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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 趙 容弼 스토리 ..

ypc스타, 2003-04-24 22: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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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그맣고 조용했던 평범한 어린시절,
                           가수가 되고자 피눈물나게 노력 했지만 빈 주머니,
                                         외로운 가슴 뿐이었던 젊은날,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들어선 인기가도
                                                   또 다시 나락....
                   지금의 조용필이 있기까지 겪어야 했던 희망과 좌절의 나날들
                                           그 모든 이야기를 모았다.
    
조용필은 1950년 3월 20일,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에서 농업을 하는 조경구씨와 김남숙씨 사이의
3남 4녀중 여섯째,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키작고 평범 한 아이, 고집은 센편이었으나 '풀빵'이라는 별명처럼
친구들과도 둥글 둥글 잘 어울렸다.
그의 노래 '고추 잠자리'와 '못찾겠다 꾀꼬리'는
송산 국민학교 시절 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열살 되던 해 그는 홍역을 앓다 왼쪽 눈을 잃을 뻔했다.
서울의 대학병원을 오가며 1년동안 치료한 끝에 위기는 넘겼지만 그 휴유증으로
그의 시력은 왼쪽 0.1, 오른쪽 0.4밖에 안된다.
그가 요즈음 들어 곧잘 쓰는 썬그라스도 사실은 멋부리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한 그는 당시 5대 공립 명문고로 꼽히던 경동 중학교에 입학 했다.
여전히 키는 작고 말은없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영화배우 안성기 와는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안성기는 '나는 조용필이 유명한 가수가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고 회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그는 누구 앞에서 제대로 노래 한번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가 가수가 되야겠다고 결심한것은 고등학교 졸업반때,
우연히 얻은 기타를 어설프게 만지작거리다 그는 음악속에 한없이 빠져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가수가 돼야한다는 운명적인 계시를 받은듯이.
도서관엘 간답시고 식구들 몰래 다닌 음악 학원,
결국은 아버지에게 들키고야 말았다.
'죽어도 가수가 되겠다' 는 그의 고집과 '자식을 딴따라로 내보낼 수 없다' 는 아버지의 뜻이
엇갈릴 수 밖에 없었고 그는 그날로 집을 나왔다.
첫 번째 가출, 그러나 그것은 사흘로 끝났다.
더이상 묵을 곳이 없었으니까.
'다시는 학원에 다니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기타를 반납했다.
가수에의 꿈을 삭이지 못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다시 집을 나온다..
어머니를 졸라 마련한 돈으로 동대문 근처에 허름한 월세방을 얻었다.
그곳에서 그는 친구 3명과 함께 '에트킨즈'라는 그룹을 결성한다.
가슴 벅찬 출발.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무명이라는 좌절의 나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연습 했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생활비는 떨어지고 쌓이는건 한숨과 담배 꽁초 뿐이었다.
안타깝고 허무한 석달을 보내고 그들은 결국 서울을 떠났다.
문산행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용주골,
일명 '양공주촌'으로 더 알려진 미군 부대 주변의 기지촌으로 향했다.
그곳은 사람들이 살아 가는 곳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을 파는 부초 같은 인생들이
떠다니는 그런 곳이었다.
컨트리와 째즈가 끊임없이 흘러 나오고 간간히 교태섞인 여자들의 웃음 소리...
조용필과 에트킨즈는 '라스베가스'라는 술집에 취직했다.
식사와 잠자리만 제공 받는 조건으로,
수입이라야 흑인 병사나 양공주들이 던져주는 팁 몇푼,
게다가 동네 불량배들이 재크나이프를 들고 그 일자리 마저 위협했다.
무언가를 찾아 떠났지만 그들을 맞은 건 더욱 비참한 생활이었다.
결국 1년만에 그는 키타줄을 끊고 그곳을 떠났다.
  
서울에 올라온 그는 더 큰 열등감과 소외 의식에 빠졌다.
대학배지를 단 동창을 만날때 더욱 그랬다..
일자리 역시 찾을 길 없었고 호주머니는 늘 비어 있었다.
그보다 더욱 외로운 가슴을 부여 안고 낙엽 처럼 거리를 방황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 저녁,
골목 어귀의 구멍 가게의 소주 두병을 샀다.
낮엔 열심히 수면제 스무알을 사모았다.
그의 방 침대에 걸터 앉아 한 알씩 소주잔에 타서 마셨다.
마지막 잔을 들고 거울속 의 자신을 바라보며 '안녕...'을 고했다.
끊임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그는 스무살에 스스로에게 작별을 고했다.
극과 극은 통한 다던가.
포르말린 냄새가 그의 새로운 삶을 깨웠다.
깊은잠에서 깨어나 아침 햇살 가득한 하얀 병실에서 눈을떴다.
문득 살고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왔다.
4일만에 병원문을 나서면서 아버지의 허락도 얻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그는 새 그룹을 만들었다.
'조용필과 그림자' 땅끝까지 절망한 후 새로이 탄생한 조용필의 의욕적인 새 출발이었다.
71년. 그는 '선데이 서울'이 주최한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는다.
그러나 앨범을 낸 것은 74년,
'사랑의 자장가'를 타이틀로 했지만 실패였다.
그러다가 75년 운명의 작품인 '돌아와요 부산항에' 를 취입하게 된다.
이 노래는 그 이전에 몇 몇 가수들이 불렀지만 히트는 하지 못한 곡이었다.
그런데 '기적'은 일어 났다.
기적과 같이 이 노래는 부산에서부터 돌개 바람을 일으키며
서울까지 올라와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조용필과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호사다마 랄까,
1년 남짓 정신 없이 정상으로 치닫던 그는 또다시 시련을 겪는다.
'대마초 가수'로 3년동안 방황과 울분의 쓴 맛을 삼키며 무대를 떠나야 했다.
그로부터 3년후인 79년 12월 6일, 규제가 풀리면서 그는 지구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맺고
새 노래를 준비한다.
팀의 이름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으로 바꾸었다.
그 무렵 동아방송 드라마주제가의 작곡과 노래를 권유받게 된다
'창가에 서면 눈물 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손...'
조용필의 새로운 '위대한 탄생'은 '창밖의 여자' 덕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든 '단발머리' 와 함께 80년 3월, 새 앨범을 내 놓았다.
드디어 최고정상의 가수 조용필이 탄생하고 그 서럽던 무명의 세월은 추억거리로 아스라히 남는 순간이었다.
앨범 판매 40만장,
방송차트 1, 2위 석권, KBS, MBC, TBC 방송 가요대상 석권 등
80년은 조용필의 해였다.
그 이후 그는 끊임없이 히트곡을 내 놓으며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선다.
이제는 세계를 향해 표효하면서..
  
                         이제 그는 그의 노래처럼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다.
                          고독한 정상의 자리에서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그는 꿈꾼다.
  
- 이 은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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