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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왕 열전 3 - 조용필(上)/몰래 듣던 조용필 노래 (한겨레기사)

배가본드, 2003-01-20 01: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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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을 시작하기에 앞서 부인을 잃으신 조용필씨에게 삼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80년대 가요를 더듬어보려 하니, `조용필’이라는 거인의 그림자가 먼저 밟힙

니다. 조용필은 MBC 10대 가수가요제에서 80년에서 86년까지 7년동안 82년 단

한차례(이용)만 제외하고, 완전히 천하통일했습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인해 곧잘 부산 출신으로 오해받는 조용필은 1950

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경동고를 졸업(프로야구 백인천 감독도 경

동고 졸업)한 그는 음악을 위해 졸업식날 친구들과 가출합니다.

조용필이 처음 매료된 음악은 록이었습니다. 69년 10대의 조용필은 `화이브 핑

거스’의 기타리스트로 미8군 무대에 섭니다. 우리가 아는 조용필은 뛰어난

가수, 작곡가로 알고 있지만 조용필은 기타 연주실력만으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혔습니다.

조용필이 노래를 시작한 것은 어느 날, 그룹 리더싱어가 몸이 아파 응급조치

로 기타치던 조용필을 무대에 올렸는데 반응이 더 좋았을 때부터입니다.

71년 조용필은 3인조 록그룹 `김트리오’(80년대 초반 <연안부두>를 부른 김

트리오가 아닙니다)를 결성합니다. 김트리오에는 80년대 `사랑과 평화’의 멤

버였던 이남이도 함께 합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이 시기에 처음 부릅니

다. 이 시기에 김 트리오는 `선데이서울컵 팝그룹 콘테스트’에 나가 최우수상

을 받습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까지 조용필은 그저 극장무대와 지방 중소도시를 순회하

는 배고픈 무명가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취입하면서 달라집니다. 부산쪽에서부터

인기몰이가 시작되면서 인기가수의 대열로 진입하려 합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뒤, `대마초 가수’ 파동이 일어나고 무명가수 조용필도 명단에 낍니다. 미

8군 무대 주변에서 한 대 얻어피웠던 옛 일이 문제가 됐던거죠.

조용필은 실의에 빠져 가수생활을 접기로 합니다. 그러나 77년 무렵 조용필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민요 <한오백년>을 듣고 다시 음악의 열정에 사로잡힙니다.

이때부터 고행이 시작됩니다. 명산대천을 돌아다니며, 판소리 명창들이 폭포

아래에서 소리하듯 연습, 또 연습합니다.

원래 조용필의 목소리는 미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용필은 허스키한 목소리를

늘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80년 조용필이 스타가 된 뒤, 인터뷰에서 조용필은 `

로드 스튜어트를 연습했다’고 했는데, 그때 저는 많이 의아해 했습니다. 조용

필과 짙은 허스키 보이스인 로드 스튜어트는 같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또 당시 조용필의 노래도 슬로고고, 디스코, 트롯트 등으로 로드 스튜어트 류

의 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조용필은 이 은둔의 시기에 양동이에 피를 토하며, 성대를 긁는 `탁

성’을 갈고 닦습니다. 조용필의 목소리에 약간 거친 음색이 가미된 것도 이

때부터라고 생각됩니다.(저는 탁성을 갖기 이전의 조용필 목소리를 들은 적은

없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은 대마초 가수에게도 해금이라는 한 줄기 빛을 내립니다.

조용필은 은둔의 시기때 갈고 닦은 노래들을 한꺼번에 내놓습니다.

조용필 시대의 화려한 막이 오른 것입니다.

1집 <창밖의 여자> 앨범에서는 그해 봄 <창밖의 여자>, 여름 <단발머리>, 가

을 <잊혀진 사랑> 등이 연달아 히트합니다.

조용필이 작곡한 <창밖의 여자>는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였습니다.

이 노래는 이곳저곳에서 많이 인용됐는데, 1980년 가을 무렵 드라마 <달동네>

에서도 곧잘 나왔습니다.


잠시 <달동네>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단칸방에 어울려 사는 달

동네 서민들의 이야기인데, 집주인은 강부자였고, 추송웅과 6살짜리 딸 똑순

이 김민희(`계란 노른자 동동 띄웠어요’, `아빠 손잡고, 어매 손잡고' 등의

명대사 기억하십니까?), 차화연, 권투선수(불량배 역으로 많이 나왔는데 요

즘은 안보이네요), 신혼부부 노주현(?)-이미숙 부부(이미숙은 아마 이때 데

뷔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식모살이하던 장미희.

이 드라마의 헤로인은 장미희였습니다.(장미희는 70년대말~80년대초 정윤희,

유지인과 함께 2세대 트로이카였습니다. <꽃순이를 아시나요>, <앵무새 몸으

로 울었다> 등에 출연한 정윤희가 관능미의 화신이었다면, <바람불어 좋은 날

> <26X365=0> 등에서 대학생 역을 주로 맡은 유지인은 지성미가 강했고, 77년

<겨울여자>로 데뷔한 장미희는 청순미가 강했습니다.-지금의 장미희

만 아는 이들은 잘 이해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장미희는 이때 머리를 옛 여고생들처럼 두 갈래 머리로 땋고, 촌스런

옷차림에다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순박한 처녀였습니다. 새댁 이미숙에게 매

번 꾸중듣곤 하는.

그런데 이때 늙다리 노총각 김인문(아시죠?)이 장미희를 짝사랑합니다. 집집마

다 돌아다니며 고장난 라디오 등을 고쳐주는 일을 하던 김인문은 밤만 되면 장

미희가 식모살이하는 집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정말 처량한 표정으로 라디

오 볼륨을 크게 높이는데, 이때 나오는 노래가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였습니

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라는 대목. 그때마다 난처해진 장미희가

밖으로 뛰쳐나와 `증말 왜 이런대유, 제발 이러지 마세유’(<명랑소녀 상경기>

의 장나라 대사와 거의 흡사합니다)라고 하고, 김인문은 아래로 처진 그 불쌍

한 눈망울을 하고서 `00씨(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 제 마음을 지발 좀 알아주

세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때 장미희는 옆방의 권투선수를 또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때 권투선수는 또다른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안소영이었습니다.

<애마부인>(82년)으로 명성을 떨치기 전인 이때, 이 드라마가 안소영의 데뷔무

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조연인 안소영을 지금껏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도 제가 당시 `몽정기’에 막 접

어들 무렵인지라, 처음 안소영을 보고서(그때 안소영은 장미희 때문에 마음

이 흔들리는 애인과 장미희에게 톡톡 쏘아붙이는 못된 역이었는데 주로 몸매

가 잘 드러나는 니트와 몸에 쫙 들러붙는 흰 면바지, 그리고 털모자를 쓰고 나

왔습니다) `와, 무슨 젖이 저렇게 크냐’라는 생각을 좀처럼 떨치지 못했기 때

문이었을 것입니다.



<달동네>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다시 조용필로 돌아가서.

<창밖의 여자> 이후 나온 <단발머리>는 또다른 조용필이었습니다.

<단발머리>는 `신서사이저’와 `가성’을 인용한 첫 가요가 아닌가 생각됩니

다. 전자오락에서나 들을 수 있는 `뿅뿅뿅’하는 효과음(갤러그 소리와 비슷했

습니다. 저는 갤러그보다 제비우스를 더 좋아했습니다만)과 노래의 대부분을

진성이 아닌 가성으로 부르는 것은 이때 조용필에 의해 처음 시도됐습니다.

<창밖의 여자>가 주로 어른들이 좋아했다면, <단발머리>는 가요의 향유층을 청

소년층으로 넓힌 계기가 됩니다. `오빠부대’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입니다. 이전까지는 가요란 어른들이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청

소년들이 적극적으로 가요를 듣기 시작하면서 가요의 흐름도 청소년 위주로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그 단초가 조용필에서부터 본격화된 것입니다. 예전에

도 남진 등이 오빠부대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이른바 팬클럽이라는 형태로 조

직화되기 시작한 것은 조용필이 처음이었고, 그 `오빠부대’를 끌어들인 단초

가 된 노래는 <창밖의 여자>가 아닌 <단발머리>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기 노래 가운데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를 좋아

해 중학교때 들은 이 노래를 대학때까지도 중요한 시기(?)마다 흥얼거리곤 했

습니다. 고등학교때 여자친구에게 실연당한 제 친구가 `00야, 다 잊었는데,

이 노래만 들으면 마음을 못 잡겠다'고 말한 것도 기억납니다.

아래는 노래가사입니다.

다시는 생각을 말자 생각을 말자고
그렇게 애타게 말 한마디 못하고
잊어야 잊어야만 될 사랑이기에
깨끗이 묻어버린 내 청춘이건만
그래도 못잊어 나 홀로 불러보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1980년 조용필은 방송사 가요상을 싹쓸이합니다.

MBC 10대 가수가요제에서 꽃다발에 파묻혀 조용필은 흐느껴 웁니다. 아마도

암울했던 지난 시절이 절절이 가슴에 스며들었기 때문이겠죠.


1981년초 조용필은 2집을 발표합니다.

<촛불>이 히트곡이었습니다. `그대는 왜~’라고 하면 에코음이 울리는 게 인상

적이었습니다만, 1집이 워낙 빅히트를 기록한 탓에 그 정도에 미치지는 못했습

니다.

저는 2집에서는 개인적으로 <간양록>을 좋아했습니다. MBC 드라마 <간양록>의

주제가였습니다. <간양록>은 이정길이 주연한 드라마로,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입니다.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서리 이고
어버이 한숨실은 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으리
어야- 어야- 어야-

피눈물로 한줄 한줄 간양록을 적으니
님그린 뜻 바다되어 하늘에 달을 세라
어야- 어야- 어야-

이때부터 조용필은 우리음악인 창에 대한 관심으로 매 음반마다 판소리풍 가요

를 계속 발표하는데, 간양록도 그 일환이었던 것 같습니다.


2집 발표 이후, 봄부터 조용필은 방송활동을 잠정중단합니다.

가수들이 음반발표한 뒤, 활동하다 방송중단하고 음반준비하다가 다시

복귀하고 하는 활동형태도 조용필에서 처음 시작된 것입니다.


81년 8월1일 조용필은 3집을 들고 몇 개월만에 다시 나타납니다.

아마도 해운대 해변이었던 것 같은데, 바닷가에 특설무대를 마련하고 들고 나

온 노래가 <고추잠자리>였습니다. <단발머리>의 후속편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

다.

<고추잠자리>는 `엄마야’라는 멜로디 부문이 유행어처럼 번졌고, 5주로 묶여

있는 텔레비전 부문에 비해 무제한으로 돼있는 라디오 부문에서는 13주동안

(그해 가을 내내)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조용필은 팬층이 전연령층으로 확대됩니다. 10대 후반~20대들에게

는 <고추잠자리> <여와 남>(OB맥주 CF음악으로도 쓰입니다. 대관령 목장에서

친구와 함께 양떼를 모는 조용필이 등장하는 광고 기억나십니까?), <물망초>

(드라마주제가로도 쓰입니다. 정윤희가 거의 마지막으로 나온 TV드라마가 아닐

까요?) 등으로 다가갔고, 중년층들에게는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

레야> 등 정통 트로트 음악으로 어필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강원도 아리랑> <황성옛터> 등으로 노년층까지 팬층으로 끌어

들이면서 명실상부한 국민가수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팬클럽으로 조직되는 오빠부대가 꾸역꾸역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입니다. 조용필은 이때 이미 서른을 넘어선 나이였지만, 워낙 동안(童顔)

인데다 당시 노래가 저같은 10대들에게 크게 다가와 여중생, 여고생 팬들이 넘

쳐났습니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히트곡을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가요 인기순위는 조용필

노래로 도배가 됐고,(60년대 중반, 비틀즈가 빌보드 팝차트 1~5위까지를 몇 주

동안 내리 휩쓴 것과 비교해도 될 듯 합니다) TV에서는 <미워 미워 미워>가,

라디오에서는 <고추잠자리>가 나란히 1위를 하는 경우도 늘어났습니다.

조용필이 최고의 고공행진을 한 게 아마도 81년이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다

른 가수들은 아예 활동을 중단하는 게 나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조용필을 두

고 가왕(歌王)이라는 별칭이 붙기 시작했고, 20세기를 통틀어 40~50년대의 남

인수와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이해 10대 가수가요제도 조용필 위주로 바껴 버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누구

나 `가수왕’이 조용필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기에 방송사는 아예 다른 가수들

의 시간은 짧게 끝내고, `가수왕 조용필’을 발표하고 뒷부분을 `조용필 무

대’로 꾸며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10대 가수가요제를 이렇게 구성한 것은 36

년 역사동안 이때가 유일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저는 이때부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른바 팝과 가요의 위상 때문이었습니다.

초등학교때에야 어른들 쫓아다니며 가요를 듣곤 했는데, 청소년기가 되어 친

구들과 어울리면서 팝(구체적으로는 록)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록 계

보를 줄줄 꿰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가요를 듣는 것을 거의 경멸하다

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팝을 들으면서 강렬한 비트와 사운드에 매료되면서 단조로운 리듬

과 멜로디 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가요가 시시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빽판을 사러 돌아다니기도 하고, 레드 제플린 원판을 다 갖고

있다는 아이를 무슨 영웅처럼 우르러 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보냈습니다. 또 당

시 <월간 팝송>은 우리들의 음악교과서였습니다.

팝을 듣는데도 일종의 서열이 있었습니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롤링 스톤즈, ACDC 등 정통 하드록 계열이 최고의 자리

를 차지했고,

퀸, ELO, REO 스피드웨건, 포리너, 저니 등 프로그레시브 록 계열은 두번째 자

리를,그리고 비지스, 아바, 올리비아 뉴튼 존, 캐니 로저스 등 디스코 또는 컨

트리 발라드 계통의 일반 유명 팝가수들은 3번째 자리였습니다.

4번째 자리도 있긴 했는데, 외국에는 무명이지만 한국에만 알려진 뿌리없는 유

럽의 팝그룹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Wanted>의 둘리스(영국), <Hello, MR.

Monkey>, <Hey, Midnight Dancer> 등을 부른 아라베스크(독일/가운데 17살짜

리 여자 싱어가 당시 남자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Sexy

Music>의 여성 4인조 놀란스(영국?) 등이 그들입니다.(혹 4번째 서열의 가수들

을 좋아했다고 해서 자존심 상해하시진 말기 바랍니다. 당시 아이들의 치기였

으니까요)

이른바 록을 듣는답시고, 겉멋이 든 우리들에게 가요의 위치는 이 4번째 자리

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가요를 안 듣기 시작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용필 노래는 웬

지 모르게 떨치기 힘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친구들 몰래 레코드점에 가서 테이

프 하나에 조용필 노래를 모두 녹음시켜 놓고(당시에는 레코드점에서 팝이나

가요를 돈받고 녹음해 주는 게 성행했습니다), 겉에는 아무 표시도 하지 않고

서 집에서만 몰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또하나, 저를 괴롭히는 게 더 생겨났습니다.

이때 저는 친구 따라 교회를 다녔는데, 당시 보수적이었던 그 교회는 학생들에

게 `록음악은 사탄의 음악이니 듣지말라’고 한 것입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가요는 친구들 눈치 보느라 못 듣고, 록은 교회에서 듣지 말라고 하고.(교회에

서 제발 성경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무엇을 하지 말라’는 식의 이런 이야

기를 청소년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합니다). 귀가 얇은 저는

한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클래식 음악을 억지로 꾸역꾸역 듣곤 했습니

다. 갈 곳이 거기 밖에 없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또하나의 세계를 찾을 수 있

는 기회가 되긴 했습니다.


조용필이 확실히 대단한 인물이긴 한가봅니다. 80년과 81년 두 해를 이야기했

을 뿐인데도 글이 너무 길어져 이쯤에서 일단 끝을 맺겠습니다.

`가수왕 열전’ 4편에서 이용, 김수철, 전영록 등 조용필과 맞짱 뜨는 인물들

이 생기는 80년대 중반부터 그 이후까지의 조용필을 압축적으로 전하겠습니다.



권태호 올림 ho@hani.co.kr


9 댓글

불사조

2003-01-20 04:08:55

81년 여름.. 각 방송사의 저녁 황금 시간대 를 좌지우지했던 시기..가수 한사람이 1~2시간을 매주 공연한다는 것은 아마도 전무 후무한 기록이 될것이다.

불사조

2003-01-20 04:14:21

그시기..불사조는 인생의 황금시기인 약관의 나이를 지나면서 필님의 노래따라 정처없이 흘러갔던 ..끝없는 방황의 터널..(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 가는 군요)

chadoll

2003-01-20 06:54:39

참 대단하십니다...제10대후반의 모든 기억들을 되돌려놓는듯하군요...저는 "단발머리"를 여고시절때 많이 따라불렀던 기억이있습니다...잘 읽었습니다..

katie

2003-01-20 10:53:36

저하고 연배가 엇비슷하신가봐요...기억에..생생하네요... 중학때 듣던 단발머리...저도 단발머리 였거든요......^*^

미르

2003-01-20 13:12:09

전 초딩때 창밖의여자 란 노래로 필님께서 한창 주가를 날리셨을때 전 그음악이 무슨 노래인가 했던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첨으로 들어본 단발머리 국민학생이었던 절 한순간에 매료시켰던 그

미르

2003-01-20 13:13:17

노래 뽕뽕^^;;그리고 요상하게 불렀던 가성창법^^;; 그때가 그립습니다~~~~

꽃이되고싶어라

2003-01-20 17:45:09

지금 인터넷방송 들으면서 글 읽고 있는데 너무 행복합니다. 제가 평소 아시워하는것중 하나가 필님의 전성기동안 제가 너무 어렸다는 겁니다.

꽃이되고싶어라

2003-01-20 17:47:33

이렇게 상세하게 쓰여진 기사를 보니 그 시절을 되돌려 보는듯 좋네요. '아하그렇지'가 한창 유행이던 초등학교시절...그때부터 특별한 계기없이 오빠를 좋아하게 된거 같아요...

짹짹이

2003-01-20 18:58:25

나그네님....잘 읽었네요...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잠시 옛추억에 빠져볼수 있엇네요...덕분에 말이지요...4편 기대할께요...힘찬 한주 되시길 바랄께요...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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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메달 수익 음악 영재 발굴에 기부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메달 수익 음악 영재 발굴에 기부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수익금 '음악역 1939' 전달식 (왼쪽부터 조폐공사 류진열 사업 이사, 김성기 가평군수, 음악역 1939 송홍섭 대표) [음악역 1939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한국조폐공사가 제작한 '가왕'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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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폐공사, 조용필 메달 수익금 일부 음악영재 '후원'

조폐공사, 조용필 메달 수익금 일부 음악영재 '후원' 한국조폐공사(사장 조용만)가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메달'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음악영재 지원 사업에 후원한다.   공사는 11일 경기도 가평 뮤질빌리지 '음악역 1939'에서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메달 판매 수익금 가운데 2500만원을 가평군과 함께 가평뮤직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