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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칼럼] 조용필이 만들어낸 세상 단 하나의 경험
조용필의 < Hello >는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노래 속의 ‘그대가 돌아서면 두 눈이 마주칠까
심장이 Bounce’(‘Bounce’)하고, ‘네게 빠져들어 정신 잃기 직전’(‘Hello’)이다. 하지만
‘나의 에너지원’(‘충전이 필요해’)이던 연인은 ‘한 걸음 모자라 보낸 그대’(‘서툰바람’)가 됐고
, ‘그리웠다 말해볼까’(‘말해볼까’)라며 재회를 고민하며, 재회 후엔 ‘높은 산 위에 하얀 눈처럼
우리 사랑이 아름’답다. 조용필이 2013년에 부르는 청춘 같은 연애. 그러나, 조용필은 후반의 곡들을
통해 노래한다. ‘빛나는 기억들 울렁이던 젊음’(‘어느 날 귀로에서’)은
사라졌지만 ‘설레임 그대로’(‘설렘’)라고.
나이와 마음의 균형
64세에 심장이 뛰는 사랑을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마음만 앞서면 주책이 된다.
포기하면 시든 꽃이 될 것이다. 젊음을 꿈꾸되 젊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프로듀싱과 작곡을 젊은 뮤지션에게 맡긴다. 선공개된 곡과 타이틀에는 ‘Bounce’나
‘Hello’처럼 쉽게 기억할 수 있는 후렴구가 들어간다. 하지만 < Hello >의 모든 곡은 옛스럽다
할 만큼 차근차근 기승전결을 밟아 나간다. ‘Bounce’와 ‘Hello’처럼 요즘 감각에 가장
가까운 곡 마저도 후렴구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감정을 쌓아간다. ‘충전이 필요해’는
1절을 진행하는 동안 파트마다 단계를 하나씩 밟아 기승전결의 단계를 보여준다. 대신
‘Bounce’의 깔끔한 건반이나 ‘충전이 필요해’의 문자 그대로 ‘락킹’한 사운드처럼 도입부부터
대중의 귀를 때릴 사운드를 찾는다. 10년전 발표했던 < Over the rainbow >의 기타는 헤비메틀을
연상시킬 만큼 강하고 무거웠다. 하지만 < Hello >는 ‘Hello’처럼 마치 얇은 막을 뜬 것처럼
얇고 날렵한 톤을 선택할 수도 있다.
곡의 구성은 완고해 보일 만큼 명확하다. 반면 곡을 포장하는 방식은 곡에 따라 얼마든지 바꾼다.
젊은 마음도, 나이에 어울리는 품격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 심지어 그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위엄도 일정 부분 내려놓는다. ‘널 만나면’의 도입부에서는 자신의 보컬을 조금 변조하고,
‘Hello’는 타이틀 곡임에도 록 사운드의 강렬함이 조용필의 보컬을 뒤덮는다. ‘서툰바람’
은 아예 곡의 핵심이 멜로디의 전개에 따라 큰 폭으로 변하는 사운드에 있다. 조용필의 보컬은
이렇다할 고음도 거의 쓰지 않고 담담하게 곡을 끌고 간다. ‘어느 귀로에서’처럼 후렴구에서
작정하고 감정을 쏟아내는 곡을 제외하면, < Hello >에서 조용필이 목소리를 ‘지르는’
마무리를 하지 않는다. 열창하지 않고도 ‘조용필’임을 증명하는 목소리와 기타 사운드가
같은 비중으로 들리며 청량함을 전달하는 ‘널 만나면’의 후렴구는 조용필의 쿨한 태도가
만들어낸 < Hello >의 가장 멋진 순간이다.
쿵쾅거리는 심장, 수줍게 내민 손
심장은 쿵쾅쿵쾅(Bounce)거린다. 하지만 뮤직비디오 속 젊은이처럼 세상을 다 부숴버릴 수 있을
만큼 과격하게 사랑을 표현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수줍은 듯 건네는 첫 인사(Hello)뿐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유일무이한 존재, 또는 64세의 현역. 그럼에도 조용필은 놀라울 만큼 조심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마치 자신의 감정이 촌스럽거나 주책맞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조용필의 절절한 감정이 짙게 표현되는 ‘걷고 싶다’와 ‘그리운 것은’이 아쉬운 결과를 낸 것은
이 때문이다. ‘걷고 싶다’는 조용필이 데뷔 후 처음으로 부른 ‘90년대식 발라드’일 것이다. 피아노
한대로 시작해 오케스트라와 관악기까지 동원되며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 편곡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식 발라드의 인장같은 것이다. 이 곡의 작곡과 편곡에 그 시절의 음악적 토양을 바탕으로 상장한
MGR과 박인영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걷고 싶다’의 편곡은 관악기를 바탕으로 애잔하게
감정을 정리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반면 조용필의 보컬은 ‘한오백년’을 불렀던 그 때처럼 절절한 느낌을 가미한다.
조용필의 꿈 |
조용필은 ‘그리운 것은’에서도 조용필은 ‘속삭이는 향기 찾아 매화꽃이 만발한’
가사에 어울리는 구성진 보컬을 들려준다. 하지만 테크노를 앞세운 곡의 사운드가 전자음으로
조용필의 목소리를 덮으면서, 조용필의 목소리는 하나의 곡이 아닌 DJ의 리믹스에 쓰인 보컬처럼
소비된다. 반대로 조용필이 작곡하고, 보컬의 변화에 편곡이 맞춰가면서 목소리에 확실한
주도권을 준 ‘어느 날 귀로에서’가 후반으로 갈수록 조용필의 감정을 더 확실히 드러내는 것은
흥미롭다. 필요에 따라서는, 그는 조금 더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도 좋았을 것이다. 거침없이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되던 때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여전히 젊은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렇게 다르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경험
조용필은 이미 ‘단발머리’로 시대를 초월하는 디스코의 명곡을 만들어냈다. ‘여행을 떠나요’는
녹음만 다시 한다면 < Hello >에 수록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록이다. 장르적 혁신이나 도전이라면
< Over the rainbow >의 프로그레시브 록도 만만치 않다. < Hello >는 현재의 대중음악계 전체에서
보면 훌륭한 앨범이지만, 조용필의 디스코그래피에서는 2010년대 이후의 조용필을 위한 과도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 Hello >의 진정한 가치는 거기에 있다. 조용필은 그저 레전드로만 남아있는 것을
택하지 않았다. 반대로 젊어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지도 않는다. 대신 여전히 쿵쾅대는
심장의 박동을 어떻게든 자신의 나이와 깊이에 맞는 방식으로 표현하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느 성공도,
미완의 결과도 있다. < Hello >는 나이든 거장이 청춘과 연애를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고민하는지 절절할 만큼 증명한다. 그것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 Hello >는 그 음악 때문에 음악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한국인에게
아직까지는 유일무이한 이 새로운 경험은 거장의 지난 세월과 현재의 고민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인생의 길을 열어 살아갈 용기 갖으리’(‘그리운 것은’)라 다짐하는 64세의 음악이 전 세대를 납득시켰다.
오직 지금의 조용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418&aid=000000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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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꿈이좋아
2013-05-23 07:55:41
너무나 좋은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