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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시각에서 본 YP(1)- "

이미경, 2000-12-28 06:28:25

조회 수
602
추천 수
8
아래의 글은 천랸 <필FEEL> 회원이신
대화명 "조국근대화"님께서 그동안
필동게시판을 통해 연재해 오던 글입니다.


*************

제 목 : [조국근대화] 근대화의 시각에서 본 YP(1)

YP의 음악적인 업적을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논한다는 것은 어
찌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
는 이미 한국가요의 매니아라고 한다면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실 것이기 때
문입니다. 하지만 그 유명한 비틀즈에 대한 음악사적 작업들도 지
금 이 시점에서 다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
도 다시금 그의 업적을 음악사적으로 재정립하지 않는다면 표절과
벤취 마킹으로 얼룩져있고 호도되어있는 한국의 대중음악계를 바
로잡는데 있어 그 시기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러한 작
업들은 새삼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
다.

이 글은 아마도 연재의 형식을 취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시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신다면 나름대로 도움이 되리
라고 자신합니다.

1. 1980년대 초의 YP의 등장의 음악사적 의의

이미 그는 1970년대 중반에 정식으로 대중음악계-엄밀히 이야기
하자면 오버그라운드-에 나서게 됩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그의
영원한 히트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다
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그는 활동에 제약을 받게되고 이미
그 전의 가수들이 그랬듯 그의 활동은 대중에게세 잊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활동금지가 풀리면서 80년대 최고의 인
기곡으로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지고 있는 '창밖의
여자'를 통해 다시금 오버그라운드의 전면에 오르게 됩니다.

여기서 새삼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언급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논하는 것은 그의 음악적인 면에서
의 업적을 이야기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
습니다.

일단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70년대 말에서 80년대초에 이르
는 시기의 음악적인 지형도일 것입니다. 앞서 불미스런 사건이라
일컬었던 흔히들 이야기하는 대마초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
를 본 것은 일련의 대중음악내의 뮤지션 그룹들 중에서도 음악-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한국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
다. 한국에서의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한대수라는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 한국음악계를 떠난 이후, 그리고 김민기와 양희은이 정
치적인 문제로 활동에 제약을 받게된 이후에 미국에서의 경우와는
다르게 서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측면으로 변질되어왔기 때문
입니다-을 주도하던 그룹들과 신중현을 위시한 락뮤지션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 한국에 있어서의 대중음악은 사실상 오로지
TV의 쇼프로그램에 의한 쇼 프로그램을 위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음악의 전통을 보다 약
하게 이어가고 있던 젊은 뮤지션들이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그 것
은 트로트에 대한 대중의 일시적인 발반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시
각일듯 합니다.

사실상 그의 데뷔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적인 색깔을 찾지못하고
있던 YP에게 그의 실질적인 데뷔라고 할 수 있는 80년의 활동재계
는 그가 스스로에게 자신의 음악이 어때야하는지를 자각하게된 계
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아무리 큰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할 지라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의 음악을 하나의
일직선상에 놓고 본다고 하면 상당히 많이 벗어나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그의 재등장은 한국음악사에 있어서 음악
의 정리와 락음악의 전면에로의 부상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락음악을 이야기할 때 신중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
다. 그리고 물론 그는 한국의 락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
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가장 아까운 것은 그의 보컬리스트로서의 능력이 다
소 떨어진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가수로서의 신중현을
평가한다면 그는 최고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
기 때문입니다. 일단 불안한 음정과 상대적으로 미성의 가수들을
선호하는 한국의 대중의 기호에 맞지않는 탁성의 소유자라는 점이
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음악은 그의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성
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며 그의 그런 보컬리스트로서의 약
점은 그가 기용했던 게스트 보컬들에 의해서도 해결될 수 없었다
는 점은 정말 아쉬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YP의 등장은 이러한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동년배의 뷰지션들 대부분이 무대에서부터 자신의
음악적인 경력을 쌓으면서 오버그라운드로 나오게 되었지만 당시
의 대중음악의 풍토였는지 아니면 한국 대중음악의 한계인지는 몰
라도 일단 오버그라운드로 나서게 되면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60~70년대의 락음악과는 동떨어진 음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에 있어서의 락음악의 발전에 질곡으로 작용했던 것입니
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재등장과 더불어 락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
중적인 인기를 확보함으로써 반대의 경로를 통해 락음악을 대중화
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
다. 이미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은 당시에 락음악의 전성기를 보
내고 뉴 웨이브 음악이 주도하려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1980년말의 존 레넌의 사망으로 인해 그들은 다시금 락
음악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게 되었으며 그러한 대중의 복고적인
취향은 1982년에 다시금 락음악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의 한국에서의 상황은 YP의 승승장구로 인해 락음악
이 비로소 오버그라운드에 등장하게 되었고 비로소 한국의 대중들
은 매니어의 음악이 아닌 대중음악으로서의 락음악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가장 중요한 점은....그의 등장으로 인해서 해외의 대
중음악과 한국의 대중음악간의 시간적인 격차가 비로소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상당히 좁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제가 첫번째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의 등장으
로 한국에서의 락음악이 그 위치를 오버그라운드내에서 확보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다른 나라의 대중음악과의 격차가 작아지기 시작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그 이전의
한국의 대중음악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행동들을 거듭했나를 생
각한다면 이는 획기적인 일이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졸필의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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