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감정이 없을 것 같은 외모 탓인지 스릴러, 공포 같은 어두운 느낌의 영화가 많이 들어와요. 하지만 제 본래 성격은 밝고 털털해요.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와는 정반대죠.” ‘차도녀’(차가운 도시여자) 박한별(28)이 ‘요가학원‘(2009) 이후 3년 만에 다시 공포물로 돌아왔다. 12일 개봉 예정인 ‘두 개의 달’을 통해서다. 숲속 낯선 집 지하실에서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세 남녀(박한별·김지석·박진주)가 그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호러 영화다. 박한별은 영화에서 비밀을 간직한 공포 소설 작가 ‘소희’ 역을 맡았다.오늘의 조용필을 있게 한 첫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하게 된 배경에는 시대상황이 맞물려 있었다. 1970년대의
남북관계는 극도의 긴장상황.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미친개는 몽둥이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고 말할 만큼 북한의 도발이 잦았다. 특히 북한 추종세력, 일본 조총련계는 우리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무조건 헐뜯거나 비난을 일삼았다. 광복절 행사장에서는 문세광 총에 영부인이 운명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 저들 조총련계 재일
동포들이 조국을 방문하도록 해. 그래야만 사고방식이 바뀔 게 아닌가.”
완강하게 거부하던 조총련계 동포들은 끈질긴 우리 정부의 설득으로 마침내 모국방문길에 오른다. 박정희 대통령은 음악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군가에서부터 삶의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연가(戀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 장르를 사랑한 것이다. ‘새마을 노래’는 그의 작사·작곡. 박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새마을
사업’에 새마을 노래를 기치로 들었다.
국민들의 사기 진작과 정서 함양을 위해서는 노래의 힘이 위대하다는 걸 대통령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
1970년에 처음 취입한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작사·작곡가 황선우는 부산 영도 출신. 음악도이던 그는
기타를 들고 부산
바닷가를 즐겨 다녔다. 작곡도 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바닷가에서 만난 여인으로부터 강인한 연정을 받고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태종대며, 을숙도, 그리고 해운대 동백섬을 거닐었다. 하지만 한창 사랑이 익을 무렵 그녀는 목포로 이사하게 된다. 해양
연구소에 근무하던 그녀의 아버지가 목포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헤어지는 일은 안타깝고 애틋하다. 목포로 떠난 그녀에게서 몇 차례 편지가 왔지만, 그것도 잠시 소식이 뚝 끊기고 만다. 황선우는 작곡에 전념하면서 그녀를 잊으려고 애썼다. 그러니까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녀를 못 잊어하는 ‘첫사랑 연가’였다.
1978년 2월 어느 날, 재일교포 모국방문단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왔다. 포항제철은 물론 울산공단,
구로공단, 부천공단, 창원 산업단지 등을 두루 보면서 감동을 받는다.
“못 사는 줄 알았던 조국 대한민국이 어느새 이렇게
성장했는가. 이건 기적이다. ‘한강의 기적’이다. 대한민국 만세! 우리나라 만세!”
이때 한몫을 한 노래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다. 모국 방문단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조용필의 절창이 감동을 주었던 것. 특히 2절
가사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가고파 목이 메여 부르던 이 거리는/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 날의 꿈이었지/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도/부딪혀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았었지/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1972년에 음반이 나오면서 음악실의 DJ들 손에 의해 조용필의 노래는 조총련의 모국방문 이후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해진다. 노래는 시대상과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 그래서인가. 재일
교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노래는 시대상황과도 맞물려 크게 히트한다. ‘대통령이 히트시킨 돌아와요 부산항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조용필의
공연무대는 웅휘롭고 현란하다. 그래서 작은 거인이 쏟아내는 열정의 노래로 무대는 뜨거웠다. 팬들은 환호하면서 행복하고….
‘한오백년’을 비롯해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잊기로 했네’ ‘일편단심
민들레야’ ‘뜻밖의 이별’ ‘친구여’ ‘허공’ ‘미워 미워 미워’ ‘그 겨울의 찻집’ 등은 그의 황금 레퍼토리다. 라디오 드라마 ‘창밖의 여자’를 처음 작곡하면서 자작곡에 전념하게 된 그는 이후 많은 히트곡을 낸다.
“나도 민요를 부르지만, 조용필은 ‘한오백년’을 정말 잘 불렀어….”
음반 녹음실에서 민요를 취입하던 나훈아가 내게 한 말이다. 대가수가 대가수의 노래에 탄복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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