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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기독교인들은 배교(背敎)한 유대교 분파에 불과했다. 유대교와 로마 양쪽에서 박해를 받았다. 새로운 소식이나 사상은 발로 전달되고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너무 멀던 시절. 기독교는 곧 잊혀질 운명인 듯했다. 일본 올림푸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던 2000년 하반기, 디지털 카메라는 극소수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다. 집집마다 필름 카메라 한 대씩은 이미 갖고 있었고 디지털 카메라의 가격은 청소년들이 구입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막상 뚜껑을 열자 결과는 놀라웠다. 오늘날 20억에 가까운 사람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 올림푸스한국의 매출은 진출 첫해 82억원에서 이듬해인 2001년 382억원으로, 지난해에는 786억원으로 매년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730억원. 디지털 카메라는 젊은 층의 필수품이 됐다. 이런 성장세는 일본 올림푸스 본사에서도 놀랄 정도였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권위자인 미국 노틀담대 앨버트 바라바시 교수는 초기 기독교의 확산에서 사도 바울의 역할을 지적한다. 바울은 기독교 전파를 위해 12년간 1만6000km를 돌아다녔다. 가장 큰 공동체만 찾아다녔고 신앙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는 장소와 사람을 접촉하려고 시도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확산도 비슷한 면이 있다. 올림푸스한국의 이경준 마케팅 부장은 “단기에 물건을 많이 판다기보다 시장 자체를 키워간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인터넷과 오프라인 매장에서 디지털 카메라 사용법을 소개했고 파워 유저들이 모인 디지털 카메라 동호회 행사는 빠지지 않고 후원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올림푸스와 만난 파워 유저들이 디지털시대의 바울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한국시장은 디지털 제품의 확산속도가 유달리 빠르다. 한국 시장의 이런 특성에 주목하는 기업들도 많다. 휴렛팩커드(HP)가 ‘유 프린트’ 서비스를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는가 하면 소니는 일본 시장과 같은 시기에 새 노트북 모델을 발표했다. 한국 시장에 첨단제품의 리트머스시험지 역할을 기대한 것.
지금까지는 한국시장의 확산 속도에 대해 ‘잘 갖춰진 유무선 인프라 덕분’이라는 설명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일부에서 네트워크 이론으로 한국시장의 구조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네트워크 이론은 물질의 구조에서 복잡한 인간사회까지 개체의 연결관계를 이용해 설명한다. 경영학계는 네트워크의 구조가 달라지면 구전(口傳) 효과나 상품의 확산 속도가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디지털 제품의 폭발적인 확산을 놓고 네트워크 이론 연구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얼리어답터는 새로운 정보와 제품을 남보다 먼저 접하고 사용하는 데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시장은 얼리어답터의 층이 유달리 두껍다. 또 다른 나라의 얼리어답터와 달리 상품에 관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제일기획 남승진 차장은 “한국의 얼리어답터들은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개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그들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하웅 교수(물리학)는 “얼리어답터가 네트워크상에서 ‘느슨한 연결(weak tie)’이 많이 생기게 한다”고 설명한다. ‘느슨한 연결’은 친구나 가족처럼 강하게 연결된 관계는 아니다. 이래저래 알게 됐고 일상적인 교류도 거의 없는 관계다.
그러나 ‘느슨한 연결’이 많아지면 네트워크 안의 연결 단계는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정보확산 속도가 빨라진다. 한국의 얼리어답터들은 일반 네트워크에서 끊어져 있어야 할 관계를 서로 이어주고 제품의 확산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 기여한다. 2000년 전 예수의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처럼.
고려대 정재승 교수(물리학)는 “자기주변에 퍼뜨리는 사람들보다는 전혀 다른 집단과 연결 관계가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 확산에 큰 역할을 한다”며 “기업들은 이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막상 뚜껑을 열자 결과는 놀라웠다. 오늘날 20억에 가까운 사람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 올림푸스한국의 매출은 진출 첫해 82억원에서 이듬해인 2001년 382억원으로, 지난해에는 786억원으로 매년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730억원. 디지털 카메라는 젊은 층의 필수품이 됐다. 이런 성장세는 일본 올림푸스 본사에서도 놀랄 정도였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권위자인 미국 노틀담대 앨버트 바라바시 교수는 초기 기독교의 확산에서 사도 바울의 역할을 지적한다. 바울은 기독교 전파를 위해 12년간 1만6000km를 돌아다녔다. 가장 큰 공동체만 찾아다녔고 신앙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는 장소와 사람을 접촉하려고 시도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확산도 비슷한 면이 있다. 올림푸스한국의 이경준 마케팅 부장은 “단기에 물건을 많이 판다기보다 시장 자체를 키워간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인터넷과 오프라인 매장에서 디지털 카메라 사용법을 소개했고 파워 유저들이 모인 디지털 카메라 동호회 행사는 빠지지 않고 후원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올림푸스와 만난 파워 유저들이 디지털시대의 바울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한국시장은 디지털 제품의 확산속도가 유달리 빠르다. 한국 시장의 이런 특성에 주목하는 기업들도 많다. 휴렛팩커드(HP)가 ‘유 프린트’ 서비스를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는가 하면 소니는 일본 시장과 같은 시기에 새 노트북 모델을 발표했다. 한국 시장에 첨단제품의 리트머스시험지 역할을 기대한 것.
지금까지는 한국시장의 확산 속도에 대해 ‘잘 갖춰진 유무선 인프라 덕분’이라는 설명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일부에서 네트워크 이론으로 한국시장의 구조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네트워크 이론은 물질의 구조에서 복잡한 인간사회까지 개체의 연결관계를 이용해 설명한다. 경영학계는 네트워크의 구조가 달라지면 구전(口傳) 효과나 상품의 확산 속도가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디지털 제품의 폭발적인 확산을 놓고 네트워크 이론 연구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얼리어답터는 새로운 정보와 제품을 남보다 먼저 접하고 사용하는 데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시장은 얼리어답터의 층이 유달리 두껍다. 또 다른 나라의 얼리어답터와 달리 상품에 관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제일기획 남승진 차장은 “한국의 얼리어답터들은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개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그들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하웅 교수(물리학)는 “얼리어답터가 네트워크상에서 ‘느슨한 연결(weak tie)’이 많이 생기게 한다”고 설명한다. ‘느슨한 연결’은 친구나 가족처럼 강하게 연결된 관계는 아니다. 이래저래 알게 됐고 일상적인 교류도 거의 없는 관계다.
그러나 ‘느슨한 연결’이 많아지면 네트워크 안의 연결 단계는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정보확산 속도가 빨라진다. 한국의 얼리어답터들은 일반 네트워크에서 끊어져 있어야 할 관계를 서로 이어주고 제품의 확산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 기여한다. 2000년 전 예수의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처럼.
고려대 정재승 교수(물리학)는 “자기주변에 퍼뜨리는 사람들보다는 전혀 다른 집단과 연결 관계가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 확산에 큰 역할을 한다”며 “기업들은 이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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