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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신중현은 조용필님 폄하의 대표주자!

, 2004-10-08 23: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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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글을 보면 뽕짝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큼을 알 수 있져!

조용필_오버 더 레인보우

김토일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거장(巨匠)들이 존재하고 또 살아가고 있다. 누구는 눈썰미가 뛰어나서, 혹은 귀가 지나치게 밝아서 거장이 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이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낸대서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거장이라는 특별한 칭호를 얻기도 하였다.
우리 시대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리 많지도 않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이른바 ‘국민가수’ 조용필의 이름 석 자를 발견하는 일이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용필의 지나온 나날들을 돌이켜보면 거장이라는 칭호에 그처럼 어울리는 사람도 없는 듯 하다. 좀 더 나아가 그를 거장 가운데에서도 단연 ‘A급’으로 단정 짓고 싶기까지 하다. 조용필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지지를 받아온 - 받고 있는 거장도 없기 때문이다. 70년대 이후를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조용필은 말 그대로 ‘위대한 탄생’으로 경험되지 않았던가.

  

얼마 전에 음악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또 한 사람, 록커 신중현이 조용필을 향해 ‘뽕락’이라는 일침을 날렸다. ‘뽕락’이라는 말은 대중음악계의 전문(?)용어인데, 오랜 세월 동안 저질이라는 낙인 속에서 살아온 ‘뽕짝’과 퇴폐, 마초, 저항 등의 모습으로 숨 가쁜 변신술을 선보이며 우리 곁을 오락가락하던 ‘록’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음악적 스타일로 따지자면 ‘록’에 약간의 ‘뽕끼’를 가미한 것을 말하겠지만 그보다는 뮤지션의 태도와 관계가 더 깊은 용어다. 기성의 부도덕한 관행에 투항하고 돈과 오빠부대 - 일명 ‘빠순이’들을 찾아 나선 구(?) 록커들에 대한 비아냥과 경멸의 뜻이 가득 담겨 있는 말이라 그렇다.
조용필의 음악을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을까. 그의 음악적 장르를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가능해 보이지도 않거니와 설령 누군가 그 일을 ‘해낸다’ 하더라도 그게 과연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필 음악의 상당 부분이 신중현의 말대로 ‘뽕락’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온 나라가 잿빛으로 우중충하던 80년대 내내 그는 안방극장의 화려한 수퍼스타였다.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음반 업계와 방송계에서 무탈하다 못해 최고의 수퍼스타로 군림했던 그 시절의 조용필에게 ‘시대정신’이라고 하는 고매한 정신세계를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립싱크면 립싱크, 오빠부대면 오빠부대, 돈과 권력 등이 모두 그와 비교적 멀지 않은 것들이었으니 록커들이 그토록 비아냥대는 ‘뽕락’의 이미지와 여러모로 잘 부합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조용필은 스스로 ‘록커’의 명함을 판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대중들 앞에서 위압적이고 아티스틱한 폼으로 ‘가오’를 잡는 모습을 본 것 같지도 않다. 다만 가장 멋진 엔터테이너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싶다. 결국 조용필은 80년대 내내, 언제나 TV 쇼의 마지막 장면에만 등장하는 사람이 되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가장 멋지고 거대한 엔터테이너가 되었으며 수많은 대중들의 마음벗이 되었던 것이다.

얼마 전 한 유력 일간지에 ‘국민가수’ 조용필이 “이제 클래식 공부를 할 것이고 그게 내 음악의 갈 길”이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서양 전통음악)은 국민적인 음악이라기보다는 소수 매니아들의 음악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권력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학교, 공연장, 예술 행정과 같은 영역을 통해 제도적으로 남아 있기도 하며 때로는 권력 앞에서 고개 숙이고 지나친 사람들의 마음속 그늘 한 자락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가요계에서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클래식 음악이 풍기는 이미지를 자기에게 애써 덧붙이려 했던 이들이 그리 드물지만은 않았다. 아카데미로 일찌감치 편입된 재즈도 때로는 그와 같아서 자유정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보다 클래식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향한 욕망이 공연에서 눈에 더 잘 뜨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버 더 레인보우>.

클래식과 자신의 음악세계에 관한 여러 인터뷰들과 더불어 조용필이 5년 만에 발표한 새 음반의 제목이다.
그동안 그의 음악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클래식 여가수의 벨칸토 목소리, 사운드의 전면에 나선 현악과 목관, 약간은 브로드웨이스럽게 느껴지는 질감의 발라드 등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음반이다. 그런데, 이러한 접합이 음악적으로 성공적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음반을 들어 보면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가수가 만든 음반에 걸맞게 아낌없는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그의 육체와 내력을 보노라면 클래식과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쉬지 않고 오락가락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페라와 뮤지컬에 대한 깊은 관심을 이야기하고, 서양 전통 음악의 영역으로 부분적인 혹은 일시적인 ‘전향’의사를 드러내고 있는 인터뷰들을 보면서 그의 마음 한 구석, 한 자락의 그늘을 보았다면 그것은 지나친 ‘오버’일까. 뽕끼에 힘입어 대중들로부터 일구어 낸 사랑의 힘을 가지고서 뽕끼를 부당하게 억압하고 조소해 왔던 문화를 향해 나아가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투정을 부린다면 이 역시 개인의 취향에 대한 무례한 간섭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무례한 간섭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는 클래식 음악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쌓아왔던 것과는 또 다른 예술적 성취와 감성을 얻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자꾸 다른 것이 보인다. 순수한 예술적 열정 말고, 마음 속 그늘로 남은 어떤 것이 보인다는 말이다.

< 오버 더 레인보우>...... 무지개 너머로 조용필이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용필님이 엔카가수를 좋아했다고 하면서

록의 대부 신중현] 나의이력서 <42> 뽕락의 발호  

[한국일보 2003-04-13 20:45]  

같은 서울이면서도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8군 안팎에서 벌어졌던 괴리는 얼마나 컸던가. 시작은 역시 5·16 군사 쿠데타 이후의 군사정권 수립이었다. 1961년 박정희 소장이 장면 정권을 무너뜨리고 권좌에 오르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서울 사람이었다. 특히 내가 알던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서울을 떠나 줄줄이 이민을 가 버리는 바람에 주위에 아는 사람이라곤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기사 75년 방송금지 조치를 당하고 났을때는 아예 아무도 없었지만.

박정희 정권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서울의 주도 세력은 경상도 출신으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가요판도 지각 변동을 겪게 됐다. 70년대 들어 주한 미군 감축으로 미군을 대상으로 한 무대들이 줄줄이 문들 닫았고, 그 뒤를이은 것이 부산을 기점으로 밀려 온 일본 문화였다. 그 중심에는 트로트가있었다. 미군 무대가 사라지고 얼마 안돼 유행하기 시작했던 게 바로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엔카 가수 모리시니치의 노래를 불러 유명해진 조용필이 록과 뽕짝을 적당하게 얼버무려 내놓은 이른바 '뽕락'이 득세하기시작하던 때였다. '오동잎'(최헌)과 같은 뽕락이 대중음악을 지배했고, 서울의 문화풍경은 일거에 뒤바뀌었다.

뽕짝 바람은 김추자나 펄 시스터즈 등 내사단의 스타들만을 거둬 산 것이아니었다. 서유석, 김정호, 윤형주 등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던 포크 계열의 가수들까지 사라져싿. 포크와의 인연은 내가 60년대 OB's 캐빈의 가수들과 가졌던 일련의 작업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유신이 절정기에 올랐던 70년대 후반, 한국의 대중음악은 급속도로 퇴보의 길을 걷게 된것이다. 그떄는 저질 음악의 세상으로 품위란 찾아 볼 수 없었다. 매우 역겨웠고, 도무지 살맛이 나지 않던 시절이었다. 뽕락 스타들이란 신중현 사단이한창 활동하던 때에는 거짓말 하나 보태고 우리 옆에 얼씬거리지도 못했던자드링었다. 물론 그 음악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엄청나 ㄴ권력의폭력에 의해 시대 흐름이 돌변했던 과거를 돌이키도 있을 뿐이다. 그 같은단절감이 극데 달했던 때가 '나의 이력서' 서두에서 밝혔단 대마초 사건이었다 1976년 출소 직후였다.

남영동을 지나고 있는데, 배가 고파 앞에 있는 중국지벵 들어갔다. 홀에서자장면을 먹고 있는데 방안에는 회식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몇 순배 돌아 갔는지, 합창 소리가 호기롭게 터져나왔다. 트로트였다. 혈기 넘치는젊은 사람들이 트로트를 부르는 광경을 대하니 내 의식은 까마득히 잊고있었던 과거로 사정없이 치달았다.

50년대 먼 친척이 하던 해소병 제약회사 상수제약에서 일할 떄의 풍경이앞을 콱 막았다. 그 힘들었던 시절, 라디오 또는 술꾼들로부터 시도떄도없이 들었던 트로트 선율이 리바이벌돼 오는 것 아닌가. '신라의 달밤','방랑 시인 김삿갓', '비나리는 호남선'등등. 아, 이제는 갓 고등학교를마친 학생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는구나!' 다리에서 힘이 일시에 빠져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금지의 족쇄가 채워진 상태라,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쌓아 올린 음악세계는 사라졌다는 절망감이엄습했다.

그 연유를 따져봤다. 내가 관여했던 노래드리 이런 저런 이유로 모두 금지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방송국이 문제였다. 틀만한 노래는 송두리째 족소ㅔ신세라, 방송국이 찾아 낸 해법이 바로 뽕짝이었다. 자료실 서가에서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옛 노래판이 전파를 탔고 아무 연유도 모르던 잚은 친구들에겐 그게 곧 당대 유행가로 인식될 수 밖에 없었던 것. 나는 그시절, 우리 음악사가 졸지에 50년대로 후퇴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됐을까? 확신컨대 박정희가 일본 군인 출신이어서 트로트를 늘 듣고 부를 수 밖에 없었던 데에다, 방송 매체들이 그의취향에 부화뇌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그네길을 떠난 것은 필




>신중현과 전인권은 조용필의 음악을 '뽕락'으로 폄하하기 때문에
>
>같이 무대에 설 일은 없을 것!
>
>신중현은 조용필님을 대놓고 '뽕짝'이라며 무시하는 사람이예요.
>
>
>
>>제가 국내에서 '존경'하는 뮤지션은 신중현 선생님과 필님 딱 두분인데
>>
>>사실 이 두분의 음반을 구할 수 있는데로 죄다 구해서 듣기 시작한 건
>>
>>5년 이내입니다. 그 전엔 그저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 분들의 명성을
>>
>>어렴풋이 아는 정도였죠. 필님은 저 어렸을때도 워낙 인기가수셨기
>>
>>때문에 티비에서 히트곡 많이 나오니까 들으면서 좋아한 정도... 앨범은
>>
>>LP로 7, 8집 정도 있었고... 신중현 선생님은 그분 음악을 들어보고 싶어도
>>
>>도무지 음반을 구할 수가 없어서... 그땐 엽전들 음반조차 CD화 되기 전인데다
>>
>>청계천 판가게를 뒤져도 정말 좋은 판들은 일본놈들이 싹쓸이해가서 없고
>>
>>기껏해야 오아시스에서 재탕으로 찍어낸 디스코풍의 '신중현 걸작집' 같은
>>
>>컴필레이션이나 한두장 간신히 구할 수 있었죠.
>>
>>그러다 필님 CD 한두장 사모으면서 18집까지 다 모으고 신중현 선생님은
>>
>>'신중현 작품집'이라는 이름으로 6~70년대 전설의 음반들, 일본놈들이
>>
>>죄다 쓸어가서 들어보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던 신선생님이 작사작곡편곡
>>
>>및 연주를 맡아서 키워냈던 김정미, 김추자, 펄시스터즈, 양희은, 서유석,
>>
>>그리고 신중현과 더 맨, 엽전들, 박인수 등의 음반이 속속
>>
>>CD로 재발매되면서 거의 뒤통수를 해머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죠.
>>
>>'미인'이나 '돌부항' 정도가 거의 다라고 생각했던 그분들의 음악 세계가
>>
>>사실은 훨씬 거대하고 엄청나다는 것 때문에... 그분들 음반 안사고
>>
>>mp3 가지고 깔짝거렸으면 이런 거 못느꼈겠죠.
>>
>>신선생님도 전성시절엔 대중적인 인기가 엄청났지만 80년대 이후엔 거의
>>
>>칩거하시며 자신만의 음악, 소수만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시며 야인처럼
>>
>>사시는데 반면 필님은 끊임없이 수준높으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는
>>
>>음악을 하신다는 점에서 예전에 필님이 인터뷰에서 신선생님을 가리켜
>>
>>'나와는 다른 길을 가는 분'이라 칭했던 게 이해가 됩니다.
>>
>>한 5년쯤 후에 신선생님이 기타를 잡으시고 필님이 노래를 부르시고
>>
>>태지가 베이스를 연주하는 뭐 그런 무대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지극히
>>
>>개인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
>>
>>P.S : 신중현 작품집 재발매 CD의 음원은 마스터가 아니라 옛날에
>>
>>발매되었던 LP판이라 음질이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신선생님의
>>
>>옛 LP들이 워낙 고가라 작업에 애를 많이 먹었는데 국내 수집가들은
>>
>>판을 빌려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CD가 나오면 자기가 갖고 있는
>>
>>LP의 가치가 떨어진다며 훼방을 놓았다네요. 정말 치사하지 않습니까.
>>
>>결국 일본사람이 소문듣고 안타깝다며 비행기타고 찾아와선 자기
>>
>>소장품을 무상으로 빌려줘서 겨우 작업을 했다는군요.
>>
>>필님의 80년대 이전 음반은 마스터가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
>>남아있다면 CD로 재발매도 될 수 있을텐데 말이죠.
>>
>>신선생님 같은 경우 워낙 못살때라 마스터에 녹음을 하고 음반을
>>
>>만들면 그 마스터를 보존하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다른 가수를 또
>>
>>녹음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하네요. 미국같은 경우는
>>
>>2차대전 이전에 발매된 음반도 깨끗한 음질의 CD로 재발매되곤 하는데
>>
>>참 가슴아픕니다. ㅠㅠ
>

1 댓글

송상희

2004-10-09 05:08:49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다 나중에 단행본으로 나온 글이군요. 신선생님이 뽕짝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이 글을 직접 쓰신건 아니고 아마 신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대필작가가 '글'로 옮겼는데 그 과정에서 과장됐을수도, 순해졌을수도 있지만 뽕짝을 안좋게 보시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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