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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 ( 기사 수정 했음 )

ypc스타, 2002-07-13 0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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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탄생
  
국내 최고 연주자들로 막강 팀워크 과

  
권혁종 기자(조선일보 문화부)
  
밴드 위대한 탄생은 조용필 음악과 떼
어놓을수 없다. 위대한 탄생은 조용필
이 창밖의 여자로 화려한 전성기를 열
어 젖힌 1980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이란 이름으로 탄생했다. 창단 멤버는
곽경욱(리드 기타) 김택환(베이스) 김
정수(기타) 김청산(키보드) 이건태(드
럼) 5명이었다.
  
당시 대중 음악계 최고 연주자들로 결
성됐던 위대한 탄생은 폭발력 있는 사
운드와 테크닉을 과시하며 기존밴드들
과 차별화하는 연주로 팬들을 사로 잡
았다. 조용필이 국내 가요연주와 레코
딩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
받는 이면에는 밴드 위대한 탄생의 공
로도 크다.  
  
위대한 탄생은 이후 여느 록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인 멤버교체를 겪었다.
이호준 박강호 송홍섭 최이철 박진영 김희현 등이 들고 나던 팀은 82년 10월 조
용필이 그룹 이름을 버리고 솔로로 활동을 하면서, 해체되기에 이른다.
  
위대한 탄생은 83년 4월 조용필이 프로젝트 그룹형식의 백 밴드로 재결성하면서
2기 시대를 맞는다.. 송홍섭(베이스) 이호준(키보드) 변성룡(키보드) 김석규(기
타) 백천남(드럼) 유상윤(키 드-색소폰)으로 구성된 팀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를 받았다.
  
특히 한오백년 간양록 연주는 외국공연에서 찬사를 받았다 85년 일본 NHK TV 라
이브공연을 즈음하여서는 송홍섭(베이스) 최진영(기타) 박청귀(기타) 백천남(드
럼) 으로 라인업을 했고, 그 뒤로 이호준(키보드)  박강호(베이스) 최이철(리드
기타) 임동신(기타) 김희현 (드럼)등이 가입과 탈퇴를 거듭했다.
  
조용필은 한국을 떠나 일본을 주된 활동무대로 삼았던 88년 일본 백밴드 괜찮아
요를 만들며 위대한 탄생을 해체하는 아픔을 겪었다 92년 다시 한국에서 활동을
개시한 그는 뮤직파티라는 팀을 결성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불만 때문에 1년
만에 간판을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93년 위대한 탄생을 부활시켰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졌던 음악 인생 25년 기념 콘서트를 계기로 모인 최희선(기
타) 이태윤 (베이스) 김희현(드럼) 최태완(피아노) 한정호(키보드) 김영길(키보
드)이었다. 이들은 매년 50회가 넘는 조용필 공연을 통해 팬들 환호를 받았다.
  
이번 조용필 음악 인생 30년 콘서트 무대에서 위대한 탄생 멤버는 최희선(기타)
이태윤(베이스) 최태완(피아노) 이종욱(키보드) 이건태(드럼) 등 5명.
  
한사람 한사람 국내 최고로 꼽히는 이들이 막강 팀워크로 선사할 사운드는 오랜
추억 거리로 남을 것이다.
  
  

  
최태완(33)은 대학시절 그룹 다섯손가락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녹음실 세션맨
으로 활동하다가 역시 93년에 조용필에 발탁됐다.
  
  
.이종욱(40)은 80년 그룹 빅브라더, 91년 사랑과 평화를 거친 관록파다 위대한
탄생에는 멤버들 중 가장 늦은 95년에 가세했다.
  
위대한 탄생의 순수 건반주자 이종욱
  
   회원들이, 위대한 탄생 맴버들에 대한 관
심이 많은걸 알고 계신가요? 우선 가족들을
소개해 주세요. 물론 결혼은 하셨겠죠?
  
예. 아들만 둘 있구요. 큰아이가 올해 고등
학교 1학년 들어 갔구요. 작은 애는 초등학
교 6학년이예요. 와이프는 나하고 동갑이고
요 나하고 대학 동창이고요.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나요?
  
58년 10월 4일생이예요.  

아내와는 어떻게 만나셨는지. 그 얘기 좀 해 주세요.
  
그 얘기하면 대개 긴데... 원래는 그냥 친구였는데,  같은 과 친구였어요. 건축
과를 나왔는데 건축과에는 여자가 잘 없잖아요. 말하자면 내가(와이프 한테) 뽑
힌 건데... 스물다섯 살에 군대 갔다오자마자 결혼하게 됐어요.
  
건축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고, 그  다음에 어렸을 때부터 집에 피아노
가  있어서... 그 때 당시에는 집에서 피아노 치는 거하고 기타 치는 거하고 굉
장히 격을 다르게 생각했어요. 부모님들이. 피아노 치면 아무 소리 안 하시는데
기타 같은거 친다고 그러면은 딴따라라고 그러구 그랬어요. 전 중학교 1학년 때
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서 음악에 굉장히 관심이 있었으니까...
  
그러면 피아노는 언제부터 치시기 시작하셨나요?
  
피아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크래식으로 시작했을 텐데 어디까지 치셨나요?
  
많이 안 했어요. 체르니 40번까지 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부터 기타를 치시면서 그룹사운드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네, 그럼요.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계속 기타를 가지고 싶었는데 워낙 아버
지가  완고하셔서 기타를 갖지 못했어요. 내 기타를 가지는게 소원이었는데. 중
학교 이대부중 다녔거든요. 근데 집에서 학교가는 길에 염리동 로타리가 있는데
거기에 기타가게가 있었거든요. 그 중에 정말 갖고 싶은 기타 하나가 있었어요.
그해 여름에 장마 때 뚝이 넘쳐 가지고 홍수가 났어요. 그래서 그 집도 물에 잠
겨 기타가 다 젖은 거예요. 나중에 물 다 빠지고 청소 하고 나서 지나가다가 보
니까 세일이라고 크게 써놓게 내가 갖고 싶어하던 기타가 밖에 걸려있는데, 500
원에 딱 걸려 있더라구요. 왜 500원 이냐면 물에 있다가 말라서 기타가 약간 틀
어진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한테 졸라서 그걸 어렵게 샀어요.
  
부모님은 뭐라고 안하셨나요?
  
그럴까봐 어버지 없을 때만 쳤어요. 다락에다 몰래 숨겨 놓고 근데 어느날 들켰
어요. 아버지한테. 그래서 몽둥이로 무지 맞았죠.(조용필님을 비롯한 위대한 탄
생 멤버들의 공통점)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셨는데 어떻게 건축학도가 되셨나요?
  
그렇게 음악을 좋아했으니까 음대를 가야 되겠다고 했더니 집에서는 절대 안 된
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건축과를 가게 됐죠.
  
그럼 본격적인 음악 활동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대학교그룹에서 처음엔 기타를 쳤었어요. 그런데 그 옛날에 동네에 클럽이 하나
있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그 가게 주인이 동네 선밴데 니들 학교 음악하는 애
들 좀 빨리 모으라고 하더라구요. 자기네 업소에 팀이 도망가버렸대, 그래 가지
고 니네 빨리 며칠만 아르바이트 여기서 하라고 그러더라구요. 그 땐 건반이 없
었으니까, 건반이 있는 팀이 없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올겐이 있는 클럽은 간
판보다 올겐이있다는 프랭카드를 더 크게 걸 정도였어요. 그런데 실제로 라이브
를 해보니까 올겐이라는게 정말 필요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친구들한테 '너네
셋이서 하고 있어라'하고 나와서 올겐 하나를 사서 두 달 동안 그 때 당시 유행
하던 레파토리만 채보해서 연습을 해가지고 드디어 나갔죠. 그랬더니 그 업소가
소문이 난 거예요. 조그만 클럽에 올겐이있다 소문 나서 그 업소의 사장의 친구
가 '라스트 찬스'(참고:용필님의 오랜 친구이며 위대한 탄생의 초기 맴버이기도
했던 '당신'의 김정수씨가 라스트 찬스 출신임)의 드럼치던 선배였는데 놀러 왔
다가 올겐이 있는걸 보고 날 불러서 힐사이드 나이트클럽이라는 곳에 나나게 되
었어요. 그러면서 녹음실 섹션을 일찍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후 활동 사항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네 계속 녹음 작업을 하면서 '벗님들'에 한 삼 년. 그 때 당시 우리가 한 게 지
금 건모가 리바이벌 한 '당신만이'가 있죠. 그리고 한참  있다가 태윤이랑 송골
매도 했었고, 사랑과  평화 앨범 작업도 했었구요.
  
'위대한 탄생'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우리 리더 희선이하고 굉장히 오래 전에 알았어요. 응 그러니까 내가 스물한 살
때쯤부터 희선이는 고등학교 막 졸업했을 때부터 같이 연습하고 그랬거든요. 중
간에 몇번 같이 일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내가 인제 그룹은 너무 오래하다
가 그렇게 집안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펴서 했는데 사실은 부모님들이 보
기에 그렇게 잘나 보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뭐 보여드리는게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한게 아닌가 하는 회의를 갖게 되면서 그룹은 그만해야겠다
생각하고 편곡하고 녹음만 하게 됐죠.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희선이한테 연락이
왔어요. 위대한 탄생을 같이 해보자구. 그래서 고민을 많이했죠. 위대한 탄생의
음악 이라던가 위대한 탄생이라고 내세울 타이틀이 없거든요 단지 '조용필과 위
대한 탄생'했을 때 정말 위대한 탄생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
고 이 위대한 탄생이라는 건 음악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망이 되는 그런 그룹이예
요. 용필이 형이 그렇게 만드는 거겠지만 그래서 여지껏 내가 음악을 했는데 위
대한 탄생도 한번 해봐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그럼 그 전부터 조용필님과 위대한 탄생 음악에 대한 관심이 있으셨나요?
  
많았죠. 영향도 많이 받았구요. 용필이 형 초기의 음악들이 음악 하는 사람들로
서도 분위기 라든가 형식이라든가 충격적이었거든요. 말하자면 음악을 쭉하면서
구태의연하게 듣다가 용필이 형 음악을 들으면 '아! 이런 것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죠.
  
위대한 탄생에 들오어시기 전에는 조용필 님을 만나보신 적이 없나요?
  
있죠. 내가 있었던 팀 중에 '빅부라더'라는 팀이 있었거든요. 그때 용필이 형은
'그림자'를 했었어요. 그때만해도 용필이 형은 스타였고, 옛날에 방송매체 같은
데서 용필 형이 뜨기 전에도 아주 잘하셨어요. 그 때 봤어요.
  
그 땐 멀리서 보신 거 잖아요. 그렇게 멀리서 보실 때랑 위대한 탄생에 들어
오셔서 조용필 님을 가까이서 봤을 때 어떻게 다르던가요?
  
예전에도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카리스마를 느꼈거든요. 위대한 탄생
에 들어와서 보니까 옛날에 멀리서 느꼈던 그대로 더라구요. 고집도 대단하시고
음악에 대한 열정도 그렇고요.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것을 다 가진 분
이라고 생각해요.
  
언제 조용필님을 가까이서 처음으로 뵈었나요?
  
위대한 탄생에 들어 오기로 하고 연습실에서 처음 뵈었죠. 저를 보자마자 '너가
종욱이냐?' 그러시더라구요. 그러니까, 용필이 형도 저를 많이 봤던 거예요. 단
지 제가 종욱인 줄 몰랐던 거죠.
  
조용필님이 건반을 참 중요하게 생각하시잖아요. 어떤 평론가가 자유공연에서
건반이 세 개나 되는 것을 보고, 저렇게 많이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가
위대한 탄생의 연주가를 듣고 아 저래서 필요하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자유공연
의 진정한 승자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다 라는 평을 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요, 건반을하시는 입장에서 보면 매우 기쁘실것 같아요. 지금 최태완 씨와 함께
건반을 맡고 계신데 두 분의 역할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최태완이 후배기는 하지만 참 훌륭한 뮤지션이라고 생각해요. 태완이는 주로 리
듬과 기본적인 골격을 확실하게 맡아서 하고, 나는 주로 멜로디 진행을 하고 있
지요. 사실은 그래야 되거든요. 테크닉이 그정도는 되어야 다른 생각을 할수 있
어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콘서트 하시는 것과 국내 공연을 비교한다면?
  
미국 공연이요. 어떤 면에서 보면 참 좋아요. 국내 공연이야 사실 좀 건방진 얘
기 같지만 경쟁할 상대가 없거든요. 외국에 나가보면 정말 잘 하지 않으면 안되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죠. 미국공연 관객의 80%로 정도는 교포고 나머지가 외국
인들이예요. 미국공연에서 아쉬운 점은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향수를 많이
갖고 오시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레파토리도 그쪽에 맞춰지게 되죠. 미국
공연 할 때 스텝들은 현지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다보니 자존
심도 좀 상하죠.. 일본에서는 용필이 형의 지명도가 아주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이 많죠. 덕분에 위대한 탄생 한번 보는 것만 해도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죠
일본에 악단이 있었는데 우리들을 많이 우러러 봤어요. 그래서 좋았죠. 여러 유
명한 가수들이 나와서 한 120정도 공연을 했는데 우리가 그중에서 한 25분쯤 했
어요. 그런데 전체 공연을 보러왔다기 보다 조용필 형을 보러온 관객이 더 많았
어요.
  
위대한 탄생을 하면서 특별히 재미있었던 일은 없었나요?
  
재미있었던 일은 별로 생각이 안 나고 좀 힘이 들죠. 워낙 음 하나하나, 박자가
조금 틀렸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약간의 볼륨 차이만 나도 안되니까 늘 긴장을
하게 돼요. 그래서 콘서트를 하면서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다  하고
나면 아 우리가 정말 좋은 연주를 했다는 데서 보람을 느끼죠.
  
조용필 님이 멤버들이 실수했을때 굉장히 무서우시다고 들었거든요. 정말 그
러신가요?
  
살벌하죠. 태윤이가 있어야 하는데, 태윤이가 흉내를 잘내는데, 무서워요. 지금
도 잘 때리세요. 저도 발로 한번 차였잖아요. 발로 걷어차실때는 장난 반이세요
그런데 그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상대방이 느끼게 하세요. 장난으로 그러시는데
요. 그러세요.
  
개인적으로 조용필님의 노래 중 좋아하시는 곡이 있나요?
  
네! 용필이 형 곡은 거의다 좋아해요. 아! 좋다라고 다 느끼는 곡이고, 그 중에
서도 '그 겨울의 찻집'좋아해요
  
노래방 가서도 부르시나요?
  
네! 태윤이랑 같이 서로 '그 겨울의 찻집'부르겠다고 하지만 잘 안돼요. 용필이
형처럼 부르기가 어렵거든요.
  
조용필 님의 음악이 세계적으로 봤을때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하
시나요?
  
글쎄요. 뮤지션으로서의 자질도는 단연 뭐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
해요. 단지 우리 나라의 음악이 세계 공통적인 요소와는 약간 거리가 있기 때문
에 그런 면에서는 약간 갭이 있을 것 같고, 그외에는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고 생각해요.
  
위대한 탄생 외의 음악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지금 제작하려고 하는게 하나 있고요. 팀 섹션은 계속하고 있어요. 편곡은 많이
하고 있구요. 작곡은 앞으로 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죠. 멋있는걸 한번 해보고
싶어요.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음악을 기획해서 하고 싶어요. 그런데 아직 그걸
함께 할만한 신인 가수를 찾지 못했어요.
  
어떤 신인가수를 찾으시나요?
  
남자든 여자든 터프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좋아요. 뭔가 다르고 색깔이 있었
으면 좋겠어요.
  
음악 외 앞으로의 계획은 있으신가요?
  
네 위대한 탄생에 들어온 다음에 강릉에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노래방을 하나 차
렸거든요. 그걸 시발점으로 강릉에 라이브 하우스를 하나 이번에 만들게 되었어
요.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저도 고맙습니다.
  
언제나 말없이 조용하게 연주하시는 모습으로만 기억되던 이종욱씨는 의외로 말
씀을 잘 해주셨다. 그 분의 모습에서는 마치 사춘기 소년에게서 볼수 있는 순수
함과 열정이 느껴졌다. 백발뒤에 숨겨져있는 따뜻하고도 맑은 성품이 우리의 마
음을 환하게 비춰 주었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만 몰두 했을 때 우러러 나오는
자신감과 안정감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와중에도 긴 시간
동안 우리들의 질문에 자상하게 답해주신 이종욱 씨께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
고 싶다.
  
인터뷰 장소 : 신촌 우영 스튜디오
인터뷰 시각 ; 1998년 2월 5일 늦은 2~4시
취재 : 박계완, 민혜영
정리 : 박계완
    
.이건태(45)는 팀에서 유일한 80년 위대한 탄생 창단멤버다. 83년 윤수일밴드
로 적을 옮긴 뒤 88년에는 송골매에서 활약했다. 대중적 인기를 얻기도 했던 그
는 93년 팀 재편과 함께 친정으로 복귀했다.
  
  
최희선(36)은 77년 데뷔해 최헌의 불나비, 검은장미, 록 코리아 같은 그룹에
서 활약하다가 93년 위대한 탄생과 인연을 맺었다.
  

  
. 훤실한 키와 개구쟁이 같은 무대매너로 인기있는 이태윤(33)은 84년 그룹 부
활 창단멤버로 데뷔해 86년에는 송골매 베이스를 맡았다. 90년부터 이승철 신승
훈 등 인기가수들의 라이브 세션으로 성가를 높이다가 93년 위대한 탄생에 가담
했다.
  
얼마 전 결혼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부인과 단 둘이 살고 있나요?
  
어머님을 모시고 있어요. (여기서 개인적인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음악을 시작한 시기와 하게 된 동기는?

지금 녹음하고 있는거예요? 그럼 멋있게 해야지.
음악하게 된 동기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 가지고, 단두 식구니까 여러가지로 뭐 외롭
기도하고 또 심심하기도 하고, 물론 친구들은 많
이 있지만 그러면서 인제 무슨 교회를 가게 됐어
요 국민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성가대하고
그러면서 교회음악 가스펠을 하게 됐고 그러다가
하면서 대중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팝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그때가 정확하게 얘기하면 중
학교 2학년 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나는 대중음
악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물론 그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악기를 할까? 하는 계획은 안서있을 때지만, 프로
패셔널 음악인이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죠.
  
베이스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중학교 1학년때 부터 3학년 때 까지 교회의 가스펠 밴드에서  드럼을 했었어요.
드럼도 하고 피아노도 했지만 주로 드럼을 했었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팝음악
에 관심을 가지면서 과외로 팝음악 연주도하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서 본격적으로 락밴드를 하다가 베이스를 택하게 되었지요.
  
특별히 베이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특별히 베이스를 택한 이유는, 자의반 타의반 인데, 내 자신이 베이스란 악기에
대해 매력을 느꼈고, 타의에 의해 택하게 된 것은, 우리 그 당시 팀에 베이스를
연주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집에서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해요. 그 이
유가 그 친구 아버지가 베이스 같은 기타 보조나 하는 악기를 하려면 음악을 때
려치라고 그랬대요. 그러면서 나보고 베이스를 치라고 그래요 자기는 드럼을 친
다고, 자기 아버지 말씀이 드럼이나 리드기타나 그런 씩씩한 걸 해야지, 베이스
처럼 뒤에 묻히는 걸 하지 말라고 하셨대 그래서 내가 베이스를 하게 된 거예요
  
베이스란 악기의 특성과 베이스 감상 방법을 알려 주세요.

  
베이스의 특성은 일단 사람이 귀로 들을 때 기타나 피아노 소리 같이 빡빡 들리
지는 않아서, 그렇게 잘 느껴지지 않는 악기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요 불가결한
존재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음악 하는 사람들은 꼭
필요한 악기라고 생각하지. 별로 생색은 안 나지만 '음악의 핵심이다' 라고  생
각을 해요. 또 모든 음악이 베이스로부터 시작을 하고 베이스란 악기는 귀로 듣
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 것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여러 그룹을 거쳐 '위대한 탄생' 에 합류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동안의 음
악 경력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일단은 누구에게나 얘기를 해도 공감을 할 수 있는 것부터 말하자면 1984년도에
부활이라는 팀을 창단했어요. 그리고 부활이라는 팀 이름도 제가 만든 이름이예
요. 처음에는 지금 현재 부활에서 활동중인 기타하는 김태원이라는 친구하고 시
작해서 나중에 김종서하고 이승철을 영입해 85년 말까지 하다가, 86년도 겨울에
송골매라는 팀에 배철수, 김종서, 이봉원씨가 있던 팀에 들어가서 쭉 같이 활동
을 했죠. 참 그 전에 박미경과 건반 치던 김건모와 환희라는 언더그라운드 그룹
을 했었어요. 줄 레스토랑 같은 데서 연주했죠. 그리고 나서 송골매에 들어갔다
가 90년도에 송골매가 해체되고 91년부터 본격적으로 라이브 섹션을 시작했어요
이승철,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 심신 등 그 당시 최고의 가수들과 공연을 하
면서 스튜디오 섹션도 하게 됐어요 그리고 93년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시
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죠.
  
위대한 탄생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서로 다른 음악적 개성을 가진 연
주자들이 조용필이라는 대가수에 포커스를 맞춰서 활동하는데 따르는 갈등은 없
나요?
  
글쎄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아닌 그냥 '위대한 탄생'이라면 갈등이 있겠
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즉 용필형님의 반주 팀이라고 그
렇지만 어떻게 보면 그룹적인 요소도 많이 있고, 물론 하다 보면 갈등도 있지만
우리의 역할은 용필 형님을 보필하는데 있으니까 갈등이 있어도 각자 알아서 해
결하죠.
  
조용필님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 봤을때 조용필이라는 사람을 어떤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실 지켜줘야
하는 굉장한 인물인데 그런것들이 우리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많이 부족
해요. 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용필 형님은 최대 한도로 열심히 하시는데 참
안타까워요. 또 중요한 거는 조용필이라는 분 주위에 그 분한테 귀에 듣기 싫은
소리도 해 줄수 있는 그런 참다운 그러니까 임금과 신하로 치면 입에 쓴 소리도
하는 충신이 필요한데 그런것이 좀 부족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비교적 용필
형님을 평가하자면 최고의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죠.
  
음악적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음악적으로 말하자면 가수라고 하기 보단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음
악적인 정규 교육은 못 받으셨지만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그 어느 정
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와도 전혀 뒤지지 않는 손색이 없는 음악적인 기초와 탄
탄한 자질을 가지셨죠. 그게 최고인거 같아요. 멜로디 악보를 가져왔을때 그 악
보를 보고 바로 노래할수 있는 가수가 몇 안 되는데 그 중에 최고이신 분이니까
요.
  
이태윤씨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개인적으로 한마디로 얘기해서 토토 같은, LA에 유명한 밴드인데 훌륭한 연주자
들이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주해내는 그룹이라 좋
아해요(이때 최희선씨께서 등장, 리허설 시작을 알림, 나는 서둘러 인터뷰를 마
무리지어야 했다.)
  
베이스 연주 뿐만 아니라 조용필님이 노래하실 때 코러스도 하시는데 힘들지
않으신가요?
  
노래는 모든 연주자의 기본이기 때문에 노래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래가 안 되는 연주자들은 많지만 답답 하다구요. 내 생각에 내가 솔로 앨범을
낸다면 이태윤이란 음악인이 베이스뿐만 아니라 목소리로도 연주할 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어요.
  
솔로 앨범 내실 계획은 있으신가요.

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낼 거예요.
  
신해철씨를 중심으로 조용필님 음악 생활 3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내년에 헌
정앨범을 여러 뮤지션들이 만든다고 하는데 '위대한 탄생'도 그 앨범에 참여하
나요?

  
그건 전혀 몰라요. 전 참여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탄생' 을 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좀 소개해 주세요. 평소에 다
른 사람의 흉내를 잘 내서 모든 멤버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신다고 들었거든요.

한번은 일본에서 공연을 하는데 용필 형님안경이 있더라구. 그래서 혼자 그 안
경을 끼고 용필 형님 흉내를 내고 있는데, 누가 날 딱 뒤에서 때리드라고 누구
야 하고 돌아보니까 용필 형님이 "계속 해봐! 자식아!" 그러시면서 웃으시더라
구.
  
앞으로의 개인적인 계획은요?

일단은 가장 오랫동안 호흡을 같이하고, 또 앞으로도 음악을 같이할, 개인적으
로도 친구고 우리 최태완이랑 좋은 음악세계를 영위하는 거고, 그 다음으로 계
획이 있다면 '위대한 탄생' 형님들하고 최대한도로 오랫동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하고 싶다는 거 말고는 없어요.
  
마지막으로 요즘 가요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가요계의 모든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부정적인 시각
은 전혀 없어요. 나는 34살이지만 아직 젊은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는 세대라고
생각하고 또 폭넓은 연주자가 될려면 모든 가요계의 상황을 다 알아야 되고 그
중에서 나쁜 것은 비판할 수도 있고, 좋은것은 칭찬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가요계의 흐름은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로 공연이 시작되는 날 리허설시간을 쪼개 이태윤씨께서 인터뷰에 응해 주
셨습니다. 짧은 시간이라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쉽습니다만, 하나 하나
의 질문마다 진지하게 답해주신 이태윤씨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기사는
인터뷰 당시 분위기나, 이태윤씨의 개인적인 소견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인
터뷰에서 나눈 대화를 녹음한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그로인해 간혹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도 있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장소 : 대학로 라이브 극장 2관 옆 CAFE WIEN
인터뷰 시각 : 1997년 10월 28일 오후 3시
취재 및 정리 : 박계완
  
첨부

6 댓글

정수경

2002-07-13 19:36:43

이 인터뷰내용 [이터널리]회지에 실린 내용이군여, 취재역시 그당시 회장님이셨던 박계완님이 하신거고, 과거 이터널리 회지에서만 볼수 있었던 기사와, 사진을

정수경

2002-07-13 19:37:02

근간에 넷상에서 많이 봅니다. 요즘이야 사진에도 각 모임을 상징하는 문구가 들어가 출처를 알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질 못했죠~

정수경

2002-07-13 19:40:35

소중한 자료를 공유하는 것 뜻깊은 일이지만, 출처도 같이 알아두는 것 또한 좋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새롬

2002-07-13 22:41:54

그냥 인터넷을 보다가 보이기에 올린 것입니다

새롬

2002-07-13 23:08:04

정수경님 ! 이 계시판을 잘 못보셨나요 ?

새롬

2002-07-13 23:08:47

조선일보 ( 권혁종 기자 ) 라고 써 두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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