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게시판
다시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요즘 정말 이상하게 글을 쓸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쓸데 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이제 글 시작하겠슴다.
<4> YP의 전성기의 음악적 조류에 대해
일단은 제목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제목의 의미는 그의 전성기에 그의 음악이 어땠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의 전성기에 한국의 대중음악이
어땠는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시면 제 글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 더 쉽게 아실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4-1> 전성기는 언제였는가?
무척 애매한 말입니다. 그의 전성기를 언제로 규정하는가 하는 것이
일단은 음악적인 면에서의 그의 전성기와 대중적 인기를 척도로 본
그의 전성기에 약간의 차이가 잇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단 대중적인 인기라는 면에서의 그의 전성기를 말하자면 84년에서
86년에 이르는 시기였을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계실수도 있을 것입니다.
좀 더 그의 전성기를 길게 보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일단 제 견해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음악적인 면에서는 가장 정점에 올랐던 시기가 85년에서부터
88년에 이르는 시기였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별 수 없습니다.
이 것 역시 제 견해라는 것이죠...
사실상 이 시기의 음악들이 가장 훌륭했다고 보는데에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4-2> 그 시기의 음악은 어떠했는가?
그렇습니다. 일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대상이 상당히 축소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논의를 쉽게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그가 지존의 자리에 오르기 까지의 여정을 잠시 살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여정이라는 것은 그의 음악적 여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당시의 음악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착오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제가 처음으로 올린 글에서 언급되고는 있지만
그가 자신의 시대를 열기 시작한 81년부터 세계적인 대중음악의
조류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고야 마는 그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예상했던 80년대는 뉴웨이브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대전제가
-실제로 당시의 음악적 동향에 대한 분석들은 이미 80년대는
뉴웨이브의 시대라는 것을 가정하고 뉴 웨이브라는 장르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 지곤 했습니다.-단 한 방의
총성에 무너지고야 말게 됩니다. 다름아닌 비틀즈의 전 멤버였던
존 레넌의 사망... 바로 그 것으로 인해 세계는 다시 한 번
락음악의 열풍에 휩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용필이라는 가수는 그 락음악을 가지고 한국의 가요계를
평정하는 쾌거를 이룩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이러한 락음악의 전성기의 도래를
결코 허용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당시에 조용필이라는 가수의 대중적 인기에
대한 일종의 방송의 제동에 있어 선봉의 역할을 했던
가수들이 전영록 이용 이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면 그러한
한국의 대중음악계의 성향을 한 눈에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지금과 비슷한 틴 아이들의 시초에 가까운 가수라고 할 수
있는 전영록이라는 가수와 그리고 이건희라는 클래식을
전공하여 상대적으로 오케스트레이션이 강한 작곡가라는 것을
무기로한 팝 발라드는 사실상 대중음악계의 선택이었던지
아니면 대중들의 선택이었던지 간에 모처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한국에서의 락음악에 그야말로 딴지를 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2> 그렇다면 다른 대안은 없었던가?
이런 질문은 조금 어리석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제가 어리석다는 말을 쓴 것을
가지고 불만을 표시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락음악이
대중음악의 전부냐?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조용필이라는
가수의 음악적 기반은 락 앤 롤이었고 락음악은 그의
발전된 형태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제 표현에 대해 조금
너그러우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YP의 성공으로
인해 자극을 받아 오버그라운드로 나오기 시작한 락음악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름이 아닌
바로 김수철과 들국화였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의 출현에 알게 모르게 많은 기여를 한 것이 바로
YP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것은 본격적인 락음악을 추구하던 김수철
이라는 가수가 오버그라운드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상당히 소프트한 음악을 가지고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들국화의 음악은 대부분의
곡들이 스틱스의 음악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카피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몇몇 전문가들이 꼽은 한국의 명반 100에 들국화의
데뷔앨범이 1위를 차지하였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다소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의 음악같지 않은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관계로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들국화나 김수철의 음악이 소프트한 음악 위주였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더라도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1986년을 전후한
한국 락음악의 르네상스 시대의 태동이 가능했다는 것은 명백한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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