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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동반자이자 음악 친구인 아내 안진현 씨 떠나 보낸
조용필 통곡인터뷰& 처제 진영 씨의‘못다 한 이야기’
우리 시대 최고의 ‘가객(歌客)’ 조용필이 깊은 슬픔에 잠겼다.
인생의 반려자인 동시에 둘도 없는 음악 친구인 아내 안진현 씨를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그만 오열했다. 첫 만남부터 운명임을 직감한 두 사람은 주위에서 질투를 느낄 정도로 각별한 부부애를 과시했다. 아내에게 추모곡을 바치겠다는 조용필과 처제 안진영 씨를 만나 그동안 못다 했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또 안진현 씨의 유언장 내용과 조용필의 향후 계획도 소개한다.
●취재/정연진 기자 ●사진/이명헌 기자·안진형·서창문(프리랜서)
작은 거인’ 조용필이 깊은 슬픔에 잠겼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인생의 전부인 음악과도 바꿀 수 없다던 아내 안진현 씨를 먼저 떠나 보내면서 오열했다.
하지만 그는 아내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비록 아내의 육신은 선산에 묻혔지만, 그녀의 영혼만큼은 가슴 한켠에 또렷이 살아 있다. 아내와 생전에 나누었던 사랑과 추억 모두 그의 마음속에 필름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에게 아내는 인생의 동반자인 동시에 둘도 없는 음악 친구였다.
아내의 주검 앞에서 오열, 통곡…
안진현 씨의 죽음이 국내에 알려졌을 무렵, 조용필은 미국 버지니아주 근교의 장례식장에서 아내의 시신을 붙잡고 통곡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었기에 그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안진현 씨의 동생 진영 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형부는 처음 언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어요. 심장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 단계에 있다가 갑자기 일을 당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아무것도 먹질 않았습니다. 아니 밥을 입에 대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장례식이 모두 끝난 후 한국으로 들어가는 기내에서 죽 조금 먹은 게 전부예요. 가족들이 ‘저러다 실신이라도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였죠.”
조용필은 믿기지 않는 운명 앞에서도 아내의 장례 절차를 손수 챙겼다. 먼저 떠나는 아내의 발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려는 듯 일일이 조문객을 맞았다. 조용필의 이런 모습이 유가족의 가슴을 더 저리게 했다.
아내의 주검 앞에서 그는 최고의 가객도 스타도 아니었다. 그저 아내를 잃어 회한에 잠긴 평범한 지아비일 뿐이었다. 평소 형부와 언니의 부부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안진영 씨도 형부의 모습을 보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형부가 노래방에 가자고 그러는 겁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죠. 그러다 ‘아내가 없는 집에 차마 들어갈 수 없다’는 형부의 말을 듣고 그 심정을 조금은 알게 됐죠. 형부는 노래방에 들어서자마자 노래를 불렀어요. 언니가 평소 좋아하던 ‘산장의 여인’ ‘그 겨울의 찻집’ ‘언체인드 멜로디’ 등을 계속 부르는 겁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형부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어요. 그런 형부를 차마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다른 가족도 형부와 함께 울고 또 울었어요.”
이런 가운데도 조용필은 스타다운 면모를 잃지 않았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소속사에 전화를 걸어 “개인의 슬픔에 많은 관심을 가져준 고국의 언론과 팬에게 감사한다”며 “서울에서 있을 장례식 준비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 더 애틋했던 부부
그는 국내로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겨우 눈을 붙였다. 장례식을 치르는 3일 동안 한숨도 못 자다가 그나마 취한 짧은 휴식이었다. 유해를 안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검은 옷차림에 조화를 든 팬들과 취재진에게 가볍게 목례로 예를 갖춘 후 곧장 빈소로 향했다. 빈소에 도착한 그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미국에서는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이곳에서 장례식을 마쳐야 좀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제 아내가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아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음악 활동을 하는 겁니다.”
지난해 12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조용필의 콘서트에 안진현 씨는 결혼 후 처음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하필 남편의 연말 공연 일정과 아내의 수술 날짜가 겹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그의 콘서트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연말의 대형 공연 때마다 모든 일을 제쳐놓고 콘서트에 참석해 객석 어딘가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아내였다.
아내는 3년여 전부터 심장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동안 두 번에 걸쳐 간단한 심장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는 수술을 받는 아내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현실이 못내 아쉬웠다. 공연이 팬과의 약속이라고 해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쉬움을 하루 수십 통의 전화로 대신했다. 불행 중 다행히 아내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조용필은 국내에서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아내가 있는 미국으로 달려갔다. 공연 중 전화 통화에서 “당신과 같이 산책하고 싶다”고 말한 아내의 작은 소망을 빨리 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자기 손으로 꼭 끓여주고 싶었다. 아내가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면 함께 떠날 여행 계획도 세워놓았다.
해가 바뀌어 두 달여 만에 만난 두 사람은 하루 종일 함께 있었다. 그동안 다하지 못한 얘기를 나누는 그들에겐 하루해가 짧기만 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손수 음식을 장만했고, 아내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자기 아내가 복부의 통증을 호소했다. 처음에는 체한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병원으로 옮길 때도 ‘설마’ 하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응급실로 들어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함께 있은 지 만 하루 만에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응급실에서 오열하는 바람에 의사들에게 떼밀려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었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가족도 많이 놀랐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운명임을 직감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질투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죠. 내가 힘들 때 많이 배려해줬고, 언제나 따뜻한 아내였어요. 아내의 예전 모습이 자꾸 떠올라 더 보내기 힘들었나 봅니다.”
올해는 조용필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데뷔한 지 꼭 35주년이 되는 해이고, 아내와 만난 지 10년째가 된다. 그는 얼마 전부터 이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앨범을 준비해왔다.
상반기에 발매될 예정인 18집에는 어떤 식으로든 아내에게 바치는 추모곡이 들어갈 것 같다.
“예전부터 아내에 대한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부른 아내를 위한 노래들에 많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죠. 올해가 만난 지 10년째 되는 해라 아내와의 만남을 어떤 형태로든 기념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추모곡 형태가 될 것 같습니다. 추모곡이 아니라 아내의 고마움에 대한 노래를 작곡하고 싶었는데….”
새 앨범에 아내 기리는 추모곡 담을 계획
당시 언론은 ‘세기의 결혼’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시대 최고의 가객이었던 조용필과 미국의 유력한 사업가였던 안진현 씨의 만남은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다. 지난 1993년 미국 공연 때 조용필의 누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이듬해 3월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다른 부부의 부러움을 사는 다정함으로 주위로부터 ‘천생연분’이란 소리를 들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적지 않은 사업을 정리하면서 헌신적인 내조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 경제계에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남다른 수완을 발휘했던 안진현 씨도 남편 앞에선 사랑받고 싶은 아내였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마다 해장국 끓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안진영 씨는 이런 언니를 보고 “현모양처 스타일이었다”고 전한다.
“언니는 형부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을 줄여나갔어요. 자신의 모든 일을 형부에게 초점을 맞췄어요. 음식 하나를 만들면서도 형부의 입맛을 먼저 생각했죠. 언니가 미국에서는 알아주는 사업가잖아요. 그런데 형부 앞에만 가면 아내 역할에 만족했죠.
언니는 보기보다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남편보다 앞에 나서면 안 된다고 늘 형부의 뒤에서 내조하는 것에 만족했어요.”
남편은 아내를 위해 음악과 가정 모두에서 최선을 다했다. 늘 공연장을 찾아와 남편을 응원하는 아내를 무대 위에 오르게 한 후 관객에게 ‘팔불출’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음악을 하는 시간 외에는 늘 아내와 함께 보냈다. 결혼 5주년에는 미국과 아프리카, 유럽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와 행복에 겨운 부부생활을 자랑삼아 얘기하기도 했다. 조용필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이 드는 게 이런 건가 봐요. 서로 나이가 있으니까 연애하는 기분은 없지만, 이젠 옆에 없으면 허전해요. 딱히 뭘 챙겨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없으면 불안합니다. 사람들이나 점쟁이가 우릴 보고 천생연분이라고 그래요. 점쟁이 얘기가 나는 나무고 와이프는 흙이랍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음악과 사업 때문에 많은 시간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은, 그래서 더욱 서로에게 애틋했는지 모른다. 이들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뒤늦게 만난 것을 후회하듯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했다. 조용필은 한국으로 건너온 아내에게 최고의 음악과 행복을 선물했고, 안진현 씨는 미국으로 건너온 남편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했다.
아내 병상 지키다 이주일 사망 소식 들어
올해 들어 두 사람은 더욱 각별한 정을 느꼈다. 안진현 씨가 수술한 후 회복할 무렵 첫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공연 탓에 옆에 있지 못했던 조용필은 아내의 빠른 회복을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조용필이 공연을 마치고 미국에 들어왔을 때 안진영 씨는 언니와 같이 있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언니가 몹시 보고 싶었지만, 두 사람만의 오붓한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통해 “니 언니가 오늘 아침 형부가 끓여준 미역국을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듣고는 더욱 그랬다.
“사실 언니는 빨리 수술을 받으려고 했어요. 혹시 수술이 남편의 공연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꽤나 걱정을 했거든요. 형부도 공연을 하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나 봅니다.
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제가 간호를 했는데, 형부가 하루에 수십 통은 전화를 하더군요. 나중에는 언니가 ‘2분마다 전화하는 바람에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는 걸 지켜봤어요. 그러다 서로 만났으니 형부의 정성이 오죽했겠어요.”
조용필과 가족은 안진현 씨의 심장병을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미국 최고 권위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데다 결과가 워낙 좋아 완치를 낙관하고 있었다. 수술한 병원도 조용필이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결정했다.
“형부가 언니를 위하는 걸 보면 질투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그렇게 잘할 수 없어요. 한국에서 이주일 씨가 별세했을 때 형부가 가지 않은 것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형부는 그때 막 수술하고 난 언니의 곁에 있었죠. 이주일 씨의 사망 소식을 늦게 들은 것도 있지만, 형부는 그때 미국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형부는 이주일 씨 빈소에 곧바로 가지 못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나 봅니다. 아마 얘기를 하면 언니가 오히려 부담스러워 할까봐 그랬을 거예요.”
안진현 씨가 급히 병원으로 후송될 때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다. 그녀가 응급실로 옮겨졌다는 연락은 받은 가족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안진영 씨는 “병원에 도착해서 언니를 만져보니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었어요”라고 말하면서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언니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조용필 곁에서 이를 지켜본 안진영 씨 눈에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눈물보다 정직한 감정은 없었으므로. 언니의 주검과 형부의 오열하는 모습은 그녀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픔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두 사람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던 제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형부와 언니가 이틀 동안 함께 지냈다는 겁니다. 언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형부를 보기 위해 이틀을 더 살다 간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너무 늦게 만난 것을 항상 아쉬워했는데, 언니는 뭐가 급해 그리 빨리 갔는지. 형부가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 예전처럼 좋은 음악을 들려주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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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아내 유언장 내용 공개
“상속 유산 전액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기탁”
“아내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아내를 생각해서 유산은 형편이 어려운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한 수술비로 우선 사용하겠습니다. 평소 수술비가 없어 고통받는 심장병 어린이들을 보며 가슴 아팠습니다.”
조용필은 아내 안진현 씨로부터 받은 유산 2백만 달러(한화 약 24억원)을 사회사업에 전액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소속사인 YPC는 조용필의 뜻에 따라 불우한 심장병 어린이들을 도울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유산을 실제 상속받을 시점에 별도로 발표하겠다고 전했다.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 한 법률회사에서 고인의 변호사 조엘 실버, 동생 안진영 씨 등 유족들이 입회한 가운데 공개된 유언장에 의하면, 1천만 달러 상당의 고인의 유산 중 40퍼센트를 남편인 조용필에게 남겼다. 안진현 씨는 또 종교단체에 2백40만 달러를 기탁했고, 나머지는 어머니와 친딸, 조카들에게 남겼다. 조엘 변호사는 유언장을 공개하면서 “고인이 남긴 재산은 메릴랜드주 소재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 호텔, 포토맥 자택, 생명보험 등이었다”고 밝혔다.
탈상 전에는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조용필을 대신해 유언장 공개에 참석한 YPC의 김헌 이사는 “유언장을 토대로 3개월 안에 법원에 집행 신청을 해야 하고, 부동산을 처분해 유산을 배분하기까지 최소한 일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라며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으면 매각 시기가 더 늦춰질 수도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조용필 측이 유산 내역을 공개한 것은 아내가 유명을 달리한 후 그녀가 남긴 재산의 액수나 상속 문제를 놓고 그동안 추측성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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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통곡인터뷰& 처제 진영 씨의‘못다 한 이야기’
우리 시대 최고의 ‘가객(歌客)’ 조용필이 깊은 슬픔에 잠겼다.
인생의 반려자인 동시에 둘도 없는 음악 친구인 아내 안진현 씨를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그만 오열했다. 첫 만남부터 운명임을 직감한 두 사람은 주위에서 질투를 느낄 정도로 각별한 부부애를 과시했다. 아내에게 추모곡을 바치겠다는 조용필과 처제 안진영 씨를 만나 그동안 못다 했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또 안진현 씨의 유언장 내용과 조용필의 향후 계획도 소개한다.
●취재/정연진 기자 ●사진/이명헌 기자·안진형·서창문(프리랜서)
작은 거인’ 조용필이 깊은 슬픔에 잠겼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인생의 전부인 음악과도 바꿀 수 없다던 아내 안진현 씨를 먼저 떠나 보내면서 오열했다.
하지만 그는 아내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비록 아내의 육신은 선산에 묻혔지만, 그녀의 영혼만큼은 가슴 한켠에 또렷이 살아 있다. 아내와 생전에 나누었던 사랑과 추억 모두 그의 마음속에 필름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에게 아내는 인생의 동반자인 동시에 둘도 없는 음악 친구였다.
아내의 주검 앞에서 오열, 통곡…
안진현 씨의 죽음이 국내에 알려졌을 무렵, 조용필은 미국 버지니아주 근교의 장례식장에서 아내의 시신을 붙잡고 통곡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었기에 그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안진현 씨의 동생 진영 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형부는 처음 언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어요. 심장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 단계에 있다가 갑자기 일을 당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아무것도 먹질 않았습니다. 아니 밥을 입에 대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장례식이 모두 끝난 후 한국으로 들어가는 기내에서 죽 조금 먹은 게 전부예요. 가족들이 ‘저러다 실신이라도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였죠.”
조용필은 믿기지 않는 운명 앞에서도 아내의 장례 절차를 손수 챙겼다. 먼저 떠나는 아내의 발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려는 듯 일일이 조문객을 맞았다. 조용필의 이런 모습이 유가족의 가슴을 더 저리게 했다.
아내의 주검 앞에서 그는 최고의 가객도 스타도 아니었다. 그저 아내를 잃어 회한에 잠긴 평범한 지아비일 뿐이었다. 평소 형부와 언니의 부부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안진영 씨도 형부의 모습을 보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형부가 노래방에 가자고 그러는 겁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죠. 그러다 ‘아내가 없는 집에 차마 들어갈 수 없다’는 형부의 말을 듣고 그 심정을 조금은 알게 됐죠. 형부는 노래방에 들어서자마자 노래를 불렀어요. 언니가 평소 좋아하던 ‘산장의 여인’ ‘그 겨울의 찻집’ ‘언체인드 멜로디’ 등을 계속 부르는 겁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형부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어요. 그런 형부를 차마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다른 가족도 형부와 함께 울고 또 울었어요.”
이런 가운데도 조용필은 스타다운 면모를 잃지 않았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소속사에 전화를 걸어 “개인의 슬픔에 많은 관심을 가져준 고국의 언론과 팬에게 감사한다”며 “서울에서 있을 장례식 준비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 더 애틋했던 부부
그는 국내로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겨우 눈을 붙였다. 장례식을 치르는 3일 동안 한숨도 못 자다가 그나마 취한 짧은 휴식이었다. 유해를 안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검은 옷차림에 조화를 든 팬들과 취재진에게 가볍게 목례로 예를 갖춘 후 곧장 빈소로 향했다. 빈소에 도착한 그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미국에서는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이곳에서 장례식을 마쳐야 좀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제 아내가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아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음악 활동을 하는 겁니다.”
지난해 12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조용필의 콘서트에 안진현 씨는 결혼 후 처음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하필 남편의 연말 공연 일정과 아내의 수술 날짜가 겹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그의 콘서트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연말의 대형 공연 때마다 모든 일을 제쳐놓고 콘서트에 참석해 객석 어딘가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아내였다.
아내는 3년여 전부터 심장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동안 두 번에 걸쳐 간단한 심장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는 수술을 받는 아내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현실이 못내 아쉬웠다. 공연이 팬과의 약속이라고 해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쉬움을 하루 수십 통의 전화로 대신했다. 불행 중 다행히 아내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조용필은 국내에서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아내가 있는 미국으로 달려갔다. 공연 중 전화 통화에서 “당신과 같이 산책하고 싶다”고 말한 아내의 작은 소망을 빨리 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자기 손으로 꼭 끓여주고 싶었다. 아내가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면 함께 떠날 여행 계획도 세워놓았다.
해가 바뀌어 두 달여 만에 만난 두 사람은 하루 종일 함께 있었다. 그동안 다하지 못한 얘기를 나누는 그들에겐 하루해가 짧기만 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손수 음식을 장만했고, 아내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자기 아내가 복부의 통증을 호소했다. 처음에는 체한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병원으로 옮길 때도 ‘설마’ 하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응급실로 들어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함께 있은 지 만 하루 만에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응급실에서 오열하는 바람에 의사들에게 떼밀려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었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가족도 많이 놀랐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운명임을 직감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질투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죠. 내가 힘들 때 많이 배려해줬고, 언제나 따뜻한 아내였어요. 아내의 예전 모습이 자꾸 떠올라 더 보내기 힘들었나 봅니다.”
올해는 조용필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데뷔한 지 꼭 35주년이 되는 해이고, 아내와 만난 지 10년째가 된다. 그는 얼마 전부터 이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앨범을 준비해왔다.
상반기에 발매될 예정인 18집에는 어떤 식으로든 아내에게 바치는 추모곡이 들어갈 것 같다.
“예전부터 아내에 대한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부른 아내를 위한 노래들에 많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죠. 올해가 만난 지 10년째 되는 해라 아내와의 만남을 어떤 형태로든 기념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추모곡 형태가 될 것 같습니다. 추모곡이 아니라 아내의 고마움에 대한 노래를 작곡하고 싶었는데….”
새 앨범에 아내 기리는 추모곡 담을 계획
당시 언론은 ‘세기의 결혼’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시대 최고의 가객이었던 조용필과 미국의 유력한 사업가였던 안진현 씨의 만남은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다. 지난 1993년 미국 공연 때 조용필의 누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이듬해 3월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다른 부부의 부러움을 사는 다정함으로 주위로부터 ‘천생연분’이란 소리를 들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적지 않은 사업을 정리하면서 헌신적인 내조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 경제계에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남다른 수완을 발휘했던 안진현 씨도 남편 앞에선 사랑받고 싶은 아내였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마다 해장국 끓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안진영 씨는 이런 언니를 보고 “현모양처 스타일이었다”고 전한다.
“언니는 형부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을 줄여나갔어요. 자신의 모든 일을 형부에게 초점을 맞췄어요. 음식 하나를 만들면서도 형부의 입맛을 먼저 생각했죠. 언니가 미국에서는 알아주는 사업가잖아요. 그런데 형부 앞에만 가면 아내 역할에 만족했죠.
언니는 보기보다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남편보다 앞에 나서면 안 된다고 늘 형부의 뒤에서 내조하는 것에 만족했어요.”
남편은 아내를 위해 음악과 가정 모두에서 최선을 다했다. 늘 공연장을 찾아와 남편을 응원하는 아내를 무대 위에 오르게 한 후 관객에게 ‘팔불출’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음악을 하는 시간 외에는 늘 아내와 함께 보냈다. 결혼 5주년에는 미국과 아프리카, 유럽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와 행복에 겨운 부부생활을 자랑삼아 얘기하기도 했다. 조용필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이 드는 게 이런 건가 봐요. 서로 나이가 있으니까 연애하는 기분은 없지만, 이젠 옆에 없으면 허전해요. 딱히 뭘 챙겨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없으면 불안합니다. 사람들이나 점쟁이가 우릴 보고 천생연분이라고 그래요. 점쟁이 얘기가 나는 나무고 와이프는 흙이랍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음악과 사업 때문에 많은 시간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은, 그래서 더욱 서로에게 애틋했는지 모른다. 이들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뒤늦게 만난 것을 후회하듯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했다. 조용필은 한국으로 건너온 아내에게 최고의 음악과 행복을 선물했고, 안진현 씨는 미국으로 건너온 남편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했다.
아내 병상 지키다 이주일 사망 소식 들어
올해 들어 두 사람은 더욱 각별한 정을 느꼈다. 안진현 씨가 수술한 후 회복할 무렵 첫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공연 탓에 옆에 있지 못했던 조용필은 아내의 빠른 회복을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조용필이 공연을 마치고 미국에 들어왔을 때 안진영 씨는 언니와 같이 있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언니가 몹시 보고 싶었지만, 두 사람만의 오붓한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통해 “니 언니가 오늘 아침 형부가 끓여준 미역국을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듣고는 더욱 그랬다.
“사실 언니는 빨리 수술을 받으려고 했어요. 혹시 수술이 남편의 공연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꽤나 걱정을 했거든요. 형부도 공연을 하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나 봅니다.
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제가 간호를 했는데, 형부가 하루에 수십 통은 전화를 하더군요. 나중에는 언니가 ‘2분마다 전화하는 바람에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는 걸 지켜봤어요. 그러다 서로 만났으니 형부의 정성이 오죽했겠어요.”
조용필과 가족은 안진현 씨의 심장병을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미국 최고 권위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데다 결과가 워낙 좋아 완치를 낙관하고 있었다. 수술한 병원도 조용필이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결정했다.
“형부가 언니를 위하는 걸 보면 질투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그렇게 잘할 수 없어요. 한국에서 이주일 씨가 별세했을 때 형부가 가지 않은 것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형부는 그때 막 수술하고 난 언니의 곁에 있었죠. 이주일 씨의 사망 소식을 늦게 들은 것도 있지만, 형부는 그때 미국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형부는 이주일 씨 빈소에 곧바로 가지 못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나 봅니다. 아마 얘기를 하면 언니가 오히려 부담스러워 할까봐 그랬을 거예요.”
안진현 씨가 급히 병원으로 후송될 때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다. 그녀가 응급실로 옮겨졌다는 연락은 받은 가족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안진영 씨는 “병원에 도착해서 언니를 만져보니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었어요”라고 말하면서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언니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조용필 곁에서 이를 지켜본 안진영 씨 눈에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눈물보다 정직한 감정은 없었으므로. 언니의 주검과 형부의 오열하는 모습은 그녀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픔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두 사람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던 제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형부와 언니가 이틀 동안 함께 지냈다는 겁니다. 언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형부를 보기 위해 이틀을 더 살다 간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너무 늦게 만난 것을 항상 아쉬워했는데, 언니는 뭐가 급해 그리 빨리 갔는지. 형부가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 예전처럼 좋은 음악을 들려주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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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아내 유언장 내용 공개
“상속 유산 전액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기탁”
“아내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아내를 생각해서 유산은 형편이 어려운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한 수술비로 우선 사용하겠습니다. 평소 수술비가 없어 고통받는 심장병 어린이들을 보며 가슴 아팠습니다.”
조용필은 아내 안진현 씨로부터 받은 유산 2백만 달러(한화 약 24억원)을 사회사업에 전액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소속사인 YPC는 조용필의 뜻에 따라 불우한 심장병 어린이들을 도울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유산을 실제 상속받을 시점에 별도로 발표하겠다고 전했다.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 한 법률회사에서 고인의 변호사 조엘 실버, 동생 안진영 씨 등 유족들이 입회한 가운데 공개된 유언장에 의하면, 1천만 달러 상당의 고인의 유산 중 40퍼센트를 남편인 조용필에게 남겼다. 안진현 씨는 또 종교단체에 2백40만 달러를 기탁했고, 나머지는 어머니와 친딸, 조카들에게 남겼다. 조엘 변호사는 유언장을 공개하면서 “고인이 남긴 재산은 메릴랜드주 소재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 호텔, 포토맥 자택, 생명보험 등이었다”고 밝혔다.
탈상 전에는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조용필을 대신해 유언장 공개에 참석한 YPC의 김헌 이사는 “유언장을 토대로 3개월 안에 법원에 집행 신청을 해야 하고, 부동산을 처분해 유산을 배분하기까지 최소한 일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라며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으면 매각 시기가 더 늦춰질 수도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조용필 측이 유산 내역을 공개한 것은 아내가 유명을 달리한 후 그녀가 남긴 재산의 액수나 상속 문제를 놓고 그동안 추측성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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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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