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게시판
최재희의 노래누리]
오빠부대 '빠순이들'의 참모습은?
박은비양은 올해 열여섯살. 서울 경복여고 1학년입니다. 또랑또랑한 눈망울과 긴 생머리가 인상적인, 고고학자가 꿈인 소녀입니다.
은비는 인기 그룹 H.O.T의 팬클럽 '클럽 H.O.T' 의 멤버입니다. 지난해 10월 발족한 제5기 클럽 H.O.T에 1만5천원의 회비를 내고 가입했습니다.
언제부터 H.O.T를 좋아했느냐고 묻자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96년 9월 7일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를 통해 데뷔하던 날부터" 랍니다. 몇시였느냐고 물으려다 관뒀습니다.
식목일 전날 서울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난 은비는 이를테면 '빠순이' 입니다. 잘 모르실 분도 계실테니까 간략히 설명하면 '빠순이' 는 흔히 '오빠 부대' 로 불리는 열성 소녀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별로 좋지 않은 어감에서 금방 짐작하셨겠지만 약간은 경멸과 조롱의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취재를 위해 방송국을 다니다보면 정문 앞에 진을 친 많은 빠순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얼굴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스타들을 따라 다니는 겁니다.
그런 일을 "스케줄 다닌다" 고 말합니다. 매일 그러는 건 아니고 "엄마 부탁대로 공부에 지장없는 한에서" 합니다.
소모임 활동도 합니다. 보헤미안.세르비에 등의 소모임은 휴일이면 고아원을 찾기도 하고, 일일찻집을 열어 그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에 쓰기도 합니다. 처음 들으셨죠□ "팬클럽은 10대들에게 소중한 공동체" 라고 은비는 설명합니다.
얼마전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있었던 대형 콘서트에는 친구들과 함께 갔습니다. 부모님이 표를 사주셨습니다. 팬클럽 활동의 모든 일은 부모님과 상의합니다. "공연장 앞에서 밤을 새운 친구들요. 관객이 3만5천명이었는데. 정말 극소수 아닌가요. H.O.T 해체 문제는 멤버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클럽 H.O.T의 공식 회원은 8만5천명입니다. H.O.T의 다른 팬클럽에 등록된 회원을 합치면 30만명이 넘습니다. 인기 가수들의 소녀팬을 모두 합치면 그 수는 엄청나겠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딸.동생.조카.이웃집 소녀 가운데 혹시 빠순이가 있습니까. 잘 모르시겠다구요. 아마 있을 겁니다. 이 봄에 그들과 음악에 대해, 세상에 관해 짧은 대화라도 나눠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최재희 기자 [cjhee@joongang.co.kr]
2001년 04월 09일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