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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 그는 왜 슈퍼스타인가? ]
한국이 낳은 슈퍼스타 조용필.
그의 10집 앨범 <서울...>은 외국어로 취입된 싱글로 세계 팝시장에 진출했다.
이것은 조용필의 해외활동을 맡고있는 일본의 교도도쿄가 전담.
또한 중공 콘서트도 선이 닿은 창구를 통해 계속 추진중인데 곧 성사될 전망.
음악이 있는 곳에 그가 있고 그가 있는 곳에 음악이 있는 남자 조 용필.
* 88년 도쿄음악제와 슈퍼스타 조용필 *
'금년으로 17회를 맞는 도쿄음악제'
세계적인 팝아티스트들이 참가한 이 축제에 조용필은 특별 초청가수로 참가해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또한 자신의 디너쇼는 이미 1주일전에 표가 매진되고 참석자들을 완전히 사로잡는 가운데
슈퍼스타의 면모를 십분 과시했다.
특별초청가수로 출연
금년으로 제17회를 맞는 도쿄음악제의 공식 명칭은 '17th TOKYO MUSIC FESTIVAL 88'이다.
지난 1972년부터 시작된 이 음악제는 기라성 같은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들이 참가하여
열띤 경연을 벌여 오다가 지난해 부터 비경연 축제로 스타일을 바꿨다.
그동안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릭 스프링필드, 올리비아 뉴튼존, 프랑크 시나트라,
후세 아키라, 코모도스, 킴칸스, 폴앙카, 다이아나 로스, 도나 섬머, 놀란스, 스티비 원더,
페리 코모, 앤디 월림암스, 라이오넬 리치, 쿨 앤 더 갱, 마이아미 사운드 머신, 알란탐 등
수없는 아티스트들이 스테이지를 현란하게 수 놓았다.
금년 음악제는 시상제도가 없이 참가자 전원에게 기념 메달을 증정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면서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번 음악제는 <ASIAN DAY> <ROCK DAY> <SPECIAL GUEST DAY> <MUSIC OF
TODAY>
로 스케줄이 짜여져 지난 6월 1일 부터 3일간 진행되었는데
2일은 조용필의 디너쇼가 화려하게 막이올랐다.
슈퍼스타 조용필은 <아시안 데이>에 특별 초청가수로 출연해 신곡
<서울 서울 서울> 을 비롯한 곡들을 열창해 참석자들의 열렬 한 박수를 받았다.
주현미는 이날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박상희작사 김영광작곡의 <스카이 라운지에서> 를 불렀다.
비경연의 이번 음악제에는 세계적인 스타들이 참가해 더욱 축제 분위기를 북돋았다.
십대들의 열풍을 몰고 다니는 글렌 메데이로스를 비롯해 그룹 <WET WET WET> <ALL THAT JAZZ>
<EARTH WIND AND FIRE> <엘리자> <JODY WATLEY> <BUTTERFLY> <쿨 앤더갱>등이 출연했다.
조용필 프린스호텔서 디너쇼 성황
이번 행사기간중 2일 프린스호텔에서 있었던 조용필의 디너쇼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한장에 일화 33,000엥 (한화약 20만원) 하는 티켓은 이미 행사 1주일전에 매진
슈퍼스타 조용필의 인기를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7 백석의 테이블을 빈자리 없이 가득메운 참석자들이 조용필의 노래가 한곡한곡 끝날때마다
뜨거운 박수로 답례하면서 초여름밤의 열기를 더욱 뿜어냈다.
이날 반주는 조용필의 현지전속 밴드인 <THE LOVE>가 맡았다.
남녀 9인조혼성밴드인 <더 러브>는 일본 정상급의 밴드로서 조용필과 호흡을 같이 하며
디너쇼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이끌어 나갔다.
슈퍼스타 조용필은 이날 자신의 신곡 <서울 서울 서울>을 비롯해
<I LOVE SUZI> <모나리자> <한오백년> <창밖의 여자>등 20여곡을불러
천부적인 그의 재능을 십분 발휘했다.
일본에서 조용필의 인기는 이미 국내외에 잘 알려진 사실 더구나 디너쇼에 참석 했던
스티비원더를 비롯한 해외아티스트들도 조용필의 놀라운 인기에 부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의 다니무라신지, 모리싱이찌등도 한결같이 '원더풀!'
을 연발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최고라는 표정을 짓는다.
도쿄음악제를 후원한 동경 방송(TBS) 사장 교조 하마구찌 사장도 "조용필의 일본에서의 인기는 정말 놀랍다.
그 작은몸이 토해내는 한의소리는 신비스럽기만 하다"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날 남녀혼성사회로 진행을 맡았던 캬슈야고바야시와 유키사까이씨도 조용필을 소개할 때
한국이 낳은 슈퍼스타임을 상세히 관객들에게 소개하였다.
조용필. 그에게 휴식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을 탄생시키기 위한 고된 작업이
계속되는가 하면 국내외 공연 스케줄이 깨알처럼 그의 수첩엔 기록 되어 있다.
이 시대가 낳은 고독한 아티스트 조용필 사생활 내지는 혼자만의 휴식이없는 그는
분명 이 시대의 고독한 순례자임이 분명하다.
국내에서 보름정도 국외에서 보름정도를 오가면서 사랑과 평화의 메신저로 뛰고 있는
아티스트 조용필.
가슴속 깊숙한 곳에 불씨 안고 있는 이상 그는 세계속의 아티스트로서 계속 질주하는
무서운 돌풍을 몰고 다니리라.
* 조용필 세계의 팝시장 진출 *
국내 팬들을 위한 전국순회 무료콘서트는 준비관계로 조금 미뤄지고 있다.
오늘 8월엔 동남아 순회콘서트가 있고 중공진출 콘서트도 계속 선이닿는 창구를 통해
준비중에 있어 금년안에 성사될 것 같다.
이 모든 조용필의 금년 스케줄 내용을 상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잠시 연기된 전국순회 콘서트
"본래 계획대로라면 6월 15일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무료콘서트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계속 국내에만 머무르는게 아니고 외국 나들이가 잦다보니 스케줄이 약간 뒤로
쳐지고 말았습니다..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충분한 준비를 끝내면 곧 콘서트는 시작될 것입니다. "
도쿄음악제를 다녀온 조용필 그는 정말 기다리는 팬들을 생각 하면 하루 빨리
콘서트를 시작 해야겠다면서 안타까워하는 표정이다
이번 그의 무료콘서트에는 장비만해도 상당한 분량이다.
트레일러가 5 대 가량 필요 하다.
막대한 경비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다 군(郡)단위까지 전국을 누비며 콘서트를 하려면
6개월 이상의 기간도 필요 하다.
그렇다고 해외 공연을 중단하고 국내 콘서트만을 강행할 형편도 못된다.
국내콘서트와 해외공연을 적절히 병행해야하는데 더욱 고충이 따른다.
그는 현재 치밀한 준비와 계획아래 전국순회 콘서트 마무리작업에 한창이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3옥타브 반의 폭넓은 음역(音域)과 절실한 탁음 가성(假聲),
가창력을 갖춘 조용필.
그것은 우연히 천부적으로 타고난 산물이 결코 아니다 이는 오직 충격으로 점철된
그의 삶의 과정에서 얻어진 각고의 결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현재 전천 후 가수로 신이 들린 듯 트로트, 록, 발라드, 재즈, 민요 등에 이르기까지
구사 할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인생자체가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자신이 있기까지에는 자신의 노래를 기다리는 팬들이 있었기에
전국순회 콘서트를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10집 앨범 <서울 서울 서울>을 내 놓았다.
그의 음악생활 20년을 정리하는 기념음반 이기도 하다.
9곡의 신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특히 <서울...> <모나리자> <아이 러브 수지>가
현재 방송을 타면서 팬들의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5월 30일자로 국내시장에 발매중인 이 음반의 일본판은 오는 7월 1일부터 도쿄에 있는
폴리스타에서 제작되어 일본 전역에 발매된다.
영어 음반은 폴리그램에서 7월 25일부터 세계 전역에 발매 하며 중국 광동어로 취입한 음반,
즉 중공 홍콩 대만에 선보일 동남아 음반도 7월 25일부터 발매가 시작된다.
세계시장 겨냥한 음반 출판
내년 2월에는 국내가수로는 최초로 세계 시장을 타켓으로 영국에서 신곡을 취입할 예정이다.
미국 일본 중국어 등으로 내는 디스크는 <서울 서울 서울> 과 <I LOVE SUZI>를 수록한 싱글.
조용필은 특히 이 두곡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있다.
작가 양인자씨가 작사한 이 노래는 그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다.
해질무렵 거리에 나가 차를 마시면
내 가슴에 아름다운 냇물이 흐르네
이별이란 헤어짐이 아니었구나
추억속에서 다시 만나는 그대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손
그 언제쯤 나를 볼까 마음이 서두네
나의 사랑을 가져가 버린 그대
Seoul Seoul Seoul 아름다운 이 거리
Seoul Seoul Seoul 그리움이 남는곳
Seoul Seoul Seoul 사랑으로 남으리 오오오오
Never Forget Oh My Lover Seoul.
<서울 서울 서울>
기차를 보면 떠나가고 싶어하던
한 소녀가 있었죠
갈곳도 없는데 자꾸만 보채던
그 소녀를 난 알아요
구름을 보면 눈물이 난다하던
한 소녀가 있었죠
먼곳이라 부르는 어딘지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어 했었죠
좋아하는 인형이랑
강아지도 모두 여기 있는데
I Love 수지
이제는 먼곳에서 이곳을 그리워하면서 울고 있구나
I Love 수지 자장가를 불러주마
I Love, I Love 수지.
<I Love SUZI>
조용필은 8월10일부터 필리핀, 방콕, 홍콩, 싱가폴, 대만 등지에서 아시아 투어 콘서트를 갖는다.
역시 반주는 <The Love>가 맡는다.
* 10집 앨범속에 담긴 조용필의 자화상 *
'전천후 아티스트'의 경지에 오른 작은거인
20년 이라는 음악 경력도 그렇지만 10장의 앨범 발표라는 것은 가히 기념비적이다.
트로트에서부터 록 블루스 소울 재즈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장르에 집착하지안고
다양한 음악성을 표출 하며 가요사에 가장 커다란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10집 앨범속에 담긴 자화상은...
데이브그루신적인 휴전재즈로 꾸며
숱한 화제 속에 드디어 슈퍼스타 조용필의 제 10집앨범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애초에 더블앨범으로 출반될 예정이었으나 조용필의 워낙 바쁜 스케줄때문에
두장으로 나뉘어져 먼저 록적인 '파트 I 앨범'이 선보이고 있다.
이 앨범을 단적으로 얘기한다면 올해로 음악 생활 20년을 맞는 조용필의 음악성과 보컬이
흥망성쇠를 거듭 하는 동안 오늘날에 이르러 무르익은 원숙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대중을 의식하거나 인기, 시류에 영합하는 아마추어적인 단계를 벗어났다.
차트에 랭크가 되든지 말든지 레코드가 팔리든지 말든지 오로지
조용필의 '자존심'과 '긍지'를 갖고서 레코딩에 임했다는게 역력히 드러난다.
원래 조용필은 록기타리스트로 출발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에릭 클랩튼, 제뜨 벡, 지미 헨드릭스를 추구해나갔고 깊이를 더해갈수록
그들 음악의 모체가 되고 있는 것은 블랙뮤직,
즉 리듬&블루스라는 것을 파악해내고 소울에 심취했다.
그가 무명시절 알 그린의 'Lead Me On'을 즐겨불렀고
그 이후 오제이스의 'Used To Be My Girl' 을 자주 불렀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조용필이 77년 트로트'돌아와요 부산항에'로 가요계에 해일을 몰고 온뒤,
역시 가요풍의 '창밖의 여자'로 3년뒤 멋진 재기를 하고부터 그는 트로트와 함께
다양한 음악성을 표출 가장 폭넓은 팬을 확보해 나갔는데 트로트외엔 엔카, 로큰롤, 소울,
디스코, 휭키, 리듬&블루스, 뉴뮤직, 헤비메틀 등 손을 안 대는 장르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마추어든 프로든 대부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대부분 재즈에 심취하는 경향이 짙다.
조용필 역시도 이번 10집 앨범에서 정통 재즈는 아니지만 록 보다는 휴전재즈 쪽에 가까운
사운드를 선보이고 있어 이제는 그가 대중성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10집 앨범을 구태여 휴전재즈 뮤지션과 비교한다면 키보드주자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 의 사운드와 흡사하다.
그러나 조용필 나름대로 휴전재즈에 미국적인록과 가요적인 멜로디를 융합시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또한 일반 국내가수들이 멜로디와 가사에 치중하는데 반해 이 앨범은 첨단 전자악기를 동원하여
사운드와 편곡에 중점을두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키보드와 베이스를 전면에 내세워 업비트를
강조한 휴전재즈적 스케일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용필의 보컬은 예전의 격정적인 열창보다는 절제된 원숙의 보컬로서 편하게 표현된다.
편곡까지 겸한 전천후 아티스트 입증
10집앨범의 타이틀트랙인 '서울 서울 서울'은 작가 양인자씨가 가사를 썼다.
양 씨는 "세상에는 많은나라 많은 도시가 있으나 스치듯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도시는 그 도시가 갖고있는 독특함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그 도시에 얽혀 있는 아름다운 사랑 얘기이다" 라고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얘기하고 있으며
조용필은 "굳이 88서울올림픽 때문만은 아니다 내 나름대로 간직하고 있는
서울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표현하려 했다" 고 메시 지를 남기고 있다.
조용필은 경기도 화성군에서 태어났으나 경동 중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울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때문에 20여년 간의 서울생활동안 사춘기를 거쳐가면서 느끼고 체험한 많은 추억을 노래 속에
담아보고자 한 것이다.
'나도 몰라' 는 안혜란씨가 가사를 썼다.
그녀는 "전화기만 바라보며 가슴 졸이는 20세기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로맨티스트를 위해서 이 글을 썼다" 고
하는데
'사랑한다는 말 한번 못하고 그냥 이렇게 바라봐야 하는 이런 내마음 그대는 아나요' 라는
가사내용 만큼이나 눈물 아리도록 서글프고 애달픈 멜로디의 수작이다.
조용필의 둘째 형님에겐 수지라는 올해 아홉 살난 딸이 있다.
그런데 그들 내외는 수지를 낳자마자 부득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야 했고
조용필은 당분간 수지를 돌볼 것을 자청했다.
'좋아하는 인형이랑 강아지도 여기 모두있는데
I Love 수지 이제는 먼곳에서 이 곳을 그리워하면서 울고 있구나'
라는 가사를 쓴 양인자씨는
"나는 수지가 누군지 모른다.
어느날 밤 조용필씨의 얘기 속에서 그의 일곱 살 짜리 어린 애인 수지를 만났다...
그러고 보면 수지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 아니겠는가" 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조용필은 "실질적으로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은 나이지만 대외적으로 조수지 자작곡이라고
알리고 있는 것은 재밌게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수지와 나는 삼촌과 조카의 사이 이상으로 저이 든 마치 친아버지와 딸같은
그런 사이였다" 고
수지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우주여행 X' 는 다소 동요적인 제목이고 가사도 얼핏 동요적이지만
음악자체는 프로그레시브하고 가사 속에는 심오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그곳을 탐험 하고 자라는 어린이의 심리를 통해,
행복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줄 모르고 자꾸만 먼곳에서 찾고자하는 현대인의
우매함을 꼬집고 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마지막 가사에서
'나는 언제 그 꿈을 잃었나'하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시지푸스의 신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B면의 타이틀을 장식하고 있는 '서울 1987년' 은 마치 4집 앨범에 선보였던 '생명'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장대한 곡.
이 앨범중 가장 조용필다운 멜로디와 창법이다.
안혜란씨는 "드럼의 차가운 소리를 들으며 회색빛으로 그득한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생각 했다.
표정 없는 얼굴, 표정 없는 거리, 표정 없는 도시..." 라고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얘기하고 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기타톤, 앨토 색소폰의 도회적인 애드립이 시티 뮤직의 묘미를 더해주는 곡이다.
'회색의 도시' 는 서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메마른
어느곳이 든 정서가 부족하고 사랑이 고갈된 곳이 바로 회색의 도시이다.
박건호 작사, 조수지 작곡의 '목련꽃 사연' 역시도 귀에익은 기타톤이 친근감을 주며
복고풍의 백하모니가 더욱 친밀한 느낌을 주는 곡.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규형작사의 'I Love You' 는 업비트가 흥겨웁고 베이스가
강조되었으며 오히려 기타가 간간이 뒤를 받쳐준다.
템포의 변화감과 색소폰 애드립이 이 노래의 키를 쥐고있다.
"인종, 나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항상 가슴 떨리고 황홀한 말이 있다.
우리의 청춘에서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순간,
그것은 누군가에게서 'I Love You'라는 말을 듣는 순간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I Love You' 라는 말을 하는 순간일 것이다" 라는
이규형씨의 작사 메시지를 굳이 듣지않더라도 'I Love You'는
어느 누구에게나 공감을 줄 수 있는 노래이다.
건전가요없이 모두 9곡이 수록된 조용필의 10집앨범은
조용필 본인이 이제는 기타리스트나 싱어송라이터나 가수의 어느 한 파트에 치중되지않고
편곡까지 겸한 '전천후 아티스트'로서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그려내고 있다.
과연 조용필은 거인이다.
* 팬들이 조용필을 말한다. *
팬들의 목소리로 조용필을 듣는다.
-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용필오빠에게 -
박정미(학생 / 부산시 진구 연지동 338-109 3/3)
사랑하는 오빠 안녕하세요?
어제까지만 해도 얄미운 비가와서 저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는데
오늘은 날씨가 무척 맑았어요
오빠 지금은 굉장히 어둡고 조용한 밤이에요.
하늘에서 초롱 초롱한 별들이 그 광채를 발하고 있고요.
오빠의 별도 그 어딘가에 반짝이고 있겠지요.
비가씻어준 깨끗한 세상에 내리쬐는 밝은 햇살을 받으며 오늘도 오빠를 그리워하며
보고파 하루를 보냈답니다.
오빠,
오빠는 저에게 너무도 많은 영향을 주시고 많은것을 보여 주셨어요.
뜨거운 집념 꾸준한 인내,
뼈를 깍아내는 노력, 불굴의 의지...
오빠 저는 사회생활과 학교생활을 함께 병행하고 있어요.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그런 소녀예요.
새벽 6시 부터 새벽 1시까지의 모든 생활이 괴로움보다는 오히려 기쁨이라고 생각해요.
힘들고 지칠때 오빠의 음악 그리고 티없이 맑고 귀엽게 웃으시는 오빠의 얼굴을 생각하면
괜히 기분이좋고 힘이나요.
오빠와 난 보이지 않게 희미한 텔레파시가 통하는가봐...
오빠, 이번 10집을 듣기 위해 레코드가게를 얼마나 들락거렸는지 아세요?
빨랑빨랑 듣고 싶은데 음반은 안나오고 레코드가게 아저씨와의 신경전도 지쳐갈 때 즈음
드디어 10집이 나왔어요.
오빠 노래가 너무너무 좋다는 표현밖엔 달리 할말이 없어요.
오빠의 지칠 줄 모르는 음악성에 또다시 감탄했을 뿐이에요.
진주MBC 창사 기념쇼에서 직접 라이브로 들은 '서울 서울 서울'은 더없이 좋았어요.
오빠,
인간이 가장 순수해지고 가장 삶의 회의를 느낄때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라면서요.
저는 오빠를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명랑하고 밝은 생활을 할수 있는 것 같아요.
오빠,
조금있으면 전국투어에 들어가신다죠? 우리에게 또다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실
오빠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쿵쾅 심장이 폴짝폴짝 뛰고 있답니다.
오빠,
항상 건강하셔야 돼요 전 원래 우량아이기 때문에 아프지 않지만
오빠 아프심 저도 아프걸랑요.
오빠, 술 담배 조금하시고 식사 거르지 마시고요.
오빠 안녕
P.S : 그리고 제일 중요한 한 마디 '필 오빠 사랑해 잉'
- 가장 소중한 나의 별 용필오빠께 -
김은영(학생 / 부산시 해운대구 반여1동 1411-8)
모두 잠든 캄캄한밤.
오빠에게 이 글을 띄웁니다.
키작은 잎새처럼 작은 바람도 감당하기 힘든 듯 바스라질것 같은 오빠의 모습에서
어떻게 그런 뜨거움이 나오는지.
얼마나 큰 슬픔이기에 그런 흐느낌이 나오는지.
어떠한 사랑이 오빠를 휘감고 있기에 그러한 감미로움이 나오는지.
뜨거움 속에서 정열의 사람이되고 고통 속에 있을 때 흐느낌의 사람이 되며 사랑속에 있을 때
작은 아기새가 된다는 것을 오빠는 아는지.
정상을 놓고 다투지 않더라도 오빠는 이미 정상이며 왕자를 논하지 않더라도
오빠는 이미 왕자인것을 오빠는 아는지.
그저 노래가 좋아 노래를 부르는 오빠 나무랄 때 없는 오빠의 생김새.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을 움켜잡고 놓지 않아요.
이런 마력을 가진 오빠 이제는 아시아가 좁다며 세계로 나가려는 자랑스러운 나의 오빠.
건강이 걱정이 되어요. 그저 노래하는 것이 운동이라지만 오빠에겐 장시간의 휴식이 필요해요.
오빠의 음악 생활 20년.
그동안의 땀 흘린 고통의 대가가 이제는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 같아요.
오빠의 10집 앨범. 정말 좋아요.
노래 한곡한곡에 개성과 오빠의 혼이 담긴 것 같아요.
10집 레코드도 많은 사랑을 받을 거예요.
그리고 오빠.
10집 앨범의 Part 2도 정말 기대됩니다.
TV출연과 라디오 등에 나와 주세요.
아니면 잡지등에 오빠의 근황을 알려주세요.
지방에 사는 우리는 오빠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요.
곧, 콘서트를 한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예요.
오빠를 좋아한지도 10년이 다 되었는데, 용필 오빠에게 특별히 한 것도 없네요.
그동안 오빠를 사랑한 시간은 잊지 못할거예요.
앞으로도 영원한 용필오빠의 친구가 되어 드릴께요.
오빠 건강하세요.
1988년은 오빠에게 사랑, 기쁨, 행복이 가득찬 해이길...
오빠의 영원한 벗
- 만인의 스타 조용필 그는 외롭지 않다 -
권율완(16세 / 용산고등학교 1학년)
조용필,
그는 결코 외롭지 않다.
조용필!
이젠 그의 이름을 모르는이는 없을 것이다.
뽀뽀뽀를 즐겨 부르는 아이들부터 한오백년을 좋아 하는 노인들까지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것은 그가 이젠 대중가요만을 부르는 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밝힐수 있는 횃불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자타가 공인하기에
우리는 그의 노력을 모른체 할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그는 누가 뭐라 해도 국위를 선양하는데에서 앞장을 서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가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 나름대로의 음악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의 음악에서는 최선이 없다.
최고 또한 찾아볼수 없는 것이 그의 음악의 길이다.
때문에 그에겐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워 보인다.
특히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해도 해도 부족해 보이는 것이 자신의 음악이라고..
또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없어질 때까지 우리네들에게 잊혀 지지 않고
들려지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그러기에 그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그에게 인기가 따르지 않을수 없고, 이젠 국내에서 넘치는
인기를 담을곳이 없어 일본을 중심으로 대만, 홍콩, 미국, 영국, 그리고 중공쪽으로까지
진출하는 그!
그는 결코 자만하지 않다. 자존심이 강할뿐.
그는 결코 억세지 않다.
고집이 셀 뿐.
그는 결코 약하지 않다.
눈물이 많을 뿐.
그리고 그는 결코 많은 팬들 때문에 자그마한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작은것에 집착해 큰 것을 놓치지도 안는다.
그러기에 그가 10여년이 넘도록 정상이란 위치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군림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그를 보고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항상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여느 가수들처럼 정상에 오르려고만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려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작년...
그는 그 누구도 이해할수 없는 고민에 빠졌었다.
그리고 너무나 엄청난 결정을 내렸다.
가수로서의 최대의 꿈이라면.
가수왕이라는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그는 그 자리를 사양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미련한 짓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그 누구의 강요도 협박도 아닌 모두 그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이런 그의 행동 때문에 듣기 안좋은 소문도 많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출발의 시도였지만,
가요계에서도 새로운 발전을 지켜볼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의 팬들은 그를 잊지 못한다.
10년의 인기가 아까워서가 아니다.
그의 노래는 항상 새로우니까.
그의 음악은 그의 뜻대로 언제나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 숨쉴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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