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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조용필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호(二胡)’라는 중국악기를 사용하여 음악을 만들었는데
가사를 붙여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일주일 후에 미국(뉴욕)으로 공부하러 떠나려고 하던 중이라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작곡가 김영광 씨가 부탁한 2편의 가사와 일요신문에 연재할 2회분의 원고와
문학사상에 발표할 수필이 밀려 있었다.
거기에 또 몇 편의 가사를 더 쓴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고 하고 멜로디를 가지러 그가 녹음하고 있는 스튜디오로 갔다.
그는 나에게 그냥 허밍으로 부른 3편의 멜로디와 악보를 건네주면서 가사가 되면
그 중에 한 편은 8일 1시까지 KBS 토요대행진 녹화장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가사를 보고 즉석에서 노래를 하겠다고 한다.
조용필다운 발상이었다.
가사를 보고 방송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다른 가수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사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또 가사가 나왔다고 해도
그것이 입에 붙으려면 며칠 동안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조용필을 믿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여러 달 걸려 연습하는 것 보다도 그가 한 번 보고 부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멜로디에 적합한 가사를 하루만에 만들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조용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믿었으니 부탁을 했겠지만
부탁을 받은 내 입장에서는 여간 긴장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무드가 잡히지 않는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호텔을 잡아 밤을 새가며 녹음 테잎을 수십 번도 더 들었다.
날은 부옇게 밝아 오는데 한 마디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10시쯤 되니 어떻게 겨우 가사가 완성은 되었다.
나는 작품을 들고 부랴부랴 KBS로 달려 갔다 처음 제목은 <나그네 사랑>이었다.
그것을 <이호(二胡)의 사랑>이라고 했다.
나중에 음반에 나온 것을 보니 제목이 <이별의 인사>로 되어 있었다.
바람결에 꽃 향기는
이렇게도 다정한데
하고픈 말도 다 못하고
쓸쓸히 바라만 보네.
이제는 떠나갈 바람 같은 정이라
그립다고 하지 못하네
지금은 말없이 미소를 짓지만
내일이면 울어야 하네.
떠나려고 생각하니
그대가 너무 정다워
오늘도 슬픈 저 이호(二胡)소리
내 마음을 적시는데
우리 이제 할 얘기는
이별의 인사 뿐이네.
이렇게 다정히 미소짓는 얼굴도
잊을 날이 있을 것인가
가슴에 자욱한 수 많은 사연을
지울 수가 있을 것인가
떠나려고 생각하니 그대가
너무 정다워.
? ? ? ? ? ? ? ? ? ? ? ?―<이호의 사랑>에서
나는 반주음악의 주조를 이루는 중국악기 이호(二胡)의 애틋한 소리를 들으면서
한시(漢詩)를 쓰듯 그 가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2절 첫줄 중에 ‘이호소리’가 ‘새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누구의 생각으로 그렇게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너무도 얄팍하게 대중성을 계산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다거나 그것이 중국악기라는 이유로
새 소리로 바꾸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들이 잘 아는 새 소리로 바꿔 놓는다고 해서
새로운 매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림과 사진은 다르다.
사실의 모습이야 그림이 사진을 따라가겠는가.
그림이 가치 있는 것은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느낌에 있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노래로 되어 전달되어 오는 느낌에 있는 것이지 논리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가요계 일을 종사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대중을 분석하고 작품을 분석하는 버릇이 생긴다.
그런 버릇은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것처럼
작가가 아니면서 작가를 코치하려는 이 계통의 종사자들한테서 많이 발견된다.
조용필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그의 연예계 생활에 여러 가지 조언들을 한다.
물론 그 조언들은 그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왜냐하면 조언 자체가 조언을 위한 조언으로 그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한 마디 했다는 공명심(?) 때문인 것이다.
가령 ‘님’이라는 말 대신 ‘형제’라는 말로 대치했을 때
그 가사를 쓴 작사자보다 단어 한 자 바꾸자고 했던 사람이
더 생색을 내는 것이 가요계 현실이다.
단어를 그렇게 바꾸었기 때문에 히트를 했다고 하는 것이다.
아마 ‘이호의 사랑’도 주위 사람들 난도질 속에
제목과 단어 한 자가 그렇게 바뀐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그 티 하나 없애려고 옥 자체의 매력을 상실시켜버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가사를 쓰면서 노래 이면에 이호소리가 흐르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니 제목 ‘이호의 사랑’이나 2절 첫줄에 들어 있는 단어
‘이호소리’는 이 노래에서 가장 핵심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노래에서 제목이 중요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민해경이 부른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같은 경우는
제목이 무척 중요하다.
그것을 다른 제목으로 했을 경우 불륜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녀라는 말이 제목에 있음으로 해서
보다 아름답고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호의 사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목을 ‘이별의 인사’로 한 것에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라고 본다.
이상하게 조용필이 부른 내 가사는 긴 시간을 두고 만든 것들이 별로 없다.
<단발머리>는 녹음실에서 취입 한 시간 전에 써놓고 성의 없다고 할까 봐 도망치듯 나봤다.
<눈물의 파티>는 작곡가 이범희와 함께 지구 레코드사로 가는 차 안에서 만들었다.
<마도요>라는 노래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내가 즉흥적으로 만든 가사가 오히려 큰 히트를 했다는 이유 때문에 갑자기 가사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늘 가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가 어떤 순간에 튀어 나왔을 뿐이다.
이 나라 최고 스타 조용필 씨!
우리 언제 가슴에 있는 뜨거운 노래를 만들려고 했던 적이 있었던가.
철저한 프로 정신으로 작품을 주고 받았을 뿐이 아닌가.
그러니 다가오는 신세대한테 뭔가 보여주려면 그것은 가슴의 뜨거움밖에 더 있겠는가.
출처 : 오선지 밖으로 튀어나온 이야기(박건호 저) 1994. 도서출판 술래
‘이호(二胡)’라는 중국악기를 사용하여 음악을 만들었는데
가사를 붙여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일주일 후에 미국(뉴욕)으로 공부하러 떠나려고 하던 중이라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작곡가 김영광 씨가 부탁한 2편의 가사와 일요신문에 연재할 2회분의 원고와
문학사상에 발표할 수필이 밀려 있었다.
거기에 또 몇 편의 가사를 더 쓴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고 하고 멜로디를 가지러 그가 녹음하고 있는 스튜디오로 갔다.
그는 나에게 그냥 허밍으로 부른 3편의 멜로디와 악보를 건네주면서 가사가 되면
그 중에 한 편은 8일 1시까지 KBS 토요대행진 녹화장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가사를 보고 즉석에서 노래를 하겠다고 한다.
조용필다운 발상이었다.
가사를 보고 방송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다른 가수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사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또 가사가 나왔다고 해도
그것이 입에 붙으려면 며칠 동안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조용필을 믿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여러 달 걸려 연습하는 것 보다도 그가 한 번 보고 부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멜로디에 적합한 가사를 하루만에 만들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조용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믿었으니 부탁을 했겠지만
부탁을 받은 내 입장에서는 여간 긴장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무드가 잡히지 않는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호텔을 잡아 밤을 새가며 녹음 테잎을 수십 번도 더 들었다.
날은 부옇게 밝아 오는데 한 마디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10시쯤 되니 어떻게 겨우 가사가 완성은 되었다.
나는 작품을 들고 부랴부랴 KBS로 달려 갔다 처음 제목은 <나그네 사랑>이었다.
그것을 <이호(二胡)의 사랑>이라고 했다.
나중에 음반에 나온 것을 보니 제목이 <이별의 인사>로 되어 있었다.
바람결에 꽃 향기는
이렇게도 다정한데
하고픈 말도 다 못하고
쓸쓸히 바라만 보네.
이제는 떠나갈 바람 같은 정이라
그립다고 하지 못하네
지금은 말없이 미소를 짓지만
내일이면 울어야 하네.
떠나려고 생각하니
그대가 너무 정다워
오늘도 슬픈 저 이호(二胡)소리
내 마음을 적시는데
우리 이제 할 얘기는
이별의 인사 뿐이네.
이렇게 다정히 미소짓는 얼굴도
잊을 날이 있을 것인가
가슴에 자욱한 수 많은 사연을
지울 수가 있을 것인가
떠나려고 생각하니 그대가
너무 정다워.
? ? ? ? ? ? ? ? ? ? ? ?―<이호의 사랑>에서
나는 반주음악의 주조를 이루는 중국악기 이호(二胡)의 애틋한 소리를 들으면서
한시(漢詩)를 쓰듯 그 가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2절 첫줄 중에 ‘이호소리’가 ‘새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누구의 생각으로 그렇게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너무도 얄팍하게 대중성을 계산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다거나 그것이 중국악기라는 이유로
새 소리로 바꾸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들이 잘 아는 새 소리로 바꿔 놓는다고 해서
새로운 매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림과 사진은 다르다.
사실의 모습이야 그림이 사진을 따라가겠는가.
그림이 가치 있는 것은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느낌에 있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노래로 되어 전달되어 오는 느낌에 있는 것이지 논리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가요계 일을 종사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대중을 분석하고 작품을 분석하는 버릇이 생긴다.
그런 버릇은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것처럼
작가가 아니면서 작가를 코치하려는 이 계통의 종사자들한테서 많이 발견된다.
조용필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그의 연예계 생활에 여러 가지 조언들을 한다.
물론 그 조언들은 그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왜냐하면 조언 자체가 조언을 위한 조언으로 그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한 마디 했다는 공명심(?) 때문인 것이다.
가령 ‘님’이라는 말 대신 ‘형제’라는 말로 대치했을 때
그 가사를 쓴 작사자보다 단어 한 자 바꾸자고 했던 사람이
더 생색을 내는 것이 가요계 현실이다.
단어를 그렇게 바꾸었기 때문에 히트를 했다고 하는 것이다.
아마 ‘이호의 사랑’도 주위 사람들 난도질 속에
제목과 단어 한 자가 그렇게 바뀐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그 티 하나 없애려고 옥 자체의 매력을 상실시켜버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가사를 쓰면서 노래 이면에 이호소리가 흐르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니 제목 ‘이호의 사랑’이나 2절 첫줄에 들어 있는 단어
‘이호소리’는 이 노래에서 가장 핵심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노래에서 제목이 중요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민해경이 부른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같은 경우는
제목이 무척 중요하다.
그것을 다른 제목으로 했을 경우 불륜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녀라는 말이 제목에 있음으로 해서
보다 아름답고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호의 사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목을 ‘이별의 인사’로 한 것에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라고 본다.
이상하게 조용필이 부른 내 가사는 긴 시간을 두고 만든 것들이 별로 없다.
<단발머리>는 녹음실에서 취입 한 시간 전에 써놓고 성의 없다고 할까 봐 도망치듯 나봤다.
<눈물의 파티>는 작곡가 이범희와 함께 지구 레코드사로 가는 차 안에서 만들었다.
<마도요>라는 노래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내가 즉흥적으로 만든 가사가 오히려 큰 히트를 했다는 이유 때문에 갑자기 가사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늘 가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가 어떤 순간에 튀어 나왔을 뿐이다.
이 나라 최고 스타 조용필 씨!
우리 언제 가슴에 있는 뜨거운 노래를 만들려고 했던 적이 있었던가.
철저한 프로 정신으로 작품을 주고 받았을 뿐이 아닌가.
그러니 다가오는 신세대한테 뭔가 보여주려면 그것은 가슴의 뜨거움밖에 더 있겠는가.
출처 : 오선지 밖으로 튀어나온 이야기(박건호 저) 1994. 도서출판 술래
2 댓글
ypc스타
2007-12-12 02:34:02
친구의아침
2007-12-13 21:35:20
다시 들으니 눈물이 나네요
오빠 노래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속에 새겨지는 여운이 깊어지는것 같습니다
오빠가 더 많이 보고싶게 만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