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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story 14 - 마지막회

Yang-soo, 2001-07-26 14: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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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우물을 파도 한우물을 파야지


80년은 내가 언제 대마초사건 같은 암울한 시절이 있었느냐는듯 눈코뜰새없이 바빠졌고 즐거운 일들이 계속됐다.

TBC TV방송가요대상에서 3관왕을 차지한데 이어 TBC주최 서울국제가요제에서 금상, MBC TV 10대가수상에서의 3관왕 등을 휩쓸었고 공연마다 대성황을 이루었다.

순식간에 가요계의 슈퍼스타로 떠오르자 영화계에서도 관심을 갖고 출연교섭을 해왔다. 이제 막 가수라는것이 무엇인지 알듯한데 영화배우까지? 처음에는 너무 뜻밖의 일이라 「농담하지 말라」는 식으로 영화출연 제의를 거절했으나 태창영화사에서는 내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꾸며 보겠다며 집요하게 접근해왔다. 영화사가 제시한 개런티는 2천만원. 이 액수는 당시 최고였다. 스타급 인기 여배우들이 그해 기록을 경신한 것이 고작 1천만원대였고 남자는 코미디언 이주일이 1천3백만원으로 기록을 깨뜨린 직후였다.

나를 그렇게까지 평가해준 영화사에 미안한 마음조차 들었고 난생 처음 만져보는 거금에 조금씩 생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래부르는 것도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인데 영화를 해보면 큰 공부가 되겠지」

또 스타부재로 불황의 늪에 빠져있던 국내영화가에 새바람을 불어넣겠다는 맹랑한 꿈까지 품게된 나는 결국 영화사의 제의에 응하기로 했다.

이형표(李亨杓)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유지인이 내 상대역이었다. 제목은 「그사랑 한이 되어」로 결정됐다.

그러나 강한 의욕과 달리 뭐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배우로 치면 햇병아리에 불과한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얼굴에 분장을 하는 것부터 쉬운일이 아니었다. 방송국분장실에서 가끔 연기자들이 분장하는 모습을 봤던 기억을 떠올려 분칠을 하고 나섰더니 유지인과 함께 출연하는 박근형씨가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래도 내깐에는 괜찮게 됐다 싶었는데 프로들이 보기에는 마치 서커스단의 광대처럼 보였던 것이다.

결국 박근형씨가 분장을 고쳐줘 촬영에 임할 수 있었고 이후 다른 배우들이 돌아가며 내 분장을 손봐주었다.

당초 시나리오를 보니 키스신은 물론 베드신까지 들어있었다. 키스신만해도 쉬운 일이 아닌데 여배우와 옷을 벗고 침대에서 몸을 비빈다니. 상상만해도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정사정해서 베드신은 뺐으나 키스신만은 어쩔 수 없이 강행해야 했다. 기지촌의 무명가수로 떠돌다 「혜련」이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그녀에게 힘을 얻어 가수로서 성공을 한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서 키스신마저 없으면 막말로 「앙꼬없는 찐빵」이었다.

영화촬영에 들어가기전 나는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키스신이나 베드신은 프로배우가 아니라서 힘들것 같다」고 대답해 일은 더욱 꼬였다. 이를 잘못 이해한 모기자가 「조용필, 키스신거부」라고 크게 써버리는 바람에 상대역 유지인이 토라져버린 때문이었다.

한동안 대사이외는 말도 안하려는 그녀를 「그 기사는 잘못나간거니 오해말아달라」고 달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그러나 산넘어 산이라고 키스신장면은 계속 NG가 났다. 유지인이 눈을 감고 내 입술에 갖다대려는 순간이면 꼭 고개가 옆으로 돌려졌다. 아름다운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녀가 싫을리가 없는데 마치 무릎을 톡치면 다리가 들리듯 반사적인 동작이 나왔다. 감독에게 「조형, 당신은 지금 연기하는게 아냐. 실제로 유양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해봐」라는 말을 여러차례 들은 후에야 간신히 해낼 수 있었다. 「사랑하는 혜련이, 사랑하는 혜련이...」눈을 감고 중얼중얼거리다가 「쪽」.

가슴이 후련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사람들은 왜 그렇게들 보기 좋아하는지.

키스신이 무사히 넘어갔지만 그다음은 내가 팬들과 영영 헤어질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고등학교때 음악을 못하게하는 부모님들이 미워 몇번이고 자살을 기도한적이 있지만 타의로 그것도 음악때문이 아닌 이유로 죽고 싶진 않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그 순간은 약보름간에 걸친 지방순회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되돌아온 직후였다. 그 다음 장면은 내가 공연도중 무대위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 응급치료를 받는 내용이었는데 빡빡한 촬영스케줄로 피로해있던 나는 마침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왕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연기를 하는데 링게르를 실제로 맞으면 더욱 실감날 것이 아니냐고 감독에게 부탁, 촬영세트로 이용된 모산부인과의사에게 링게르를 맞기로 했다.

의사에게 팔뚝을 맡긴 나는 「아, 이제 한숨자볼까」하고 눈을 감았고 감독의 목소리, 스태프들이 부지런히 왔다갔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후 약 20분쯤 지났을까. 마치 몸이 붕떠오르는듯한 기분이 들었고 생각대로 손발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정신이 차차 몽롱해지며 그이후는 기억이 없다. 깨어나보니 의사, 간호원들이 빙둘러서 있었고 이형표감독, 유지인, 박근형씨등이 근심어린 눈초리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냐고 간신히 기어나오는 목소리로 물어보니 이감독이『여보게, 자네 죽을뻔했어』했고 스태프들이 『황천길에 한번 갔다 돌아왔으니 오래 살겠네』하며 두런두런거렸다.

이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나의 응급치료장면을 한컷 찍은뒤 다음장면촬영에 대한 의논을 하기위해 나를 남겨둔채 모두들 밖에 나가있었는데 그사이 쇼크부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원래 알레르기를 잘 일으키는 등 과민성체질인데다 링게르가 빠른 속도로 들어가 미처 몸이 흡수를 못했던 것이다.

다음촬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병실로 들어온 이감독은 나를 무심코 흔들어 깨웠는데 일어나기는커녕 숨을 몰아쉬고 몸에 경련까지 일으키고 있었다고 한다. 눈꺼풀을 뒤집어보니 흰자위뿐. 기겁을 한 이감독은 의사와 간호원을 급히불렀고 산소호흡, 심장마사지에 캄프르주사까지 맞고 나서야 한참뒤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온갖 소동을 다벌인뒤에야 간신히 촬영을 끝냈는데 기간은 겨우 18일간. 나의 레코딩, 공연스케줄이 계속 밀려있었기 때문에 짜여진 초스피드의 일정이었다. 아마 18일로 촬영을 끝낸것도 기록은 기록일 것이다.

「그사랑 한이 되어」는 그 이듬해인 81년초 서울중앙극장에서 개봉됐는데 시사회를 보고는 「다시는 영화를 하지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연기였지만 어쩌면 그렇게 촌스러워 보이는지. 나를 위해 함께 공연해준 유지인이나 박근형 선배에게 죄송스런 마음뿐이었다. 게다가 죽을고비까지 넘겼으니. 이는 내게 영화에는 눈돌리지 말고 음악에만 전념하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시사회평은 의외로 좋게 나왔다. 나는 쑥스럽기 짝이 없었다.

태창영화사 대표 임원식씨의 평에 따르면 「조용필의 연기는 노래실력 못지않다. 그런데다가 열의가 대단해 연기자로서도 대성할 수 있다. 다음 영화는 가수역이 아닌 본격 청춘애정물에 출연시키고 싶다」고 한것.

물론 그 영화는 비교적 흥행에 성공을 했다. 당초 불황의 영화가에 활력소가 되자는 맹랑한(?) 생각을 했던 나의 목표가 어느정도 이루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영화 「그사랑 한이되어」를 보러온 관객들이 아니라 가수로서 내 팬들이 찾아왔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까지 좋게나자 각영화사들은 너도나도 출연제의를 해왔다. 김응천감독은 내노래 「촛불」을 주제로한 영화를 만들자고 했고 모영화사에서는 「단발머리」가 좋겠다고 교섭해왔다.

그러나 나는 모두 거절했다. 「우물을 파도 한우물을 파야지」내겐 음악뿐이었다. 지금도 영화에는 전혀 출연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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