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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노래만 듣는다고 경찰에 날 신고했시야!"
[공모-헬로~ 조용필!] 조용필에 얽힌 추억, 많기도 많다
[추억①]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고 가출한 언니
언니가 집을 나갔다. 열아홉 살이었다. 지금은 흔한 말이지만 그때는 이름도 생소한 '가출청소년'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당시 서울을 떠나 멀리 경북 안동에 '함바식당' 개업을 준비하느라 며칠씩 집을 비우던 상황이었다. '함바'는 건설현장에서 주로 쓰는 일본말로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밥집이다.
함바식당 운영계획은 고지식하게 살아온 엄마와 아버지를 들뜨게 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청과물 일을 하던 아버지가 겨우 집 한 칸을 마련하고 살다가 빚보증을 잘못 서면서 한동안 실의에 빠졌을 때, '함바식당을 하면 돈을 크게 벌 수 있다'고 유혹하는 한 이웃을 만났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지금도 나는 '함바'라는 글이 눈에 띄면 가출한 언니가 먼저 떠오른다. 그때 우리 집에 한꺼번에 몰아닥친 시련들로 피해의식이 컸다. 사촌보다 친절했던 이웃이 갑자기 사기꾼으로 변한 그 경험은 섬뜩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후 나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버릇이 몸에 배어버렸다.
'함바식당'은 결국 돈만 날린, 허황한 꿈이 되고 말았다. 언니가 집을 나간 지 일 년이 더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엄마는 언니가 부산에 가지 않았을까, 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왜 꼭 부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용필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자주 들리던 때였다.
엄마는 '큰애가 어디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넋두리를 하곤 했는데, 이 노래는 언니가 부산에 있을 것이란 아련한 희망을 품게 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엄마의 기도였다. 깊은 우물을 퍼 올리듯 한 소절, 한 소절을 사무치게 부르는 조용필 노래는 엄마를 위한 위로의 씻김굿이었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엄마는 이 노래를 들으며 그윽하고 절절한 슬픔 속에 당신을 푹 적셨다. 어쩌면, 어디서 어떻게 죽었을지도 모를 큰딸을 다시 살려내고 돌아오게 하는 그리움과 희망의 부산! 엄마에게 언니는 부산에 있어야 했다. 어쩌면 '부산에 살아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한 것이 '돌아와요 부산항에'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오장육부를 갈갈이 찢어내는 듯한 슬픔을 저 노래로 버티며 언니가 집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꽉 잡고 있었다.
[추억②]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고 동생
엄마에게 막연히 '희망의 터전'이었던 부산이 시간이 흘러 아주 구체적인 '부산'이 된 건 남동생 때문이다. 올해 50세가 된 남동생이 공고(토목과)를 졸업할 즈음, 모 건설회사 공채에 합격한 것이다. 동생이 처음으로 발령받은 공사현장이 부산이었다. 동생은 졸업과 동시에 바로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동생은 혈혈단신 월남한 아버지가 나이 마흔에 얻은 3대독자다. 남아선호사상이 극심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딸 많은 집은 계속 자식을 낳았다. 그래서 아들을 낳으려고 7공주, 1남3녀, 1남4녀를 둔 집이 동네에 흔했다. 엄마는 언니와 나를 낳고 동생을 낳은 후에 단산을 했다. 아마 동생이 딸이었다면 넷째까지 낳으려고 계획했을 지 모른다.
동생은 엄마한테 늘 애틋한 '우리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엄마의 애정이 깃든 최고의 표현이었다. 그 강아지는 천방지축으로 뛰어놀다가 팔도 부러지고 다리도 부러지곤 했지만 엄마에게는 귀여운 강아지였다. 엄마는 '우리 강아지' 때문에 항상 노심초사였다. 엄마는 아들을 팔아야 명이 길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터라, 절에다 이름을 올리고 동생의 수양엄마를 만들었다.
난 동생의 수양엄마라는 사람이 우리 집에 가끔 와서 주문(염불)처럼 중얼거리는 소리가 무서웠다. 햇빛에 그을린 까만 얼굴에 깡마른 할머니가 수양엄마라는 것도 이상했다. 수양엄마가 두어 달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와서 기도해주고 갈 때마다 엄마는 흰봉투를 건넸다.
금이야 옥이야 20년 가까이 끼고 살던 '우리 강아지'가 엄마 품을 떠났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다시 엄마의 삶 속으로 깊이 침투했다. 부산에 내려간 동생은 한동안 집에 올 수 없었다. 엄마는 '부산 동래구~'로 시작하는 현장 주소만 갖고 '우리 강아지'를 만나기 위해 직접 부산에 내려갔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렇게 또 '우리 강아지'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특별한 노래로 이어졌다.
[추억③] 구로공단 벌집에 살았던 순이가 오해 받은 이유
80년대. 서울 구로공단에서 가까운 가리봉동 '벌집'에 사는 순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벌집은 방 하나에 부엌 하나가 딸린 곳이 서로 다닥다닥 벌집처럼 붙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순이네 집에 가면 그곳에서 자취를 하며 공단에 다니는 10대 후반,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순이도 그랬다. 전북 부안이 고향인 순이는 일해서 번 돈을 고향에 보내고 저축도 했다. 순이는 진실하고 이름처럼 순했다. 그랬던 그녀가 같은 직장의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었다. 짝사랑이었다.
나는 여의도에 있는 무역회사를 다니면서 쉬는 날이면 가끔 순이네 집에 놀러갔다. 순이는 같은 공장에서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친구다. 졸업하고 나는 퇴직했고, 순이는 계속 그곳에 있었다.
순이가 좋아한다는 그 남자는 나도 얼추 얘기를 들어 알고는 있었다. 순이가 설마 그런(?)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 운동신경이 발달해선지 축구, 농구, 탁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고 훤칠한 키에 잘생겼다기보다는 이쁘장한 남자였다. 그 사람은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어쩌면 그 친절이 순이한테는 그 이상으로 전달됐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야근 후 늦은 밤에 순이를 집까지 바래다준 적이 있나본데, 그 한 번으로 순이에게 그 사람은 특별해졌다.
순이가 날 만나기만 하면 조용필 노래를 불러대던 시기가 이때쯤이었다. 듣기 좋게 잘 부르는 건 아니지만 성의껏 부르는 노래를 듣다보면 순이가 사랑에 빠졌구나, 싶었다. 노래는 하나같이 처량했고 순이는 진지했다. 혼자 짝사랑하던 그 사랑을 얻지 못해 슬픔에 빠져버린 순이의 노래를 함께 들어주면서 공감해주는 것 이외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위로는 없었다.
'다시는 생각을 말자 생각을 말자고 그렇게 애타던 말 한마디 못 하고~ 잊어야 잊어야 만 될 사랑이기에~♬'
'정이란 무엇인가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정에 울고 정에 살아온 살아 온 내가슴에 오늘 도 남 모르게 무지개 뜨-네~♪'
나는 순이가 타준 뜨거운 커피믹스를 홀짝거리며 지직거리는 테이프로 조용필노래를 듣기도 했다.
'바람 속으로 걸어 갔어요 이른 아침에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센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아름다운 죄는 뭘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니, 잘 모르지만 알 것도 같아."
"우리한테 뜨거운 이름은 언제 생길까? 히히…."
우리는 방바닥을 뒹굴며 노래가사의 서사를 아주 극적으로 상상하며 비련의 주인공이 되었다.
"같은 노래만 계속 듣는다고 누가 날 신고했시야!"
그러던 어느날, 순이한테 어이없는 일이 생겼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자기네 집에 경찰이 와있었다고 했다. 순이가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조용필 노래를 하루종일 듣다시피 했던 게 오해를 받았던 것 같다. 아니라면 조용필 노래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일까. 80년대였으니 아마 조용필 노래를 빙자한 간첩의 소행쯤으로 여겼나보다.
그 당시 공단에는 위장취업을 한 뒤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찰은 순이가 다니는 직장에 신원확인까지 했다고 했다. 이상한 오해를 받은 순이는 한동안 시무룩했다. 순이는 그로부터 3년 후 '가슴에 뜨거운 이름'을 둘 만큼 믿음직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아마도 순이는 지금 '아름다운 죄'를 읊조리는 대신 사뭇 다른 분위기의 '바운스'를 들으며 '록'으로 조용필을 다시 느끼고 있을 거다.
[추억④] '허공'을 부르던 주점 아주머니의 얼굴
남편과 만나던 시절, 우리는 신림동 언저리에 있는 주점에 들어섰다. 오래된 시골 한옥집 대문 같은 곳을 열고 들어가니 마치 회색의 나라에 온 것 같았다. 일부러 꾸민 것도 아닌데 마루와 탁자, 군데군데 놓여있는 망태기나 소품으로 걸어놓은 짚신도 회색빛 분위기였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동동주와 도토리묵 하나를 시켰다. 저녁시간이 비껴간 밤이었다. 손님도 별로 없었다. 천장에 매달린 노르스름한 등잔도 회색빛에 묻히는 듯했다.
60대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주문한 음식을 들고 왔다. 우리보다 먼저 왔던 손님이 가고 나자 아주머니는 우리 자리에 와서 같이 앉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술이 한 순배 돌고 아주머니는 남편에게 노래 한 곡을 부탁했다. 남편의 노래가 끝나자 이번엔 아주머니가 답가를 불렀다. 조용필의 '허공'이었다.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이야기
스쳐버린 그날들 잊어야할 그날들 허공 속에 묻힐 그날 들~♬"
아주머니에겐 무슨 사연이 있을까? 노래를 듣고 나니 처음 만난 아주머니 인생의 쓸쓸함이 연기처럼 번지는 듯했다.
"학생들이 최루탄이나 데모 진압대에 쫓겨서 도망 오면 나는 신발부터 감췄어. 저 짝에 잘 보이도 않는 문, 그 쪽으로 많이 도망시켰지."
아주머니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었다. 아주머니는 대학근처에서 주점을 하면서 학생운동을 지켜본 사람이었다.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도와주면서 부딪혔던 수많은 두려움과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이야기를 가슴에 묻지 않았을까.
아니, 청춘의 열정과 사랑을 허공에 묻지 않았을까. '허공'을 들을 때마나 나는 신림동 주점 아주머니의 여리면서도 강한 인상이 '허공 속에 불화살처럼' 떠오른다. 그 아주머니의 '허공'은 암울한 시대의 푸릇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로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 '헬로 조용필'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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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꿈이좋아
2013-05-28 18:47:05
우리 옛날 오빠 이야기 보따리 꺼내면 하루종일 써도 모자라지요....
너무 재미있습니다...오빠야 이야기는 너무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