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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서,,,,
노래누리] 방송사 '가요계 다루기'
예를 들어보자. 어떤 가수가 가요계의 립싱크 실태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노래로 인기를 끌었다고 치자.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그 노래를 립싱크로 한다면 듣는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좀 더 직설적인 비유를 하겠다. 만약 한 신문이 문화면에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 제 목소리로는 라이브 공연도 못하는 댄스 그룹들을 '잘한다, 인기있다, 멋있다' 고 소개하면서 다른 면에서는 그런 가수들 때문에 한국 대중음악이 안 된다고 나무란다면 독자들은 얼마나 어리둥절할까.
요즘 주요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런 식의 어이없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심있게 지켜본 독자들이라면 단박에 알아차리겠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은 최근 한두 달 사이 주요 시간대 뉴스와 심층 보도 프로그램을 통해 가요계의 아킬레스건을 꼬집고 있다.
'립싱크가 판을 치고 있다' 거나 '무분별하게 외국어를 사용하는 노래가 많다' 거나 '일본 노래를 단순 번안한 가요가 인기다' 는 등이다.
또 한 인기 그룹에 대해서는 자사의 오락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시켜놓고도 이 그룹이 오락 프로그램에 지나치게 많이 나가는 등 상업성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일부 팬들의 비판을 내보내기도 했다.
모두 맞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웃기기까지 한 것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앞날을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그토록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창법까지 고스란히 베낀 일본 노래 번안곡을 부르는 가수, 외국어 가사가 난무하고 립싱크로 일관하는 댄스 그룹들에게 석연치 않은 1등을 안겨주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존속시키며 가요계의 상업화를 주도하고 있는 게 지상파 방송사들 아닌가.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 가수들을 준엄하게 질타하는 건 도대체 어떤 양식인가.
'같은 방송사라도 쇼프로그램과 보도프로그램을 만드는 국(局) 이 다르다' 는 식의 변명은 하지 말자. 만약 어떤 두 정부 부처가 완전히 모순된 정책을 시행한다면 방송사는 뭐라고 할 것인가.
가요계가 파행적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 한 가운데 지상파 방송사들의 가요 순위.오락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대중문화계 전체가 공감하는 이야기다. 이번 봄 개편에서도 이런 지적은 아랑곳하지 않은 방송사들이여, 최소한 뺨치면서 얼르는 모습이라도 관두는게 어떨까.
최재희 기자 [cjhee@joongang.co.kr]
2001년 0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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