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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엄마야 ~" 왜 자꾸 그 노래가 듣고 싶지 [중앙일보]
신년특집 조용필40년 울고 웃던40년 4. 고추잠자리
어릴 적 기억에 뚜렷이 각인된 노래가 있다. 조용필 선배의 ‘고추잠자리’다. 부모님과 추석 성묘를 가는 길, 자동차 안에서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꽤나 좋아했던 나였지만, ‘고추잠자리’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은 다른 노래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분명 그 시대의 다른 노래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가성이라는 창법을 처음 접한 것도 이 노래를 통해서다.
그 후로도 조용필 선배의 노래를 들으며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의 팬임이 자랑스러웠다. 이제는 그의 후배가 되어 17년 동안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
2000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해다. 데뷔 10년을 맞아 7집을 준비하던 때였다. 어릴 때 나를 흔들었던 ‘고추잠자리’가 또 다른 인연으로 다가왔다. 디스코풍의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쓰던 중 자연스럽게 ‘엄마야’가 떠올랐는데, 주변 반응이 좋지 않았다. ‘엄마야’라는 말을 노랫말로 쓰기에 조금 이상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바꿀까 고민하던 중 문득 조용필 선배의 ‘고추잠자리’가 생각났다.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선배가 이 노래를 불렀을 때 ‘엄마야’라는 단어가 이상하거나 낯설게 들렸었는지 생각해봤다. 이상하기는커녕 되레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준 가사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새 노래에 ‘엄마야’를 집어넣었다. 그 노래가 히트곡 중 하나인 ‘엄마야’다. 제목만으로도 당당함이 느껴지는 노래라고 자신한다. 이 노래도 ‘고추잠자리’처럼 누군가에게 추억을 되새길 수 있게 한다면 더 이상 기쁨이 없겠다. ‘고추잠자리’는 한마디로 모든 이를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노래의 힘을 깨우쳐준 노래다. 내가 소신 있게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준 받침돌이기도 하다.
누구나 슬럼프를 겪는다. 출발의 순수한 열정도 시간 속에서 식어가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것은 주변의 격려와 충고가 아니었다. 바로 노래 자체였다. 음악이 있어 계속 노래할 수 있었고, 그 노래의 중심에 선배 조용필이 있었다.
2003년은 17년 내 가수인생에서 가장 영광되게 남을 것 같다. 조용필 3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선배의 명곡 ‘창밖의 여자’를 함께 불렀다. 가슴이 꽉 차올랐다. “‘고추잠자리’나 ‘비련’을 시키시지, 왜 이렇게 어려운 노래를 시키셨어요”라고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선배가 “너니까 이 노래 시킨 거야”라며 어깨를 두드려주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나는 3년 전부터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류의 중심에 있는 드라마·영화와 달리 오로지 음악으로 일본에 진출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지난 연말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1만3000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기까지 참으로 힘든 과정을 거쳤다.
공연을 마치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 절반의 성공을 했을 뿐이다. 조용필 선배는 80년대 후반 한국음악의 불모지였던 일본에서 1년에 100회 이상의 콘서트를 했다. 혼이 담긴 열창으로 일본인에게 한국가요의 힘을 느끼게 했다. 한류는 싹수조차 보이지 않았던 때였다.”
지금도 택시를 타면 일본 기사들에게 “한국 가수를 아느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대부분 “조용필을 안다”가 아니라 “조용필을 좋아한다”고 답한다. 조용필이라는 콘텐트의 힘이다.
93년 말레이시아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갔을 때도 선배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뒤풀이 장소에서 ‘친구여’의 중국어 버전이 흘러나와 “이 노래는 한국 노래다”라고 했더니, 중국계 스태프가 중국 노래라고 우겼던 적이 있다. 90년대 초 조용필의 노래가 중화권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 돌이켜보면 놀랍기 그지 없다. ‘원조 한류’의 가치는 반드시 재조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짧지 않은 세월 음악을 해왔고, 또 나름대로 꿈을 이뤄가고 있다. 하지만 가요계에 큰 획을 그은 조용필이라는 거성을 생각하면, 나는 그 획의 점을 하나 찍은 것에 불과하다. 나도 데뷔 40년을 맞는 그날, 그 획을 완성할 수 있도록 오늘도, 내일도 마이크를 잡겠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의 초심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신승훈<가수>
◆베스트10 선정위원
임진모·송기철·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이영미(『한국대중가요사』 저자), 김종휘(문화평론가), 신승훈·이승철(가수), 주철환(OBS 경인TV 사장), 하성란(소설가), 이재무(시인). 각자에게 조용필 히트곡 15곡 내외를 추천받아 그중 10곡을 엄선했다.
조용필, 그때 내 마음은 ¨
1980년대 초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마음을 되돌아보는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요라고 해서 늘 사랑 아니면 이별만 노래하라는 법이 있는가.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사는 물론, 멜로디·사운드 등에서 틀을 깨는 가요를 만들고 싶었다. 가요에 ‘엄마야’라는 가사가 들어간 것은 ‘고추잠자리’가 처음이다. ‘엄마야’란 단어가 사람들에게 모성과 동심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작사가 신광철의 가사에 가성을 붙여 곡을 만들었다. 가성에 화음을 붙였는데, 그게 잘 안 나와서 가성 연습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코드도 내가 당시 좋아하던 것, 당시 가요계에서 거의 쓰지 않았던 것이다. 예상대로 반응이 빨리 왔다. TV·라디오 인기순위에서 24주간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장 기록이다. 동요적인 가사와 가성·화음·코드 등이 잘 어우러진 게 적중한 것 같다. 특히 청소년 층 사이에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가을 경기도 화성에서 첫 귀향 콘서트를 했는데, 이 노래가 특히 반응이 좋았다. ‘화성 소년’ 조용필의 추억과 감성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년특집 조용필40년 울고 웃던40년 4. 고추잠자리
어릴 적 기억에 뚜렷이 각인된 노래가 있다. 조용필 선배의 ‘고추잠자리’다. 부모님과 추석 성묘를 가는 길, 자동차 안에서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꽤나 좋아했던 나였지만, ‘고추잠자리’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은 다른 노래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분명 그 시대의 다른 노래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가성이라는 창법을 처음 접한 것도 이 노래를 통해서다.
그 후로도 조용필 선배의 노래를 들으며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의 팬임이 자랑스러웠다. 이제는 그의 후배가 되어 17년 동안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
2000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해다. 데뷔 10년을 맞아 7집을 준비하던 때였다. 어릴 때 나를 흔들었던 ‘고추잠자리’가 또 다른 인연으로 다가왔다. 디스코풍의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쓰던 중 자연스럽게 ‘엄마야’가 떠올랐는데, 주변 반응이 좋지 않았다. ‘엄마야’라는 말을 노랫말로 쓰기에 조금 이상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바꿀까 고민하던 중 문득 조용필 선배의 ‘고추잠자리’가 생각났다.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선배가 이 노래를 불렀을 때 ‘엄마야’라는 단어가 이상하거나 낯설게 들렸었는지 생각해봤다. 이상하기는커녕 되레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준 가사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새 노래에 ‘엄마야’를 집어넣었다. 그 노래가 히트곡 중 하나인 ‘엄마야’다. 제목만으로도 당당함이 느껴지는 노래라고 자신한다. 이 노래도 ‘고추잠자리’처럼 누군가에게 추억을 되새길 수 있게 한다면 더 이상 기쁨이 없겠다. ‘고추잠자리’는 한마디로 모든 이를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노래의 힘을 깨우쳐준 노래다. 내가 소신 있게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준 받침돌이기도 하다.
누구나 슬럼프를 겪는다. 출발의 순수한 열정도 시간 속에서 식어가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것은 주변의 격려와 충고가 아니었다. 바로 노래 자체였다. 음악이 있어 계속 노래할 수 있었고, 그 노래의 중심에 선배 조용필이 있었다.
2003년은 17년 내 가수인생에서 가장 영광되게 남을 것 같다. 조용필 3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선배의 명곡 ‘창밖의 여자’를 함께 불렀다. 가슴이 꽉 차올랐다. “‘고추잠자리’나 ‘비련’을 시키시지, 왜 이렇게 어려운 노래를 시키셨어요”라고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선배가 “너니까 이 노래 시킨 거야”라며 어깨를 두드려주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나는 3년 전부터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류의 중심에 있는 드라마·영화와 달리 오로지 음악으로 일본에 진출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지난 연말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1만3000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기까지 참으로 힘든 과정을 거쳤다.
공연을 마치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 절반의 성공을 했을 뿐이다. 조용필 선배는 80년대 후반 한국음악의 불모지였던 일본에서 1년에 100회 이상의 콘서트를 했다. 혼이 담긴 열창으로 일본인에게 한국가요의 힘을 느끼게 했다. 한류는 싹수조차 보이지 않았던 때였다.”
지금도 택시를 타면 일본 기사들에게 “한국 가수를 아느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대부분 “조용필을 안다”가 아니라 “조용필을 좋아한다”고 답한다. 조용필이라는 콘텐트의 힘이다.
93년 말레이시아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갔을 때도 선배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뒤풀이 장소에서 ‘친구여’의 중국어 버전이 흘러나와 “이 노래는 한국 노래다”라고 했더니, 중국계 스태프가 중국 노래라고 우겼던 적이 있다. 90년대 초 조용필의 노래가 중화권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 돌이켜보면 놀랍기 그지 없다. ‘원조 한류’의 가치는 반드시 재조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짧지 않은 세월 음악을 해왔고, 또 나름대로 꿈을 이뤄가고 있다. 하지만 가요계에 큰 획을 그은 조용필이라는 거성을 생각하면, 나는 그 획의 점을 하나 찍은 것에 불과하다. 나도 데뷔 40년을 맞는 그날, 그 획을 완성할 수 있도록 오늘도, 내일도 마이크를 잡겠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의 초심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신승훈<가수>
◆베스트10 선정위원
임진모·송기철·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이영미(『한국대중가요사』 저자), 김종휘(문화평론가), 신승훈·이승철(가수), 주철환(OBS 경인TV 사장), 하성란(소설가), 이재무(시인). 각자에게 조용필 히트곡 15곡 내외를 추천받아 그중 10곡을 엄선했다.
조용필, 그때 내 마음은 ¨
1980년대 초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마음을 되돌아보는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요라고 해서 늘 사랑 아니면 이별만 노래하라는 법이 있는가.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사는 물론, 멜로디·사운드 등에서 틀을 깨는 가요를 만들고 싶었다. 가요에 ‘엄마야’라는 가사가 들어간 것은 ‘고추잠자리’가 처음이다. ‘엄마야’란 단어가 사람들에게 모성과 동심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작사가 신광철의 가사에 가성을 붙여 곡을 만들었다. 가성에 화음을 붙였는데, 그게 잘 안 나와서 가성 연습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코드도 내가 당시 좋아하던 것, 당시 가요계에서 거의 쓰지 않았던 것이다. 예상대로 반응이 빨리 왔다. TV·라디오 인기순위에서 24주간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장 기록이다. 동요적인 가사와 가성·화음·코드 등이 잘 어우러진 게 적중한 것 같다. 특히 청소년 층 사이에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가을 경기도 화성에서 첫 귀향 콘서트를 했는데, 이 노래가 특히 반응이 좋았다. ‘화성 소년’ 조용필의 추억과 감성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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