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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공연후기]왔노라,보았노라,폭 빠졌노라!(8.29 잠실공연후기)

오리엔탈, 2009-09-01 22: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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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이라는 가수는 그저 내게는 먼 존재였을 뿐이었다. 특별히 노래를 챙겨서 들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가사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노래라고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여행을 떠나요' 정도랄까...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아무리 연령대를 낮춰 잡는다 치더라도 10대 중반 이상이라면 누구나 조용필이라는 존재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항상 국민가수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달고 다니는 그를, 그러나 나는 조용히 무시(?)하고 살아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9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서울 시내 곳곳에 노래방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놀이시설이 등장했던 것이...
  500원짜리 동전 하나만 넣으면 내가 원하는 어떤 최신 가요도 템포와 음정까지 맞춰주는 요상한 기계가 하도 새로워서 공강 시간이면 친구 녀석들과 부리나케 노래방을 다녔었더랬다. 그래도 조용필 노래는 한 번도 부르려고 시도했던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 나이에 조용필 노래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런 기억도 있다.
  학부 2학년 말이었던 것 같다. 군에서 제대해 다음 해 복학을 앞둔 88학번 형과 처음으로 술집에 마주앉아 권커니 잣커니 오고가는 술잔 속에 충분히 안면을 트고, 다음 차수로 여럿이 우르르 당연히 노래방을 갔었다. 마이크를 잡는 순간 그 형이 선택한 곡은 '그 겨울의 찻집'.
  순간 나와 친구 일행은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었다. '이 형 20대 맞아?'하는 표정으로...

  당시 우리 기준으로 볼 때 조용필의 노래는 최소한 40대 이상이 부르는 노래라고 나름대로 암묵적 합의를 나누었었으니까. 특별히 소화하기 어려운 난해한 노래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들에게 조용필의 노래는 일종의 금지곡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던 내가 얼마 전 친구 녀석으로부터 조용필 40주년 기념 앨범을 선물로 받았다. 그 친구가 원래부터 조용필을 좋아하고 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친구로부터 CD를 선물받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앞으로도 한동안은 주욱 조용필과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으리라...
   출퇴근길에 CD를 이리 뒤적 저리 뒤적하다가 처음 들었던 곡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이었다. 뭐랄까? 약간의 과장을 살짝 얹는다면 목 뒷덜미가 꽉 당기는 그런 느낌이었다.
  '저게 정녕 나이 육십의 목소리란 말인가?' 분명 실황 앨범인데, 그렇다면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아, 이건 정녕코 불공평해!'
   알코올과 니코틴에 절어 있는 내 목소리는 아직 3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진작에 한 옥타브 반 이상이나 내려앉았건만... 몇 번에 걸쳐 반복 재생해서 들었던 것 같다.

  그 다음에 택했던 곡은 'Q'였다.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다.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 버렸다. 이제는 그대를 내가 보낸다."
  
  완벽하게 외우고 있지는 않았었지만, 어느 정도 귀에 익숙한 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가사들이 새삼 그렇게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이제 약간은 알 것도 같다.
  조용필의 노래와 목소리에는 분명 잉여와 결핍이 혼재되어 있다. 그래서 들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녀석 말로는 내가 좋아하는 일련의 레퍼토리는 자작곡이 아니라서 조용필 팬들에게서는 인정받지 못한다고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내게 꽂히는 가사와 멜로디는 그런 노래들인데...

  "토요일 저녁 7시까지 잠실 주경기장으로 와라!" 그래서 갔다.

  나는 하나도 모르는 낯선 이들이었지만, 친구 녀석을 통해 이 사람, 저 사람 소개받으며 서둘러서 복분자주 한 잔. 얼굴 보니 이 녀석은 벌써부터 낮술로 불콰하다. 녀석의 평소 주량으로 보면 간에 기별도 안갔을 복분자주 다섯 잔임에도 불구하고, 둥실둥실 달뜬 목소리를 보니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서임에 틀림없으렸다!

  다 식어 빠진 통닭과 햄버거를 안주 삼아 길모퉁이 한 켠에 둘러앉아 술자리를 시작했다. 그 때 나는 놀랐다. 하나 둘씩 짝을 지어 주경기장을 찾는 이들의 면면이 왜 이리 다양하단 말인가!

  당연히 40대 이상들이 주류를 이룰 거라 착각을 했었다. 그런데 웬걸?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이 무슨 조화란 말이냐!

  분명 자발적 의사로 참여한 사람들일진대 도대체가 평균 연령을 짐작할 수가 없다. 순간 뒤통수를 탁 치며 드는 생각, '아! 이게 바로 조용필의 힘이구나!'

  멀리 상주에서 오신다는 분에게 티켓을 전해주느라 콘서트의 시작부터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콘서트장의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콘서트장에서 보냈던 시간은 내 짧은 필력으로는 감히 옮기기가 어려울 것 같아 과감히 생략하고자 한다. 그래도 그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하리라!

  지하철을 타고 종합운동장역에 내릴 때만 하더라도 사실 오늘 공연은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콘서트장에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오늘 공연은 '당신들의 천국'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공연을 마치고, 팬클럽 회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 무료로 공연 잘 봤으니 몸 바쳐서 자원봉사라도 해야겠지? - 그 긴 20여 미터짜리 현수막을 걷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오늘 공연은 '우리들의 천국'이었다고...

  인생을 소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관계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사랑에 몸을 던지는 것일 게다. 순간의 충만함, 꽉 찬 것 같은 시간을 위하여...
   그러나 사랑의 끝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소모하지 않는 삶을 위해 사랑을 택했지만, 반대로 시간이 지나 사랑이 깨지고 나면 삶이 가장 결정적인 방식으로 탕진되었음을 말이다.

  하지만...
  조용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당장 친구 녀석만 보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용필이 형에 대한 감정은 녹이 슬기는커녕 보톡스를 연거푸 맞은 사람처럼 팽팽하고 짱짱하게 탄력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날 공연장에서 마주친 수많은 이들을 보면서 환히 빛나는 그들에게서 나는 위화감보다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학부 시절 매캐한 최루 가스에 눈물 흘리고, 민중가요를 들으며 온 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에 몸서리치던 그 때의 감정과는 분명 다르지만, 이것 하나만은 똑같았다.

  오늘 내가 이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
  때로 누군가와 함께 '통했다'라는 느낌이 주는 포만감은 분명 나를 고양시킨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그랬다지.
  "VENI VIDI VICI" 직역하자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쯤 될 것이다.

  지난 토요일 밤 당시의 내 감정을 카이사르 식으로 표절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왔노라, 보았노라, 폭 빠졌노라!"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다. 조용필의 노래가 귀에 박히는 순간 진정한 대한민국의 중년이 되는 거라고... 들은 이야기 그대로 친구 녀석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그 친구 왈

  "말도 안 된다. 용필형 노래 좋아하게 되면 중년이 아니고 천사가 되는 거란다, 짜식. 그걸 이제 깨달았으니 넌 이제야 철이 든 거야."

  그래, 이제 나는 중년을 코 앞에 둔 내일 모레면 마흔이 되는 삼십대 후반의 대한민국 남성이다. 하지만 용필이 형의 새로운 매력을 재발견한 지난 토요일 밤의 열기가 새삼스레 나를 미소짓게 한다.

   친구 녀석 말마따나 천사가 되기는 일찌감치 그른 것 같지만, 그런들 또 어떠랴. 이제 내게는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유희가 한 가지 더 늘었으니 그걸로 족하지...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캬!  
   콘서트 끝나고 그 늦은 시간에 곰탕 한 그릇 시켜 놓고 먹는 녀석의 국물을 훔쳐 먹으면서 소주잔을 홀짝이며 나는 나름 분위기를 잡았다.

  왜 이리 소주 맛이 좋은 거야, 젠장!
  2차로 맥주나 마시러 가야겠다.

  친구야!
  고맙다. 분명 너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용필이 형에게 이미 나포된 것 같은데...

P.S) 삼가 여러 회원님들께 아룁니다. 조용필이라는 호칭은 그 분을 욕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음을 널리 이해해주시기를. 저도 회원으로 오늘 가입했답니다. 짧고 두서없는 글이었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기를... 좋은 하루 되세요.

20 댓글

미지[백준현]

2009-09-01 23:11:36

ㅎㅎㅎ 쫄기는 ㅋㅋㅋ

암튼 필세상에 온것을 환영한다.. 담엔 앞자리로 함 가서보자 ^^

pil~green

2009-09-01 23:33:35

친구 얘기할때 "필짱 친구"일꺼라 생각했는데 맞네요
이바닥(?)에 온걸 환영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지 환영합니다
글 엄청 잘 쓰셨네요.. 앞으로도 많이 써 주세요~~~
암튼 글 잘 읽고 갑니다 ~~~


정 비비안나

2009-09-01 23:37:47

오리엔탈님~~~! 행복하셨죠?
재미있게 읽었어요! 환영합니다!

은솔

2009-09-01 23:52:39

왠지 오리엔탈님도 필님에게서 헤어나지못하실것 같네요^^

유현경(그대)

2009-09-02 00:01:52

이런 후기 넘 좋아... 이젠 더 이상 후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 줄 모르겠거든요. 그 공연 속에 저도 함께 있다는거에 대한 우쭐감까지 느끼게 해주시는 글이네요. 그날 인사는 못했지만 게다가 복분자도 못마셨지만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후기 정말 감동입니다.

필사랑♡김영미

2009-09-02 00:02:18

앗~! 제목 보고 feel 팍~ 느껴졌습니다. 필짱님 친구 분이라는 것을...
이제나저제나 후기가 언제 올라오나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스에서 처음 뵈었을 때 조용필님 공연은 처음이라고 해서...
친구가 하도 꼬셔서 왔다는 그런 분들이 보고 느낀 공연의 소감을 꼭 들어보고 싶어서
후기를 꼭 써달라고 했더니...역시나 감탄했습니다.^^

혹시, 공연 보시고 감동 먹어서 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맘으로 우셨군요.
글을 읽는 내내 오리엔탈님의 제대로 된 감동이 느껴져서 저 또한 기분이 흐뭇합니다.^^

플랭카드를 걷고, 공연을 함께 보시고, 그 감동에 몸서리치며 이렇게 후기를 올리시는 것만으로 이미 필님의 늪에 빠지셨습니다.
중절모(?) 이뿌게 쓰고 오신 미지천사님~
이젠 필짱님 따라서 공연장에서 자주 뵈어요.^^

제가 누군지 아시려나요?
부스에서 마지막까지 함께 있다 공연시작 소리에 티켓 냅다 던지고 먼저 들어간 사람입니다. 감동적이고 짜릿하고 자부심 느껴지는 후기 잘 보고 갑니다.^^/

풀빵

2009-09-02 01:07:27

환영합니다...

꿈의요정

2009-09-02 01:18:41

캬~! 무어라 표현을 할수가 없네요
오리엔탈님...*^^*
그저 잘 읽었다란 말밖엔...몇번을 더 읽어 보아야 될것 같습니다.
감동입니다.진짜로....^^

겨울나무

2009-09-02 04:55:17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쭉~

blue sky

2009-09-02 04:58:13

가슴에 팍~~ 와 닿는 후기 감동입니다
읽는 내내 필짱님 친구일거라 생각했어요
이렇게 감성적인 분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합니다
필짱님!!~~ 친구분 잘 두셨어요^^

미지[백준현]

2009-09-02 05:56:48

ㅎㅎ 저놈이 친구를 잘 둔거죠..^^ 지가 어디가서 용필형 공연을 보겠어요 ㅎㅎㅎㅎ

2009-09-02 06:03:05

오리엔탈 나랑 비슷한 나인데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음악적으로나 팬으로보나 우린 다같은 친구입니다

팬클럽운영자

2009-09-02 06:05:38

반갑습니다. 오리엔탈님^^
필짱넘의 친구분이시라구요? 음.. 무지 궁금하외닷! 음홧홧홧~
글 잘읽었습니다. ^^ 빠른 시일내에 뵙기를 소망합니다.

aromi

2009-09-02 08:53:07

철학자 내지는 시인의 감수성을 지니신 분 같아요.
이 분께 홍호표 교수님의 책 "조용필의 노래 맹자의 마음"을 강추합니다.
필짱님 이 책 있으시면 친구분께 빌려주세요 ^^*

미지[백준현]

2009-09-02 17:38:15

그 책은 저도 없어요 ^^
한번 구해서 읽게 만들어볼께요 ㅋㅋㅋㅋ

필사랑♡김영미

2009-09-02 18:57:17

↑↑ 그 책 사서 선물로 드리세요.^^/

지오스님

2009-09-02 19:18:03

오리엔탈님~
마이 반갑습니다!
나름대로 많이 분석하셨군요...
앞으로 필짱님 따라다니시다 보면 필님의 위대함을 더 실감하실겁니다.

필짱님~
혹시 제 전시회 때 같이 오신 분 아니죠???

미지[백준현]

2009-09-02 20:23:39

지오스님 맞아요 ㅋㅋㅋ
그때 같이 갔던 심오하게 생긴 친구입니다. ㅎㅎㅎ

弼心으로 대동단결

2009-09-02 22:15:15

우와,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예스

2009-09-05 10:35:00

정말 반갑네요.. 늦었지만 필님의 세계에 합류하신걸 환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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