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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그 뒤로 나는 가수 브로마이드를 사지 않았다

ypc스타, 2004-02-02 23:52:53

조회 수
1141
추천 수
8


      "조용필" 그 뒤로 나는 가수 브로마이드를 사지 않았다

책가방을 잃어버린 것은 중학교 이학년 때였다.
학교 벤치에 놔둔 채로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그 사이 보조가방과 나란히 둔 책가방만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해가 질 때까지 학교 옥상은 물론 뒤뜰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책가방을 찾을 수는 없었다.

“혹시 미움을 살 만한 일을 한 적은 없었냐?”

당직을 하던 한문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내가 아는 아이들 중에서 날 골탕먹이려 책가방을 숨길 만한 아이는 없었다.
학생화 또한 책가방에 든 신발주머니에 있었기 때문에
보조가방만을 맨 채 실내화를 신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새벽감치 전화벨이 울렸다.
한강변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을 한다는 분의 전화였다.
출근길에 한강변에서 우연히 책가방 하나를 주웠노라고,
책가방 속에 든 수첩 속에서 내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발견해 전화를 걸어  
내 연락처를 알았노라고 했다.

돈은 한 푼도 없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침밥을 할 새도 없이 어머니는 그곳까지 한달음에 갔다 왔다.
책과 공책 등이 어수선하게 꽂혀 있었다.
학생화와 필통까지 들어 있었지만 회수권과 약간의 돈,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은 뜯지도 않은 산울림 테이프,
그리고 조용필 브로마이드는 이미 손을 탄 후였다.

사진 속의 애인 ●●

학교 옆 문방구에서는 물건을 산 만큼 표시를 해두었다가
일정액이 되면 선물로 브로마이드를 나눠 주곤 했다.
왜 그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로마이드를 모으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좀 시시껄렁한 표정으로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사진 속의 애인들이 열이면 뭐하고 스물이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러면서도 나는 줄기차게 그 문방구를 이용했고,
주인 아저씨가 벽에 걸린 수많은 브로마이드들을 가리켰을 때 주저없이 조용필의 브로마이드를 골랐던 것이다.

기억이란 참 이상해서 내가 처음 가지게 되었고 반나절 동안 내 손에 머물렀던
그 브로마이드 속의 조용필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귀를 덮는 장발에 약간 통통한 느낌이 났던 것 같은데.
그 뒤로 조용필의 모습은 조금씩 변했지만
나는 아직도 한 가지 모습으로 그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친척집에 놀러갔다가 사촌 오빠의 방에 걸린 조용필의 브로마이드를 본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유치한 사진이었다.
유흥업소 복도에나 걸려 있을 듯한 반짝이 양복에 꽉 죄는 바지를 입은.    
그 사진을 올려다보며 누구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 당시 사촌오빠는 아마추어 그룹 사운드의 일원이었다.
오빠가 일러준 대로 입속에서 한번 그 가수의 이름을 되뇌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후로 그 이름을 잊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조용필이라는 가수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단발머리」 「고추잠자리」 「미워미워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자연스럽게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친구들의 수다나 학교 폐지로 모인 잡지 속에서 그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처음 부른 노래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것을 알았다.
대마초 때문에 잠시 주춤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아이들은 그가 가수 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은 다른 가수의 시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마구 옮겼다.
집에서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저녁 식사 후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보는 텔레비전 속에서
그의 노래를 듣는다는 것만으로 그의 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냥 그의 노래가 나오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새롭다거나 힘이 있다거나 재미있다거나를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나는 책을 제외한 모든 문화에 좀 늦되었다.
나는 세 자매 중의 제일 맏이였다.
좀 껄렁껄렁한 오빠나 언니가 있었더라면 사정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훨씬 더 조용필의 음악을 생동감 있게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나는 그냥 조용히 앉아 그의 음악을 들었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나이를 먹었다.


‘정’으로 남은 가수 ●●

아주 한참 후에 사촌오빠를 다시 만났다.
그 오빠를 보는 순간 이름도 기억나지 않으면서 오빠 방에 걸려 있던 브로마이드가 생각났다.
반짝이 양복을 입고 있던….
난 이런저런 설명을 해가며 오빠에게 그가 누구였던가를 물었다.
한참을 갸우뚱거리더니 혹시 조용필 아닌가, 했다.
조용필이라니.
초등학교 때 보았던 그 촌스런 브로마이드의 주인공이 조용필이라구?
그럼 그때 조용필은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일까?
오빠는 잘 알고 있었다.

「정」이라고 했다. 정이란 무엇일까, 주는 걸까, 받는 걸까….

우리가 소문으로 주고받은 진실에는 가끔 가짜가 섞여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기 전에도 조용필은 가수였고,
그에겐 자기 노래가 있었다. 기억해 주는 노래로만 존재하는 가수….
그 후에 나는 특집쇼에선가 그가 「정」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그 얼굴 위로 반짝이 양복을 입은 그의 얼굴이 겹쳐졌다.

중학교 때 책가방을 잃은 뒤로 나는 그 누구의 브로마이드도 사지 않는다.  
가방을 가져간 아이는 분명 내 사정을 뻔히 아는 아이였을 것이고
한강변까지 수고로이 날라가 내 책가방의 소지품을 늘어 놓았을 것이다.
구겨지지 않게 돌돌 말아 놓은 조용필의 브로마이드를 보고 혹시 키득대지는 않았을까.
‘잘난 척하더니 지라고 별 수 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난 조용필의 팬이라고 자처할 수가 없다.
그냥 바람처럼 그의 노래들이 내 귀를 스쳐갔다.
그리고 난 나이를 먹어갔을 뿐이다


*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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