적이었던 원본에 비해 미숙한 제 일본어 실력으로 인해 그 감동이 제대로 작천가족분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만....이 글을 통해서 야마구치상이 어떻게 조용필 팬이 되었고, 작천가족이 되었는지 궁금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램입니다....
"조용필과 나"...신년인사를 대신하며(야마구치 작성)
내가 고려대 한국어 어학연수 기관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한국인 선생님과 일본인, 중국인 학생들 5∼6명으로 구성된 클래스였었던가? 필시 다른 학생들이 '부모님' 또는 '학교 선생님'이라고 대답하는 가운데 나만이 '조용필'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농담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고, 나 또한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자라온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분명히 '조용필'이라고 지금도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이유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이란 나라가 내 안에 인식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을까?
88년 올림픽 유치당시 서울과 최후까지 경쟁했던 곳이 일본 나고야였습니다. 당연히 나고야로 결정될 줄 알았으나 서울로 결정되어 어린아이임에도 분한 마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잘된 일이었을까?)
그 후 중학생이 되었을 때 친구 아버지가 한국으로 전근하시게 된 것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시 기차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그 친구로부터 한국의 '기차시간표'를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기하학 모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한글이 가득 쓰여져 있었고 매우 신선한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습니다. 그 시간표에는 한글과 한자가 병기되어 있어서 나중에는 일본어 지도를 참조하면서 지명을 그저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수원, 평택, 천안, 대전, 김천, 대구, 부산, 전주, 광주, 목포.... 그랬더니 저절로 한글의 짜임새를 발견했던 것입니다.(한글을 많이 써보면 저절로 공통된 발음에는 공통된 문자가 있다는 것은 발견할 수 있겠죠.)
그때부터 의미는 잘 모르지만 중학생 무렵에는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중학생 무렵의 내가 더욱 한국에 빠져들게 된 것은 곁에 있었던 단파라디오 때문이었습니다. 우연히 맞춘 채널에서 들려온 것은 KBS 국제방송 「라디오 코리아」의 일본어방송이었던 것입니다.
중학생, 고교생 무렵, 즉 84년부터 88년 경에 걸쳐서는 매일같이 KBS 일본어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무렵입니다. 조용필 전성기입니다. 일본어 방송도 예외없이 한국이라고 하면 화제의 중심은 조용필과 올림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라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KBS 일본어 방송을 통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음악장르를 초월한 「혼의 외침」을 표현하는 불세출의 위대한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조용필 음악을 만나지 않았다면 한국에 대해서도 단순한 관심으로 끝나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조용필이 노래하는 한국어 가사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어, 고교입학 축하선물로 숙부에게 받은 용돈으로 사전을 사고, 더 나아가 매달 용돈을 모아서 통신판매로 한국에서 발매된 앨범을 전부 구입했던 것입니다.
처음으로 구입한 7집 가사를 사전을 한손에는 들고 해석했던 것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각됩니다.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그 날의 충격..........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조그만 소포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안을 열어보자 1집에서 4집까지 카세트테잎이였습니다. 순서대로 1집부터 라디오카세트에 테잎을 넣고 스위치를 누르고 교복을 갈아입으려고 한 순간, 내 몸을 흐르는 피가 역류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창밖의 여자」오리지널 버전을 처음으로 들었던 순간입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내 인생이 결정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완전한 조용필 팬이 되었고, 그 감동이 한국어를 계속 공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조용필 전성기에 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주위에는 특별이 조용필 음악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고, 대학생, 사회인이 되어서도 나는 홀로 그의 음악을 계속 들어왔습니다.
고려대 한국어 어학연수 기관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당시도 그랬습니다. 그 상태는 인터넷에서 「작은천국」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인터넷에 연결하고 한국어 소프트를 설치해서 최초로 검색한 것이 역시 「조용필」사이트였습니다. 「작은천국」을 발견했을 때는 펄쩍뛰며 기뻐했었습니다. 즉시 사이트 운영자(최종근님)에게 멜을 보냈더니, 그 멜이 사이트 운영자를 통해서 소개된 것을 계기로 처음으로 「조용필」팬인 친구가 생겼습니다. 그것이 99년 6월 초순, 내가 조용필 음악을 만난 후로부터 실로 16년의 세월이 흘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3월에는 드디어 「작은천국」을 통해서 서로 알게된 친구와 직접 만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후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작은천국」을 중심으로 나도 인터넷상에서 친숙해진 얼굴이 된 것입니다.
지난달 예술의전당에서의 공연은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매우 감동적인 공연이었겠지요.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도 매우 감동적인 공연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는 공연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넘쳐흘러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부근에 앉아 있었던 분들은 공연에 못박혀 나의 눈물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만, 눈물이 넘쳐흘러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난 아니야」를 아이들이 노래하는 장면에서 최초의 눈물 한 방울이 흘렀습니다만, 「못찾겠다 꾀꼬리」를 부를 때 나도 어린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매우 일본 풍경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고, 다른 부분이라고 하면 달이 뜨는 것은 한국에서는 교회지붕인 것에 비해 일본에서는 절 지붕 위라는 것 정도일까요?
어린시절을 회상하니 얼마 안 있어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이 되어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고, 조용필 노래를 만났던 당시를 회상하고, 지금 이곳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 자신이 있다..........
그 감동으로부터 더욱 더 복받쳐 올라 그만 淚腺이 느슨해져 버렸습니다.
확실히 「조용필」은 사춘기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내 추억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여」에서는 태어난 국가가 다름에도 그를 통해서 서로 알게된 많은 친구들과 감동을 함께 맛보고 있다는 사실에 더한 감동이 가슴에 밀려와서.......넘쳐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었습니다.
때문에 공연 후 여러분과 함께 식사를 한 「팬클럽 연합모임」에서는 술을 마시기 전부터 이미 취해버렸던 것입니다.
(다시금 당일 음력생일을 축하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조용필.......
내 인생에서 그와, 그의 음악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을 감사드리고, 그리고 그를 통해서 알게된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02년 연두사를 대신해서
야마구치 다카요시
ps. 이글은 요즘 바쁜 야마구치상이 일본어로 써주신 것을 제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넘 감동적이었던 원본에 비해 미숙한 제 일본어 실력으로 인해 그 감동이 제대로 작천가족분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만....이 글을 통해서 야마구치상이 어떻게 조용필 팬이 되었고, 작천가족이 되었는지 궁금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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