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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ff Daddy.......
본명은 Sean "PUFFY" Combs. 현재는 총기사건으로 체포되어 있고, 제니퍼로페즈와 결별 상황에 있지만 그의 음악적 업적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말로 대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70년대 초반에 태어나 처음엔 BMG 산하에 있는 UP-TOWN에서 Jodeci, Mary J. Blige 등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음악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곧 자신의 독립레이블을 만들어 자신만의 스타일로 Bad Boy Label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든 장본인...
그는 Notorious B. I .G, 112, Faith Evans, Mase, Lil' Kim 간은 가수들을 슈퍼스타로 키워내는 프로듀서로 역량을 발휘하다가 1997년에는 힙합음악의 한 획을 그은 명반 <NO WAY OUT>을 발표하며 그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듯 더해갔다.
수록곡중 <VICTORY>,<IT'S ALL ABOUT THE BENJAMINS>의 웅장함은 그를 힙합아티스트만으로 평가할 수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각종 유명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만들고 프로듀스함으로써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히트곡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까지 그에게 쏟아졌다.
그는 샘플링의 천재라고도 불린다. 앨범 수록곡의 대부분이 다른 가수들이 이미 히트시켜 놓은 곡들을 배경으로 깔아서 다시 신세대적인 감각으로 만든곡들이 대부분이다.
레드제플린의 명곡 <kashmir>를 재해석한 <Come With Me>는 원곡보다 더 힘 있고 감각적이라는 평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이 시대에 다시한번 히트를 기록했다. 스팅의 1983년 8주 1위를 기록한 곡 <Every Breath You Take>를 샘플링한 <I'll Be Missing You> 역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이렇게 대선배들의 히트곡으로 가수로서도 대성공을 거둔 퍼프대디. 하지만 퍼프대디만 스타가 된 것은 아니었다. 퍼프대디의 <Come With Me>의 기타를 맡은 이가 누구인가? 전설적인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Jimmy Page 아닌가? 이 일은 레드제플린의 음악적 세계를 다시 보게하는 계기도 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레드제플린의 1969년 음반을 다시 사게 만들었고, 예전의 실황이지만 나온지 얼마 안되는 BBC SESSIONS 역시 히트 음반으로 발돋음 할 수 있는 좋은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그래서인지 레드제플린의 음반 2장이 뒤늦게 다이아몬드(미국내에서 1,000만장 이상 팔린 앨범)앨범으로 진입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스팅역시 다시한번 그의 음악적 제 2인생을 맞이하고 있다. 조금씩 잊혀져 가는 가수로 분류되다가 1997년 M. TV 시상식에서 깜짝쇼가 벌어졌다. Puff Daddy 가 Sting 과 함께 자신의 친구 Notorious B. I. G 의 추모곡 <I'll Be Missing You>를 함께 한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퍼포먼스에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Sting 은 그 일 이후로 Puffy 가 만들어준 Roxette '97 이라는 곡을 다시 히트시켰으며 얼마전엔 가장 권위있는 그래미에서 남자 신인가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산타나가 후배 아티스트들과 머리를 맞대고 만든 음반 <Supernatural>이 그래미를 비롯한 시상식에서 보여준 위력과 놀라운 음반 판매기록을 이미 보아 알고 있다.
16집 조용필님이 음반 발표하시며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데, 음악적 자존심 때문에 젊은 아티스트들과 작업하기는 좀 그렇다는 말, 하지만 '80년대 음악으로는 21세기를 정복할 수 없다. 가창력 또한 예전같지 않다고 평가하는 사람들 역시 많다. 그렇다면 음악적으로 승부해야 할 것이다. 그런 지금에도 자기만의 음악만을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집한다면 그의 팬들은 늘 같은 팬들 그것도 우수회원만이 그를 마지막 날까지 지킬지도 모를 일이다.
본명은 Sean "PUFFY" Combs. 현재는 총기사건으로 체포되어 있고, 제니퍼로페즈와 결별 상황에 있지만 그의 음악적 업적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말로 대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70년대 초반에 태어나 처음엔 BMG 산하에 있는 UP-TOWN에서 Jodeci, Mary J. Blige 등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음악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곧 자신의 독립레이블을 만들어 자신만의 스타일로 Bad Boy Label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든 장본인...
그는 Notorious B. I .G, 112, Faith Evans, Mase, Lil' Kim 간은 가수들을 슈퍼스타로 키워내는 프로듀서로 역량을 발휘하다가 1997년에는 힙합음악의 한 획을 그은 명반 <NO WAY OUT>을 발표하며 그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듯 더해갔다.
수록곡중 <VICTORY>,<IT'S ALL ABOUT THE BENJAMINS>의 웅장함은 그를 힙합아티스트만으로 평가할 수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각종 유명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만들고 프로듀스함으로써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히트곡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까지 그에게 쏟아졌다.
그는 샘플링의 천재라고도 불린다. 앨범 수록곡의 대부분이 다른 가수들이 이미 히트시켜 놓은 곡들을 배경으로 깔아서 다시 신세대적인 감각으로 만든곡들이 대부분이다.
레드제플린의 명곡 <kashmir>를 재해석한 <Come With Me>는 원곡보다 더 힘 있고 감각적이라는 평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이 시대에 다시한번 히트를 기록했다. 스팅의 1983년 8주 1위를 기록한 곡 <Every Breath You Take>를 샘플링한 <I'll Be Missing You> 역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이렇게 대선배들의 히트곡으로 가수로서도 대성공을 거둔 퍼프대디. 하지만 퍼프대디만 스타가 된 것은 아니었다. 퍼프대디의 <Come With Me>의 기타를 맡은 이가 누구인가? 전설적인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Jimmy Page 아닌가? 이 일은 레드제플린의 음악적 세계를 다시 보게하는 계기도 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레드제플린의 1969년 음반을 다시 사게 만들었고, 예전의 실황이지만 나온지 얼마 안되는 BBC SESSIONS 역시 히트 음반으로 발돋음 할 수 있는 좋은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그래서인지 레드제플린의 음반 2장이 뒤늦게 다이아몬드(미국내에서 1,000만장 이상 팔린 앨범)앨범으로 진입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스팅역시 다시한번 그의 음악적 제 2인생을 맞이하고 있다. 조금씩 잊혀져 가는 가수로 분류되다가 1997년 M. TV 시상식에서 깜짝쇼가 벌어졌다. Puff Daddy 가 Sting 과 함께 자신의 친구 Notorious B. I. G 의 추모곡 <I'll Be Missing You>를 함께 한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퍼포먼스에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Sting 은 그 일 이후로 Puffy 가 만들어준 Roxette '97 이라는 곡을 다시 히트시켰으며 얼마전엔 가장 권위있는 그래미에서 남자 신인가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산타나가 후배 아티스트들과 머리를 맞대고 만든 음반 <Supernatural>이 그래미를 비롯한 시상식에서 보여준 위력과 놀라운 음반 판매기록을 이미 보아 알고 있다.
16집 조용필님이 음반 발표하시며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데, 음악적 자존심 때문에 젊은 아티스트들과 작업하기는 좀 그렇다는 말, 하지만 '80년대 음악으로는 21세기를 정복할 수 없다. 가창력 또한 예전같지 않다고 평가하는 사람들 역시 많다. 그렇다면 음악적으로 승부해야 할 것이다. 그런 지금에도 자기만의 음악만을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집한다면 그의 팬들은 늘 같은 팬들 그것도 우수회원만이 그를 마지막 날까지 지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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