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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산책] 정치인과 음악

찍사, 2001-08-20 22: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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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2001-08-18  04면  (해설)  01판  기획.연재  4199자


*가끔은 벗어나 “낭만을 위하여”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정치인중에는 음악 애호가들이 적지 않다.
이들중에는 악기를 다루는 솜씨가 전문가 수준까지 이른 사람도 있고 노래 실력이 가수 빰칠 정도여서 ‘국회의원 떨어져도 굶을 걱정은 없겠다’는 농담까지 듣는 실력파도 있다.

정치인의 음악적 소양은 요즘같은 삭막한 정치판을 부드럽게 만들고 비슷한 취향의 유권자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 이미지 관리는 물론 득표활동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나의 애창곡
정치인은 누구나 애창곡 하나쯤은 갖고 있다.각종 행사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이크를 잡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야당시절 ‘고향의 봄’ ‘선구자’ 등 가곡을 즐겨 부르다가 90년대 들어서는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가끔 부르기도 했다.목소리가 다소 탁하고 이미지 탓인지 분위기있게 노래를 부르는 타입은 아니라는 주위의 평가다.
하지만 국악에는 일가견이 있어 장구나 꽹과리를 두드리는 솜씨가 뛰어나다.97년 대선때 진도의 한 행사에서 꽹과리를 신명나게 쳐서 주위사람들을 꽤 놀라게 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승용차 안에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곡과 루치아노 파바로티,호세 카레라스,플라시도 도밍고 등 세계적 성악가 그리고 조용필 김수희 최성수 같은 국내가수들의 노래 테이프가 있다.
측근들은 이총재가 노래를 부르는데 별로 익숙치 못하다고 전한다.
총리 시절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출입기자들과 만찬을 하면서 강권에 못이겨 부른 것은 ‘농부가’중 짧은 한 소절이었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서는 18번 없이는 버틸 수 없어 조용필 노래를 몇 개 연습했다고 한다.그래서 선택된 18번이 ‘친구여’.고전음악에는 상당히 조예가 깊다.


김영삼 전대통령도 승용차 안에 한국 가곡 테이프를 갖고 다니며 가끔 듣는 편이지만 여간해서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80년대 민주산악회를 조직해 산에 다닐 때는 정상에서 ‘선구자’를 자주 부르곤 했다.그런데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부페음식점에서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산악회 송년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끝까지 불렀다.
그런 자리에서 김전대통령이 노래 부르기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는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을 애창한다.또 노사연의 ‘만남’도 자주 부른다.그림이나 붓글씨에도 조예가 깊어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어 그의 노래도 여느 정치인보다 깊은 맛이 있다고들 한다.
교회 장로인 민주당 김중권 대표는 찬송가를 잘 부른다.
하지만 선거구민 등과 어울릴 때는 ‘만남’을 부르곤 한다.자민련 김종호 총재권한대행도 ‘만남’을 자주 부르는데 쇼맨쉽 기질이 다분히 있다.
기자들이나 선거구민들과 포장마차 또는 서민적인 술집에 식사를 할 때 자청해서 한 곡조로 모든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많은 정치인들이 ‘만남’을 애창곡으로 하는 이유는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고 시작되는 노랫말이 유권자에게 득표활동을 하는데 딱 들어맞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이한동 국무총리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고전음악에 상당히 빠져있었다. 당시 서울 인사동과 명동의 르네상스와 돌체 등 유명한 고전음악 다방이 대학생 이한동의 즐겨찾는 곳이었다.그래서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베르디의 ‘여자의 마음’ 등을 별 부담없이 부를 수 있는 수준이다.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테너 박인수 교수와 가까운 사이인데 그가 불렀던 ‘향수’를 즐겨 부른다.민주당 한화갑 최고위원은 판소리에 강하다.술자리에서 분위기가 되면 춘향가 중 ‘옥중가’의 한대목을 구성지게 뽑아내고 ‘육자배기’와 ‘쑥대머리’도 부른다.특별히 배운 것은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 전남의 섬지역에서 살면서 많이 듣고 불러서 스스로도 대중가요보다는 판소리가 더 자연스럽다고 한다.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는 60년대 드라마 주제곡이었던 ‘청실홍실’을 민족의 애환이 담겨있어서라는 이유로 좋아하고 애창한다.


청와대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은 이수미의 ‘내곁에 있어주’가 18번이다.지난해 방북했을 때 만찬 자리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한때 정치권에서는 ‘북한에 가서 그 노래를 부를 정도로 남북관계 진전을 열망한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돌았으나 본인은 원래 이 노래를 좋아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애창곡은 각각 ‘김삿갓’과 ‘베사메무쵸’다.전 전대통령은 6공 정권에 의해 백담사로 유배갔던 이후에는 가끔 김삿갓을 전삿갓을 바꿔 부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 시절에는 정치에 입문한 육사후배들이 술자리에서 베사메무쵸를 자주 불러 그 얘기가 은근히 퍼져나가도록 했다는 후문이다.


◇사연많은 ‘나의 노래 나의 삶’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의 사연은 눈물겹다.그의 애창곡은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지난 82년 고문 장소로 악명높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의 사연이 계기가 됐다.당시 부인 인재근씨의 생일이 다가오자 선물을 준비할 형편은 못되고 생각 끝에 그 때 유행하기 시작했던 이 노래의 가사를 적어 틈틈히 라디오를 들으면서 준비했다.
드디어 생일날.면회실에 마주 않은 부인은 남편이 정성껏 준비한 이 노래를 울먹이며 들었다.당시 김위원은 모진 고문으로 몸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두 사람은 노래가 끝난 뒤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로 눈물을 쏟았다는 것이다.이후 사랑의 미로는 김위원의 사연있는 애창곡이 됐다.



노무현 고문은 지난 92년 14대 대통령 선거때 통합민주당의 유세단장이었다.당시 유세를 재미있게 꾸며나가기 위해 초청된 가수 이동원씨가 ‘작은 연인들’이란 노래를 편곡해 불렀다.노고문은 92년 대선 패배와 이 노래의 슬픈 곡조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대선패배가 무척 허탈하고 아쉬웠지만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에도 이 애창곡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어려웠던 시절에 갖고 있던 내 정치철학과 믿음,원칙이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은 대학때와 군사정권으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던 재야시절에 각인됐던 ‘예성강’의 노랫말 ‘말하라 강물이여 너만은 알리라’에 아주 빠져있다.그 노래만 들으면 당시 어려움을 헤쳐나갔던 상황이 기억나 어떤 것보다 힘을 솟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민주당 유재건 의원은 정치에 입문할 때까지는 찬송가밖에 부를줄 몰랐다.그러나 국회의원이 된 뒤 이런저런 자리에서 피할 수 없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경우에 다소 난처함을 느꼈다.그래서 송대관씨로부터 직접 그의 히트곡인 ‘해뜰날’을 교습을 받아 18번으로 삼았다.당시 IMF로 실직자가 늘어나는 등 사회전반적인 분위기가 암울한 상황에서 언젠가는 해뜰날이 있다는 희망을 주기위해서 였다는 것이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다.
뇌졸중으로 지금은 몸이 불편한 최형우 전의원이 현역의원 시절 가끔 눈시울을 붉히며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다.


5·18 직후 당시 보안사 서빙고분실 지하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20여일만에 이송되기 위해 승용차에 탔는데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최 전의원은 노래를 듣는 순간 이제 살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악기 다루기 “이 정도면 프로급”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는 아코디언과 만돌린,피아노,전자 오르간 등을 수준급으로 연주하는 실력을 갖고 있다.정치인 중에서 예술적 소양이 둘째라면 서러워할 지경이다.특히 30년 경력이 넘는 아코디언 연주솜씨는 탁월해 예전에 방송에도 출연한 적도 있다.5·16 직후 예그린 악단을 창단하는데 실질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민주당 김성순 의원은 트럼펫,섹소폰,클라리넷을 연주한다.지난 88년 송파구청장 재직시 트럼펫을 시작했으며 클라리넷은 성가 연주를 하기 위해 배웠다.요즘도 하루에 15분정도씩 꼭 연습하는데 가장 아끼는 곡은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트럼펫 주제가라고 한다.99년에는 임창제씨 등 포크송 가수들과 ‘시인과 포크송 코뿔소의 눈물’이라는 음반을 내고 노래도 취입했다.지난 총선때는 정당연설장에서 한 곡조 뽑은 것이 선거법 위반시비가 일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대학 시절부터 닦아온 자민련 정진석 의원의 전자기타 솜씨는 일류급이다.가끔 술집에서 전문악사의 기타를 빌려 70,80년대 유행했던 포크송을 부르면 전문 악사들조차 앵콜을 청할 정도다.
악기는 아니지만 민주당 신기남 의원이 작사한 노래가 10곡이나 된다.신의원의 형은 예전에 밤무대에서 알아주는 가수였는데 그의 곡에 노랫말을 직접 지어줬다.대표작으로 ‘이별의 제주공항’,‘바람꽃 당신’이 있다.오페라 등 고전음악회라면 가리지 않고 가는 음악광이다.
[김명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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