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게시판
어제 서점에서 책을 읽는데 이런 글이 있어서 잠시 올립니다 .
※ 분홍 손수건 - 아버지와 딸
비 온 다음,
흐린 날이라서 인지 마음이 꽤 우울해 있는 터에 친정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께서 바쁘지 않으면 다녀가라 하신다는 전갈을 전해듣고 부랴부랴
부산으로 향했다.
며칠동안 드시지 못하셨다는 말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그나마 남아있던 볼 살이 쏙 들어가 볼 웅덩이가 생겨있었다.
"한번 나면 한번 가는 거, 무에 그리 서운할까마는,
애들 저렇게 뛰고 노는 모습을 보니 차마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것들 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면 좋겠다."
라고 하시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말씀하시고는 눈물을 닦으신다.
그런데, 눈물을 닦는데 쓰여지는 것이 내 어릴 때,
한창때를 장식했던 가수 조용필 사진이 인쇄된 분홍손수건이었다.
"아버지, 그 손수건 아직도 가지고 계셨어요?"
라는 나의 질문에 딸을 시집보내고 가끔 보고 싶을 때면 꺼내 보곤 하셨다고 하신다.
그렇게 좋아하던 시절엔 가수 조용필이 나오면 귀를 막고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시는 둥,
뭐가 좋아서 밥도 먹지 않고 텔레비전에 붙어 앉았느냐는 둥,
온갖 야단을 다 치시곤 하셨는데,
지금은 그 손수건이 시집간 딸의 대용이 되었다는 말씀에 괜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기운 있을 때,
자식들의 발자취를 따라 당신의 젊은 날을 회상하시는 것도 고통을 잊는 한 방법이
되는 가 보다.
옷장 안 작은 보관함을 여시고는 거기 들어있는 성적표, 상장,
어버이 날 아버지 가슴에 꽂아드린 카네이션 꽃(초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만든 조화) 등을
하나 하나 들추시면서 이건 당신의 딸이 요만할 때 받았던 상장이고,
저건 초등학교 몇 학년 때 만들어 처음으로 달아준 카네이션이다...등등
그렇잖아도 기운이 없어 힘들어 보이는데 옛 추억을 하나 하나 떠올리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덩달아 하나 하나 만져보고 읽어보면서 웃음꽃을 피워보기도 했지만 어딘가
허전한 웃음뿐이다.
옆에서 조용히 부녀지간의 하는 양을 지켜보시는 어머니께서는 조용히 눈을 훔치시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딸을 두고 어찌 갈꼬 라 하시며, 괜히 딴청을 피우신다.
아버지께서 마흔을 훌쩍 넘어 얻은 딸이라서 인지 유독 딸에 대한 사랑이 깊으셨다.
어릴 때부터 딸과 손을 잡고 나들이하시길 좋아하셨고,
딸의 드라마 해설 듣기를 좋아하셨고, 딸의 학교생활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셨다.
가끔 교내 백일장에서 상장을 타서 올 때면 그날은 늦은 밤까지 좋아하던 콜라나 사이다 등,
탄산음료를 마음껏 마실 수 있게 해 주셨다.
다 자라 시집을 가서도 친정나들이를 할 때면,
어머니도 모르게 살짝살짝 용돈을 쥐어주시기도 하셨다.
오빠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사 주신 다음날이면 꼭 다음 번 친정방문 시에
똑 같은 걸로 사 주시기도 하셨다.
그런 덕에 내 딸아이의 장난감 함은 거의 모두가 외할아버지께서 사 주신 걸로
가득 차 있다.
한참을 그렇게 내 어린 시절 이야기로 채우시더니,
나중에 홀로 남는 어머니께 잘 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다시 그 분홍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셨다.
아마도 내가 곁에 없는 순간에도 그 분홍손수건에 담겨진 딸의 추억이
아버지 곁에서 내 대신 아버지의 설움과 아쉬움과 그리움과 사랑을 대신해
주었던 가 보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생에 가장 곁에 두고 싶은 물건이었던지
아버지의 손이 가장 쉽게 닿는 곳에 두고 계셨다.
결혼하기 전,
짐 챙기는 걸 옆에서 보시다가 유독 그 분홍손수건은 아버지께 선물하고 가라 시더니,
멀리 보내는 딸의 추억을 그렇게 보듬어 안고 싶으셔서 그렇게 하셨구나하는
생각에 그저 알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말문이 닫혀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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