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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 만나고 온 가수 김연자
"김연자씨는 유명노래 '따먹어' 자기걸로 '통일' 시키는 데 재주가 있습네다"
4월 중순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으로 북한에서 사상 처음 단독 공연을 하고 온 가수 김연자. 3일에 걸친 공연을 통해 느낀 북한 문화의 실상과 아울러 자상하고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김연자를 직접 접대해준 김정일 위원장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모습 전격 공개.
일본에서 왕성한 가수활동을 하고 있는 김연자가 평양에서 처음으로 단독공연을 했다. 그것도 여러 가수들과 더불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 1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을 세번씩이나 단독으로 공연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거기에다 김정일 위원장까지 만나고….
지난 4월 13일, 일본 조간 신문에 깜짝 놀랄만한 한 장의 사진이 실렸다. 일본 신문에 일제히 게재된 사진은 바로 김위원장과 김연자가 만난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일본언론은 이를 문화면이 아닌 정치면에 보도했다. 왜냐하면 김위원장의 행보를 일본언론에서는 정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 그만큼 두 사람의 만남은 일본에서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5년 전부터 북한에 가려고 했지만 여의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평양에 도착해봐야 북한에 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가게 됐습니다.”
아카사카 TBS TV에서 녹화를 마치고 커피숍에서 만난 그녀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북한에서의 감격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 몇번이고 꿈만 같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니이가타 공항에서 북한 가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그녀의 손에는 북한행 비자가 들려 있지 않았다고 한다. 매니저, 헤어 메이크업 담당자, 전속 악단(그녀는 20여 명으로 구성된 자신만의 악단을 가지고 있다) 등 무려 26명이 출발하는데도 손에 쥔 것은 북한으로부터의 초대장뿐이었다.
“니이가타공항에서 저희들과 같이 가는 조총련 관계자 분이 갑자기 사진을 찍자고 해요. 이유를 물었더니 경유지인 우라지스크에서 북한 가는 비자가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준비로 사진을 찍은 거죠.”
“북한에서 단독 공연 아니면 못하겠다고 버텼어요”
실제로 우라지스크에 도착하니 북한 영사관에서 비자를 만들어 갖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평양에 도착할 때까지는 안심할 수가 없었다. 어떤 변수가 생겨 다시 일본으로 회항할지 모르니까.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잠시, 정확히 1시간 후에 고려항공을 갈아타고 마침내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깜짝 놀랐어요. 5백여 명의 사람들이 컴컴한 밤인데도 한복을 입고 환영을 나왔어요. 고적대들이 음악을 연주하고요. 감격했지요. 설마 우리들을 위해서 이 많은 인파가 나왔을까 했죠. 그런데 실제로 우리들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었어요. 그걸 보고 일본 악단 단원들이 대단히 감격했지요.”
그들이 묵었던 곳은 평양에서 제일 큰 고려호텔. 김연자는 그곳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 그녀에게 스위트룸을 내준 것. 두명의 통역원과 승용차 두대, 버스 한대가 그녀 일행을 위해 제공되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녀의 표현대로 감격, 감동 그 자체였다. 그런데 평양 방문 목적인 공연에 대한 실무협의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애당초 북한에서 초청을 받을 때의 조건은 평양을 비롯한 지방에서 세번의 공연을 하기로 약정돼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실무협상에 들어가자 4월7~9일 오전 11시에 공연을 하라는 것이었다.
김연자는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 11시라면 목소리가 아직 잠겨 있을 때다. 노래를 부를 시간이 아니었다. 어느 가수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가. 그런데도 북한측은 자꾸만 우겼다. 나중에는 정 오후에 하고 싶으면 다른 예술단(그때 약 7백여 명의 세계 예술인들이 ‘제19회 4월 봄의 예술제’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들어와 있었다) 속에 끼어 세곡의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그녀는 기가 막혔다. 완벽한 단독공연을 위해 26명이라는 스태프를 이끌고 평양까지 왔는데, 다른 팀에 끼어 서너 곡을 부르고 말라니. 게다가 지금까지 북한의 가수는 물론, 세계 예술인 어느 누구도 단독공연을 한 예가 없다는 사실을 들면서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마저 보였다.
“전 프로가수예요. 당연히 안된다고 버텼죠. 단독공연이 아니면 단 한곡의 노래도 부를 수 없고, 또 예정대로 오후에 공연하는 것이 아니면 무대에 설 수 없다고 단호히 잘라 말했지요. 그랬더니 실무관계자가 혼자 어떻게 1시간 반을 노래하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두시간 반 동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가수들이라고 했죠. 그랬더니 반신반의하더군요.”
그 때 김연자가 속한 센슈프로덕션의 사장이면서 악단의 단장이자 그녀의 남편이기도 한 오카 히로시씨(한국명 김호식)가 한 마디로 잘라 결론을 내버렸다.
“단독공연이 아니면 절대로 무대에 설 수 없습니다. 또한 오후 공연이라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저희들은 그냥 일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런 문제에 부닥쳤을 때 지금까지 북한당국에 ‘노’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김호식 사장이 확고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결국 북한당국이 한 발 양보했다. 대신 부를 노래가사와 무대 내용을 미리 보고 싶다고 했다. 일종의 사전 점검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일본에서 하던 그대로 리허설을 보여주었더니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리허설에서 그녀는 관객이 앉아있는 객석까지 돌아다니며 즉석인터뷰를 하는 등 관객과 하나가 되는 무대를 보여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리허설을 지켜보던 북한당국은 뜻밖에도 그 자리에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4월7일 오후 5시, 공연장인 청년중앙회관 밖에서 미처 들어가지 못한 관객들이 서성이는데도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이 들어차면 김연자가 객석을 돌아다니며 노래 부를 때 방해가 된다는, 순전히 그녀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사람이 많을 때면 객석 사이의 통로 계단에 앉아서도 공연을 봤다고 한다. 그런데 리허설 때 그녀가 객석을 돌아다니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마음껏 공연할 수 있도록 통로 계단에는 관객이 못 앉게 미리 조치를 취해 준 것.
“관객이 없으면 어떡하나 은근히 걱정했는데 그것은 완전히 기우였어요. 2천석 규모였는데 빈자리는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칠갑산> <사랑해> <정선아리랑> 등 우리 노래와 <휘파람> <임진강> 등의 북한 노래를 반반씩 불렀다. 한곡 한곡 부를 때마다 북한 관객들은 손뼉으로 장단을 맞춰 주었다.
4월9일 공연은 이미 평양에 소문이 퍼져서인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회관 앞에서 김연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혀 생각지도 않던 북한 팬들의 적극적인 환영 표시에 놀랄 정도였다.
4월9일 공연도 대성공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열광했고, 공연 도중 그녀는 몇번이고 목이 메어 눈물을 삼키면서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앵콜곡을 부를 때는 어느새 준비해 왔는지 수십명의 관객들이 무대로 뛰어올라와 꽃다발을 안겨 줬다.
4월10일에는 ‘제19회 4월 봄의 예술제’에 참가했다. 각국에서 온 7백여 명의 공연단들이 칠성문 도로에서 개선문에 이르는 2km를 도보로 행진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김연자는 특별대우를 받았다. 행렬 맨 앞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인 것이다.
“북한에서 카퍼레이드까지 하며 초특급 대우 받았어요”
“김정일 위원장이 나를 초대했고, 작년에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북한에 갔을 때도 두번이나 나를 데려오라고 했다니까 혹시나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있었어요. 그런데 4월10일이 되었는데 아무 소식도 없고, 더구나 11일 공연이 끝나면 다음날 일본에 돌아가야 해서 만나기는 틀렸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4월10일 예술제가 끝나고 저녁에 외국인을 위한 대연회에 참석하고 있는데 누가 절 불러요. 별실에 가보니 선전선동부 정하철 부장이 인민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분이 하는 말이 오늘 밤 12시 반에 특급열차를 타야 된다는 거예요. 그 순간 직감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러 가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정확히 12시 30분이 되자 그녀 일행을 태운 차가 평양역 플랫폼까지 그대로 들어갔다. 표를 사고 역을 통과하는 절차는 모두 생략된 채였다. 기차는 일류호텔 버금가는 초특급 열차였다. 그날밤 그녀는 열차 안의 트윈 룸에서 오랜만에 밀린 잠을 실컷 잤다. 이상하게도 긴장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새벽 6시에 북한 안내원이 깨워 일어나보니 함흥역에 도착해 있었다. 아침식사는 룸서비스로 제공되었다. 남기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정성스럽게 만든 한식이 나왔다. 9시가 되자 정하철 부장이 “오후 5시에 김정일 위원장을 모시고 공연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놀란 것은, 김위원장이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어서인지 어디를 가도 무대시설이 좋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무대시설이 부실하면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그 효과가 반감되거든요. 그래서 지방인 함흥이라 은근히 걱정했는데 무대시설이 완벽해요. 정말 놀랐어요. 왜 놀란 줄 아세요? 대회의장을 임시방편으로 공연무대로 만든 것이었는데도 공연하기에 손색없을 만큼 시설이 완벽했어요.”
그녀는 즉시 리허설에 들어갔다. 오후가 되자 안내원이 찾아와 김위원장과 접견이 있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녀는 서둘러 한복으로 갈아입고 남편 김호식씨와 함께 안내원을 따라갔다. 문을 열자마자 김위원장이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김위원장은 손을 내밀면서 20년 동안 좋아했던 가수를 비로소 만나게 됐다고 하면서 반갑다고 했다. 세 사람은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접견실로 자리를 옮겼다.
“아, 김연자씨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생각보다 건강했고 목소리 또한 TV에서 보던 대로 힘차고 자신만만했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손님을 초대해 놓고 안 만나는 것은 실례이지요. 그런데 김연자씨 스케줄을 보니까 4월12일에 돌아가신다고요? 난 15일까지는 평양에 계신 줄 알고 있었는데 12일에 가신다는 말을 듣고 그래서 급하게 여기까지 부르게 됐습니다. 동생이 있다면서요? 동생은 무얼 합니까?”
“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시간 동안 두사람은 많은 얘기를 했다 그녀는 김위원장과 대화 도중 자신에 대한 신상조사가 있었음을 눈치챘다. 가족에 대한 질문은 물론이고 일본무대에 설 때 한복을 자주 입는 것까지 화제에 올렸다.
그 때 김호식 단장이 김위원장에게 “관광객을 불러와 외화획득을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마자 김위원장의 대답이 떨어졌다.
“그런 건 필요없습니다. 우선 자연이 파괴되고 전염병 같은 질병이 들어옵니다. 또 관광에 신경을 쓰는 나라는 모두 퇴폐국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아주 단호한 어조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위원장은 김연자에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러달라고 즉석에서 신청곡을 말했다.
그리고 얼마후 김위원장이 “가수는 무대화장을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길래 그녀는 대개 한시간 반 정도 걸리지만 자신은 20~30분 내에 끝낸다고 무심코 말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김위원장이 묻는 이유를 이내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시각이 정확히 4시 30분. 공연이 시작되기 30분전이었다. 김위원장이 그 정도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 함흥공연에서 가장 편안하게 제 노래를 들었던 사람은 김위원장뿐일 거예요. 관중들이 어찌나 긴장해 있는지 저까지 긴장을 했을 정도니까요. 평양처럼 분위기가 들뜨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비롯해 일본어로 된 노래 세곡을 불렀어요. 그랬더니 김위원장이 사람을 시켜 무대로 꽃을 보냈어요.”
공연이 끝난 후 저녁 만찬을 같이 하자는 김위원장의 전갈이 왔다. 그때 김연자의 남편이 연회복을 미처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은 빠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위원장은 괜찮다면서 함께 오라고 재차 권유해 왔다.
“제가 굳이 김선생까지 같이 오시라고 한 것은 김연자씨 혼자 오면 혹시 긴장할까봐서 그런 겁니다.”
다시 한번 김위원장의 세심한 배려에 김연자는 감사하다는 말을 몇번이고 되풀이했다.
“김연자씨는 유명한 가수들의 좋은 노래를 모두 따먹었는데(리메이크) 대단합니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 통일(소화)시키는 것이 아주 훌륭해요. 한국의 대표적 가수 패티 김, 이미자, 그리고 일본의 미소라 히바리의 좋은 점을 모두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 조그만 체구에서 어떻게 그렇게 풍부한 성량이 나옵니까? 김연자씨는 일본 엔카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노래를 드라마틱하게 아주 잘 합니다. 우리 가수(북한)는 감정표현이 잘 되질 않아요. 그렇지만 최근 남조선의 가수들도 노래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선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 곡이 너무 빨라 가사를 알 수가 없어요. 노래는 그래서는 안되지요.”
김연자에 따르면 김위원장의 음악에 관한 논평은 평론가 수준이라고 한다. 대중가요든 클래식이든 예술에 조예가 깊다는 소문처럼 다방면에 박학다식했다는 것. 가령 북한에도 전자음악이 있지만 개혁해야 되고, 이를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미국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쁘다고 비판하면서, 이젠 이 전자음악도 싫증을 느껴 생음악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20여 년 전부터 김연자의 팬이었음을 밝힌 김위원장은 조용필, 이미자씨를 대단히 좋아하는듯 대화 도중에도 몇번이나 이들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고 한다. 한국노래 중 이수미의 ‘두고 온 옛고향’과 조용필의 ‘그 옛날 찻집’을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옛날 노래로는 ‘개나리처녀’와 ‘찔레꽃’을 좋아한다는 것.
“요즘 한국 가수들의 노래는 너무 빨라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더군요. 또 남한의 트롯가요가 캬바레에서 잘 불려지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일본의 미소라 히바리라든가 미야코 하루미 등 일본 가수들도 잘 알고 있었구요. 김위원장이 말씀하시더군요. ‘남조선의 인민만 인민이 아니고 북조선의 인민도 인민이니까 북한에 자주 와서 노래를 불러 달라’고요.”
김위원장은 김연자에게 “다음에 올 때는 평양시민이 다 들을 수 있는 장소를 준비해 놓고 부를 테니 다시 꼭 와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노래의 편곡을 부탁했다는 것. “김연자씨의 노래 편곡이 아주 대단했어요. 우리 북조선 밴드는 악기가 노래를 방해해요. 다섯곡 정도 일본에 보낼 테니까 편곡 좀 해주세요. 대신 돈은 일본보다 싸게 해주시고”라고 해서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식사중 천천히 많이 먹으라며 음식을 일일이 김연자 앞에 놓아주던 김위원장
이렇듯 김위원장은 솔직하면서 세심하고 또한 농담도 잘 했다. 그는 김연자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본대로 느낀 대로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했다. 얼마전 작고한 정주영씨 이야기를 하면서 “그 노인은 작년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 3일 내내 냉면만 먹고 갔어요”라고 말하며 식사를 하면서도 그녀에게 세심한 신경을 써주었다.
“왜 그렇게 못 잡수십니까? 몸 조절(다이어트)합니까?”
“전 공연이 끝나면 몸무게가 2kg이나 빠집니다. 그래서 공연 후에는 너무 지쳐서 잘 못 먹습니다.”
“아니 두 키로나 빠집니까?”
김위원장은 놀라면서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 하나하나를 일일이 그녀 앞에 갖다놓으면서 천천히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남한식 음식이름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아니 이 맛있는 녹두부침을 가지고 왜 남조선에서는 이상하게 빈대떡이라고 합니까?”라고 해서 또다시 좌중을 웃겼다. 김위원장의 식사 메뉴 중 특이한 것은 술에 산 새우를 넣어 마시는 것. 김위원장은 “함흥이기 때문에 마실 수 있는 술이라며 한번 마셔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빨간 와인만 계속해서 마셨다. 자제를 하는 듯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식사가 끝나고 갈 시간이 되자 김위원장은 고려자기를 선물로 주었다. 그녀도 일본에서 준비해간 클래식 세계명작 CD 1백장과, 자신의 노래가 담긴 CD 20장을 선물로 주었다. 그 길로 또다시 밤 열차를 타고 평양 고려호텔에 돌아오니 김위원장이 스태프 전원에게 보낸 선물(고려인삼차)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위원장이 너무너무 잘해 주었어요. 그땐 얼떨떨해서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참 잘 대해 주었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그녀는 아직도 북한에서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김연자가 일본에 온 것은 14년전. 처음엔 무명의 한국가수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한때는 가수생활을 그만두고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안주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를 붙잡아 준 것은 남편인 김호식씨였다. 그녀는 북한에서의 이번 공연도 남편의 확고한 단독공연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그 공을 모두 남편 덕으로 돌렸다.
이제 김연자는 명실공히 일본 어디를 가더라도 그녀가 유명한 가수임을 금방 알아볼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 브라질, 베트남 등 해외공연도 일년에 몇 차례씩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 오는 5월 8일 부산롯데호텔에서 디너쇼를 여는데 이어서 10일에는 광주 문화예술회관에서 콘서트를 가진다.
또한 그녀는 일본에서 가수 활동뿐만 아니라 고베지진 모금공연, 양로원 찾아가기, 목포에 있는 공생원 건물건립기금 공연 등 선행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에서 청춘기를 다 보냈기 때문에 이젠 일본생활에 익숙해졌어요. 한국은 가수들의 인기수명이 너무 짧아요. 순식간에 중년가수가 되어 버리고 공연장소도 너무 적어요. 그러다보니 발표할 기회가 적구요. 그에 비해 일본은 숙제라고 할 만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런 면에서 예능인들의 잠재능력을 개발하고 발산하게 하는 환경은 일본이 훨씬 잘 돼 있다고 봐요.
돈요? 원래 남편이 돈 욕심이 별로 없어요. 대신 서울에 계신 엄마(63)가 평생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벌었어요. 이제 제 꿈의 반은 이뤘다고 생각해요. 힘든 것이야 어차피 외국인이니까 날마다 힘들지요. 하지만 무대에 서는 그 순간만은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해요. 언젠가 혼자 노래도 부르고 연기도 하는 1인극을 꼭 해볼 생각이에요.”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잠시 짬이 날 때 며칠씩 서울집에 가서 친구들이나 동네 아줌마들과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이라고 한다.
“제가 대중가수라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러워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드릴수가 있고 또 이번 북한 방문처럼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하나가 되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녀는 시종 이 질문을 해도 북한 얘기, 저 질문을 해도 결국은 북한 얘기로 되돌아가는, 그야말로 북한에 푹 취해 있었다. 파격적일만큼 안팎으로 특별대우를 해주었던 김위원장에게 몹시도 고마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녀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물었다고 한다. “언제 서울에 오실 겁니까”라고. 그러자 김위원장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고 한다.
■글·유재순(재일 르포작가)
■ 사진·오세철(재일 사진작가), 김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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