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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조용필의 노래를 들은 것은 까까머리 어린 시절이었다.
그땐 그의 노래가 얼마나 대단한지도 몰랐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 가수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오늘날까지 음악계에서 활동할 줄도 몰랐다.
그러나 어른으로 성장해가면서,
음악평론을 업으로 삼게 되면서 다시 접한 그의 음악은 단순히 유희의 대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사실 평론가들은 물론이고 음악인들,
나아가 순수하게 음악을 듣는 대중들 모두가 조용필 음악의 수혜자들이다.
우리는 그가 부르는 노래와 함께 웃고 울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거둔 어떤 음악적 성과보다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음악을 하려는 후배들을 만나면 우선 조용필의 음악을 면밀히 분석하며
들어보라고 말해준다.
그것은 조용필의 음악유산을 고찰하는 것이 평론가의 몫이라기보다 음악인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조용필의 음악은 대중음악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가능성과 잠재력,
놀랄만한 성과의 증거이므로.
사실 지금까지 평론가들의 경우,
그의 음악이 가진 가치를 진지하게 고찰하는 데 인색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갖가지 ‘론’들은 부분적이고 소비적인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조용필.
그의 음악은 고유의 확보된 세계요, 전진성을 함축하고 있는 지향적 현상이다.
때문에 조용필 음악의 분석은 먼저 총합이라는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의 음악세계 안에는 팝부터 재즈, 발라드, 트로트, 록, 소울, 댄스뮤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중음악의 코드가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폭넓은 레퍼토리를 섭렵한 가수는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단순히 여러 장르의 음악을 조합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그만의 독특한
오리지널리티를 창출한 것도 그의 위대함이자 오늘날 우리가 그를 연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런데 조용필 음악을 올바로 규명하고 특징짓는 작업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가 우리 나라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의 음악은 일정한 민족성을 확보한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영역, 자연적 토후, 지리적 조건 속에서 출생,
성장하였으며 그 토양 위에서 자기 인생의 확고한 기초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서양의 음악이지만 그를 노래 잘하는 가수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판소리다.
18세기 초 형성된 이후 우리의 독자적인 음악으로 발전해온 판소리는 처음 열두 마당이
주를 이루었다가 현재는 다섯 마당만 불려지는데,
각 마당의 연주 시간은 서양의 오페라 전곡과 맞먹을 정도로 길며
박동진의 ‘춘향가’는 무려 여덟 시간에 달한다.
판소리는 작곡가의 음악이 아니라 철저히 소리꾼의 음악으로서 창자를 음악의 재창조자라 본다.
여기에는 선(線)의 미, 역동(逆動)의 미, 무한연속의 미, 멋의 미 등 4가지 미의식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그가 터득한 것은 판소리를 기초로 한 창법만이 아니라 판소리의 미의식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래서 판소리의 미학은 조용필의 여러 작품을 통해 구체화되어 나타나기고 하고,
창조적으로 변형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자존심’이나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먼저 ‘자존심’의 경우 역동의 미를 부각시킨 작품이다.
역동성은 조이는 것과 푸는 것의 대립으로 긴장과 이완의 관계에 놓이는 것을 말하는데,
이 곡에서 그러한 역학 관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19분 30초짜리 대곡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은 조용필이 가진
보컬 역량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며 우리의 미의식을 경이롭게 표출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즉, 중머리 장단의 기승전결이 살아있으면서도 끊임없는 긴장과 이완이 있고,
무한연속의 미가 창출되고 있다.
특히, 종결부가 인상적인데, 판소리에서 창자가 끝을 인위적으로 매듭짓지 않고
무한 시간의 흐름 속에 맡겨버리는 것처럼 조용필도 이 곡에서 신기에 가까운 철학적인
보컬과 두 웝(재즈의 보컬 애드립)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가 판소리에 기초한 창법을 완성한 것은 그의 음악인생에 또 하나의 부메랑 효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자유자재로 목소리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그런 덕분에 다소 무리한 일정으로 공연을 강행해도 그의 음성은 기복이 없게 된 것이다.
사실 그의 음악에 대해 말하려면 책 한 권 분량으로도 부족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연구나 평가 작업이 성급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한다.
그는 아직도 건재하며 또다시 어떤 음악으로 우리를 감동시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이 그 시발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늘 한 발 앞선 감각과 열정으로 무대를 꾸미면서 한국 공연 문화사에도 한 획을 그어왔다.
아마도 그처럼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어온 사람은 드물 것이다.
특히, 지난 4년간 가졌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은 그동안의 노하우와 역량이 최대한 발휘되었던 무대였다.
며칠 전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공연에 대해 이러저러한 질문을 던졌다.
제법 근사한 답변을 기대했던 내게 그가 해준 말은 단 한 마디.
오직 무대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과연 올해에는 그가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자못 기대된다.
그러고 보니 그는 우리로 하여금 늘 뭔가를 기대하게 하는 음악인이기도 했다.
그렇다. 그런 이가 바로 조용필이다.
글 : 이헌석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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