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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시대의 간판스타는 누구인가. 이 대목은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최고의 가객(歌客)’이자 ‘20세기 대중가요의 영웅’으로 손꼽히는 조용필이다. 그는 정확히 신군부 정권이 탄생할 무렵 전성기를 열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5공 정권 내내 난공불락의 톱 가수 자리를 지켰다. 물론 겉으로 통치자와 최고가수를 맺어주는 끈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정성과 무관하게 ‘청와대의 주인’과 ‘토토즐의 주인’은 서로를 건드리지 않는 ‘불가침조약’을 맺으면서 시대를 동행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함께 대중전선에 화려하게 등장한 조용필은 유신정권 말기에 출발선을 끊었지만 대마초 파동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불가피하게 트랙에서 중도 하차해야 했다. 이후 뼈를 깎는 가왕(歌王) 훈련으로 내공을 다진 후 정확히 1980년 꽃샘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무대로 되돌아왔다.
때는 바로 현대사의 분기점이라는 ‘서울의 봄’. 잠깐 동안 핀 개나리꽃이 5·17 계엄확대조치와 5·18광주의 비극으로 화향(花香)을 잃던 그 시점, 조용필의 노래는 현실에 아랑곳없이 더욱 진한 향을 뿜으며 꽃을 피웠다.
조용필의 컴백 앨범은 기념비적인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를 비롯해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대전블루스’ ‘슬픈 미소’ 등 수록된 전곡이 줄줄이 히트를 기록하는 대박이었다. 이 시점부터 그의 히트 행진은 신군부, 나아가 5공 정권과 운명적 인연을 맺는다. 본인은 절대로 원치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신군부 정국의 사운드트랙, 즉 배경음악이 됐다고 할까?
과연 무엇 때문에 이 시대에 조용필의 노래가 그토록 대중의 호응을 얻었던 것일까. 탁월한 가창력과 음색 그리고 획기적인 음향이 가져온 음악의 개가임이 명백하지만, 시대 분위기의 영향도 컸다. 이에 대한 방송작가 구자형씨의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
“조용필의 생명은 외침이라고 봅니다. 팝 가수 로드 스튜어트로부터 그리고 이후 판소리에서 그는 비명이란 영양제를 얻었지요. 그만의 섭생을 통해 생성된 트레이드마크인 절규는 결코 음악적인 것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억눌린 시대라서 사람들의 가슴에 더욱 파고들지 않았을까요. 조용필 아니면 불가능한 한(恨)의 울림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당시 사람들의 숨막힘과 두려움을 씻어주는 안정제이기도 했지요. 다시 말해 전두환 시대가 조용필의 비명을 더 리얼하게 만든 겁니다.”
조용필에 대한 진보진영의 시각
그렇다면 조용필의 노래도 부분적으로 5공이란 시대적 특수환경에 빚을 진 셈이다. 전두환 정부는 초대형 대중가수의 출현으로서 분위기를 띄울 수 있었고…. 최소한 대중문화 부문에서 삭막함은 사라졌다. 그래서 어쩌면 전두환 정권과 조용필은 희미하게나마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용필은 후대의 서태지를 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소지한 것에 비해 시대에 대한 직접적 발언을 자제했다. 아니 일언반구도 없었다. 대통령이 ‘세금’을 걷어 통치하면서 민생복지로 보답하고, 스타는 ‘사랑’을 얻어 인기를 누리면서 대중의 성원에 보답한다면, 조용필은 분명 ‘애프터 서비스’가 부족했다.
‘오빠부대’ 소녀들의 가공할 히스테리, 당시 운동권이던 안치환마저 훗날 “정말 조용필 같은 가수가 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을 만큼 절대적 인기를 누렸고, ‘친구여’라는 노래가 노랫말의 진의와 전혀 무관하게 대학가에서 ‘감옥에 끌려간 친구’를 그리는 진혼곡으로 불렸을 정도의 광대한 흡인력, 80년대 말 이문세와 변진섭이 대학축제에서 학생운동권에 의해 무대를 저지당했던 반면 어느 누구에게도 야유를 받지 않았던 놀라운 카리스마…. 조용필은 이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시대정신을 외면한 채 오로지 음악의 예술성에만 혼신을 다했다. ‘마이 웨이’가 따로 없었다.
그 때문에 386세대로 통하는 당시 진보진영에서 조용필을 보는 눈은 더러 싸늘했다. 당시 운동권이었던 어느 중소기업 판촉부장의 일성.
“조용필은 누가 뭐래도 대중문화의 큰 우산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산 밑에 놓이고 싶지 않았다. 왜 그의 노래에는 ‘떠나자’는 내용이 그리 많은가. 그 시절에 우리는 ‘모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시대를 거꾸로 가는 그의 노랫말에 화가 날 때도 있었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떠나요. 사랑의 노래를 멈추지 말아요. 언제나 끝이 없어라. 알 수 없는 질문과 대답. 저 넓은 하늘 끝까지 우리들의 사랑을 노래해요….’ - ‘미지의 세계’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 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 속을 벗어나 봐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 ‘여행을 떠나요’
하지만 노랫말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그에게 사회성이 담긴 노랫말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으리라. 그런 상황에 조용필의 음악은 사운드와 녹음수준 등 음악성의 업그레이드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그는 세기적 업적을 쌓았다.
돌이켜 생각해볼 때 어찌 제도권 음악계에서 전두환 시대에 대한 성토가 가능했겠는가? 거기에 편승하거나 드러나게 동조하지 않는 것이 대중가수가 취할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용필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았을지언정 ‘아 대한민국’도 노래하지 않았다. 불안한 중도노선에서 중용의 미학을 찾아낸 사람이 조용필이었던 셈이다.
그는 가능한 한 시대에 비켜서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탐구했다. 김민기식의 직접적인 저항은 아니었지만 그의 열창에는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항의’가 저류(低流)하고 있지 않았을까. 저항의 메시지는 꼭 가사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80년 5월의 봄, 비판의식이 거세된 메시지, 사운드에 대한 집착, 억눌림을 날려보내는 절규, 한 단계 도약한 우리 음반산업 등은 조용필이, 전두환 시대가 낳은 대중음악의 찬란한 광채이면서 옅은 그림자임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전두환과 조용필의 관계를 대결구도로 본다면 싸움의 승자는 과연 누구인가. 말할 것도 없이 ‘정통성’을 보유한 조용필이다. ‘정치는 짧고 예술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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